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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472개 검색됨

  • 크리스티안 라스와의 인터뷰

    크리스티안 라스는 파텍 필립의 세월을 이어받아 덴마크에서 독자적 길을 걷는 워치메이커다. 그의 첫 시계 30CP는 한 점으로도 오랜 시계 제작 숙련의 궤적을 증명한다. 비아니 할터(Vianney Halter)가 발굴한 인재 크리스티안 라스는 약 10년 동안 파텍 필립 박물관의 복원가로 일하다 2018년 덴마크에 자신의 아틀리에를 열었다. 30CP는 그가 아틀리에를 연 후 완성한 첫 작품이자 유일한 시계지만, 200년에 가까운 파텍 필립의 역사만큼 깊은 세월이 흐른 듯한 느낌을 준다. 팀은 운이 좋게도 크리스티안 라스의 첫 여정을 함께한 일본 수집가 이케다 다케시를 오사카에서 만나, 그가 맞춤 주문한 30CP 시계를 함께 언박싱할 기회를 얻었다. 크리스티안 라스는 스위스 밖, 자신의 고향인 덴마크에서 독자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며 시계 제작을 이어가고 있다. 원활한 공급망을 확보하는 일로 고군분투하지만, 시계를 대하는 그의 마음은 언제나 정직하고 올곧다. 도그마 95 영화 운동처럼 자신만의 규율을 철저히 확립하고 워치메이커를 직접 양성하며 시계 제작은 물론 자신만의 메종 철학을 구축해 가는 그는 어떠한 사상을 지니고 있을까? 그리고 그의 세계관이 깃든 시계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시계 제작 여정이 담긴 첫 시계와 함께 인터뷰를 공개한다. 크리스티안 라스 30CP 30CP 지름 38mm 케이스 옐로 골드, 화이트 골드, 로즈 골드,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수동 30CP 무브먼트, 42시간의 파워 리저브 다이얼 저먼 실버 기능 시, 분, 초 스트랩 핀버클이 달린 가죽 처음으로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워치메이킹에 깊이 빠져들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기계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아버지는 항공기 정비사 출신 엔지니어였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타자기, 하이파이 장비, 자전거, 모페드 등을 함께 고치곤 했다. 학교에서도 수학, 물리, 역사처럼 이론과 구조를 이해하는 과목에 강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당시 가장 어려운 공학 분야였던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휴대전화와 GSM 네트워크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학업 중 노키아와 에릭슨이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진로에 고민이 생겼고, 그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조지 다니엘스(George Daniels)의 저서 <워치메이킹(Watchmaking)>을 발견했다. 고급 기계공학, 깊은 이론, 아름다운 디자인이 완벽히 결합된 세계였고, ‘언젠가 나도 이런 시계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이후 운 좋게 덴마크의 왕실 시계 제작자 쇠렌 안데르센(Søren Andersen)의 견습생 자리를 얻어 4년간 귀중한 시계 복원 및 워치메이킹의 기초 기술까지 모두 배울 수 있었다. 어떻게 본인의 브랜드를 창립하게 되었나? 견습 기간을 마친 뒤 스위스로 건너가 스팀펑크 미학과 혁신적 컴플리케이션으로 현대 독립 시계 제작의 흐름을 바꾼 전설적인 워치메이커 비아니 할터와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다. 쿼터 리피터와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춘 포켓 워치 기반의 프로젝트를 보여준 것이 계기가 됐다. 그의 산골 마을 아틀리에는 온전히 워치메이킹만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비아니의 작업은 그 당시에도 놀라웠고, 시대를 한참 앞서 있었다. 그제야 그의 작업이 현대 워치메이킹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한 나는 그곳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현대 독립 시계 제작 선구자들과 교류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훗날 나의 아내가 된 훌륭한 인그레이버 하넬로어도 있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여러 AHCI 멤버를 찾아다녔고, 특히 필립 듀포를 만나 그에게서 배운 피니싱 기술과 발레 드 주의 고전적 워치메이킹의 아름다움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후 나는 파텍 필립 박물관의 복원 책임자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왕실 시계 제작자 스벤 앤더슨(Svend Andersen)에게서 배운 전통 가공 기술과 스위스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경험이 내게 큰 문을 열어준 것이다. 파텍 필립 박물관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백과사전과 같고, 필립 스턴 회장 덕분에 누구나 세계 최고의 시계사를 연구할 수 있는 장소다. 그곳에서 10년 동안 축적한 지식이 지금 내 시계의 모든 기반이 되었다. 그 방대한 컬렉션을 자세히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스턴 회장에게 감사하다. 시그니처 모델인 30CP는 어떻게 탄생했나? 덴마크로 돌아온 뒤 한 컬렉터가 심플한 스리 핸즈 시계를 의뢰했는데, 디자인까지 전적으로 내게 맡겼다. 나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와 북유럽 디자인 전통을 반영한 시계를 만들고 싶었다. 조화로운 균형과 여백이 살아 있는 무브먼트 디자인을 지향했다. 먼저 수십 년간의 복원 과정에서 보아온 고전 시계처럼 깨끗한 설계를 실현하기 위해 무브먼트를 케이스에 고정하는 로킹 플레이트를 숨겨 전체적인 균형을 해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우르반 위르겐센과 자크-프레데리크 우리에(Jacques-Frederic Houriet)의 오버레이드 밸런스 브리지를 연구해 여러 시도를 한 끝에 30CP의 스틸 밸런스 브리지를 완성했다. 이후 남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 조정 가능한 헤어스프링 브리지를 고안했다. 이 브리지는 내가 복원했던 브레게의 마린 크로노미터에서 영감받았다. 브레게는 매우 흥미로운 형태의 헤어스프링 조정 장치를 사용했는데, 그 구조를 본떴다. 30CP에 비슷한 방식을 적용하려 했지만, 너무 작아서 구 형태의 조정 방식을 고안해 ‘루비 볼 헤어스프링 어저스터’라는 독창적 구조로 완성했다. 케이스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 파텍 필립 박물관에서 보아온 수많은 빈티지 케이스는 현대 시계에서는 거의 사라진 수려한 곡선과 디테일을 갖추었다. 오늘날의 케이스는 생산 효율 때문에 하나의 블록을 밀링해 옆면이 단순하고 케이스 나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러한 방식보다는 1940~1950년대에도 볼 법한 케이스 구조를 되살리고자 했다. 나사 구조를 없애 제작 난도는 높지만, 그만큼 요즘 보기 드문 아름다운 케이스가 탄생했다. 덴마크에서 파인 워치메이킹을 이어가는 데 어떤 장점과 어려움이 있나? 덴마크에서 시계 제작을 이어가는 것은 늘 제약과 자유가 공존하는 과정이다. 스위스처럼 공급망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많은 요소를 직접 만들어야 하고, 숙련된 워치메이커를 찾기 어려워 직접 양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이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워크숍에서 실현 가능한 것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워치메이킹에 기여할 수 있는 본질적인 가치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했기 때문이다. 도그마 95 영화 운동이 불필요한 요소를 철저히 배제해 영화의 순수성에 집중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돌아보면 우리가 오늘에 이르기 위해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도전과 압박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과와 30CP 역시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리스티안 라스가 작업하는 모든 시계의 다이얼과 무브먼트는 그의 아내이자 인그레이버 하넬로어 라스가 조각한다. 아내이자 인그레이버인 하넬로어 라스는 시계 작업에 어떤 의미를 더하나? 비아니 할터의 공방에서 만난 나의 아내 하넬로어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하나우 드로잉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기 전 진 슈페치알울렌(Sinn Spezialuhren)에서 워치메이커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미니어처 및 릴리프 인그레이빙을 전문으로 하게 된 조각가다. 그는 디테일을 보는 눈이 탁월해 우리 디자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브먼트와 다이얼은 그의 손끝에서 완성도를 갖추며, 최근 컬렉터들 사이에서도 작품성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창작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무엇보다 복원 과정에서 접한 역사적 시계들에서 큰 영감을 얻는다. 또 고전 건축물의 구조와 비례는 케이스 디자인에, 자연은 형태적 아이디어에 자주 연결되곤 한다. 어느 날 자연을 스케치하던 중 작은 새싹이 양쪽으로 잎 두 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장면이 30CP의 밸런스 브리지 디자인의 시작이 되었다. 최근 일본의 독립 시계 컬렉터 이케다 다케시와 오사카에서 30CP 언박싱을 진행했다. 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시계를 만들며 전 세계의 훌륭한 컬렉터들을 만났고, 그 인연은 종종 깊은 우정으로 이어졌다. 이케다 다케시와 처음 만난 것은 도쿄에서였다. 팬데믹 기간 셀만(Shellman) 워치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러 갔을 때였다. 당시 첫 시계를 막 완성한 시점이었다. 처음 만난 순간 그의 깊은 열정과 식견을 느낄 수 있었고, 그는 로즈 골드 30CP(로마숫자 다이얼 커스터마이즈)를 주문했다. 이후 몇 년간 SNS로 소통했다. 그는 시계 제작에 충분한 시간을 주며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완성 후 일본에서 직접 전달하려 했지만 미국 관세 변화로 방문이 무산되었고, 다음 일본 방문 때 꼭 다시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 우리 작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미래까지 함께해 줄 컬렉터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워치메이커로서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가? 워치메이킹은 내 인생의 ‘마법의 양탄자’ 같다. 세계를 여행하게 했고, 놀라운 사람들을 만나게 했으며, 삶의 목적을 주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꿈을 따르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 진심이 나의 시계와 아내의 작업을 통해 드러나길 바란다.

  • 제브뎃 레제피와의 인터뷰

    Interview with Xhevdet Rexhepi 제브뎃 레제피 하면 많은 이들이 ‘독창성’과 ‘창작의 에너지’를 떠올린다. 첫 시계로 세계를 사로잡은 그는 과연 어떤 세계관으로 시간을 해석할까. 제브뎃 레제피를 만난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는 천재적인 아티스트다”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예술 세계에 매료된 그는 탁월한 손재주로 파텍 필립 워치메이킹 견습 과정을 거쳐 2023년 브랜드를 창립해 스위스에 자신의 아틀리에를 열었다. 그의 시계를 정의하자면, 업계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독창적인 디자인과 시간 표시 방식이다. 이러한 제브뎃 레제피만의 표현법을 마주한 컬렉터는 하나같이 매혹될 수밖에 없다. 초침이 58초 만에 한 바퀴를 돌고, 매 회전 시 60초 지점에서 2초 멈추도록 설계된 메커니즘은 예측할 수 없는 그의 창의적 상상력을 반영하면서도, 전체적인 외관은 놀라울 만큼 미니멀하고 정제되어 있다. 팀은 GPHG 시상식 기간 중 그의 아틀리에를 방문해 작업 환경과 제작 과정,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시계 ‘미닛 이네르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그를 소개해 준 일본의 시계 수집가, 이케다 다케시와의 소중한 인연에 대한 대화도 빼놓지 않았다. 제네바 중심가 몽블랑 다리 인근에 자리한 그의 아틀리에는 그가 시계를 만들 때 머릿속에서 펼쳐졌던 상상의 조각이 그대로 실체화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입구에는 마치 기차역 대기실을 연상시키는 좌석이 놓여 있고, 한 방의 벽면에는 그의 아이디어를 마인드맵처럼 펼쳐 놓은 스케치가 빼곡히 붙어 있다. ‘다이얼 콘셉트’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어떤 스케치는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또 어떤 스케치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계속 덧붙여진다. 그는 평소 건축과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 워치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6시 방향 스몰 세컨즈의 오픈워크 서브 다이얼을 통해 드러나는 벽돌 패턴의 브리지 역시, 건축적 모티브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사례다. 첫 시계가 공개되자 전 세계 애호가들이 한눈에 반한 그의 시계. 그렇다면 이 시계를 만든 이 워치메이커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35세이며 워치메이커이자 아티스트다. 2023년에 내 이름을 딴 브랜드를 창립했다. 시계 제작자가 되기 전, 캐비닛메이킹을 했다고. 그 경험은 지금의 작업과 어떻게 연결되나?캐비닛메이킹은 내 첫 직업이다. 4년간 견습을 마쳤지만 일할 기회가 많지 않아 오래 이어가진 못했다. 이후 파텍 필립의 워치메이킹 견습을 시작했는데, 그때 캐비닛을 만든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두 분야 모두 섬세한 손의 제스처, 정교한 마감, 공예적 감각이 필요하다. 규모만 다를 뿐, 본질적인 감각은 매우 유사하다.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소개한 이유가 있나? 나는 시계를 ‘창작의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손으로 그리고, 구상하고, 직접 만들고, 기술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나는 워치메이커인 동시에 예술가라고 느낀다. 나의 작업은 ‘제작’보다는 ‘표현’에 가깝다. 본인의 브랜드까지 설립하기까지 중요한 전환점은 무엇이었나?10년 넘게 기술을 갈고닦았지만, 가장 큰 전환점은 ‘내 이름으로 된 시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안전한 길에서 벗어나 스스로 도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지만, 결국 그 결정이 커리어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했다. 워치메이킹 철학을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진정성.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만드는 일.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고, 모든 면에서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나의 워크플로의 중심이다. 미닛 이네르테(Minute Inerte) 미닛 이네르테(Minute Inerte) 미닛 이네르테(Minute Inerte) 미닛 이네르테 지름 38mm 케이스 플래티넘, 30m 방수 무브먼트 수동 와인딩 기계식 무브먼트, 69시간의 파워 리저브 다이얼 파스텔 블루 및 그린 계단형 다이얼 기능 시, 분, 초, 점핑 및 데드 비트 미닛 스트랩 가죽 점핑 미닛 메커니즘은 매우 독창적이다. 어떻게 탄생한 아이디어인가? 파텍 필립에서 견습할 때 매일 기차로 출퇴근했다. 스위스 기차역의 시계는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초침이 빠르게 한 바퀴를 돌고 2초간 멈춘 뒤, 분침이 점프한다. 그 움직임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눈을 뗄 수 없었고, 나의 시계에도 이 같은 감각을 담고 싶었다. 역사적으로도 흥미로운 방식이다. 전국 기차역의 시계를 정확히 동기화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구현 과정은 어땠나? 꽤 어려웠을 것 같다. 매우 어려웠다. 세 번 이상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던 중 프라하 여행에서 우연히 본 포켓 워치에서 힌트를 얻었고, 그 구조를 참고해 마침내 점핑 메커니즘을 완성할 수 있었다. 워치메이커라면 단순한 스리 핸즈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술적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닛 이네르테는 예술과 건축, 전통 워치메이킹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이는 시계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나? 케이스, 다이얼, 무브먼트의 기하학적 구성은 모두 건축 요소에서 차용했다. 키스톤, 교회나 모스크의 창문, 무브먼트의 페디먼트 등 다양한 건축적 디테일을 담았고, 색채는 예술적 감성을 반영했다. 여기에 전통적 워치메이킹 표현 방식도 균형 있게 더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예술가가 있나? 주로 건축과 음악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는다. 특히 에이셉 라키, B. B. 자크, 부바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은 나에게 늘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다. 일본 컬렉터 이케다 다케시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다케시는 나의 첫 고객 중 한 명이다. 언어가 달라 소통하기 어려웠지만 통역을 두고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쌓였다.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직접 시계를 전달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새 모델 계획이 있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나의 목표는 12개의 서로 다른 모델을 만드는 것이며, 모든 모델에 ‘점핑 미닛’을 넣을 계획이다. 다음 모델들은 지금보다 더 복잡해질 수도 있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GPHG 2023에 출품한 이유가 궁금하다. 브랜드를 막 창립한 해였기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상도 받고 싶었다. 다만 당시 제출했던 시계는 아직 프로토타입 단계였고, 지금 생각해 보면 시기적으로 조금 이른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그 경험은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더 명확하게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도전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이후의 작업은 더욱 단단해졌다. 지금은 그때의 선택도 나의 여정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독립 워치메이킹의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23년, 렌더링만 존재하던 상태에서 시계를 판매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완성형을 누구도 본 적이 없었기에 큰 압박이 있었지만, 믿고 구매한 분들이 있었기에 반드시 해내야 했다. 그 부담감이 오히려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고, 끝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다.

  • 기술과 미학, 감성이 어우러진 곳 F.P.Journe

    F.P.JOURNE where technology, aesthetics, and emotion coexist 기술과 미학, 감성이 어우러진 곳 18~19세기 시계 제작 정신은 이제 스위스에서 프랑수아-폴 주른의 시계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Chronomètre à Résonance  Ref. RQ 시계 제작자들이 지켜온 것, F.P.Journe이 다시 일으킨 것 워치메이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클락메이킹’, 즉 시계탑과 같은 정밀 시계를 통해 공동체의 시간을 측정하던 전통이 있다. 해시계, 물시계, 모래시계에서 시작된 인간의 시간 장치는 계산과 기하, 금속공예와 물리학의 원리를 해석한 작은 조각들이었고, 광장 한가운데 솟은 시계탑에서 울리던 종소리와 시간의 논리는 태엽과 기어, 도르래와 이스케이프먼트의 체계를 거쳐 마침내 손목 위로 옮겨 왔다.이 휴대 가능한 ‘작은 기계식 물건’이 더욱 정확하고 복잡한 기능을 담아내도록 길을 연 이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다. 브레게는 베르사유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한 후 장-앙투안 레핀(Jean-Antoine Lépine)과 페르디낭드 베르투(Ferdinand Berthoud) 같은 파리의 주요 장인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기요셰 다이얼, 브레게 핸즈, 브레게 숫자라는 자신만의 고유의 디자인으로 오늘날 기계식 시계의 대부분이 따르는 기술과 미학의 기준을 확립했다. 공 스프링을 이용한 리피터, 촉감만으로 시간을 읽는 몽트르 아 탁트, 회전하는 케이지로 정밀성과 시각적 경이를 모두 겸비한 투르비용까지, 그의 발명은 기능적 매력은 물론 감동을 설계한 예술이었다. 18세기 말 활약한 또 다른 프랑스의 거장 시계학자 앙티드 장비에(Antide Janvier)는 천문과 역법, 정밀도의 영역에서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그는 공진(같은 진동수의 외력이 작용할 때 진폭과 에너지가 커지는 현상) 원리를 시계 제작에 최초로 응용한 인물로, 태양계의 운동을 구현한 플라네타리와 복잡한 천문 및 역법을 통해 시간, 기계, 천문학을 하나로 융합한 ‘기계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연구와 철학은 현대 워치메이킹에도 깊은 영감을 남겼다. 이들이 일구어낸 시계 제작의 황금기는 프랑스 시테섬(-de-la-Cité)의 도팽 광장(Place Dauphine)에서 절정을 맞았고, 그 정신을 후대에 유산처럼 남겼다. 현대에 이르러 그 유산을 21세기의 기술과 감각으로 되살린 인물이 프랑수아-폴 주른이다. 그는 현대 워치메이킹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다. 그가 1999년 F.P.Journe 메종을 스위스 제네바에 세운 지 25년 남짓이 된 지금, 여전히 연간 생산량을 1000피스 미만으로 제한하며 ‘적을수록 더 정밀하고, 더 진실하다’는 태도를 고수한다. 그럼에도 그의 시계는 출시 전부터 수집가들의 대기 명단을 채우고, 초기작에서 현행까지 경매와 아카이브에서 파텍 필립 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제조업체 중 하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록’으로 거론된다.프랑수아-폴 주른의 여정은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에서 시작된다. 1957년생인 그는 10대 시절 파리의 시계 복원가였던 삼촌의 공방에서 고전 시계들을 직접 손으로 체득했다. 브레게와 장비에, 조지 대니얼스의 정신을 복원과 연구를 통해 이해한 그는 투르비용과 레몽투아 데갈리테(Remontoir d'Égalité) 같은 18~19세기 발명을 손목시계로 옮기겠다는 비전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1980년대 주문 제작으로 쌓은 기술 감각은 1991년 첫 투르비용 손목시계 프로토타입, 그리고 1999년 매뉴팩처 설립으로 이어진다. Chronomètre à Résonance  Ref. RQ Chronomètre à Résonance  Ref. RQ 크로노미터 아 레조낭스 Ref. RQ 지름 40mm 또는 42mm 케이스 950 플래티넘 또는 18K 6N 골드 무브먼트 18K 로즈 골드로 제작한 칼리버 1520, 42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듀얼 디스플레이(24시간 아날로그 및 12시간 아날로그),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다이얼 화이트 골드 또는 핑크 골드 I nvenit et Fecit—내가 발명했고, 내가 만들었다 수집가가 시계를 고를 때든, 전문가가 콩쿠르에서 최고의 시계를 평가할 때든, 최종적인 결정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감정’이라고 말한다. 이성보다 먼저 마음이 향하는 시계, 수많은 고민 끝에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전율과 감동을 잊지 못해 손이 가는 시계. 그것이 진정한 선택의 이유다.프랑수아-폴 주른은 바로 그 ‘감정의 언어’를 이해하는 워치메이커다. 수십 년간 시계 제작에 몸담아온 이 장인은 근대 워치메이킹의 기틀을 세운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정신을 계승하며, 21세기의 기술과 감성으로 이를 되살렸다. 초기 작품부터 무브먼트, 케이스, 핸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품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그의 방식은 장인으로서의 신념을 온전히 드러낸다. 그래서 F.P.Journe의 시계는 그 어떤 레퍼런스라도, 처음 마주한 순간 단번에 감정의 심지를 밝히는 힘을 지닌다.다이얼에 당당히 새겨진 라틴어 문구 ‘Invenit et Fecit(내가 발명했고, 내가 만들었다)’는 그 철학을 가장 간결하고 명료하게 보여준다. 설계부터 가공, 조립과 마감까지 모든 과정에 ‘작가성’과 장인 정신이 담겨 있다. 초기 레조낭스 역사에서 희귀한 모델로 꼽히는 ‘크로노미터 아 레조낭스 서브스크립션 No. 2’가 2025년 필립스 경매에서 3,327,000스위스 프랑(약 61억 원)에 낙찰된 사례처럼, 주른의 작품들이 경매장에서 연이어 주목받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예술의 세계에서 위대한 생존 작가의 작품이 더 큰 주목을 받듯이, 워치메이커로서 발전을 거듭하는 주른의 시계들이 시계 애호가는 물론 고귀한 작품을 수집하고자 하는 깊은 안목을 지닌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한정 에디션이든, 서브스크립션 모델이든, 이렇게 완성된 그의 시계는 기술과 감성의 밀도를 동시에 높인다. 이로 인해 오늘날의 문화와 테크놀로지 신을 이끄는 인물들조차 기계적 논리와 순수한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그의 시계를 발견하고, 그 정제된 감성에 깊이 매료된다. Chronomètre à Résonance  Ref. RQ 지난 2025년 11월 필립스 경매의 10년간의 경매 역사를 기념하는 특별 경매 ‘Decade One’에 출품된 2000년 버전의 F.P.Journe 크로노미터 아 레조낭스 ‘서브스크립션’ No. 2. 천 번의 실험이 만든 완전한 공진, 그리고 F.P.Journe으로 이어지는 혁신 공진 시계의 제작은 극도로 까다로운 작업으로, 시계사 전반에서 대부분의 시도가 실험 수준에 머물렀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동일한 주파수를 지닌 두 진동체가 서로의 리듬에 동조하는 ‘공진 현상’을 연구했다. 그는 처음엔 두 개의 밸런스 휠을 갖춘 시계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지만, 수많은 실험 끝에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실험은 이를 1000번 이상 증명했다’라고 기록했다.공진 현상은 네덜란드의 과학자이자 발명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가 처음 관찰했으며, 그는 세계 최초의 진자 시계(1656년)와 함께 플랫 밸런스 스프링(1675년)을 개발했다. 이후 프랑스의 앙티드 장비에가 공진 클락을 제작하며 그 원리를 이어갔다. 공진의 역할은 두 진동체가 에너지를 교환하며 서로의 오차를 상쇄하는 데 있다. 단, 두 진동체가 거의 완벽히 동일한 주파수로 정밀하게 조정되어야 한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개발한 공진 포켓 워치에 대해 그는 “두 밸런스의 하루 오차가 20초를 넘으면 공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이처럼 최상의 정밀성과 물리학적 이해가 요구되는 공진 시계는 오랜 세월 동안 오직 소수의 장인만이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브레게 이후 이 원리를 완전히 구현한 현대 인물은 사실상 프랑수아-폴 주른이 유일하다. 그는 2000년 크로노미터 아 레조낭스(Chronomètre à Résonance)를 공개한 이래 여러 버전을 선보였다. 첫 모델은 서브스크립션 방식으로 제작되었고, 2001년 정식 컬렉션에 편입되었다. 이후 18K 로즈 골드 무브먼트와 루테늄 다이얼, 2010년 디지털 인디케이터, 2019년에는 12시간과 24시간 표시를 결합한 모델이 등장했다. 하지만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의 공진 연구는 훨씬 이전에 실험용 프로토타입 제작으로 시작되었다.2020년형 레조낭스는 기존 모델과 외관상 유사하지만 구조에는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12시 방향에 있던 크라운이 2시로 이동해 4시 크라운과 균형을 이루며 다이얼의 대칭성을 유지하고, 향상된 인체공학 설계를 제공한다. 2시 크라운은 와인딩과 시간 설정용이며, 회전 방향에 따라 좌우 다이얼 시간을 각각 조정한다. 4시 크라운은 두 초침을 동시에 리셋한다. 다이얼 중앙의 디퍼렌셜 휠은 메인 스프링의 에너지가 두 기어 트레인으로 분배되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기존의 두 배럴은 단일 배럴로 통합되어 로즈 골드 메인 플레이트 아래에서 중앙의 디퍼렌셜을 통해 동력을 고르게 전달한다.프랑수아-폴 주른은 여기에 레몽투아 데갈리테(Remontoir d’Égalité)를 더했다. 각 기어 트레인에 1초 간격으로 재충전되는 이 장치는 메인 스프링 장력이 약해져도 진동 폭을 일정하게 유지해 정확성과 안정성을 높인다. 이 중력 레몽투아의 개념은 1595년경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워치메이커 요스트 뷔르기(Jost Bürgi)가 고안하고, 이후 영국의 워치메이커 존 해리슨(John Harrison)이 스프링형으로 발전시켰다. 공진 시계처럼 두 밸런스의 진폭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구조에 필수적인 장치다.덕분에 F.P.Journe의 공진 시계는 한층 정밀하고 안정적이다. 다만 파워 리저브는 약 42시간이며, 그중 28시간만 완전한 등시성이 유지된다. 이후에는 레몽투아 스프링이 풀려 일정 토크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브레게와 장비에가 그랬고, 에드몽 예거가 프랑스 주얼러와 스위스 매뉴팩처를 잇는 다리가 되었듯, 현대 독립 시계 제작자들은 전통의 맥락에서 시계 제작 역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세우고 있다. 그 흐름의 선봉에 서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프랑수아-폴 주른이며, 그의 다이얼에 새겨진 세 단어, ‘Invenit et Fecit’는 여전히 유효하다.

  • 프랑스의 유산, 스위스의 장인 정신, 이탈리아의 미학이 만난 루이 비통 ‘뉴 몬터레이’

    Louis Vuitton The Monterey 최근 루이 비통의 몬터레이는 조용히 시계 시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루이 비통 2025 F/W와 2026 S/S 여성 컬렉션 런웨이에 오리지널 모델이 등장하기도 하며 시계 애호가는 물론 패션 피플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리뉴얼을 기대하고 있던 애호가들의 바람대로 곧 ‘뉴 루이 비통 몬터레이’가 공개됐다. 새로운 에디션은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가 디자인한 1988년산 첫 몬터레이 시계에서 영감을 받았다. 케이스는 오리지널의 부드럽고 둥근 실루엣과 12시 방향 노치 크라운을 그대로 유지하며, 다이얼은 최고급 그랑 푀 에나멜로 완성되었다. 내부에는 제네바 실을 새긴 인하우스 무브먼트 칼리버 LFT MA01.02를 탑재했다. 프랑스의 헤리티지, 스위스의 장인 정신, 그리고 이탈리아의 디자인 감각을 한데 담은, 2025년 루이 비통의 가장 세련된 귀환작이다. 문의 02-3432-1854

  • 높은 안정성으로 시간을 더욱 자유롭게, 데이비드 칸도의 DC12 매버릭

    David Candaux DC12 MaveriK David Candaux DC12 MaveriK 데이비드 칸도는 17년간의 사색 끝에 개발한 이 듀얼리티를 ‘자유로운 더블 밸런스’라 부른다. 두 밸런스가 독립적으로 호흡하며, 헤어스프링 쇼크 업소버에 자리한 디퍼렌셜 기어가 두 개의 다른 입력값을 하나의 출력으로 계산한다. 덕분에 실제 착용 환경에서 매우 효과적인 정밀성을 제공하는데, 그만큼 다루기 복잡하고 까다로운 구조다. C30 칼리버에는 세 가지 신규 특허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오차를 보정하는 디퍼렌셜, 에너지가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는 와인딩 시스템, 와인딩과 시간 설정을 통합한 코액시얼 및 경사 제어 메커니즘이다. 그레이드 5 티타늄으로 제작해 가볍고 견고하며, 50m 방수를 지원한다. 데이비드 칸도의 상징인 특허 ‘매직 크라운’과 곡선미를 강조한 풀 커브드 구조의 케이스 또한 이 작품의 개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의 02-401-3336

  • 일본의 시계 컬렉터, 이케다 다케시와의 인터뷰

    Takeshi Ikeda, independent watch collector 일본 시계 컬렉터 이케다 다케시와 다시 만났다. 독립 시계 제작자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그들의 철학을 깊이 탐구하는 그의 수집 세계에는 소유 이상의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가 발견한 숨은 보석, 이케다 다케시를 두 번째로 만났다. 독립 시계 브랜드를 특히 사랑하는 그는 오히려 우리 팀에게 더 많은 지식과 영감을 제공하는 일본 수집가다. 최근에는 시몽 브렛, 제브뎃 레제피, 그리고 크리스티안 라스를 소개해 주며, 그들이 지닌 진정한 워치메이킹 철학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여러 독립 워치메이커와 인터뷰가 가능했던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이케다가 시계를 수집하는 과정에는 구매 이상의 의미가 있다. 워치메이커의 삶과 철학을 한 땀 한 땀 탐구해 가는 여정을 즐기는데, 한 워치메이커는 “나는 이케다를 통해 일본의 장인 정신을 배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각 제작자와의 교감을 통해 그들이 걸어온 길과 시계에 담긴 세계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배움에서 그는 가장 큰 설렘을 느낀다. 이번 만남에서는 지난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소개하고 싶은 독립 브랜드 시계’로 꼽은 크리스티안 라스의 신작을 직접 언박싱했다. 이케다가 감동받았던 크리스티안 라스와의 이야기를 비롯해, 새로운 시계를 마주한 그의 생생한 인상과 감정을 함께 전달하고자 한다. 일본의 독립 시계 컬렉터, 이케다 다케시 오사카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감독한 건물 W 오사카 호텔 미팅 룸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지난번 인터뷰 때 느꼈지만, 시계 커뮤니티에서 이케다 다케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독자를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다시 부탁한다. 이렇게 두 번째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다. 시계를 향한 우리의 공통된 사랑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는 독립 시계 제작과 역사를 지닌 타임피스에 애정을 느끼는 컬렉터다. 독립 시계 제작자의 작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창작자와의 ‘친밀함’이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생각, 철학, 그리고 개성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수집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오늘은 직접 구입한 크리스티안 라스 시계를 함께 언박싱하기로 한 날이다. 이전 인터뷰에서 크리스티안 라스를 ‘꼭 소개하고 싶은 독립 시계 제작자’ 중 한 명으로 꼽았는데, 그 이유가 있나? 그가 자신의 첫 번째 시계, 30CP를 어떻게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인상 깊었다. 그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중 우연히 시계 제작 과정을 접했고, 그때부터 시계의 세계에 빠졌다. 어느 날 지역 도서관에서 조지 대니얼스(George Daniels)의 저서 <워치메이킹(Watchmaking)>을 빌려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 경험이 결국 그를 덴마크의 시계 제작 학교로 이끌었다. 그의 몰입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았고, 그 진심 어린 열정이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크리스티안 라스의 작품에서 어떤 매력과 감동을 받았나? 그의 이력은 그 자체로 놀랍다. 코펜하겐 시청에는 300년 동안 단 0.4초의 오차만 허용하는 세계적인 정밀도의 ‘월드 클락(World Clock)’이 있는데, 그는 이 시계의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후 프랑스 워치메이커 비아니 할터(Vianney Halter) 밑에서 완전한 수제 시계 제작 기술을 배우며 진정한 장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필립 듀포(Philippe Dufour)의 아틀리에에서 몇 년간 근무하던 중, 듀포로부터 파텍 필립 박물관 채용 소식을 전해 듣고 약 10년 동안 그곳에서 복원 전문가로 일했다. 그 시절에 그는 5세기에 걸친 시계 제작의 역사를 직접 연구하며, 어떤 시계가 진정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는지 몸소 체험했다. 라스는 이것이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귀중한 배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 특별한 여정을 걸어온 인물이 첫 시계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여정에 꼭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티안 라스의 30CP. 타케시 이케다는 인그레이버 하넬로어 라스에게 특별 주문으로 맞춤 인그레이빙을 의뢰했다. 크리스티안 라스의 30CP. 타케시 이케다는 인그레이버 하넬로어 라스에게 특별 주문으로 맞춤 인그레이빙을 의뢰했다. 첫 시계를 주문하고 얼마나 기다렸나? 내가 알기로 그는 1년에 약 5점 정도를 제작하며, 30CP의 총 생산 수량은 50피스로 한정되어 있다. 즉 완성까지 약 10년이 걸리는 셈이다. 나는 2022년 6월경에 주문을 넣었고, 약 3년을 기다린 끝에 시계를 받을 수 있었다. 크리스티안 라스가 다른 독립 시계 제작자들과 다른 점과 독자적인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라스를 처음 직접 만났을 때, 그가 여러 번 반복했던 한 단어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바로 ‘조화(harmony)’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화다”라고 말했다. 진정 편안하고 균형 잡힌 디자인의 조화 말이다. 5세기에 걸친 시계의 복원을 경험한 그는 비례감과 미학에 대한 비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바로 그런 역사와 경험이 잘 어우러진 것이다. 그 점이 그의 작품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이유다. 크리스티안 라스의 아내이자 예술가인 하넬로어 라스(Hannelore Lass)는 다이얼과 무브먼트를 장식하는 정교한 핸드 인그레이빙으로 유명하다. 그의 인그레이빙이 시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 내가 받은 30CP는 오리지널 버전과 달리 로마숫자 다이얼을 적용한 커스텀 디자인이다. 직접 요청한 사양이었다. 나는 하넬로어 라스의 인그레이빙 예술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계를 원했기에, 그녀의 손길이 시계 전반에 스며들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브랜드 로고와 인덱스 곳곳에서 느껴지는 수공 인그레이빙의 따뜻함과 깊이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스럽다. 하넬로어의 장인 정신은 매우 탁월하다. 그는 과거 비아니 할터, 파텍 필립, 반클리프 아펠 등 명문 브랜드에서 인그레이빙 작업을 해왔고, 그 경험과 기술이 이번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근 몇 년간 독립 시계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내에서 독립 브랜드를 받아들이는 인식은 어떠한가? 최근 몇 년 사이, 독립 시계 브랜드를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가 부쩍 많아졌고,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시계를 구입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시계 제작자나 그들의 소규모 팀과 직접 연락을 취하고 꾸준히 소통하며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작 수량이 극히 제한적이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해 줄 사람에게 전달하길 원한다. 그래서 요즘의 시계 제작자들은 누구에게 작품을 판매할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계를 수집하면서, 시계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느낀 적이 있나? 시계를 사랑한 지 어느덧 23년이 지났다. 그동안 다양한 모델을 경험하며 내 취향도 점점 변해왔다. 이제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감각이 훨씬 정제되었다고 느낀다. 결국 내가 끌리는 시계는 클래식한 요소를 지니면서도, 그 안에는 약간의 유머와 따뜻함이 스며 있고,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 짓게 되는 시계다. ‘좋은 시계’란 무엇인지 정의해 본다면 어떤 의미인가? 참 흥미로운 질문이다. 나에게 좋은 시계란,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시계다. 결국 시계는 ‘취미’의 영역이니까. 그래서 좋은 시계는 나에게 “그래, 바로 이거야. 정말 마음에 들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계라고 생각한다. 요즘 특히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독립 시계 브랜드가 있다면? 변함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계 제작자는 여전히 제브뎃 레제피와 시몽 브렛이다.

  • 롤렉스와 스포츠

    The Roots of Rolex’s relationship with sports 롤렉스는 스포츠와의 다양한 협업을 통해 ‘시간’과 ‘위대함’의 철학을 만들어간다. 롤렉스의 스폰서십은 일반적인 마케팅 방식과 다르다. 롤렉스는 브랜드 세계관을 확장하는 문화적 투자로 스포츠를 선택한다. 이 철학은 모든 종목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며, 테스티모니의 존재에서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된다. 롤렉스는 여성 골프 5대 메이저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롤렉스 테스티모니 타이거 우즈. 롤렉스가 바꾼 게임의 법칙 롤렉스와 스포츠의 관계는 다양한 스토리를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롤렉스의 스포츠 스폰서십 구조는 매우 체계적이며 종목 선택부터 대회 등급, 테스티모니(Testimonee) 구성까지 모두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되어 있다. 가장 상징적인 영역은 골프다. 롤렉스는 남녀 메이저 9개 대회를 모두 후원하고 50명 이상의 테스티모니를 운영한다. 골프는 정확성과 인내, 절제, 전통이라는 가치가 브랜드 철학과 가장 일치하는 종목이기에, 롤렉스는 이 스포츠를 통해 ‘시간을 견디는 위대함’이라는 세계관을 가장 깊이 있게 구현한다. 테니스는 롤렉스의 또 다른 핵심 무대다. 윔블던, US 오픈, 롤랑가로스 등 주요 그랜드슬램의 공식 파트너로 활동하며, 로저 페더러와 카를로스 알카라즈 같은 시대의 아이콘이 테스티모니로 활동한다. 테니스는 우아함과 경쟁, 정밀함이 조화를 이루는 스포츠이기에 롤렉스의 기계적 완성도와 브랜드 품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터스포츠 분야 역시 모나코 그랑프리, 르망 24시, 데이토나 24 같은 세계 최고 권위 레이스의 타임키퍼로서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이 영역은 브랜드의 엔지니어링 능력, 내구성, 정밀함을 가장 직접적으로 증명한다. 헤리티지와 장인 정신의 가치를 이끄는 승마와 세일링은 롤렉스 스폰서십 세계관의 전통적 축을 담당한다. 승마는 귀족 문화와 클래식한 품격을, 세일링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한다. 이렇게 다양한 스폰서십을 아우르는 브랜드 메시지는 단순하다. 롤렉스는 기록이나 광고 노출이 아닌 ‘위대함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24시간을 견디는 내구 레이스, 4시간 넘게 이어지는 메이저 골프, 바람과 조류의 시간을 읽어야 하는 요트 레이스 등 스포츠는 시간을 시험하는 무대이며, 롤렉스는 그 시간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는다. 결국 롤렉스의 스포츠 스폰서십은 홍보가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성장시키며 스포츠와 함께 발전하는 스포츠맨십을 지니고 있다. 이 독보적인 구조 덕분에 롤렉스의 가치는 제품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적 자산으로 확장되어 많은 이들에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설적인 롤렉스의 파트너십, 빅 쓰리. 세대의 전설과 세대의 브랜드가 만난 순간 롤렉스와 골프의 관계는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서 이어나간 고유한 것이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60년 이상의 협력은 브랜드가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스포츠가 브랜드를 통해 더욱 품격을 얻는 동행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메이저 대회 타임키퍼로의 역할, 투어와 아마추어 골프 지원,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골프 분야 후원, 그리고 골프가 지닌 장인 정신과 정밀성, 인내의 가치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어우러져 있다. 그중 전설의 시작은 골프 스폰서십의 역사를 만든 3인의 전설과의 만남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The Big Three’라 불리는 아널드 파머(Arnold Palmer),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 게리 플레이어(Gary Player)라는 세 전설. 이들은 경쟁자이자 동료였고, 골프 대중화를 이끈 혁신가였으며, 동시에 롤렉스가 만든 스포츠 스폰서십 세계관의 초석이자 골프라는 스포츠가 글로벌 무대에서 우아함과 품격의 이미지를 갖추게 한 핵심적 존재다. 1967년, 아널드 파머가 롤렉스의 첫 테스티모니가 되었고, 파머의 존재는 롤렉스의 브랜드 이미지인 품격과 단정함, 친절함, 신뢰감과 완벽히 들어맞았기에 지금까지 롤렉스 테스티모니 철학의 원형이 되었다. 롤렉스의 테스티모니는 전통적인 의미의 광고 모델이나 브랜드 앰배서더와 다르다. 테스티모니의 선정 기준이 명확하면서도 고유하다. 롤렉스가 선택하는 인물은 단순히 성적이 좋거나 인기가 많은 스타가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긴 시간 동안 꾸준함, 절제, 장인 정신, 그리고 성공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품격을 지닌 인물이다. 골프의 게리 플레이어,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 예술과 탐험 분야의 거장들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스포트라이트뿐 아니라 정신적 유산을 남긴다는 점이다. 롤렉스는 바로 이 ‘유산을 남기는 사람’을 선택한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2~3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교체하는 데 비해, 롤렉스는 수십 년 동안 이어나간다. 아널드 파머는 1967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롤렉스와 함께였고, 잭 니클라우스와 게리 플레이어 역시 평생을 함께한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장기성은 테스티모니와 브랜드 사이에 파트너십을 넘어 역사적 관계를 만든다. 어떤 광고에서도 테스티모니가 시계를 가리키거나 제품명을 강조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여정과 삶의 태도, 도전에 대한 관점,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명예와 헌신을 조명한다. 테스티모니라는 구조는 롤렉스가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형 자산이며, 다른 럭셔리 브랜드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독자적 시스템이다. 이는 시계 산업 전체의 마케팅 전략을 바꾸는 도화선이 되었다. 롤렉스는 선수에게 제품을 들고 홍보하게 하는 대신, 그 선수의 커리어와 가치, 명예를 브랜드 이미지와 연결한 콘텐츠는 많은 이들에게 품격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장기적인 후원으로 완성한 롤렉스 VIP 호스피털리티 테스티모니를 쉽게 바꾸지 않듯, 롤렉스는 스포츠 경기 후원, 특히 골프에 대해서도 장기적 계약을 맺고 후원한다. 이는 대회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메이저 대회와의 공식 파트너십은 롤렉스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스폰서가 매년 바뀌면서 생기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대회 운영과 중계, 관람 경험을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할 수 있게 했다. 남녀 골프 투어 및 아마추어 대회까지 지원 범위를 넓히면서, 단순히 프로 선수나 대회만이 아닌 골프 생태계 전체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여성 골프 분야에 대한 후원도 1980년대부터 시작해 여성 골프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골프 규칙을 제정하는 기구와의 협력 관계까지도 롤렉스에서 매우 중요한 유산 중 하나다. 이러한 롤렉스와 골프 산업 전반의 협업은 골프가 ‘프리미엄 스포츠’라는 이미지를 공고히 하며, 골프 리조트, 멤버십 클럽 같은 주변 산업 역시 함께 성장하는 효과를 이끌어냈다. 롤렉스의 스포츠 스폰서십은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확장된다. 롤렉스 스위트나 VIP 호스피털리티는 단순한 관람 공간이 아니라, 오랜 고객이 쌓아온 시간과 브랜드의 관계를 기념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테스티모니의 삶과 같이 이곳을 찾는 고객과 방문객의 골프에 대한 사랑과 삶의 성취를 조용히 지지한다. 지난 뉴 코리아 컨트리클럽에서 개최한 LPGA 유일 국가 대항전에서도 리디아 고 등 롤렉스 테스티모니 선수들이 롤렉스 스위트를 찾아 오랜 롤렉스 고객들과 함께했다. 이러한 주요한 골프 대회의 롤렉스 스위트는 문화계 인물들이 모여드는 대화 장소 역할을 하고 골프를 사랑하는 이들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특별한 커뮤니티가 된다. 롤렉스는 이러한 공간에 대해서도 특정한 홍보를 통해 알리기보다 롤렉스의 오랜 고객, 골프계의 주요한 인사가 모여 골프 경기를 보다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후원을 지속하며 VIP 호스피털리티 모델을 정교하게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롤렉스가 골프를 통해 펼쳐나가는 여정은 앞으로도 럭셔리 브랜드들이 스포츠와 맺는 파트너십의 기준이 될 것이다.

  • 발 아래 펼쳐진 하늘, 호암미술관 이우환 신작 전시

    Silentium by Lee Ufan 오래 닫혀 있던 ‘옛돌정원’이 처음으로 개방되고, 그곳에 이우환의 신작 조각이 자리 잡았다. 호수와 억새, 하늘빛과 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이 한 장면을 이루는 정원에서 작품은 원래 그 자리를 오래 품고 있던 것처럼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어진 동선은 전통 정원 ‘희원’으로 흘러가고, 두 정원은 자연의 결 속에서 이우환의 세계를 하나로 잇는다. ‘실렌티움(묵시암)’ 2025, 철판, 자연석 (철판) 320 X 370 X 7cm (자연석) 91 X 91 X 115cm © Lee Ufan ‘실렌티움’에 선 이우환 작가 (2025) © Lee Ufan 한국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호암미술관은 1982년 개관한 이후 전통 한옥 형태의 본관 건축물과 한국식 전통 정원 ‘희원’, 그리고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산책하는 미술관’이라는 정체성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이번 ‘옛돌정원’ 개방을 통해 너른 호수를 내려다보는 산책로와 작은 구릉을 따라 이어지는 나무와 식물을 통해 호암미술관 고유의 정체성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이우환의 신작 전시가 11월 4일부터 상설 전시로 공개되어, 관람객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작품을 꾸준히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세계 미술계에서 이우환은 돌, 철판, 유리 같은 최소한의 재료로 ‘관찰의 감각’을 되살리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영국 <아폴로 매거진(Apollo Magazine)>의 평론가 마틴 허버트(Martin Herbert)는 그의 작업을 “빠른 시대에 잊힌 느림의 미학을 회복시키는 예술”이라 말하며, 시간과 자연 속에서 감각을 열어가는 방식에 주목한다. <아트포럼(Artforum)>의 파블로 라리오스(Pablo Larios) 역시 “수십 년 같은 재료를 반복해도 신선함을 잃지 않는 정밀함”이라 평가하며, 그의 설치미술이 관람자, 사물, 공간을 하나의 관계로 묶어낸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해석은 자연과 장소성이 중요한 호암미술관 정원 전시와 정확히 맞물리며, 공간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설치미술의 경험적 특성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관계항 – 만남’,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자갈 (스테인리스 스틸) 500 X 200cm © Lee Ufan ‘관계항 – 하늘길’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스테인리스 스틸) 1000 X 120 X 2cm (2pcs) (자연석) 90 X 125 X 115(h), 125 X 100 X 110(h)cm © Lee Ufan 호수를 따라 난 길을 걷다 보면, 정원의 완만한 언덕 덕분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지름 5m의 링 형태 조각 ‘관계항-만남(Relatum-The Encounter)’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이 주변 자연을 비추며 작품 속 공간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면 그 안을 드나드는 서로 다른 속도의 사람들과 그 장면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마주하게 된다. 현재 미완성 상태인 이 작품은 향후 링 양쪽을 마주 보는 2개의 돌이 더해져 완성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 만남을 기다리는 기대감도 남겨둔다. 정원 더 안쪽을 걷다 보면 키보다 살짝 높은 나무 길이 미로처럼 이어지고, 그 사이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다. 햇빛을 받은 호숫가에 가까이 다가가면, 처음에는 작은 냇물처럼 보이던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잔디 위에 20m 길이로 놓인 거울 같은 금속판과 돌로 이루어진 ‘관계항-하늘길(Relatum-The Sky Road)’이다. 멀리서 하늘을 비추며 흐르는 물줄기처럼 보이던 작품 위로 한 발씩 내딛는다. 땅을 걷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하늘을 걷고 있다. 구름이 발 아래로 흘러가고, 나무가 흔들리며, 이머시브 아트(immersive art) 전시보다 더 직접적이고 생생한 감각에 순간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마음이 든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품 위를 건너며 나누는 웃음과 이야기, 그리고 어느 순간 잔디 위에 앉아 혼자 작품과 마주하는 시간은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다. 거울 표면에 비친 푸른 하늘, 그 옆을 지키고 마주 보며 서 있는 2개의 돌, 바람과 새소리까지 모두 하나의 장면이 되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해서 변하는 작품으로 만든다. 그 순간, “버리고 비우면 보다 큰 무한이 열린다”는 작가의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연결된 위쪽 산책로에서는 ‘관계항-튕김(Relatum-Bursting)’을 만날 수 있다. 휘어 있는 두꺼운 금속판과 2개의 돌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고, 바닥의 자갈을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울린다. 시각뿐 아니라 발걸음과 소리까지 연결된 경험이 이어진다. 옛돌정원 건너편에는 호암미술관 본관이 자리한 전통 정원 ‘희원’이 있다. 호암미술관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되는 이 정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맥을 이어가는 숨결이 담겨 있다. 정원과 어우러진 동자석, 문·무인석, 그리고 석불의 전통 조각상과 한옥의 정자, 연못, 돌담과 수목이 어우러진 이곳은 ‘차경(借景)’의 원리로 주변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희원에는 이우환 작가의 또 다른 신작인, 라틴어로 ‘침묵(silentium)’을 뜻하는 ‘<실렌티움(묵시암)>’이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묵직한 돌과 두꺼운 철판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이 놓여 있다. 그 앞에 서면 저절로 숨 고르며 느려진 발걸음으로 실내에 이르게 된다. ‘실렌티움(묵시암)’ 2025, 자연석, 목탄 (자연석) 78 X 63 X 80(h)cm (목탄 그림자) 102 X 121cm © Lee Ufan 안으로 들어서면 나란히 이어진 3개의 공간이 각기 다른 새로운 작품을 품고 있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플로어 페인팅(Floor Painting)’은 바닥을 캔버스로 삼았다. 원형의 붉고 푸른 색채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하얀 조약돌이 액자 프레임처럼 감싸고 있다. 자연스럽게 벽을 따라 한 바퀴 돌게 되고, 색이 바닥에서 은은하게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은 땅속의 기운이 표면 위로 번지는 모습과 닮았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월 페인팅(Wall Painting)’이 있다. 이우환 예술 세계의 출발점이자 귀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을 통해 극도의 절제미를 보여준다. 2개의 점은 미세한 색채의 변화로 깊이를 만들고, 넓은 여백은 오히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채워진 것보다 채워지지 않은 것이 더 큰 울림을 만든다는 그의 작업 세계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돌 하나와 두 개의 그림자가 드리운 ‘섀도 페인팅(Shadow Painting)’이 자리 잡고 있다. 조명 아래에서 생기는 실제 그림자와, 작가가 그려 넣은 그림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조명 위치가 달라지면 실제 그림자는 끝없이 다른 형태가 되겠지만, 그려진 그림자는 변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것과 고정된 것이 한 자리에서 겹쳐지며, 현실과 환영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 작업들을 마주하는 동안 관람자는 말없이 시선을 머무르게 된다. 색의 떨림, 여백의 호흡, 그림자의 변화가 감각을 서서히 열어주고, 그 속에서 침묵은 더 이상 빈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명료한 시간으로 변한다. ‘고요함 속에서 바라본다’는 ‘<실렌티움(묵시암)>’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리고 보이는지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우환은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에서 회화와 철학을 공부한 뒤, 1960년대 후반 일본의 ‘모노하’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했다. 자연석, 금속판, 거울 등 최소한의 재료를 통해 사물, 공간, 관람자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세계 미술사에 또렷한 존재감을 남겼다. 이번 호암미술관 프로젝트는 작가가 직접 정원과 자연, 호수와 돌이라는 풍경을 자신의 설치 작업의 배경으로 제안하며 시작되었다. 그 덕분에 그의 작업을 상설로 마주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생겼다. 이 전시에서는 모든 것을 한 번에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걸음을 조금 늦추는 순간, 작품이 가장 선명해진다. 사람들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작품 앞에 혼자 서게 되고, 그 고요 속에서 주변의 미세한 변화들이 또렷해진다. 낙우송 숲길을 바라보는 ‘호암 카페’에서 잠시 머무는 시간도 좋다. 정원을 걷고 멈추고 다시 걸어 나오는 동안, 이우환의 작품은 작은 여백과 에너지를 남긴다. 자연을 가까이 두고 싶다면 한 번쯤 이 길 위에 서서 발 아래 펼쳐진 하늘을 밟아보기를 권한다.

  •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정,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

    THE JOURNEY TO SEEK BEYOND 철학과 역사가 깊은 시계 브랜드는 영원한 동반자를 찾는다. 오늘날까지 상당히 많은 수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가 판매되는 것을 보면 진정성 있는 브랜드가 시계 애호가와 얼마나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계를 제공하는지, 그 문화의 깊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0월 르 브라쉬에서 시작해 제네바로 이어지는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의 여정을 함께했다. 현대적인 나선형 유리 파빌리온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Musée Atelier Audemars Piguet)는 오데마 피게의 가장 오래된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은회색 안개에 싸인 르 브라쉬 10월 말 찾은 발레 드 주의 르 브라쉬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 제네바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이 지역의 상징적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작은 언덕에 있는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니 이 지역 주민들이 ‘saison des brumes du Brassus’라 부르는 르 브라쉬의 안개 시즌을 느낄 수 있는 정상에 닿았다. 운이 좋게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자연의 풍경을 맞닥뜨렸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자욱한 안개 속에서 겨우내 고립되어 시계를 만들었던 이 고장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다 근처 작은 산장 레스토랑에 들어가 따뜻한 코코아를 마신다. 별도의 난방 시설이 없어 아직 이르지만 따뜻한 벽난로가 타고 있다. 안내자 역할을 한 오데마 피게의 담당자는 역시 르 브라쉬 출신으로 이곳에 매우 다양한 브랜드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블랑팡, 브레게, 예거 르쿨트르, 필립 듀포까지. 긴 겨울과 까다로운 시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함께하는 동반자 같은 느낌이다. 사실 유서 깊은 산업은 지역을 기반으로 태동한다. 실리콘밸리,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 등 대부분의 지역 산업에는 흥망성쇠가 있다. 하지만 그 긴 역사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지역은 많지 않다. 산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인내와 도전, 지속적인 투자와 지역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필수적이다. 스위스 발레 드 주의 깊은 골짜기, 쥐라산맥에 위치한 르 브라쉬 마을에는 150년 가까운 세월을 품은 시계 메종 오데마 피게의 본사가 이러한 지역 기반의 지속적인 산업을 명징하게 상징한다. 놀라운 역사다. 1875년 줄-루이 오데마(Jules-Louis Audemars)와 에드워드 오귀스트 피게(Edward Auguste Piguet)가 이곳에 첫 워크숍을 연 이후, 브랜드는 지금까지 창립 가문이 소유한 독립 매뉴팩처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대량생산보다는 장인 정신, 기술력, 그리고 한정된 수량에 깃든 가치에 집중해왔으며, 바로 이 철학이 오늘날 오데마 피게를 세계 최고 수준의 워치메이킹 하우스로 자리 잡게 했다. 오늘날 마을 인구는 1400명에 불과한데, 뮤제는 물론 최근 새롭게 완성한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인 아크(ARC)에서 지역 주민의 상당한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오랜 계획을 두고 체계적으로 매뉴팩처와 뮤지엄을 확장한 덕에 인근 지역에까지 워치메이킹이라는 이례적이면서도 이 지역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산업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오데마 피게는 시계 산업을 다양한 세대와 지역의 연결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해 기초적인 부품을 조립하는 워치메이커부터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홀로 오롯이 완성하는 숙련된 장인까지, 이곳에서는 모두 제 역할이 있다. 은근한 햇살을 받으며 묵묵히 일하는 풍경이 아름답다. 곧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면 이 산업이 이곳에서 시작된 이유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유를 온몸으로 체감하리라. 시계들이 궤도를 따르는 모습으로 구성한 전시 모습. 중심에 오데마 피게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계인 유니버셀(1899)이 위치한다. 유니버셀의 무브먼트는 20여개의 컴플리케이션과 1168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뮤제 아틀리에의 예술성, 아크 매뉴팩처의 현대성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계승자로서, 고도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작업대를 지키고 있는 워치메이커, 그리고 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오데마 피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워치메이킹이 가내수공업이나 부품 공급업체에 머무르지 않은 것은 기계식 시계 브랜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오데마 피게도 쿼츠 파동 시기 부침을 겪었지만 더 제대로 된 기계식 시계를 만들고자 했고, 이렇게 탄생한 시계가 로열 오크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디자인이지만 초기에는 어글리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심지어 배척받기도 했다.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Atelier Audemars Piguet)’에서 초창기 로열 오크 모델을 보여준 오데마 피게 담당자는 “드레스 워치가 대세였던 시기에 스크루가 외부로 노출되는 39mm의 거대한 사이즈는 기존 시계 애호가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반전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로열 오크가 럭셔리 스포츠워치 시장의 선구자이자 이단아, 성공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이러한 로열 오크의 성공이 최근까지 이어져 매뉴팩처를 확장하게 된 오데마 피게는 르 브라쉬에 새로운 시대를 위한 건축적 선언을 더했다. 새롭게 완공된 모듈식 매뉴팩처 아크(Arc)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2014년 오데마 피게의 건축 공모를 통해 당선된 덴마크의 세계적인 건축가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Bjarke Ingels Group, BIG)이 설계한 이 건물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나선형 구조를 띠며, 기계식 시계의 기어와 스프링을 연상시킨다. 자연 지형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땅에 녹여낸 듯한 형태는 ‘워치메이킹의 심장부가 대지와 함께 호흡한다’는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르 브라쉬 자연 풍경을 품고 있는 호텔 오를로제르. 로열 오크 엑스트라씬 셀프와인딩 플라잉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RD#5 박물관 내부에는 300여 점의 시계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초기의 정교한 포켓 워치부터 현대의 하이 컴플리케이션과 로열 오크 투르비용까지, 오데마 피게의 기술적 진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1899년 출시된 지극히 복잡한 유니버셀 회중시계를 중심으로 태양계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이 천문학적 영감을 준다. 단순히 오데마 피게의 제품이라기보다 발레 드 주 지역을 근간으로 한 시계의 역사를 보는 느낌이다. 방문객은 단순히 진열된 시계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계가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내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투어의 동선은 매우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창립 당시의 본관 건물과 초기 워치메이킹 공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최신 제조 시설이 이어진다. 이 둘은 투명한 유리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전통과 현대가 물리적으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구조다.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복원 부서, 아카이브, 그리고 투르비용 워크숍 같은 특별한 섹션을 지나게 된다. 나선의 중심부에 위치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Grandes Complications)과 메티에 다르(d’Art) 아틀리에가 핵심이다. 각 공간에서는 숙련된 장인들이 수백 개의 부품을 다듬고 조립하며, 전통적인 마감 기법을 고수한다. 박물관에 이어 찾은 가장 최근 완공된 아크는 오데마 피게의 가장 현대적인 매뉴팩처다. 최근 완공되어 아직 이곳을 찾은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오데마 피게는 최근 르 로클에도 매뉴팩처 데 세뇰과 메렝의 매뉴팩처를 확장한 바 있는데, 아크 역시 이러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의 최신 버전이다. 17,000㎡ 규모의 대지에 지상 3층과 여러 기술실이 위치한 지하 1층으로 완성했다. 기존의 매뉴팩처 데 포르주와 연결될 뿐 아니라 모듈형으로 기획되어 순차적으로 더 확장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지녔다. 자연광이 가득한 건물은 워치메이킹에 최적화되어 있다. 한정판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의 마지막 피스의 조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워치메이커부터 오데마 피게를 상징하는 타피스리(tapisserie) 다이얼 패턴을 완성하는 기요셰 제작 과정까지 생생한 작업 풍경이 펼쳐진다. 작업대에서 르 브라쉬의 초록 풍경을 고스란히 조망할 수 있는데, 이는 자연광에 따라 자동으로 색이 바뀌어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전기 변색 유리인 세이지글라스(SageGlass®) 기술 덕분이다. 온도 조절 기능까지 갖춘 친환경 건축이기에 이 대규모 매뉴팩처를 채광이 뛰어난 대형 유리 건축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성이 화두인 시계업계에서 오데마 피게가 한 걸음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겨울 해가 떠 있는 단 몇 시간 동안 농가 주택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기대 시계를 제작했던 과거의 워치메이커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매우 훌륭한 작업 환경이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시계 제작자의 숙소, 호텔 데 오를로제르 이번 오데마 피게 여정의 꽃은 르 브라쉬에 위치한 호텔 오를로제르(Hôtel des Horlogers)다. 과거 이 지역의 워치메이킹 루트 중 하나였던 ‘셰맹 데 오를로제(Chemin des Horlogers)’ 길목에서, 한때 시계 장인과 상인들이 이용하던 전통 여관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르 브라쉬의 역사적 터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 브랜드의 정체성과 지역 문화의 연결 고리를 완성한 셈인데, 실제로 지금도 이 지역에 시계 매뉴팩처를 방문하기 위해 많은 시계 애호가들이 머물고 있다. 건축미가 뛰어난 이 호텔은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 사무소인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이 건축을 맡았다. 쥐라 계곡의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호텔을 골짜기의 경사면을 따라 지그재그 형태로 설계했다. 시계의 무브먼트나 워치메이킹 트레일을 연상시키는 동선 구조로, 방문객은 호텔을 걸으며 자연 속의 리듬을 느끼게 된다. 모든 객실은 넓은 통창을 통해 리수드 숲(Risoud Forest)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해, 아침이면 산 안개가 천천히 흘러드는 계곡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제 AP 하우스 제네바로 떠나보자. 오데마 피게의 뛰어난 공간 구성력은 이곳에서도 여지 없이 발휘된다. 언뜻 최상위 VIP를 위한 프라이빗 살롱의 느낌이다.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정경과 브랜드 무드를 담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는 이곳에서는 제네바를 찾은 오데마 피게 애호가들이 머무르며 시계 그 자체에 대한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부티크와는 달리 호텔 스위트룸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착용해볼 수 있는 시계가 준비되어 있고, 시계 전문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현재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시계와 선호하는 스타일에 대한 세심한 대화도 자연스럽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계 라이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가는 이곳은 오데마 피게가 생각하는 AP 하우스의 이상적인 모습 중 하나일 듯하다. 충분한 대화를 매개로 방문객을 시계의 세계로 인도하는 정성스러운 시간이다. 르 브라쉬에서 시작해 제네바까지 이르며 오데마 피게 투어를 통해 마주한 것은 브랜드 철학과 과거의 스토리, 그리고 이후에 나아갈 방향까지 같이하는, 진정한 애호가와 함께하는 길이다. 오데마 피게는 이 세밀한 여정을 정성스럽게 가꾸어두었다. 언제든 브랜드를 사랑하는 이들이 이 여정을 거쳐 간다면 자연스럽고 풍성한 숲을 걷는 느낌이 들 것이다. 오데마 피게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는 주제인 ‘House of Wonders’와 어울리는 것은 물론, 브랜드를 사랑하는 애호가에게 닿을 수 있는 지점이다. 시계 브랜드는 일회성의 판매보다 긴 시간을 함께하는 고객과의 여정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 여정은 수십 년, 혹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오데마 피게가 공들여 가꾸고 있는 르 브라쉬와 제네바의 시간은 너무나 아름다운 시계의 정원이다. 오데마 피게 애호가라면 반드시 이 장면을 만끽할 기회를 갖길 바란다.

  • 제25회 GPHG 심사위원, 피에르-이브 돈제와의 인터뷰

    Pierre-Yves Donzé Jury Member of the 25th GPHG 오사카 대학교에서 만난 피에르 이브 돈제는 시계 산업의 역사와 인간적인 통찰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다. 스위스 라 쇼드퐁 출신의 그가 일본에서 이어가는 학문적 여정은 시계를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더욱 빛난다. 일본 오사카 대학교에서 피에르-이브 돈제를 만났다. 스위스 라 쇼드퐁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오사카 대학교에서 경영사를 가르치는 교수이자 제25회 GPHG 심사위원 중 한 명이다.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The Business of Time)>, <롤렉스의 역사(The History of Rolex)> 등 시계 관련 저서만 7권이 넘는 그는 작가이자 수집가이기도 하다. 그와의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가 수집가와 워치메이커의 마음을 동시에 헤아리는 드문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스위스와 일본 시계 산업의 경쟁 구도와 변화를 깊이 꿰뚫는 학자면서도 시계를 사랑하는 한 명의 애호가로서, 만약 한 브랜드의 CEO라면 피에르와 나누는 대화는 분명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가 시계업계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는 단 하나, ‘사람들이 시계를 더 사랑하고, 올바른 정보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계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지식인의 통찰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따뜻함, 그리고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피에르 이브 돈제가 2022년에 출간한 저서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The Business of Time)》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만나서 반갑다. 나는 피에르-이브 돈제다. 현재 오사카 대학교에서 경영사를 가르치고 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고, 일본에 거주한 지는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경영사는 특히 산업 내에서 경쟁 역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나는 시계와 럭셔리 산업에 관심이 많다. 기업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하며, 또 어떤 이유로 쇠퇴하고 사라지는지 연구한다. 처음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적부터였다. 나는 스위스의 라 쇼드퐁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심지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시계 회사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시계를 보며 자랐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연구자로서 시계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적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접했을 뿐이다. 진정한 관심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생겼다. 대학 시절 3년 동안 라 쇼드퐁의 국제시계박물관(International Museum of Watchmaking)에서 사서로 일했는데 그곳에서 ‘시계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박물관에는 오래된 시계와 시계를 수리하는 작은 워크숍이 있었고 훌륭한 도서관도 있었다. 그곳은 이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기에 어느 곳보다도 완벽한 출발점이었다. 시계 산업과 럭셔리 비즈니스에 대한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나? 내가 쓴 책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대학교수로서의 연구 프로젝트 결과물로 매우 학문적인 저서다. 두 번째는 기업의 의뢰를 받아 특정 회사의 역사를 집필한 책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형으로 스스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쓴 책이다. 이를테면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처럼 ‘이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쓴 책이다. 최근에는 <롤렉스의 역사>라는 책도 출간했는데, ‘왜 롤렉스가 그렇게 유명해졌는가?’라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쓰고 그 후에야 ‘아마 다른 이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시계업계 종사자나 컬렉터에게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사’와 ‘스토리’는 다르다는 점이다. 브랜드들은 시계를 판매하기 위해 ‘스토리’를 만든다. 물론 그것이 역사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나의 관심은 ‘진짜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이 ‘스토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즉 둘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시계의 산업 전략에 더 관심이 있나, 아니면 시계 자체에 더 흥미가 있나? 처음엔 나는 시계 제작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품 자체보다 산업 구조, 제조 기술, 산업화, 글로벌화 같은 전략적 측면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제품 자체에도 점점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디자인과 그 이면의 콘셉트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나는 이 두 영역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제품은 기업의 전략과 직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예전엔 전략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 제품이 왜 영혼을 지녔는가’를 이해하려 한다. 훌륭한 제품이 기업의 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하고 바라보려 한다. 현재는 브랜드의 ‘부활(relaunch)’ 전략을 주제로 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브랜드들이 과거의 이름을 되살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브랜드가 왜, 어떤 제품으로 다시 부활하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차펙(Czapek)은 파텍필립의 초창기 파트너였던 인물이 만든 브랜드로 현재 소규모지만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를 되살리려면 반드시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이런 부분을 전략과 연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본 시장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큰 변화는 ‘중산층 중심의 소비 구조’가 붕괴된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중산층이 중심이었고 세이코나 시티즌처럼 정확하고 저렴한 시계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거품 경제가 붕괴된 후 사람들의 소비 여력도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일본 내 시계 시장은 급격히 축소되었다. 중산층이 시계를 사지 않게 되면서 남은 것은 ‘고급 시장’뿐이었다. 오데마 피게, 리차드 밀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만이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다. 한편 일본 시계 시장을 지탱한 것은 ‘관광객’이었다. 특히 아베노믹스 이후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에 와서 일본인들이 더 이상 구매하지 않던 입문급 럭셔리 워치를 구매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관광객이 사라지자 그 시장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일본은 현재 ‘소수의 부유층만이 시계를 사는 시장’으로 변했다. 1980~1990년대에 루이 비통,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 디올 등의 브랜드가 일본 시장을 통해 성장했지만 지금은 그 기반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독립 시계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나? 사실 새로운 일만은 아니다. 지금은 큰 파도가 온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첫 번째 큰 파도는 1980년대 ‘쿼츠 혁명’ 때 이미 있었다. 그 시기에는 세이코나 홍콩 업체 같은 대형 브랜드가 저가의 정밀 시계로 시장을 지배했고 스위스에서는 장인들이 이에 반응했다. 그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프랑크 뮬러, 스벤 안데르센, 미셸 파르미지아니, 그리고 프랑수아-폴 주른 등이 있다. 많은 독립 제작자가 있었고 물론 상당수는 사라졌지만 몇몇 이름은 크게 성장했다. 이후 럭셔리 비즈니스가 커지면서 새로운 회사가 가끔 등장했지만 한동안은 거의 마무리된 듯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두 번째 파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더 이상 스위스로 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프랑스나 북유럽 출신의 장인, 심지어 일본인 제작자조차 제네바로 가서 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도쿄에서도 장인 시계를 만들 수 있다. 굳이 제네바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오늘날의 큰 변화다. 올해 제25회 GPHG 심사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이번 행사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선 학자로서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기쁘다. 카탈로그나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수많은 시계를 직접 손에 들고 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특별하다. 불가리, 피아제, 쇼파드 같은 대형 브랜드뿐만 아니라 일반 매장에서 보기 힘든 소규모 독립 브랜드의 작품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과 함께 토론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이 큰 배움의 시간이 될 것이다. 시계사 연구자로서 앞으로 학문과 산업 양쪽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나? 학문적으로는 이 산업의 ‘진짜 역사’를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시계 세계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존재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 역사를 정확히 알수록 브랜드는 더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자사 유산을 활용할 때 진짜 역사를 이해한다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앞으로 시계업계에 기여하고 싶은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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