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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GPHG 심사위원, 피에르-이브 돈제와의 인터뷰

  • bhyeom
  • 11월 19일
  • 4분 분량

Pierre-Yves Donzé

Jury Member of the 25th GPHG


오사카 대학교에서 만난 피에르 이브 돈제는 시계 산업의 역사와 인간적인 통찰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다. 스위스 라 쇼드퐁 출신의 그가 일본에서 이어가는 학문적 여정은 시계를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더욱 빛난다.


일본 오사카 대학교에서 피에르-이브 돈제를 만났다. 스위스 라 쇼드퐁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오사카 대학교에서 경영사를 가르치는 교수이자 제25회 GPHG 심사위원 중 한 명이다.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The Business of Time)>, <롤렉스의 역사(The History of Rolex)> 등 시계 관련 저서만 7권이 넘는 그는 작가이자 수집가이기도 하다. 그와의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가 수집가와 워치메이커의 마음을 동시에 헤아리는 드문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스위스와 일본 시계 산업의 경쟁 구도와 변화를 깊이 꿰뚫는 학자면서도 시계를 사랑하는 한 명의 애호가로서, 만약 한 브랜드의 CEO라면 피에르와 나누는 대화는 분명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가 시계업계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는 단 하나, ‘사람들이 시계를 더 사랑하고, 올바른 정보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계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지식인의 통찰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따뜻함, 그리고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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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이브 돈제가 2022년에 출간한 저서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The Business of Time)》
피에르 이브 돈제가 2022년에 출간한 저서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The Business of Time)》

<GMT KOREA>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만나서 반갑다. 나는 피에르-이브 돈제다. 현재 오사카 대학교에서 경영사를 가르치고 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고, 일본에 거주한 지는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경영사는 특히 산업 내에서 경쟁 역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나는 시계와 럭셔리 산업에 관심이 많다. 기업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하며, 또 어떤 이유로 쇠퇴하고 사라지는지 연구한다.


처음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적부터였다. 나는 스위스의 라 쇼드퐁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심지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시계 회사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시계를 보며 자랐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연구자로서 시계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적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접했을 뿐이다. 진정한 관심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생겼다. 대학 시절 3년 동안 라 쇼드퐁의 국제시계박물관(International Museum of Watchmaking)에서 사서로 일했는데 그곳에서 ‘시계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박물관에는 오래된 시계와 시계를 수리하는 작은 워크숍이 있었고 훌륭한 도서관도 있었다. 그곳은 이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기에 어느 곳보다도 완벽한 출발점이었다.


시계 산업과 럭셔리 비즈니스에 대한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나?

내가 쓴 책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대학교수로서의 연구 프로젝트 결과물로 매우 학문적인 저서다. 두 번째는 기업의 의뢰를 받아 특정 회사의 역사를 집필한 책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형으로 스스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쓴 책이다. 이를테면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처럼 ‘이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쓴 책이다. 최근에는 <롤렉스의 역사>라는 책도 출간했는데, ‘왜 롤렉스가 그렇게 유명해졌는가?’라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쓰고 그 후에야 ‘아마 다른 이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시계업계 종사자나 컬렉터에게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사’와 ‘스토리’는 다르다는 점이다. 브랜드들은 시계를 판매하기 위해 ‘스토리’를 만든다. 물론 그것이 역사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나의 관심은 ‘진짜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이 ‘스토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즉 둘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시계의 산업 전략에 더 관심이 있나, 아니면 시계 자체에 더 흥미가 있나?

처음엔 나는 시계 제작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품 자체보다 산업 구조, 제조 기술, 산업화, 글로벌화 같은 전략적 측면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제품 자체에도 점점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디자인과 그 이면의 콘셉트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나는 이 두 영역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제품은 기업의 전략과 직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예전엔 전략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 제품이 왜 영혼을 지녔는가’를 이해하려 한다. 훌륭한 제품이 기업의 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하고 바라보려 한다. 현재는 브랜드의 ‘부활(relaunch)’ 전략을 주제로 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브랜드들이 과거의 이름을 되살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브랜드가 왜, 어떤 제품으로 다시 부활하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차펙(Czapek)은 파텍필립의 초창기 파트너였던 인물이 만든 브랜드로 현재 소규모지만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를 되살리려면 반드시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이런 부분을 전략과 연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본 시장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큰 변화는 ‘중산층 중심의 소비 구조’가 붕괴된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중산층이 중심이었고 세이코나 시티즌처럼 정확하고 저렴한 시계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거품 경제가 붕괴된 후 사람들의 소비 여력도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일본 내 시계 시장은 급격히 축소되었다. 중산층이 시계를 사지 않게 되면서 남은 것은 ‘고급 시장’뿐이었다. 오데마 피게, 리차드 밀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만이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다. 한편 일본 시계 시장을 지탱한 것은 ‘관광객’이었다. 특히 아베노믹스 이후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에 와서 일본인들이 더 이상 구매하지 않던 입문급 럭셔리 워치를 구매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관광객이 사라지자 그 시장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일본은 현재 ‘소수의 부유층만이 시계를 사는 시장’으로 변했다. 1980~1990년대에 루이 비통,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 디올 등의 브랜드가 일본 시장을 통해 성장했지만 지금은 그 기반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독립 시계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나?

사실 새로운 일만은 아니다. 지금은 큰 파도가 온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첫 번째 큰 파도는 1980년대 ‘쿼츠 혁명’ 때 이미 있었다. 그 시기에는 세이코나 홍콩 업체 같은 대형 브랜드가 저가의 정밀 시계로 시장을 지배했고 스위스에서는 장인들이 이에 반응했다. 그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프랑크 뮬러, 스벤 안데르센, 미셸 파르미지아니, 그리고 프랑수아-폴 주른 등이 있다. 많은 독립 제작자가 있었고 물론 상당수는 사라졌지만 몇몇 이름은 크게 성장했다. 이후 럭셔리 비즈니스가 커지면서 새로운 회사가 가끔 등장했지만 한동안은 거의 마무리된 듯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두 번째 파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더 이상 스위스로 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프랑스나 북유럽 출신의 장인, 심지어 일본인 제작자조차 제네바로 가서 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도쿄에서도 장인 시계를 만들 수 있다. 굳이 제네바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오늘날의 큰 변화다.


올해 제25회 GPHG 심사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이번 행사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선 학자로서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기쁘다. 카탈로그나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수많은 시계를 직접 손에 들고 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특별하다. 불가리, 피아제, 쇼파드 같은 대형 브랜드뿐만 아니라 일반 매장에서 보기 힘든 소규모 독립 브랜드의 작품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과 함께 토론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이 큰 배움의 시간이 될 것이다.


시계사 연구자로서 앞으로 학문과 산업 양쪽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나?

학문적으로는 이 산업의 ‘진짜 역사’를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시계 세계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존재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 역사를 정확히 알수록 브랜드는 더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자사 유산을 활용할 때 진짜 역사를 이해한다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앞으로 시계업계에 기여하고 싶은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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