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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칸도, 진정한 워치메이커의 초상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시계가 있다. ‘제품’처럼 만들어지는 시계와 ‘작품’처럼 만들어지는 시계. 독립 시계 제작자 데이비드 칸도의 타임피스는 후자에 해당한다.




1979년생 데이비드 칸도(David Candaux)는 우리 시대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리는 워치메이커 중 한 명이다. 하이 컴플리케이션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칸도의 이름은 몰라도 한 번쯤은 그의 작품을 마주쳤을 것이다. 그가 개발한 컴플리케이션 목록에는 예거 르쿨트르의 히브리스 메카니카 그랑 소네리(Hybris Mechanica Grande Sonnerie), MB&F의 HM6 스페이스 파이러트 등 걸작이 즐비하다. 2017년에는 본인의 이름을 딴 독자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론칭했다. 30년에 걸친 데이비드 칸도의 워치메이킹 여정은 그가 만든 브랜드만큼이나 흥미롭다.



진정한 의미의 워치메이커

요즈음 정말로 시계를 ‘만드는’ 워치메이커는 드물다. 칸도처럼 시계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워치메이커는 더욱 드물다. 스위스 르 솔리아(Le Soliat)에 위치한 그의 워크숍은 단순히 무브먼트를 장식하거나 조립하고 조율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는 무브먼트의 구조를 고안하고, 핵심 부품을 직접 설계한다. 칸도가 워치메이킹의 세계에 입문했을 때 그의 나이는 열다섯살이었다. 대대로 워치메이킹에 종사해온 할아버지와 부모님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것. 이후 그는 예거 르쿨트르에서 18년 동안 복원, 제작, 무브먼트 개발 등의 업무를 경험한다. 칸도는 2005년 자신의 특허에 기반한 미닛 리피터 모델을 시작으로, 수년에 걸쳐 아름다운 시계들을 개발했다. 그의 창조성은 30세가 될 때까지 확보한 36개에 달하는 워치메이킹 관련 특허로 빛을 발한다. 2011년에는 예거 르쿨트르에서 나와 뒤 발 데 부아 SA(Du Val Des Bois SA)라는 프리랜스 무브먼트 워크숍을 차렸다. 이 시기에는 MB&F, 반클리프 아펠 등 여러 하이엔드 매뉴팩처와 협업했다. 하지만 칸도는 보다 자율적인 방식으로 본인의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를 갈망했다.





“자네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나?”

필립 듀포(Philippe Dufour)는 칸도처럼 하이엔드 매뉴팩처와 프리랜서 생활을 거쳐, 본인의 브랜드를 만든 엘리트 워치메이커다. 현존하는 최고의 워치메이커로 칭송받는 그는 칸도의 멘토이자 이웃이기도 하다. 듀포의 워크숍은 칸도가 있는 곳에서 고작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칸도의 타임피스에서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핸드 피니싱은 듀포에게 직접 전수받은 것이다. 언젠가 듀포가 칸도에게 던진 “자네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나?”라는 질문은 칸도가 독자 브랜드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듀포는 칸도가 진정으로 열정과 동기를 느끼는 일을 찾아보라고 격려했다. 칸도가 독립시계제작자협회(Académie Horlogère des Créateurs Indépendants, AHCI)에 지원하게끔 강력하게 권유한 사람도 그다. AHCI가 신규 회원을 받아들이는 절차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시계업계에 대한 기여와 방법론을 2년간 엄격하게 심사받은 뒤, 기존 회원들에게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칸도는 그간 선보인 무수한 혁신적 타임피스와 특허를 인정받아 2019년 AHCI에 입회했다. 2025년 현재 AHCI에는 듀포와 칸도를 포함해 폴 주른(F.P. Journe), 창립자 스벤 안데르센(Svend Andersen) 등 단 36명의 ‘선택받은’ 독립 시계 제작자만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심장과 영혼'에 호소하는 타임피스

2017년 데이비드 칸도는 발레 드 주 워치메이킹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현대적인 기술적 성취와 혁신을 접목하고자 독자 브랜드를 만들었다. 모든 타임피스는 르 솔리아에 소재한 공방에서 칸도 본인과 그의 아버지의 손길을 거쳐 제작된다. 30도 기울어진 투르비용과 티타늄 소재의 무브먼트, 독자적인 ‘매직 크라운(magic crown)’ 시스템은 브랜드를 상징하는 혁신적 요소다. 데이비드 칸도의 모토는 ‘심장과 영혼(Le Coeur et l’Esprit)에 호소하는 타임피스’. 이 모토는 예거 르쿨트르 재직 시절 멘토였던 전(前) VDO 그룹의 시계 부문 책임자 귄터 블륌라인(Günter Blümlein)의 표현을 빌린 것이다. 현재 데이비드 칸도의 라인업은 DC1, DC6, DC7, 세 가지 컬렉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독특한 구상과 타협 없는 피니싱으로 애호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DC1 TITANIUM 전통과 혁신의 조화


DC1 티타늄
DC1 티타늄

DC1 티타늄

지름 43.9mm

케이스 티타늄,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핸드 와인딩 칼리버 1740, 약 55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초, 투르비용,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다이얼 핸드 그레이닝 처리한 18K 옐로 골드 다이얼

스트랩 브라운 앨리게이터 레더


DC1은 데이비드 칸도의 라인업에서 가장 클래식한 분위기를 지닌 컬렉션이다. 르호 끝까지 닿는 기다란 블루 초침의 스위핑에는 장중한 멋이 있다. 무브먼트의 레퍼런스 번호 1740은 발레 드 주에서 워치메이킹이 처음 시작된 해를 가리킨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의 워치메이킹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숫자로 천명한 셈. 단, 칸도가 지향하는 방향은 전통의 일방적 계승이 아니라, 전통과 혁신의 조화다. 이를 위해 그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시계 제작에 티타늄을 끌어들인다. 티타늄은 가공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자성과 온도 변화, 충격과 부식에 강하고 가볍다. DC1 티타늄은 케이스부터 무브먼트까지 그레이드 5 티타늄 소재로 이루어졌다.


매직 크라운

칸도의 모든 타임피스는 유선형의 좌우대칭 케이스와 6시 방향 크라운의 조합을 보여준다. 총 31개 부품으로 이루어진 매직 크라운 시스템은 기술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시계의 구심점으로 작동한다. 특히 크라운이 위치한 6시 방향은 다이얼에 갔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위치다. 이 크라운은 리트랙터블 펜처럼 평소에는 숨어 있다가 사용자가 누르면 튀어나와 약속된 기능을 수행한다. ‘매직’ 크라운이라는 이름답게 타임피스에 동력을 주거나 시간을 세팅할 때마다, 시계에 말을 거는 듯한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DC1 티타늄
DC1 티타늄



30도 기울어진 투르비용

30도 기울어진 이중 평면(bi-plan) 플라잉 투르비용은 칸도의 또 다른 시그너처 요소다. 회전축이 다른 여러 개의 케이지를 조합하는 다축 투르비용과 달리, 칸도의 투르비용은 단일 케이지에 30도 기울인 밸런스를 연결한 단일축(single-axis) 투르비용이다. 수직 방향뿐 아니라 수평 방향에서 발생하는 자세 차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축 투르비용에 비해 구조는 단순하지만 효과는 유사하다. 기울어진 투르비용에는 시각적인 이점도 있다. 다이얼의 기울기와 투르비용 회전축의 기울기가 달라서, 역동적인 투르비용의 움직임을 좀 더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에너지 전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투르비용 케이지를 티타늄 소재로 제작했다. 가변 관성 밸런스에는 필립스 터미널 커브 방식으로 브레게 오버코일 헤어스프링을 적용해 퍼포먼스를 최적화했다.



기울어진 다이얼과 무브먼트

18K 옐로 골드 소재의 다이얼은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가 있는 12시가 6시 부분보다 높이 올라와 있다. 덕분에 손목을 기울이지 않고도 시간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3도의 기울기는 다이얼의 깊이감뿐 아니라 핸드 그레이닝의 질감까지 부각한다. 3시 방향에서는 나침반처럼 생긴 오팔 소재의 마이크로-다이얼이 시와 분을 알려준다. 무브먼트도 다이얼과 마찬가지로 살짝 기울어져 있어 정성스러운 핸드 피니싱이 폭포가 떨어지는 광경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브리지와 플레이트는 ‘코트 뒤 솔리아(Côtes du Solliat)’라 불리는 특유의 패턴으로 장식했는데, 칸도는 이를 통해 워크숍이 위치한 르 솔리아에 대한 경의를 표현했다. 기어트레인 브리지에는 블랙 폴리싱을 더해 대조적인 마감을 보여준다.



 

DC6 TITANIUM

고전의 촉각적인 재해석


DC6 티타늄
DC6 티타늄

DC6 티타늄

지름 44mm

케이스 티타늄,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핸드 와인딩 칼리버 1740, 약 55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초, 투르비용,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다이얼 푸앵트 뒤 리주(Pointes du Risoux) 패턴을 적용한 티타늄 다이얼

스트랩 앨리게이터 레더 또는 러버



DC6 컬렉션은 데이비드 칸도의 실험적 면모를 드러내는 타임피스다. 좌우대칭의 유선형 케이스와 6시 방향의 매직 크라운을 조합한 레이아웃은 일견 DC1과 유사하다. 하지만 러그의 형태가 보다 복잡해진 까닭에 케이스 디자인만으로도 전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18~19세기 모험가들이 사용하던 하프-헌터 회중시계를 참신하게 재해석했는데, 칸도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하프-헌터 회중시계의 케이스에 적용한 기요셰 패턴은 심미적 장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기능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손에서 시계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 DC6 컬렉션을 고안하면서 칸도가 주목한 것은 하프-헌터 회중시계의 이러한 ‘촉각적’ 측면이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동

DC1과 차별화되는 DC6의 가장 큰 특징은 초침 위치가 중앙에서 9시 방향의 투르비용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침을 보호하기 위해 다이얼 전체를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덮을 이유도 사라졌다. 거대한 도화지가 된 다이얼에 칸도는 스스로 개발하고 명명한 ‘푸앵트 뒤 리주(Pointes du Risoux)’ 텍스처를 적용했다. 이 새로운 기요셰 패턴은 칸도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하늘에서 내려다본 리주 숲의 풍경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다이얼을 덮는 유리가 없는 까닭에, 사용자는 리주 숲의 조감도를 손끝의 촉감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케이스의 비드 블라스트 피니싱과 하이 폴리싱, 다이얼의 기요셰 텍스처가 만들어내는 대비는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이다.






2개의 사파이어 돔

다이얼 전체를 덮는 유리가 사라진 대신, 작은 돔형의 사파이어 크리스털이 양쪽에 배치됐다. 우선 3시 방향의 사파이어 돔은 시와 분을 표현하는 마이크로-다이얼을 보호한다. 과거의 모험가들이 하프-헌터 회중시계와 나침반을 활용해 항해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듯, 마이크로-다이얼은 나침반을 닮았다. 반구형으로 이루어진 다이얼의 곡선에 맞춰 시침과 분침이 함께 구부러진 모습도 인상적. 시침과 분침을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해 분침에만 블루 색상을 적용했다. 한편 9시 방향의 사파이어 돔 아래로는 30도 기울어진 플라잉 투르비용이 자리한다. DC1과 달리 투르비용 케이지 바깥쪽에 0~60초 눈금이 있다. 60초마다 한 바퀴 도는 밸런스 아래로 인덱스가 뻗어 있어 초침 역할을 수행한다. 12시 방향에 위치한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위에는 아치 형태로 제작한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덮었다.



크기에 비해 좋은 착용감

DC1(지름 43.9mm, 두께 12.9mm)과 DC6(지름 44mm, 두께 12.6mm) 모두 그리 아담한 타임피스는 아니다. 하지만 사이즈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티타늄으로 이루어진 케이스와 무브먼트 덕에 둘 모두 무게는 60g 전후로 가벼운 편이다. 러그는 짧은 데다 손목의 곡선을 잘 감싸주게끔 구부러져 있다. 커브형 케이스 백 역시 착용감을 높여주는 요소다. 사파이어 디스플레이 창까지 곡면으로 제작하는 집요한 디테일이 놀랍다.



 

DC7 GREEN TITANIUM

전세계 8개뿐인 극소량 타임피스


DC7 그린 티타늄
DC7 그린 티타늄

DC7 그린 티타늄

지름 44mm

케이스 티타늄,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핸드 와인딩 칼리버 H70, 약 72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초, 투르비용

다이얼 양극산화 처리한 티타늄 다이얼

스트랩 러버



DC7 컬렉션은 데이비드 칸도가 이제까지 내놓은 것 중 가장 미니멀한 타임피스다. 물론 30도 기울어진 투르비용, 유선형의 비대칭 케이스와 매직 크라운, 3도 기울어진 다이얼과 티타늄 소재의 무브먼트 등 칸도의 시그너처 요소는 여전하다. 하지만 다이얼의 레이아웃은 훨씬 단순해졌다. 9시 방향의 마이크로-다이얼이나 12시 방향의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는 사라졌다. 시·분침은 가운데로 자리를 옮겼고, 투르비용도 9시에서 12시 방향으로 이동했다. 칸도는 DC7의 대칭적 디자인을 통해 다빈치의 ‘비르투리우스적 인간’에서 볼 수 있는 황금비를 담으려 했다고 말한다.



선택과 집중

칸도의 DC7은 칸도의 타임피스 중 통상적인 손목시계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모델이다. 12-6시 축을 기준으로 좌우대칭을 유독 강조해 다른 두 모델에 비해 훨씬 차분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렇게 단순해진 레이아웃을 감상할 거리가 줄어들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더 잘 보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12시에 위치한 30도 기울어진 이중 평면 플라잉 투르비용은 보다 확실하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가운데로 옮긴 시·분침과 3도 기울어진 다이얼의 조합은 시원시원한 가독 경험을 선사한다. 다이얼의 구성은 여전히 3차원적이다. 가장자리 링은 기울이지 않고, 안쪽의 다이얼만 3도 기울여서 만들었다. 가장자리 링과 기울어진 다이얼의 단차가 12시에서 6시 방향으로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체감되는 기울기와 입체감은 더욱 극적으로 느껴진다. 기요셰나 핸드 그레이닝 텍스처 대신 도입한 선 브러시드 패턴은 빛에 화려하게 반응하며, 양극산화 처리한 티타늄 다이얼은 좀 더 선명한 색감을 전달한다. 시·분침에 야광을 위한 슈퍼루미노바Ⓡ 코팅을 적용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 물론 입체적이고 복잡한 형태로 설계한 러그도 볼거리다. 가장 미니멀한 디자인임에도 두께는 14mm로 전작에 비해 1.1~1.4mm 두꺼워졌다. 타임피스의 입체감을 부각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DC7 그린 티타늄
DC7 그린 티타늄


새로운 무브먼트

미니멀해진 다이얼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 만든 핸드 와인딩 칼리버 H70을 도입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설계부터 생산, 핸드 피니싱, 조립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르 솔리아의 워크숍에서 이뤄졌다. 브리지와 플레이트도 마찬가지로 그레이드 5 티타늄 소재로 제작했지만, 핸드 피니싱 방법을 완전히 달리했다. 특히 브리지를 코트 뒤 솔리아 패턴으로 마감하지 않고, 터키시 오일 스톤을 이용한 프로스팅으로 처리했다. 이 프로스팅 기법은 비드 블라스트처럼 매트한 질감을 내지만, 워치메이커의 섬세한 손길을 동원한 만큼 텍스처가 보다 고르고 촘촘하다. 이번에도 무브먼트를 3도 기울여 앵글라주나 카운터 싱크의 마감이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많은 요소를 노출하지 않고 다이얼과 마찬가지로 좀 더 대칭적이고 금욕적인 구조를 선보인다. 트윈 배럴 시스템이 제공하는 파워 리저브는 55시간에서 72시간으로 눈에 띄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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