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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498개 검색됨

  • 프랑스의 유산, 스위스의 장인 정신, 이탈리아의 미학이 만난 루이 비통 ‘뉴 몬터레이’

    Louis Vuitton The Monterey 최근 루이 비통의 몬터레이는 조용히 시계 시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루이 비통 2025 F/W와 2026 S/S 여성 컬렉션 런웨이에 오리지널 모델이 등장하기도 하며 시계 애호가는 물론 패션 피플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리뉴얼을 기대하고 있던 애호가들의 바람대로 곧 ‘뉴 루이 비통 몬터레이’가 공개됐다. 새로운 에디션은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가 디자인한 1988년산 첫 몬터레이 시계에서 영감을 받았다. 케이스는 오리지널의 부드럽고 둥근 실루엣과 12시 방향 노치 크라운을 그대로 유지하며, 다이얼은 최고급 그랑 푀 에나멜로 완성되었다. 내부에는 제네바 실을 새긴 인하우스 무브먼트 칼리버 LFT MA01.02를 탑재했다. 프랑스의 헤리티지, 스위스의 장인 정신, 그리고 이탈리아의 디자인 감각을 한데 담은, 2025년 루이 비통의 가장 세련된 귀환작이다. 문의 02-3432-1854

  • 높은 안정성으로 시간을 더욱 자유롭게, 데이비드 칸도의 DC12 매버릭

    David Candaux DC12 MaveriK David Candaux DC12 MaveriK 데이비드 칸도는 17년간의 사색 끝에 개발한 이 듀얼리티를 ‘자유로운 더블 밸런스’라 부른다. 두 밸런스가 독립적으로 호흡하며, 헤어스프링 쇼크 업소버에 자리한 디퍼렌셜 기어가 두 개의 다른 입력값을 하나의 출력으로 계산한다. 덕분에 실제 착용 환경에서 매우 효과적인 정밀성을 제공하는데, 그만큼 다루기 복잡하고 까다로운 구조다. C30 칼리버에는 세 가지 신규 특허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오차를 보정하는 디퍼렌셜, 에너지가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는 와인딩 시스템, 와인딩과 시간 설정을 통합한 코액시얼 및 경사 제어 메커니즘이다. 그레이드 5 티타늄으로 제작해 가볍고 견고하며, 50m 방수를 지원한다. 데이비드 칸도의 상징인 특허 ‘매직 크라운’과 곡선미를 강조한 풀 커브드 구조의 케이스 또한 이 작품의 개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의 02-401-3336

  • 일본의 시계 컬렉터, 이케다 다케시와의 인터뷰

    Takeshi Ikeda, independent watch collector 일본 시계 컬렉터 이케다 다케시와 다시 만났다. 독립 시계 제작자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그들의 철학을 깊이 탐구하는 그의 수집 세계에는 소유 이상의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가 발견한 숨은 보석, 이케다 다케시를 두 번째로 만났다. 독립 시계 브랜드를 특히 사랑하는 그는 오히려 우리 팀에게 더 많은 지식과 영감을 제공하는 일본 수집가다. 최근에는 시몽 브렛, 제브뎃 레제피, 그리고 크리스티안 라스를 소개해 주며, 그들이 지닌 진정한 워치메이킹 철학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여러 독립 워치메이커와 인터뷰가 가능했던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이케다가 시계를 수집하는 과정에는 구매 이상의 의미가 있다. 워치메이커의 삶과 철학을 한 땀 한 땀 탐구해 가는 여정을 즐기는데, 한 워치메이커는 “나는 이케다를 통해 일본의 장인 정신을 배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각 제작자와의 교감을 통해 그들이 걸어온 길과 시계에 담긴 세계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배움에서 그는 가장 큰 설렘을 느낀다. 이번 만남에서는 지난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소개하고 싶은 독립 브랜드 시계’로 꼽은 크리스티안 라스의 신작을 직접 언박싱했다. 이케다가 감동받았던 크리스티안 라스와의 이야기를 비롯해, 새로운 시계를 마주한 그의 생생한 인상과 감정을 함께 전달하고자 한다. 일본의 독립 시계 컬렉터, 이케다 다케시 오사카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감독한 건물 W 오사카 호텔 미팅 룸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지난번 인터뷰 때 느꼈지만, 시계 커뮤니티에서 이케다 다케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독자를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다시 부탁한다. 이렇게 두 번째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다. 시계를 향한 우리의 공통된 사랑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는 독립 시계 제작과 역사를 지닌 타임피스에 애정을 느끼는 컬렉터다. 독립 시계 제작자의 작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창작자와의 ‘친밀함’이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생각, 철학, 그리고 개성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수집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오늘은 직접 구입한 크리스티안 라스 시계를 함께 언박싱하기로 한 날이다. 이전 인터뷰에서 크리스티안 라스를 ‘꼭 소개하고 싶은 독립 시계 제작자’ 중 한 명으로 꼽았는데, 그 이유가 있나? 그가 자신의 첫 번째 시계, 30CP를 어떻게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인상 깊었다. 그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중 우연히 시계 제작 과정을 접했고, 그때부터 시계의 세계에 빠졌다. 어느 날 지역 도서관에서 조지 대니얼스(George Daniels)의 저서 <워치메이킹(Watchmaking)>을 빌려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 경험이 결국 그를 덴마크의 시계 제작 학교로 이끌었다. 그의 몰입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았고, 그 진심 어린 열정이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크리스티안 라스의 작품에서 어떤 매력과 감동을 받았나? 그의 이력은 그 자체로 놀랍다. 코펜하겐 시청에는 300년 동안 단 0.4초의 오차만 허용하는 세계적인 정밀도의 ‘월드 클락(World Clock)’이 있는데, 그는 이 시계의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후 프랑스 워치메이커 비아니 할터(Vianney Halter) 밑에서 완전한 수제 시계 제작 기술을 배우며 진정한 장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필립 듀포(Philippe Dufour)의 아틀리에에서 몇 년간 근무하던 중, 듀포로부터 파텍 필립 박물관 채용 소식을 전해 듣고 약 10년 동안 그곳에서 복원 전문가로 일했다. 그 시절에 그는 5세기에 걸친 시계 제작의 역사를 직접 연구하며, 어떤 시계가 진정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는지 몸소 체험했다. 라스는 이것이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귀중한 배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 특별한 여정을 걸어온 인물이 첫 시계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여정에 꼭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티안 라스의 30CP. 타케시 이케다는 인그레이버 하넬로어 라스에게 특별 주문으로 맞춤 인그레이빙을 의뢰했다. 크리스티안 라스의 30CP. 타케시 이케다는 인그레이버 하넬로어 라스에게 특별 주문으로 맞춤 인그레이빙을 의뢰했다. 첫 시계를 주문하고 얼마나 기다렸나? 내가 알기로 그는 1년에 약 5점 정도를 제작하며, 30CP의 총 생산 수량은 50피스로 한정되어 있다. 즉 완성까지 약 10년이 걸리는 셈이다. 나는 2022년 6월경에 주문을 넣었고, 약 3년을 기다린 끝에 시계를 받을 수 있었다. 크리스티안 라스가 다른 독립 시계 제작자들과 다른 점과 독자적인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라스를 처음 직접 만났을 때, 그가 여러 번 반복했던 한 단어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바로 ‘조화(harmony)’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화다”라고 말했다. 진정 편안하고 균형 잡힌 디자인의 조화 말이다. 5세기에 걸친 시계의 복원을 경험한 그는 비례감과 미학에 대한 비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바로 그런 역사와 경험이 잘 어우러진 것이다. 그 점이 그의 작품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이유다. 크리스티안 라스의 아내이자 예술가인 하넬로어 라스(Hannelore Lass)는 다이얼과 무브먼트를 장식하는 정교한 핸드 인그레이빙으로 유명하다. 그의 인그레이빙이 시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 내가 받은 30CP는 오리지널 버전과 달리 로마숫자 다이얼을 적용한 커스텀 디자인이다. 직접 요청한 사양이었다. 나는 하넬로어 라스의 인그레이빙 예술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계를 원했기에, 그녀의 손길이 시계 전반에 스며들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브랜드 로고와 인덱스 곳곳에서 느껴지는 수공 인그레이빙의 따뜻함과 깊이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스럽다. 하넬로어의 장인 정신은 매우 탁월하다. 그는 과거 비아니 할터, 파텍 필립, 반클리프 아펠 등 명문 브랜드에서 인그레이빙 작업을 해왔고, 그 경험과 기술이 이번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근 몇 년간 독립 시계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내에서 독립 브랜드를 받아들이는 인식은 어떠한가? 최근 몇 년 사이, 독립 시계 브랜드를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가 부쩍 많아졌고,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시계를 구입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시계 제작자나 그들의 소규모 팀과 직접 연락을 취하고 꾸준히 소통하며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작 수량이 극히 제한적이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해 줄 사람에게 전달하길 원한다. 그래서 요즘의 시계 제작자들은 누구에게 작품을 판매할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계를 수집하면서, 시계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느낀 적이 있나? 시계를 사랑한 지 어느덧 23년이 지났다. 그동안 다양한 모델을 경험하며 내 취향도 점점 변해왔다. 이제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감각이 훨씬 정제되었다고 느낀다. 결국 내가 끌리는 시계는 클래식한 요소를 지니면서도, 그 안에는 약간의 유머와 따뜻함이 스며 있고,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 짓게 되는 시계다. ‘좋은 시계’란 무엇인지 정의해 본다면 어떤 의미인가? 참 흥미로운 질문이다. 나에게 좋은 시계란,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시계다. 결국 시계는 ‘취미’의 영역이니까. 그래서 좋은 시계는 나에게 “그래, 바로 이거야. 정말 마음에 들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계라고 생각한다. 요즘 특히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독립 시계 브랜드가 있다면? 변함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계 제작자는 여전히 제브뎃 레제피와 시몽 브렛이다.

  • 롤렉스와 스포츠

    The Roots of Rolex’s relationship with sports 롤렉스는 스포츠와의 다양한 협업을 통해 ‘시간’과 ‘위대함’의 철학을 만들어간다. 롤렉스의 스폰서십은 일반적인 마케팅 방식과 다르다. 롤렉스는 브랜드 세계관을 확장하는 문화적 투자로 스포츠를 선택한다. 이 철학은 모든 종목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며, 테스티모니의 존재에서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된다. 롤렉스는 여성 골프 5대 메이저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롤렉스 테스티모니 타이거 우즈. 롤렉스가 바꾼 게임의 법칙 롤렉스와 스포츠의 관계는 다양한 스토리를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롤렉스의 스포츠 스폰서십 구조는 매우 체계적이며 종목 선택부터 대회 등급, 테스티모니(Testimonee) 구성까지 모두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되어 있다. 가장 상징적인 영역은 골프다. 롤렉스는 남녀 메이저 9개 대회를 모두 후원하고 50명 이상의 테스티모니를 운영한다. 골프는 정확성과 인내, 절제, 전통이라는 가치가 브랜드 철학과 가장 일치하는 종목이기에, 롤렉스는 이 스포츠를 통해 ‘시간을 견디는 위대함’이라는 세계관을 가장 깊이 있게 구현한다. 테니스는 롤렉스의 또 다른 핵심 무대다. 윔블던, US 오픈, 롤랑가로스 등 주요 그랜드슬램의 공식 파트너로 활동하며, 로저 페더러와 카를로스 알카라즈 같은 시대의 아이콘이 테스티모니로 활동한다. 테니스는 우아함과 경쟁, 정밀함이 조화를 이루는 스포츠이기에 롤렉스의 기계적 완성도와 브랜드 품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터스포츠 분야 역시 모나코 그랑프리, 르망 24시, 데이토나 24 같은 세계 최고 권위 레이스의 타임키퍼로서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이 영역은 브랜드의 엔지니어링 능력, 내구성, 정밀함을 가장 직접적으로 증명한다. 헤리티지와 장인 정신의 가치를 이끄는 승마와 세일링은 롤렉스 스폰서십 세계관의 전통적 축을 담당한다. 승마는 귀족 문화와 클래식한 품격을, 세일링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한다. 이렇게 다양한 스폰서십을 아우르는 브랜드 메시지는 단순하다. 롤렉스는 기록이나 광고 노출이 아닌 ‘위대함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24시간을 견디는 내구 레이스, 4시간 넘게 이어지는 메이저 골프, 바람과 조류의 시간을 읽어야 하는 요트 레이스 등 스포츠는 시간을 시험하는 무대이며, 롤렉스는 그 시간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는다. 결국 롤렉스의 스포츠 스폰서십은 홍보가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성장시키며 스포츠와 함께 발전하는 스포츠맨십을 지니고 있다. 이 독보적인 구조 덕분에 롤렉스의 가치는 제품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적 자산으로 확장되어 많은 이들에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설적인 롤렉스의 파트너십, 빅 쓰리. 세대의 전설과 세대의 브랜드가 만난 순간 롤렉스와 골프의 관계는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서 이어나간 고유한 것이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60년 이상의 협력은 브랜드가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스포츠가 브랜드를 통해 더욱 품격을 얻는 동행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메이저 대회 타임키퍼로의 역할, 투어와 아마추어 골프 지원,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골프 분야 후원, 그리고 골프가 지닌 장인 정신과 정밀성, 인내의 가치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어우러져 있다. 그중 전설의 시작은 골프 스폰서십의 역사를 만든 3인의 전설과의 만남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The Big Three’라 불리는 아널드 파머(Arnold Palmer),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 게리 플레이어(Gary Player)라는 세 전설. 이들은 경쟁자이자 동료였고, 골프 대중화를 이끈 혁신가였으며, 동시에 롤렉스가 만든 스포츠 스폰서십 세계관의 초석이자 골프라는 스포츠가 글로벌 무대에서 우아함과 품격의 이미지를 갖추게 한 핵심적 존재다. 1967년, 아널드 파머가 롤렉스의 첫 테스티모니가 되었고, 파머의 존재는 롤렉스의 브랜드 이미지인 품격과 단정함, 친절함, 신뢰감과 완벽히 들어맞았기에 지금까지 롤렉스 테스티모니 철학의 원형이 되었다. 롤렉스의 테스티모니는 전통적인 의미의 광고 모델이나 브랜드 앰배서더와 다르다. 테스티모니의 선정 기준이 명확하면서도 고유하다. 롤렉스가 선택하는 인물은 단순히 성적이 좋거나 인기가 많은 스타가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긴 시간 동안 꾸준함, 절제, 장인 정신, 그리고 성공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품격을 지닌 인물이다. 골프의 게리 플레이어,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 예술과 탐험 분야의 거장들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스포트라이트뿐 아니라 정신적 유산을 남긴다는 점이다. 롤렉스는 바로 이 ‘유산을 남기는 사람’을 선택한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2~3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교체하는 데 비해, 롤렉스는 수십 년 동안 이어나간다. 아널드 파머는 1967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롤렉스와 함께였고, 잭 니클라우스와 게리 플레이어 역시 평생을 함께한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장기성은 테스티모니와 브랜드 사이에 파트너십을 넘어 역사적 관계를 만든다. 어떤 광고에서도 테스티모니가 시계를 가리키거나 제품명을 강조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여정과 삶의 태도, 도전에 대한 관점,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명예와 헌신을 조명한다. 테스티모니라는 구조는 롤렉스가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형 자산이며, 다른 럭셔리 브랜드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독자적 시스템이다. 이는 시계 산업 전체의 마케팅 전략을 바꾸는 도화선이 되었다. 롤렉스는 선수에게 제품을 들고 홍보하게 하는 대신, 그 선수의 커리어와 가치, 명예를 브랜드 이미지와 연결한 콘텐츠는 많은 이들에게 품격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장기적인 후원으로 완성한 롤렉스 VIP 호스피털리티 테스티모니를 쉽게 바꾸지 않듯, 롤렉스는 스포츠 경기 후원, 특히 골프에 대해서도 장기적 계약을 맺고 후원한다. 이는 대회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메이저 대회와의 공식 파트너십은 롤렉스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스폰서가 매년 바뀌면서 생기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대회 운영과 중계, 관람 경험을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할 수 있게 했다. 남녀 골프 투어 및 아마추어 대회까지 지원 범위를 넓히면서, 단순히 프로 선수나 대회만이 아닌 골프 생태계 전체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여성 골프 분야에 대한 후원도 1980년대부터 시작해 여성 골프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골프 규칙을 제정하는 기구와의 협력 관계까지도 롤렉스에서 매우 중요한 유산 중 하나다. 이러한 롤렉스와 골프 산업 전반의 협업은 골프가 ‘프리미엄 스포츠’라는 이미지를 공고히 하며, 골프 리조트, 멤버십 클럽 같은 주변 산업 역시 함께 성장하는 효과를 이끌어냈다. 롤렉스의 스포츠 스폰서십은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확장된다. 롤렉스 스위트나 VIP 호스피털리티는 단순한 관람 공간이 아니라, 오랜 고객이 쌓아온 시간과 브랜드의 관계를 기념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테스티모니의 삶과 같이 이곳을 찾는 고객과 방문객의 골프에 대한 사랑과 삶의 성취를 조용히 지지한다. 지난 뉴 코리아 컨트리클럽에서 개최한 LPGA 유일 국가 대항전에서도 리디아 고 등 롤렉스 테스티모니 선수들이 롤렉스 스위트를 찾아 오랜 롤렉스 고객들과 함께했다. 이러한 주요한 골프 대회의 롤렉스 스위트는 문화계 인물들이 모여드는 대화 장소 역할을 하고 골프를 사랑하는 이들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특별한 커뮤니티가 된다. 롤렉스는 이러한 공간에 대해서도 특정한 홍보를 통해 알리기보다 롤렉스의 오랜 고객, 골프계의 주요한 인사가 모여 골프 경기를 보다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후원을 지속하며 VIP 호스피털리티 모델을 정교하게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롤렉스가 골프를 통해 펼쳐나가는 여정은 앞으로도 럭셔리 브랜드들이 스포츠와 맺는 파트너십의 기준이 될 것이다.

  • 발 아래 펼쳐진 하늘, 호암미술관 이우환 신작 전시

    Silentium by Lee Ufan 오래 닫혀 있던 ‘옛돌정원’이 처음으로 개방되고, 그곳에 이우환의 신작 조각이 자리 잡았다. 호수와 억새, 하늘빛과 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이 한 장면을 이루는 정원에서 작품은 원래 그 자리를 오래 품고 있던 것처럼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어진 동선은 전통 정원 ‘희원’으로 흘러가고, 두 정원은 자연의 결 속에서 이우환의 세계를 하나로 잇는다. ‘실렌티움(묵시암)’ 2025, 철판, 자연석 (철판) 320 X 370 X 7cm (자연석) 91 X 91 X 115cm © Lee Ufan ‘실렌티움’에 선 이우환 작가 (2025) © Lee Ufan 한국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호암미술관은 1982년 개관한 이후 전통 한옥 형태의 본관 건축물과 한국식 전통 정원 ‘희원’, 그리고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산책하는 미술관’이라는 정체성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이번 ‘옛돌정원’ 개방을 통해 너른 호수를 내려다보는 산책로와 작은 구릉을 따라 이어지는 나무와 식물을 통해 호암미술관 고유의 정체성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이우환의 신작 전시가 11월 4일부터 상설 전시로 공개되어, 관람객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작품을 꾸준히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세계 미술계에서 이우환은 돌, 철판, 유리 같은 최소한의 재료로 ‘관찰의 감각’을 되살리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영국 <아폴로 매거진(Apollo Magazine)>의 평론가 마틴 허버트(Martin Herbert)는 그의 작업을 “빠른 시대에 잊힌 느림의 미학을 회복시키는 예술”이라 말하며, 시간과 자연 속에서 감각을 열어가는 방식에 주목한다. <아트포럼(Artforum)>의 파블로 라리오스(Pablo Larios) 역시 “수십 년 같은 재료를 반복해도 신선함을 잃지 않는 정밀함”이라 평가하며, 그의 설치미술이 관람자, 사물, 공간을 하나의 관계로 묶어낸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해석은 자연과 장소성이 중요한 호암미술관 정원 전시와 정확히 맞물리며, 공간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설치미술의 경험적 특성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관계항 – 만남’,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자갈 (스테인리스 스틸) 500 X 200cm © Lee Ufan ‘관계항 – 하늘길’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스테인리스 스틸) 1000 X 120 X 2cm (2pcs) (자연석) 90 X 125 X 115(h), 125 X 100 X 110(h)cm © Lee Ufan 호수를 따라 난 길을 걷다 보면, 정원의 완만한 언덕 덕분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지름 5m의 링 형태 조각 ‘관계항-만남(Relatum-The Encounter)’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이 주변 자연을 비추며 작품 속 공간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면 그 안을 드나드는 서로 다른 속도의 사람들과 그 장면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마주하게 된다. 현재 미완성 상태인 이 작품은 향후 링 양쪽을 마주 보는 2개의 돌이 더해져 완성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 만남을 기다리는 기대감도 남겨둔다. 정원 더 안쪽을 걷다 보면 키보다 살짝 높은 나무 길이 미로처럼 이어지고, 그 사이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다. 햇빛을 받은 호숫가에 가까이 다가가면, 처음에는 작은 냇물처럼 보이던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잔디 위에 20m 길이로 놓인 거울 같은 금속판과 돌로 이루어진 ‘관계항-하늘길(Relatum-The Sky Road)’이다. 멀리서 하늘을 비추며 흐르는 물줄기처럼 보이던 작품 위로 한 발씩 내딛는다. 땅을 걷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하늘을 걷고 있다. 구름이 발 아래로 흘러가고, 나무가 흔들리며, 이머시브 아트(immersive art) 전시보다 더 직접적이고 생생한 감각에 순간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마음이 든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품 위를 건너며 나누는 웃음과 이야기, 그리고 어느 순간 잔디 위에 앉아 혼자 작품과 마주하는 시간은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다. 거울 표면에 비친 푸른 하늘, 그 옆을 지키고 마주 보며 서 있는 2개의 돌, 바람과 새소리까지 모두 하나의 장면이 되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해서 변하는 작품으로 만든다. 그 순간, “버리고 비우면 보다 큰 무한이 열린다”는 작가의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연결된 위쪽 산책로에서는 ‘관계항-튕김(Relatum-Bursting)’을 만날 수 있다. 휘어 있는 두꺼운 금속판과 2개의 돌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고, 바닥의 자갈을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울린다. 시각뿐 아니라 발걸음과 소리까지 연결된 경험이 이어진다. 옛돌정원 건너편에는 호암미술관 본관이 자리한 전통 정원 ‘희원’이 있다. 호암미술관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되는 이 정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맥을 이어가는 숨결이 담겨 있다. 정원과 어우러진 동자석, 문·무인석, 그리고 석불의 전통 조각상과 한옥의 정자, 연못, 돌담과 수목이 어우러진 이곳은 ‘차경(借景)’의 원리로 주변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희원에는 이우환 작가의 또 다른 신작인, 라틴어로 ‘침묵(silentium)’을 뜻하는 ‘<실렌티움(묵시암)>’이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묵직한 돌과 두꺼운 철판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이 놓여 있다. 그 앞에 서면 저절로 숨 고르며 느려진 발걸음으로 실내에 이르게 된다. ‘실렌티움(묵시암)’ 2025, 자연석, 목탄 (자연석) 78 X 63 X 80(h)cm (목탄 그림자) 102 X 121cm © Lee Ufan 안으로 들어서면 나란히 이어진 3개의 공간이 각기 다른 새로운 작품을 품고 있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플로어 페인팅(Floor Painting)’은 바닥을 캔버스로 삼았다. 원형의 붉고 푸른 색채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하얀 조약돌이 액자 프레임처럼 감싸고 있다. 자연스럽게 벽을 따라 한 바퀴 돌게 되고, 색이 바닥에서 은은하게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은 땅속의 기운이 표면 위로 번지는 모습과 닮았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월 페인팅(Wall Painting)’이 있다. 이우환 예술 세계의 출발점이자 귀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을 통해 극도의 절제미를 보여준다. 2개의 점은 미세한 색채의 변화로 깊이를 만들고, 넓은 여백은 오히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채워진 것보다 채워지지 않은 것이 더 큰 울림을 만든다는 그의 작업 세계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돌 하나와 두 개의 그림자가 드리운 ‘섀도 페인팅(Shadow Painting)’이 자리 잡고 있다. 조명 아래에서 생기는 실제 그림자와, 작가가 그려 넣은 그림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조명 위치가 달라지면 실제 그림자는 끝없이 다른 형태가 되겠지만, 그려진 그림자는 변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것과 고정된 것이 한 자리에서 겹쳐지며, 현실과 환영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 작업들을 마주하는 동안 관람자는 말없이 시선을 머무르게 된다. 색의 떨림, 여백의 호흡, 그림자의 변화가 감각을 서서히 열어주고, 그 속에서 침묵은 더 이상 빈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명료한 시간으로 변한다. ‘고요함 속에서 바라본다’는 ‘<실렌티움(묵시암)>’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리고 보이는지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우환은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에서 회화와 철학을 공부한 뒤, 1960년대 후반 일본의 ‘모노하’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했다. 자연석, 금속판, 거울 등 최소한의 재료를 통해 사물, 공간, 관람자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세계 미술사에 또렷한 존재감을 남겼다. 이번 호암미술관 프로젝트는 작가가 직접 정원과 자연, 호수와 돌이라는 풍경을 자신의 설치 작업의 배경으로 제안하며 시작되었다. 그 덕분에 그의 작업을 상설로 마주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생겼다. 이 전시에서는 모든 것을 한 번에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걸음을 조금 늦추는 순간, 작품이 가장 선명해진다. 사람들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작품 앞에 혼자 서게 되고, 그 고요 속에서 주변의 미세한 변화들이 또렷해진다. 낙우송 숲길을 바라보는 ‘호암 카페’에서 잠시 머무는 시간도 좋다. 정원을 걷고 멈추고 다시 걸어 나오는 동안, 이우환의 작품은 작은 여백과 에너지를 남긴다. 자연을 가까이 두고 싶다면 한 번쯤 이 길 위에 서서 발 아래 펼쳐진 하늘을 밟아보기를 권한다.

  •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정,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

    THE JOURNEY TO SEEK BEYOND 철학과 역사가 깊은 시계 브랜드는 영원한 동반자를 찾는다. 오늘날까지 상당히 많은 수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가 판매되는 것을 보면 진정성 있는 브랜드가 시계 애호가와 얼마나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계를 제공하는지, 그 문화의 깊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0월 르 브라쉬에서 시작해 제네바로 이어지는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의 여정을 함께했다. 현대적인 나선형 유리 파빌리온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Musée Atelier Audemars Piguet)는 오데마 피게의 가장 오래된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은회색 안개에 싸인 르 브라쉬 10월 말 찾은 발레 드 주의 르 브라쉬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 제네바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이 지역의 상징적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작은 언덕에 있는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니 이 지역 주민들이 ‘saison des brumes du Brassus’라 부르는 르 브라쉬의 안개 시즌을 느낄 수 있는 정상에 닿았다. 운이 좋게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자연의 풍경을 맞닥뜨렸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자욱한 안개 속에서 겨우내 고립되어 시계를 만들었던 이 고장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다 근처 작은 산장 레스토랑에 들어가 따뜻한 코코아를 마신다. 별도의 난방 시설이 없어 아직 이르지만 따뜻한 벽난로가 타고 있다. 안내자 역할을 한 오데마 피게의 담당자는 역시 르 브라쉬 출신으로 이곳에 매우 다양한 브랜드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블랑팡, 브레게, 예거 르쿨트르, 필립 듀포까지. 긴 겨울과 까다로운 시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함께하는 동반자 같은 느낌이다. 사실 유서 깊은 산업은 지역을 기반으로 태동한다. 실리콘밸리,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 등 대부분의 지역 산업에는 흥망성쇠가 있다. 하지만 그 긴 역사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지역은 많지 않다. 산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인내와 도전, 지속적인 투자와 지역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필수적이다. 스위스 발레 드 주의 깊은 골짜기, 쥐라산맥에 위치한 르 브라쉬 마을에는 150년 가까운 세월을 품은 시계 메종 오데마 피게의 본사가 이러한 지역 기반의 지속적인 산업을 명징하게 상징한다. 놀라운 역사다. 1875년 줄-루이 오데마(Jules-Louis Audemars)와 에드워드 오귀스트 피게(Edward Auguste Piguet)가 이곳에 첫 워크숍을 연 이후, 브랜드는 지금까지 창립 가문이 소유한 독립 매뉴팩처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대량생산보다는 장인 정신, 기술력, 그리고 한정된 수량에 깃든 가치에 집중해왔으며, 바로 이 철학이 오늘날 오데마 피게를 세계 최고 수준의 워치메이킹 하우스로 자리 잡게 했다. 오늘날 마을 인구는 1400명에 불과한데, 뮤제는 물론 최근 새롭게 완성한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인 아크(ARC)에서 지역 주민의 상당한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오랜 계획을 두고 체계적으로 매뉴팩처와 뮤지엄을 확장한 덕에 인근 지역에까지 워치메이킹이라는 이례적이면서도 이 지역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산업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오데마 피게는 시계 산업을 다양한 세대와 지역의 연결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해 기초적인 부품을 조립하는 워치메이커부터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홀로 오롯이 완성하는 숙련된 장인까지, 이곳에서는 모두 제 역할이 있다. 은근한 햇살을 받으며 묵묵히 일하는 풍경이 아름답다. 곧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면 이 산업이 이곳에서 시작된 이유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유를 온몸으로 체감하리라. 시계들이 궤도를 따르는 모습으로 구성한 전시 모습. 중심에 오데마 피게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계인 유니버셀(1899)이 위치한다. 유니버셀의 무브먼트는 20여개의 컴플리케이션과 1168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뮤제 아틀리에의 예술성, 아크 매뉴팩처의 현대성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계승자로서, 고도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작업대를 지키고 있는 워치메이커, 그리고 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오데마 피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워치메이킹이 가내수공업이나 부품 공급업체에 머무르지 않은 것은 기계식 시계 브랜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오데마 피게도 쿼츠 파동 시기 부침을 겪었지만 더 제대로 된 기계식 시계를 만들고자 했고, 이렇게 탄생한 시계가 로열 오크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디자인이지만 초기에는 어글리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심지어 배척받기도 했다. ‘뮤제 아틀리에 오데마 피게(Atelier Audemars Piguet)’에서 초창기 로열 오크 모델을 보여준 오데마 피게 담당자는 “드레스 워치가 대세였던 시기에 스크루가 외부로 노출되는 39mm의 거대한 사이즈는 기존 시계 애호가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반전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로열 오크가 럭셔리 스포츠워치 시장의 선구자이자 이단아, 성공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이러한 로열 오크의 성공이 최근까지 이어져 매뉴팩처를 확장하게 된 오데마 피게는 르 브라쉬에 새로운 시대를 위한 건축적 선언을 더했다. 새롭게 완공된 모듈식 매뉴팩처 아크(Arc)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2014년 오데마 피게의 건축 공모를 통해 당선된 덴마크의 세계적인 건축가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Bjarke Ingels Group, BIG)이 설계한 이 건물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나선형 구조를 띠며, 기계식 시계의 기어와 스프링을 연상시킨다. 자연 지형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땅에 녹여낸 듯한 형태는 ‘워치메이킹의 심장부가 대지와 함께 호흡한다’는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르 브라쉬 자연 풍경을 품고 있는 호텔 오를로제르. 로열 오크 엑스트라씬 셀프와인딩 플라잉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RD#5 박물관 내부에는 300여 점의 시계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초기의 정교한 포켓 워치부터 현대의 하이 컴플리케이션과 로열 오크 투르비용까지, 오데마 피게의 기술적 진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1899년 출시된 지극히 복잡한 유니버셀 회중시계를 중심으로 태양계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이 천문학적 영감을 준다. 단순히 오데마 피게의 제품이라기보다 발레 드 주 지역을 근간으로 한 시계의 역사를 보는 느낌이다. 방문객은 단순히 진열된 시계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계가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내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투어의 동선은 매우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창립 당시의 본관 건물과 초기 워치메이킹 공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최신 제조 시설이 이어진다. 이 둘은 투명한 유리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전통과 현대가 물리적으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구조다.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복원 부서, 아카이브, 그리고 투르비용 워크숍 같은 특별한 섹션을 지나게 된다. 나선의 중심부에 위치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Grandes Complications)과 메티에 다르(d’Art) 아틀리에가 핵심이다. 각 공간에서는 숙련된 장인들이 수백 개의 부품을 다듬고 조립하며, 전통적인 마감 기법을 고수한다. 박물관에 이어 찾은 가장 최근 완공된 아크는 오데마 피게의 가장 현대적인 매뉴팩처다. 최근 완공되어 아직 이곳을 찾은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오데마 피게는 최근 르 로클에도 매뉴팩처 데 세뇰과 메렝의 매뉴팩처를 확장한 바 있는데, 아크 역시 이러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의 최신 버전이다. 17,000㎡ 규모의 대지에 지상 3층과 여러 기술실이 위치한 지하 1층으로 완성했다. 기존의 매뉴팩처 데 포르주와 연결될 뿐 아니라 모듈형으로 기획되어 순차적으로 더 확장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지녔다. 자연광이 가득한 건물은 워치메이킹에 최적화되어 있다. 한정판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의 마지막 피스의 조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워치메이커부터 오데마 피게를 상징하는 타피스리(tapisserie) 다이얼 패턴을 완성하는 기요셰 제작 과정까지 생생한 작업 풍경이 펼쳐진다. 작업대에서 르 브라쉬의 초록 풍경을 고스란히 조망할 수 있는데, 이는 자연광에 따라 자동으로 색이 바뀌어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전기 변색 유리인 세이지글라스(SageGlass®) 기술 덕분이다. 온도 조절 기능까지 갖춘 친환경 건축이기에 이 대규모 매뉴팩처를 채광이 뛰어난 대형 유리 건축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성이 화두인 시계업계에서 오데마 피게가 한 걸음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겨울 해가 떠 있는 단 몇 시간 동안 농가 주택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기대 시계를 제작했던 과거의 워치메이커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매우 훌륭한 작업 환경이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50주년 기념 ‘The House of Wonders’ 상설 전시.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시계 제작자의 숙소, 호텔 데 오를로제르 이번 오데마 피게 여정의 꽃은 르 브라쉬에 위치한 호텔 오를로제르(Hôtel des Horlogers)다. 과거 이 지역의 워치메이킹 루트 중 하나였던 ‘셰맹 데 오를로제(Chemin des Horlogers)’ 길목에서, 한때 시계 장인과 상인들이 이용하던 전통 여관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르 브라쉬의 역사적 터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 브랜드의 정체성과 지역 문화의 연결 고리를 완성한 셈인데, 실제로 지금도 이 지역에 시계 매뉴팩처를 방문하기 위해 많은 시계 애호가들이 머물고 있다. 건축미가 뛰어난 이 호텔은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 사무소인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이 건축을 맡았다. 쥐라 계곡의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호텔을 골짜기의 경사면을 따라 지그재그 형태로 설계했다. 시계의 무브먼트나 워치메이킹 트레일을 연상시키는 동선 구조로, 방문객은 호텔을 걸으며 자연 속의 리듬을 느끼게 된다. 모든 객실은 넓은 통창을 통해 리수드 숲(Risoud Forest)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해, 아침이면 산 안개가 천천히 흘러드는 계곡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제 AP 하우스 제네바로 떠나보자. 오데마 피게의 뛰어난 공간 구성력은 이곳에서도 여지 없이 발휘된다. 언뜻 최상위 VIP를 위한 프라이빗 살롱의 느낌이다.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정경과 브랜드 무드를 담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는 이곳에서는 제네바를 찾은 오데마 피게 애호가들이 머무르며 시계 그 자체에 대한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부티크와는 달리 호텔 스위트룸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착용해볼 수 있는 시계가 준비되어 있고, 시계 전문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현재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시계와 선호하는 스타일에 대한 세심한 대화도 자연스럽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계 라이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가는 이곳은 오데마 피게가 생각하는 AP 하우스의 이상적인 모습 중 하나일 듯하다. 충분한 대화를 매개로 방문객을 시계의 세계로 인도하는 정성스러운 시간이다. 르 브라쉬에서 시작해 제네바까지 이르며 오데마 피게 투어를 통해 마주한 것은 브랜드 철학과 과거의 스토리, 그리고 이후에 나아갈 방향까지 같이하는, 진정한 애호가와 함께하는 길이다. 오데마 피게는 이 세밀한 여정을 정성스럽게 가꾸어두었다. 언제든 브랜드를 사랑하는 이들이 이 여정을 거쳐 간다면 자연스럽고 풍성한 숲을 걷는 느낌이 들 것이다. 오데마 피게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는 주제인 ‘House of Wonders’와 어울리는 것은 물론, 브랜드를 사랑하는 애호가에게 닿을 수 있는 지점이다. 시계 브랜드는 일회성의 판매보다 긴 시간을 함께하는 고객과의 여정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 여정은 수십 년, 혹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오데마 피게가 공들여 가꾸고 있는 르 브라쉬와 제네바의 시간은 너무나 아름다운 시계의 정원이다. 오데마 피게 애호가라면 반드시 이 장면을 만끽할 기회를 갖길 바란다.

  • 제25회 GPHG 심사위원, 피에르-이브 돈제와의 인터뷰

    Pierre-Yves Donzé Jury Member of the 25th GPHG 오사카 대학교에서 만난 피에르 이브 돈제는 시계 산업의 역사와 인간적인 통찰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다. 스위스 라 쇼드퐁 출신의 그가 일본에서 이어가는 학문적 여정은 시계를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더욱 빛난다. 일본 오사카 대학교에서 피에르-이브 돈제를 만났다. 스위스 라 쇼드퐁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오사카 대학교에서 경영사를 가르치는 교수이자 제25회 GPHG 심사위원 중 한 명이다.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The Business of Time)>, <롤렉스의 역사(The History of Rolex)> 등 시계 관련 저서만 7권이 넘는 그는 작가이자 수집가이기도 하다. 그와의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가 수집가와 워치메이커의 마음을 동시에 헤아리는 드문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스위스와 일본 시계 산업의 경쟁 구도와 변화를 깊이 꿰뚫는 학자면서도 시계를 사랑하는 한 명의 애호가로서, 만약 한 브랜드의 CEO라면 피에르와 나누는 대화는 분명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가 시계업계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는 단 하나, ‘사람들이 시계를 더 사랑하고, 올바른 정보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계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지식인의 통찰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따뜻함, 그리고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피에르 이브 돈제가 2022년에 출간한 저서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The Business of Time)》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만나서 반갑다. 나는 피에르-이브 돈제다. 현재 오사카 대학교에서 경영사를 가르치고 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고, 일본에 거주한 지는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경영사는 특히 산업 내에서 경쟁 역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나는 시계와 럭셔리 산업에 관심이 많다. 기업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하며, 또 어떤 이유로 쇠퇴하고 사라지는지 연구한다. 처음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적부터였다. 나는 스위스의 라 쇼드퐁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심지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시계 회사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시계를 보며 자랐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연구자로서 시계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적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접했을 뿐이다. 진정한 관심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생겼다. 대학 시절 3년 동안 라 쇼드퐁의 국제시계박물관(International Museum of Watchmaking)에서 사서로 일했는데 그곳에서 ‘시계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박물관에는 오래된 시계와 시계를 수리하는 작은 워크숍이 있었고 훌륭한 도서관도 있었다. 그곳은 이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기에 어느 곳보다도 완벽한 출발점이었다. 시계 산업과 럭셔리 비즈니스에 대한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나? 내가 쓴 책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대학교수로서의 연구 프로젝트 결과물로 매우 학문적인 저서다. 두 번째는 기업의 의뢰를 받아 특정 회사의 역사를 집필한 책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형으로 스스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쓴 책이다. 이를테면 <시계 산업의 글로벌 역사>처럼 ‘이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쓴 책이다. 최근에는 <롤렉스의 역사>라는 책도 출간했는데, ‘왜 롤렉스가 그렇게 유명해졌는가?’라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쓰고 그 후에야 ‘아마 다른 이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시계업계 종사자나 컬렉터에게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사’와 ‘스토리’는 다르다는 점이다. 브랜드들은 시계를 판매하기 위해 ‘스토리’를 만든다. 물론 그것이 역사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나의 관심은 ‘진짜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이 ‘스토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즉 둘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시계의 산업 전략에 더 관심이 있나, 아니면 시계 자체에 더 흥미가 있나? 처음엔 나는 시계 제작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품 자체보다 산업 구조, 제조 기술, 산업화, 글로벌화 같은 전략적 측면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제품 자체에도 점점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디자인과 그 이면의 콘셉트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나는 이 두 영역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제품은 기업의 전략과 직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예전엔 전략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 제품이 왜 영혼을 지녔는가’를 이해하려 한다. 훌륭한 제품이 기업의 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하고 바라보려 한다. 현재는 브랜드의 ‘부활(relaunch)’ 전략을 주제로 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브랜드들이 과거의 이름을 되살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브랜드가 왜, 어떤 제품으로 다시 부활하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차펙(Czapek)은 파텍필립의 초창기 파트너였던 인물이 만든 브랜드로 현재 소규모지만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를 되살리려면 반드시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이런 부분을 전략과 연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본 시장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큰 변화는 ‘중산층 중심의 소비 구조’가 붕괴된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중산층이 중심이었고 세이코나 시티즌처럼 정확하고 저렴한 시계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거품 경제가 붕괴된 후 사람들의 소비 여력도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일본 내 시계 시장은 급격히 축소되었다. 중산층이 시계를 사지 않게 되면서 남은 것은 ‘고급 시장’뿐이었다. 오데마 피게, 리차드 밀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만이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다. 한편 일본 시계 시장을 지탱한 것은 ‘관광객’이었다. 특히 아베노믹스 이후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에 와서 일본인들이 더 이상 구매하지 않던 입문급 럭셔리 워치를 구매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관광객이 사라지자 그 시장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일본은 현재 ‘소수의 부유층만이 시계를 사는 시장’으로 변했다. 1980~1990년대에 루이 비통,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 디올 등의 브랜드가 일본 시장을 통해 성장했지만 지금은 그 기반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독립 시계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나? 사실 새로운 일만은 아니다. 지금은 큰 파도가 온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첫 번째 큰 파도는 1980년대 ‘쿼츠 혁명’ 때 이미 있었다. 그 시기에는 세이코나 홍콩 업체 같은 대형 브랜드가 저가의 정밀 시계로 시장을 지배했고 스위스에서는 장인들이 이에 반응했다. 그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프랑크 뮬러, 스벤 안데르센, 미셸 파르미지아니, 그리고 프랑수아-폴 주른 등이 있다. 많은 독립 제작자가 있었고 물론 상당수는 사라졌지만 몇몇 이름은 크게 성장했다. 이후 럭셔리 비즈니스가 커지면서 새로운 회사가 가끔 등장했지만 한동안은 거의 마무리된 듯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두 번째 파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더 이상 스위스로 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프랑스나 북유럽 출신의 장인, 심지어 일본인 제작자조차 제네바로 가서 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도쿄에서도 장인 시계를 만들 수 있다. 굳이 제네바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오늘날의 큰 변화다. 올해 제25회 GPHG 심사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이번 행사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선 학자로서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기쁘다. 카탈로그나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수많은 시계를 직접 손에 들고 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특별하다. 불가리, 피아제, 쇼파드 같은 대형 브랜드뿐만 아니라 일반 매장에서 보기 힘든 소규모 독립 브랜드의 작품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과 함께 토론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이 큰 배움의 시간이 될 것이다. 시계사 연구자로서 앞으로 학문과 산업 양쪽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나? 학문적으로는 이 산업의 ‘진짜 역사’를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시계 세계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존재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 역사를 정확히 알수록 브랜드는 더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자사 유산을 활용할 때 진짜 역사를 이해한다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앞으로 시계업계에 기여하고 싶은 방향이다.

  • 알렉시 프루오프와의 인터뷰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클락메이킹의 전통을 되살리고 있다. ‘펜둘 아 세콩드(Pendule à Seconde)’로 F.P. 주른 영 탤런트 컴피티션을 수상한 그는 파리에서 새로운 아틀리에를 열고 시계와 클락 제작의 미래를 동료들과 함께 그려가고 있다. 다른 이들과 기쁨을 나누는 일, 그리고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길에 과감히 도전하는 일. 이 두 가지는 삶에서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 모른다. 이 두 가지 일을 해낸 차세대 시계 제작의 주역, 알렉시 프루오프(Alexis Fruhauff)는 지난 4월 자신이 제작한 클락 ‘펜둘 아 세콩드(Pendule à Seconde)’로 ‘F.P. 주른 영 탤런트 컴피티션’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의 작품 ‘펜둘 아 세콩드’는 정밀한 기술력과 역사적 고증을 겸비한 예술적 시계로, 19세기 프루오프의 시계에서 영감을 얻고 프랑스 천문 시계 장인 앙티드 장비에르의 디자인적 요소를 반영해 수작업으로 완성되었다. 독창적 탈진기 구조와 말테 크로스 장치 등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작이다. 올가을 프루오프는 프랑스의 워치메이커 테오 오프레, 스페이스원과 함께 파리 아틀리에를 열고 동료들과 시계 제작의 비전을 공유하며 앤티크 시계 복원과 클락메이킹 기술을 연마해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클락을 완성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는 최근 그의 파리 아틀리에를 찾아 ‘펜둘 아 세콩드’와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F.P. 주른과 더 아워 글라스(The Hour Glass)가 공동 주관하는 F.P. 주른 영 탤런트 컴피티션은 차세대 시계 제작자의 발굴과 지원을 목표로 2015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제 대회다. 참가자는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한 시계 또는 시간 측정 관련 오롤로지컬 장치를 출품해야 하며, 심사 기준은 기술적 완성도, 복잡성의 탐구, 장인정신의 수준, 디자인 및 미적 감각 등을 포함한다. 수상자에게는 수료 과정과 함께 5만 스위스 프랑(약 8천9백만 원)의 지원금이 수여된다. 이는 향후 프로젝트 개발이나 도구 구입 등 워크숍의 프로젝트 개발에 사용된다. 2025년 수상자는 파리 출신의 젊은 시계 제작자 알렉시 프루오프로, 그의 작품 ‘펜둘 아 세콩드’는 과학적 정밀함과 예술적 창의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올해 심사위원단은 필립 듀포(Philippe Dufour), 안드레아스 스트렐러(Andreas Strehler), 줄리오 파피(Giulio Papi), 마크 제니(Marc Jenni), 마이클 테이(Michael Tay), 엘리자베스 도어(Elizabeth Doerr), 프랑수아-폴 주른(François-Paul Journe) 등 세계적인 워치메이킹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프루오프가 파리 워치메이킹 스쿨에서 공예 및 디자인의 국가 디플로마(DNMADe)를 마치던 2022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19세기 말 학생들이 제작한 탁월한 시계 작품들을 접하며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의 시계는 18세기 프랑스 시계 장인 앙티드 장비에르(Antide Janvier)의 작품 세계에 기반을 두고, 약 3년에 걸쳐 전통적인 크로노미터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탁상시계로 완성되었다. 모든 부품과 도구를 직접 제작했으며, 프랑스 시계 제작자 폴 가르니에(Paul Garnier)의 연구에서 착안한 피벗 디텐트 이스케이프먼트, 몰타 크로스 정지 장치, 두 개의 대칭형 배럴 등 고전적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구현했다. 시계는 손줄질(hand-filing), 쇼블랭(Schaublin 102) 선반, 아시에라(Aciera F3) 밀링, 하우저(Hauser 2BA) 보링 머신 가공 등 전통적 기법과 현대적 기술을 조화시켜 완성되었다. 모든 부품은 분리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 유지 보수와 향후 장식 작업이 용이하며, 체리우드 케이스와 인그레이빙은 과거의 장인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린 상징적 결과물로 평가된다. 실버 도금된 황동 다이얼은 보이지 않는 고정 시스템으로 장착되어 있으며, 이는 고도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한 정교한 구조를 지닌다. 프랑스 클락 메이커 알렉시 프루오프 F.P. 주른 영 탤런트 컴피티션을 수상한 펜둘 아 세콩드(Pendule à Seconde) 클락 펜둘 아 세콩드(Pendule à Seconde) 클락 '펜둘 아 세콩드'로 2025년 F.P. 주른 영 탤런트 컴피티션을 수상한 알렉시 프루오프. F.P. 주른 창립자 프랑수아-폴 주른(L)과 아워 글래스의 매니징 디렉터 마이클 테이(R)와 함께 나란히 서있다.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알렉시 프루오프라고 한다. 파리 시계 학교에서 시계 제작을 공부했고, 졸업 작품으로는 ‘펜둘 아 세콩드’를 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클락을 완성했다. 그 작품 덕분에 F.P. 주른 영 탤런트 컴피티션에 참가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손목에 차는 시계도 훌륭하지만, 집 안에 두어 가족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클락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었고, 시장에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 주고자 클락을 만들고 있다. 프랑스 시계 학교에서는 어떤 교육 과정을 밟았나? 처음 2년은 기본적인 시계 수리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후 더 전문적인 과정으로 진학해 추가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데, 이때는 밸런스나 앵커 같은 핵심 부품을 세팅하며 정밀 수리 기술을 익히게 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복원’과 ‘창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나는 창작을 택했다. 인턴십 과정에서는 복원 작업도 경험했는데, 오래된 시계를 다루는 일 역시 매우 흥미로웠다. 클락메이커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워치메이커 장-바티스트 비오(Jean-Baptiste Viot) 공방에서 인턴십을 하며 그의 기계를 사용해 나만의 클락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는 베르사유 같은 프랑스 대저택을 위해 일하던 전통적인 클락 복원 장인으로, 그의 작업대 위에는 놀라운 클락이 즐비했다. 그 작품들을 보며 과거 장인들의 비범한 기술력에 깊은 감명을 받으며 나도 언젠가 그만큼 훌륭한 클락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클락 제작은 오랜 시간과 고된 노력이 요구되기에 상을 목표로 삼는 것이 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된다고 생각했다. ‘펜둘 아 세콩드’는 19세기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그렇다. 이 작품은 파리 시계 학교의 고전적인 시계탑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기술적인 구성 요소에서 그 흔적이 두드러진다. 여기에 19세기 최고의 시계탑 제작자 중 한 명인 앙티드 장비에르의 작업에서 몇 가지 요소를 결합했다. 이런 역사적 영향은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나? 역사적인 디자인 요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것이 현대적인 케이스와 대비를 이루도록 구성했다. 옛 시계탑을 보면 파일링된 곡선이나 정교한 마감 등 작은 세부 요소가 정말 많다. 이러한 디테일은 어느 각도에서 보든 새로운 발견을 준다. 나는 그 미세한 아름다움을 작품에도 담고 싶었기에, 여러 서적과 아카이브를 탐독하며 옛 시계탑의 구조와 장식을 연구했다. 역사성과 현대성을 적절히 잘 조합하는 것이 현대 워치메이킹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계탑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인테리어나 가구처럼 전체적인 조화, 즉 ‘조형적 통일성’을 중시한다. 그 때문에 제작자들에게도 창의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 펜둘 아 세콩드(Pendule à Seconde) 클락 펜둘 아 세콩드(Pendule à Seconde) 클락 펜둘 아 세콩드(Pendule à Seconde) 클락 존경하는 예술가나 시계 제작자가 있나? 현대 시계 제작자 중에서는 로저 W. 스미스(Roger W. Smith)를 존경한다. 그는 영국 시계 산업의 전통을 완벽하게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인물이다. 그리고 고전 시계 제작자 중에서는 앙티드 장비에르(Antide Janvier)를 가장 존경한다. 그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작업에도 기꺼이 몰두하며, 두려움 없는 창의성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진정한 장인이다. 올해 가을 테오 오프레와 함께 파리 아틀리에를 세웠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테오와의 인연은 장-바티스트 비오 공방에서 시작됐다. 그는 내가 클락을 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6월 수상한 후 ‘앙티드 장비에’라는 브랜드를 인수했다며 함께 우리 시대 최고의 클락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주저 없이 수락했다. 이후 테오와 함께 일하던 이브 알바네시(Eve Albanesi)가 특별한 공간을 찾아냈는데, 한쪽은 테오가 원하던 노트르담 데 빅투아르 성당이, 다른 한쪽은 내가 일하고 싶어 했던 빅토르 광장이 보이는 곳이었다. 두 사람의 꿈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에,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곳을 선택했다. 시계와 클락을 한 아틀리에에서 함께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시계와 클락을 동시에 다룸으로써 오롤로지의 모든 면을 보여 주고자 했다. 프랑스에는 시계 제작자가 많지 않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 각 나라가 고유한 역사와 디자인을 지니듯 프랑스적인 시계 제작 또한 수집가들에게 특별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 오프레 파리 창립자 테오 오프레와의 인터뷰

    견습생 시절부터 다져온 장인 정신은 오늘날 ‘오프레 파리’라는 이름으로 꽃피우고 있다.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 2025 후보에 오른 그는 부흥하는 프랑스 워치메이킹의 역사 한가운데에 서 있다. 프랑스 워치메이킹의 황금기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 테오 오프레(Théo Auffret)는 그 부흥의 일환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 독립 시계 제작자 장-바티스트 비오(Jean-Baptiste Viot) 문하에서 견습 생활을 거치며 기량을 갈고닦았고, 2018년에는 ‘F.P. 주른 영 탤런트 컴피티션’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현재 파리에 공방을 세우고 ‘오프레 파리(Auffret Paris)’라는 이름 아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에도 모든 과정을 직접 손으로 수행하는데, 이 장인적 태도는 수집가들이 그의 작업에 가장 먼저 매혹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에는 팬들이 기다려온 ‘투르비용 아 파리’의 후속작, ‘지베르니 “블루 트레인”’으로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 2025 후보에 올랐다. 그는 파리에 기반을 둔 동시대의 뛰어난 시계 장인들과 역사를 새기고 오래도록 이어질 무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독립 워치메이커 테오 오프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파리의 새 워크숍으로, 불과 한 달 전 휴가 직전에 완성되었다. 이곳에서 나와 팀은 시계 제작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훌륭한 동료 워치메이커들과도 같은 건물을 공유하고 있다. 스페이스 원(SpaceOne Watches) 팀은 미래적인 디자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이는 브랜드이고, 알렉시 프루오프(Alexis Fruhauff)가 이끄는 또 다른 회사는 세계 유수의 컬렉터들을 위해 맞춤형 클락을 제작하고 있다. 저명한 수집가들이 꼽는 워치메이커이자 ‘꼭 소장해야 할 독립 시계 브랜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러한 명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매우 큰 영광이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많은 컬렉터들이 나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현재 생산 속도는 아주 느린 편이다. 하지만 좋은 것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성장해나가고자 한다. 초기 서브스크립션 투르비용을 받은 첫 번째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 같은 반응으로 이어졌다. 시계 1점을 제작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처음 14점의 투르비용 모델을 완성하는 데 4년 이상이 걸렸다. 매우 긴 시간이었고, 철저히 장인적인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팀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제작 프로세스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제는 더 많은 시계를 제작해 수요를 충족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첫해에는 혼자라 시계를 단 1점밖에 만들지 못했다. 다음 해에는 프랑스 워치메이커 나탕 트레미온(Nathan Trémion)이 합류해 두세 점을 함께 제작했고, 이어 이브 알바네시(Eve Albanesi)가 들어와 조금씩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초기 3~4년은 정말 험난한 과정이었다. 그 결과 새 무브먼트인 ‘크로노미터 아 파리(Chronomètre à Paris)’를 개발할 수 있었다. 올해는 ‘지베르니(Giverny)’ 모델을 처음 선보였다. 2025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 후보에 올랐는데, 이 시계에 대해 소개해줄 수 있나. ‘지베르니’라는 이름은 파리 근교의 모네 정원에서 따왔다. 앞으로도 우리가 사랑하는 장소의 이름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유니크 피스로 제작한 ‘블루 트레인(Blue Train)’ 역시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다. 파란색 마커에서 출발했지만, 동시에 리옹역의 레스토랑 ‘르 트랭 블뢰(Le Train Bleu)’와도 관련이 있다. 스위스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전 커피 한 잔을 즐기던 곳이었다. 더불어 1930년대 벤틀리 명차 ‘블루 트레인’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나는 새로운 라인 ‘쁘띠 메주르(Petite Mesure)’를 처음 선보였고, 그 첫 번째 모델이 바로 ‘지베르니’다. 스틸 케이스에 신형 크로노미터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36mm는 아시아 컬렉터에게 이상적이면서도 미국 컬렉터에게도 잘 맞는 크기라고 생각했다. 컬렉션 최초로 솔리드 다이얼을 적용해, 오랫동안 지켜봐온 컬렉터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전 모델은 중앙 플레이트를 중심으로 양쪽에 브리지를 배치한 오픈 다이얼 구조였다. 반면 이번에는 전통적인 레핀(lépine) 스타일을 반영했다. 한쪽에는 메인 플레이트, 반대쪽에는 브리지를 두는 방식이다. 새로운 칼리버와 새로운 구조였지만 동시에 가장 클래식한 전통을 따랐다. 무엇보다 큰 배럴과 큰 밸런스를 작은 공간에 담아내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장-바티스트 비오 공방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그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았나? 견습 시절의 스승을 통해 장-바티스트 비오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견습생을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그의 워크숍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2년 넘게 함께 일하며 그가 직접 제작하던 수제 시계 작업을 도왔다. 지금은 매우 희귀해져 컬렉터들이 찾는 작품들이다. 그는 ‘손으로 시계를 만드는 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주었다. 그때는 CAD 같은 소프트웨어를 쓰지 않았고, 모든 설계를 종이와 연필로 직접 했다. 부품도 CNC 대신 지그 보링 머신과 절삭 도구로만 제작했다. 첫 투르비용 역시 케이스와 나사까지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장인 정신을 깊이 새기게 되었고, 여전히 나의 작업의 근간으로 남아 있다. 워치메이킹에서 추구하는 비전은 무엇인지? 나는 처음부터 파리에 워크숍을 세우고 싶었다. 교외의 작은 작업실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파리 중심부 17세기 건물 꼭대기에 새 워크숍을 마련했다. 약 5년간 파리에서 견습 생활을 하며 프랑스 워치메이킹의 스타일과 역사, 올로제리 전통을 배웠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와 페르디낭 베르투 같은 거장들 역시 파리에서 활동했다. 물론 스위스보다 프랑스에서 회사를 세우는 일이 나에게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워치메이커들도 발레 드 주보다 파리에서 일하기를 선호했고, 컬렉터들에게도 이곳에서 젊은 팀이 만든 핸드메이드 시계를 소장한다는 점이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우리는 프랑스적인 철학과 스타일을 작품에 담고자 한다. 사람들이 ‘아, 이건 다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디테일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 2025 후보에 오른 지베르니 “블루 트레인”(Giverny “Blue Train”) 지베르니 “블루 트레인”(Giverny “Blue Train”) 지베르니 “블루 트레인”(Giverny “Blue Train”) 디자인 스펙트럼이 넓다. 이렇게 다양한 컬렉션을 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립 워치메이커로서는 드물게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컬렉션을 발전시키고 있다. 컬렉터들은 점점 더 오래 이어질 무언가를 원한다. 그래서 전체 컬렉션을 연결하는 두 가지 라인을 구축했다. 첫 번째는 38mm 오픈워크 ‘그랑 메주르(Grand Mesure)’로, 초기 투르비용과 맥을 같이하는 하이 올로제리 라인이다. 앞으로 다양한 컴플리케이션과 스포츠 모델도 이 라인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두 번째는 36mm ‘쁘띠 메주르’로, 전용 무브먼트와 클로즈드 다이얼을 장착한 더 작은 시계다. 장식적이고 미학적인 요소를 강조하며, 두 라인은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평행선을 이루며 컬렉터들에게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올해는 파리에 새 워크숍을 열었다.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가? 이번 워크숍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3개의 다른 회사가 하나의 개발 테이블을 놓고 협업한다는 것이다. 개발, 설계, 프로토타입, 디자인 모두 이곳에서 직접 진행한다. 각기 다른 브랜드지만 컬렉터층이 겹치기도 한다. 예컨대 앙티드 장비에르(Antide Janvier)의 클락을 수집하는 분이 나의 시계를 소장하기도 하고, 나의 고객이 스페이스원의 시계를 주문하기도 한다. 제품군과 가격대는 달라도 결국 하나의 ‘올로제리의 집’으로 여겨진다. 클래식, 모던, 퓨처리즘 테마를 한 공간에서 가격대별로 원하는 시계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앞으로 2년 동안 스페이스원에서만 3~4개의 신작이 개발될 예정이고, 클락메이킹 팀과도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머지않아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스페이스원과의 협업은 ‘입문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컴플리케이션을 제공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데, 실제로 큰 성공을 거뒀다. 최근 선보인 월드타이머는 독립 워치메이킹의 정신을 담으면서도 4,000달러(약 570만 원) 미만이라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프랑스 출신이자 젊은 세대 워치메이커로서 업계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가? 나의 차별점은 워치메이킹의 중심지인 스위스가 아니라 파리에 있다는 점이다. 파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지만, 공급망이나 제작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도전적인 환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활동하는 덕분에 더 많은 컬렉터들이 파리를 찾아오고, 독립 워치메이커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나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본다. 꾸준히 노력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거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바로 컬렉터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시계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더라도, 우리의 열정과 노력을 믿고 기꺼이 기다려주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프랑스 워치메이킹의 전통을 이어가며, 동시에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싶다.

  • 데이비드 칸도와의 인터뷰

    Interview with David Candaux 운명을 따라 시계를 만들어온 데이비드 칸도는 스위스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에서 태어나 3대째 가문의 전통을 이어온 시계 제작 장인이다. 올해 그는 ‘DC6 티타늄’으로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 2025 후보에 올랐다. 마치 운명이 정해진 듯, 데이비드 칸도의 워치메이킹 여정은 그의 삶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 스위스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 출신인 그는 14세부터 예거 르쿨트르에서 견습생으로 시계 제작을 배우며 일찍이 타고난 재능을 드러냈고, 3대째 이어지는 워치메이킹 가문의 전통을 잇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DNA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해온 길에서 피어난 성취였다. 어린 시절부터 시계 제작에 몰두해온 이 진중한 스위스 워치메이커는 2013년 최고경영자 과정(EMBA)을 수료했으며, 201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창립했다. 이어 2019년에는 ‘살아 있는 거장’으로 불리는 필립 뒤푸르(Philippe Dufour)와 클락 복원 전문가 미키 엘레타(Miki Eleta)의 추천을 받아 독립시계제작자협회(AHCI)의 정식 멤버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올해는 ‘DC6 티타늄’으로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 2025 후보에 이름이 올랐다. ‘진정한 워치메이커’, ‘천재 장인’, ‘젊고 완고한 시계 제작자’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데이비드 칸도. 그렇다면 당신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어떠한가? 데이비드 칸도 DC1 티타늄 DC1 티타늄 지름 43.9mm 케이스 티타늄,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핸드 와인딩 칼리버 1740, 55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초, 투르비용,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다이얼 핸드 그레이닝 처리한 18K 옐로 골드 스트랩 브라운 악어가죽 ‘천재 워치메이커’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시계업계에서 이러한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스스로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선 나의 작품은 아주 강한 DNA에서 비롯된다. 시계를 만든 지 벌써 30년이 흘렀고, 그 시작은 열네 살 때 시계 제작의 요람이라 불리는 발레 드 주에서였다. 이 모든 경험과 배경이 지금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를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감동적이지만 사실 나는 천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철저한 장인일 뿐이다. 매번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그 속에서 혁신을 시도하려 노력한다.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을 지켜내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작업이 이해되고 인정받는 이유라고 믿는다. DC6가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 2025에 선정되었다. 이 모델을 출품하게 된 계기는? DC6는 내가 선보인 두 번째 컬렉션이다.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가 추구하는 기준에 이 시계가 잘 부합한다고 생각해 출품하게 되었다. 이 상은 창의성과 혁신을 기리는 상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특별하다. 새로운 워치메이커와 크리에이터들에게 혁신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도록 자극하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내가 시계 제작에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나는 그동안 혁신적이면서도 전통적이지만 동시에 미학적으로 매혹적인 시계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그저 ‘와우’ 효과만을 노리거나 착용이 불가능한 과장된 디자인의 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차별화되면서도 아름답고, 일상에서 착용할 수 있는 시계를 창조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가 요구하는 기준은 매우 까다롭고 정교하지만 나의 시계가 그 기준 중 많은 부분을 충족한다고 느꼈기에 이번에 도전하게 됐다. DC6 티타늄 DC6 티타늄 DC6 티타늄 지름 44mm 케이스 티타늄,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핸드 와인딩 칼리버 1740, 55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초, 투르비용,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다이얼 푸앵트 뒤 리주(Pointes du Risoux) 패턴을 적용한 티타늄 스트랩 악어가죽 및 러버 DC6 모델은 6시 방향의 ‘매직 크라운’, 9시 방향의 30도 기울어진 플라잉 투르비용, 수동 와인딩 티타늄 무브먼트, 그리고 스스로 발명한 푸앵트 뒤 리주(Pointes du Risoux) 기요세 패턴이 특징이다. 워치메이커의 관점에서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DC6 모델의 기준을 설명하자면, 모든 출발점은 시계사의 역사와 아카이브에서 비롯된다. 케이스 외부에 기요세 장식을 더한 것도 같은 맥락인데, 미적 요소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회중시계 케이스에 새겨 그립감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한 기법이었다. 나는 그 전통을 되살리고자 했다. 이 시계에는 2개의 돔이 있다. 하나는 투르비용이고, 다른 하나는 나침반 형태다. 과거 시계 제작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과 프랑스의 권력자들이 막대한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정밀하고 휴대 가능한 시계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계를 필요로 한 이유는 나침반과 시간 측정을 결합해 지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시계 발전을 이끌었던 핵심 도구인 나침반과 투르비용을 시계에 담았다. 또 나의 시계는 무브먼트와 케이스를 포함해 모두 티타늄으로 제작했다. 이는 18세기 시계 장인들이 고민한 부분을 21세기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가장 비자성적이고 내식성이 뛰어난 최적의 소재는 바로 티타늄이다. 과거에는 황동을 사용했지만, 오늘날 기계식 시계를 오래도록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최고의 소재는 티타늄이라 믿는다. 나는 이것을 후세에 전하고 싶은 유산으로 여기며, 전통적 제작 방식에 혁신을 더한 대표적 사례라 생각한다. 티타늄은 시계에 장기적인 내구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성에 대한 나의 철학을 대변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모든 시계에는 ‘매직 크라운(Magic Crown)’이 있다. 누르면 크라운이 튀어나오고, 완전히 당기면 와인딩 모드, 중간 위치에서는 시간 조정 모드, 다시 누르면 잠금 상태가 된다. 제작 초기에 크라운이 있어야 할 최적의 위치는 조작이 용이한 6시 방향이라 생각했다. 이 발상에서 나만의 시계가 발전했고, 결과적으로 데이비드 칸도의 작품을 상징하는 독창적이고 인식 가능한 혁신적 디자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바라보는 DC6다.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에서 이 시계가 앞으로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연말쯤이면 그 성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DC12 매버릭 DC12 매버릭 DC12 매버릭 지름 39.5mm 케이스 티타늄, 5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핸드 와인딩 칼리버 C30 , 5개의 특허, 58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스몰 세컨즈 다이얼 니켈 실버 스트랩 러버 9월 25일에 신작 DC12를 발표했다. 작품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이번에는 과거의 유산을 가져와 혁신을 더했다. 케이스, 미학, 인체 공학까지 모든 측면에서 한 단계 더 개선했고, 무브먼트 역시 티타늄으로 제작했다. 케이스 디자인은 완전히 새롭게 변화했다. 지름 39.5mm의 보다 콤팩트한 사이즈에 새로운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그리고 3차원적 입체성을 탐구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여전히 전통적 세계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미학적인 부분에서도 티타늄 무브먼트에 새로운 장식을 더했지만, 중요하게 여기는 균형감, 즉 ‘대칭미’를 유지해 시각적 조화를 구현했다. 총 5개의 특허가 적용되었고, 이를 통해 이번 모델이 어떻게 평가받게 될지 확인하고 싶다. 무브먼트는 발레 드 주와 깊은 역사적 인연을 지니고 있다. 그곳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식과 기술이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담아낸 것이다. 변함없이 내가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바로 그곳, 발레 드 주다. 나는 이 지역의 시계 역사에 작은 돌 하나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이번 신작 DC12가 전통의 계승과 혁신,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영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21세기의 훌륭한 워치메이커로서, 미래 워치메이커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할아버지가 시계업계에서 일했고, 아버지도 워치메이커였지만, 아버지는 내게 시계를 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시계 제작이 미래가 없는 직업이었다. 내가 진로를 고민하던 1992년, 발레 드 주 지역은 막 쿼츠 위기에서 벗어나던 시기였다. 그래서 당시 기계식 시계 제작은 전혀 미래가 없는 직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3년, 예거 르쿨트르의 전 CEO 앙리-존 벨몽(Henry-John Belmont)이 나를 공장에 데려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시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41개가 넘는 전문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탄생 60주년 기념 리베르소 투르비용을 봤을 때는 정말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 시계가 내게 영감을 주었다. 그래서 오늘날 내가 만든 시계들, 그리고 DC12 같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건 바로 나처럼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나의 시계를 보고 ‘나도 더 멋진 걸 만들고 싶다’, ‘나만의 시계를 만들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나의 메시지는 곧 시계를 통해 전해진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꿈꾸게 하고, 미래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건 뭐지? 어떻게 만드는 거지?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세대의 열정과 관심을 키워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현대적인 시계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단지 과거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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