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정,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

  • bhyeom
  • 10분 전
  • 5분 분량

THE JOURNEY TO SEEK BEYOND

철학과 역사가 깊은 시계 브랜드는 영원한 동반자를 찾는다. 오늘날까지 상당히 많은 수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가 판매되는 것을 보면 진정성 있는 브랜드가 시계 애호가와 얼마나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계를 제공하는지, 그 문화의 깊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0월 르 브라쉬에서 시작해 제네바로 이어지는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의 여정을 함께했다.

현대적인 나선형 유리 파빌리온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Musée Atelier Audemars Piguet)는 오데마 피게의 가장 오래된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현대적인 나선형 유리 파빌리온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Musée Atelier Audemars Piguet)는 오데마 피게의 가장 오래된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은회색 안개에 싸인 르 브라쉬

10월 말 찾은 발레 드 주의 르 브라쉬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 제네바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이 지역의 상징적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작은 언덕에 있는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니 이 지역 주민들이 ‘saison des brumes du Brassus’라 부르는 르 브라쉬의 안개 시즌을 느낄 수 있는 정상에 닿았다. 운이 좋게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자연의 풍경을 맞닥뜨렸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자욱한 안개 속에서 겨우내 고립되어 시계를 만들었던 이 고장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다 근처 작은 산장 레스토랑에 들어가 따뜻한 코코아를 마신다. 별도의 난방 시설이 없어 아직 이르지만 따뜻한 벽난로가 타고 있다. 안내자 역할을 한 오데마 피게의 담당자는 역시 르 브라쉬 출신으로 이곳에 매우 다양한 브랜드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블랑팡, 브레게, 예거 르쿨트르, 필립 듀포까지. 긴 겨울과 까다로운 시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함께하는 동반자 같은 느낌이다.


사실 유서 깊은 산업은 지역을 기반으로 태동한다. 실리콘밸리,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 등 대부분의 지역 산업에는 흥망성쇠가 있다. 하지만 그 긴 역사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지역은 많지 않다. 산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인내와 도전, 지속적인 투자와 지역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필수적이다. 스위스 발레 드 주의 깊은 골짜기, 쥐라산맥에 위치한 르 브라쉬 마을에는 150년 가까운 세월을 품은 시계 메종 오데마 피게의 본사가 이러한 지역 기반의 지속적인 산업을 명징하게 상징한다. 놀라운 역사다.


1875년 줄-루이 오데마(Jules-Louis Audemars)와 에드워드 오귀스트 피게(Edward Auguste Piguet)가 이곳에 첫 워크숍을 연 이후, 브랜드는 지금까지 창립 가문이 소유한 독립 매뉴팩처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대량생산보다는 장인 정신, 기술력, 그리고 한정된 수량에 깃든 가치에 집중해왔으며, 바로 이 철학이 오늘날 오데마 피게를 세계 최고 수준의 워치메이킹 하우스로 자리 잡게 했다. 오늘날 마을 인구는 1400명에 불과한데, 뮤제는 물론 최근 새롭게 완성한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인 아크(ARC)에서 지역 주민의 상당한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오랜 계획을 두고 체계적으로 매뉴팩처와 뮤지엄을 확장한 덕에 인근 지역에까지 워치메이킹이라는 이례적이면서도 이 지역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산업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오데마 피게는 시계 산업을 다양한 세대와 지역의 연결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해 기초적인 부품을 조립하는 워치메이커부터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홀로 오롯이 완성하는 숙련된 장인까지, 이곳에서는 모두 제 역할이 있다. 은근한 햇살을 받으며 묵묵히 일하는 풍경이 아름답다. 곧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면 이 산업이 이곳에서 시작된 이유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유를 온몸으로 체감하리라.


시계들이 궤도를 따르는 모습으로 구성한 전시 모습. 중심에 오데마 피게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계인 유니버셀(1899)이 위치한다.
시계들이 궤도를 따르는 모습으로 구성한 전시 모습. 중심에 오데마 피게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계인 유니버셀(1899)이 위치한다.
유니버셀의 무브먼트는 20여개의 컴플리케이션과 1168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니버셀의 무브먼트는 20여개의 컴플리케이션과 1168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뮤제 아틀리에의 예술성, 아크 매뉴팩처의 현대성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계승자로서, 고도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작업대를 지키고 있는 워치메이커, 그리고 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오데마 피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워치메이킹이 가내수공업이나 부품 공급업체에 머무르지 않은 것은 기계식 시계 브랜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오데마 피게도 쿼츠 파동 시기 부침을 겪었지만 더 제대로 된 기계식 시계를 만들고자 했고, 이렇게 탄생한 시계가 로열 오크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디자인이지만 초기에는 어글리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심지어 배척받기도 했다.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Atelier Audemars Piguet)’에서 초창기 로열 오크 모델을 보여준 오데마 피게 담당자는 “드레스 워치가 대세였던 시기에 스크루가 외부로 노출되는 39mm의 거대한 사이즈는 기존 시계 애호가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반전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로열 오크가 럭셔리 스포츠워치 시장의 선구자이자 이단아, 성공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이러한 로열 오크의 성공이 최근까지 이어져 매뉴팩처를 확장하게 된 오데마 피게는 르 브라쉬에 새로운 시대를 위한 건축적 선언을 더했다. 새롭게 완공된 모듈식 매뉴팩처 아크(Arc)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2014년 오데마 피게의 건축 공모를 통해 당선된 덴마크의 세계적인 건축가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Bjarke Ingels Group, BIG)이 설계한 이 건물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나선형 구조를 띠며, 기계식 시계의 기어와 스프링을 연상시킨다. 자연 지형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땅에 녹여낸 듯한 형태는 ‘워치메이킹의 심장부가 대지와 함께 호흡한다’는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ree
르 브라쉬 자연 풍경을 품고 있는 호텔 오를로제르.
르 브라쉬 자연 풍경을 품고 있는 호텔 오를로제르.
로열 오크 엑스트라씬 셀프와인딩 플라잉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RD#5
로열 오크 엑스트라씬 셀프와인딩 플라잉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RD#5

박물관 내부에는 300여 점의 시계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초기의 정교한 포켓 워치부터 현대의 하이 컴플리케이션과 로열 오크 투르비용까지, 오데마 피게의 기술적 진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1899년 출시된 지극히 복잡한 유니버셀 회중시계를 중심으로 태양계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이 천문학적 영감을 준다. 단순히 오데마 피게의 제품이라기보다 발레 드 주 지역을 근간으로 한 시계의 역사를 보는 느낌이다. 방문객은 단순히 진열된 시계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계가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내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투어의 동선은 매우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창립 당시의 본관 건물과 초기 워치메이킹 공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최신 제조 시설이 이어진다. 이 둘은 투명한 유리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전통과 현대가 물리적으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구조다.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복원 부서, 아카이브, 그리고 투르비용 워크숍 같은 특별한 섹션을 지나게 된다. 나선의 중심부에 위치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Grandes Complications)과 메티에 다르(d’Art) 아틀리에가 핵심이다. 각 공간에서는 숙련된 장인들이 수백 개의 부품을 다듬고 조립하며, 전통적인 마감 기법을 고수한다. 박물관에 이어 찾은 가장 최근 완공된 아크는 오데마 피게의 가장 현대적인 매뉴팩처다. 최근 완공되어 아직 이곳을 찾은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오데마 피게는 최근 르 로클에도 매뉴팩처 데 세뇰과 메렝의 매뉴팩처를 확장한 바 있는데, 아크 역시 이러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의 최신 버전이다. 17,000㎡ 규모의 대지에 지상 3층과 여러 기술실이 위치한 지하 1층으로 완성했다. 기존의 매뉴팩처 데 포르주와 연결될 뿐 아니라 모듈형으로 기획되어 순차적으로 더 확장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지녔다. 자연광이 가득한 건물은 워치메이킹에 최적화되어 있다. 한정판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의 마지막 피스의 조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워치메이커부터 오데마 피게를 상징하는 타피스리(tapisserie) 다이얼 패턴을 완성하는 기요셰 제작 과정까지 생생한 작업 풍경이 펼쳐진다. 작업대에서 르 브라쉬의 초록 풍경을 고스란히 조망할 수 있는데, 이는 자연광에 따라 자동으로 색이 바뀌어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전기 변색 유리인 세이지글라스(SageGlass®) 기술 덕분이다. 온도 조절 기능까지 갖춘 친환경 건축이기에 이 대규모 매뉴팩처를 채광이 뛰어난 대형 유리 건축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성이 화두인 시계업계에서 오데마 피게가 한 걸음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겨울 해가 떠 있는 단 몇 시간 동안 농가 주택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기대 시계를 제작했던 과거의 워치메이커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매우 훌륭한 작업 환경이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시계 제작자의 숙소, 호텔 데 오를로제르

이번 오데마 피게 여정의 꽃은 르 브라쉬에 위치한 호텔 오를로제르(Hôtel des Horlogers)다. 과거 이 지역의 워치메이킹 루트 중 하나였던 ‘셰맹 데 오를로제(Chemin des Horlogers)’ 길목에서, 한때 시계 장인과 상인들이 이용하던 전통 여관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르 브라쉬의 역사적 터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 브랜드의 정체성과 지역 문화의 연결 고리를 완성한 셈인데, 실제로 지금도 이 지역에 시계 매뉴팩처를 방문하기 위해 많은 시계 애호가들이 머물고 있다. 건축미가 뛰어난 이 호텔은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 사무소인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이 건축을 맡았다. 쥐라 계곡의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호텔을 골짜기의 경사면을 따라 지그재그 형태로 설계했다. 시계의 무브먼트나 워치메이킹 트레일을 연상시키는 동선 구조로, 방문객은 호텔을 걸으며 자연 속의 리듬을 느끼게 된다. 모든 객실은 넓은 통창을 통해 리수드 숲(Risoud Forest)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해, 아침이면 산 안개가 천천히 흘러드는 계곡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제 AP 하우스 제네바로 떠나보자. 오데마 피게의 뛰어난 공간 구성력은 이곳에서도 여지 없이 발휘된다. 언뜻 최상위 VIP를 위한 프라이빗 살롱의 느낌이다.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정경과 브랜드 무드를 담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는 이곳에서는 제네바를 찾은 오데마 피게 애호가들이 머무르며 시계 그 자체에 대한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부티크와는 달리 호텔 스위트룸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착용해볼 수 있는 시계가 준비되어 있고, 시계 전문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현재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시계와 선호하는 스타일에 대한 세심한 대화도 자연스럽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계 라이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가는 이곳은 오데마 피게가 생각하는 AP 하우스의 이상적인 모습 중 하나일 듯하다. 충분한 대화를 매개로 방문객을 시계의 세계로 인도하는 정성스러운 시간이다. 르 브라쉬에서 시작해 제네바까지 이르며 오데마 피게 투어를 통해 마주한 것은 브랜드 철학과 과거의 스토리, 그리고 이후에 나아갈 방향까지 같이하는, 진정한 애호가와 함께하는 길이다. 오데마 피게는 이 세밀한 여정을 정성스럽게 가꾸어두었다. 언제든 브랜드를 사랑하는 이들이 이 여정을 거쳐 간다면 자연스럽고 풍성한 숲을 걷는 느낌이 들 것이다. 오데마 피게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는 주제인 ‘House of Wonders’와 어울리는 것은 물론, 브랜드를 사랑하는 애호가에게 닿을 수 있는 지점이다. 시계 브랜드는 일회성의 판매보다 긴 시간을 함께하는 고객과의 여정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 여정은 수십 년, 혹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오데마 피게가 공들여 가꾸고 있는 르 브라쉬와 제네바의 시간은 너무나 아름다운 시계의 정원이다. 오데마 피게 애호가라면 반드시 이 장면을 만끽할 기회를 갖길 바란다.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