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티드 장비에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되는 두 젊은 워치메이커의 여정
- 2일 전
- 5분 분량
The journey of two young watchmakers
beginning under the name of ANTIDE JANVIER
과거의 위대한 유산을 미래로 확장하려는 두 젊은 워치메이커가 ‘앙티드 장비에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본문에서 의미하는 시계는 ‘clocks’를 뜻한다.)
알렉시 프루오프와 테오 오프레는 스페이스원 팀과 함께 파리 아틀리에를 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워치메이킹의 흐름을 한 지붕 아래에서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 시계 제작의 황금기를 다시 불러올 차세대 주역으로 주목받는 이들은 지난해 18세기 프랑스 워치메이킹의 거장 ‘앙티드 장비에르’의 브랜드 이름을 인수했으며, 운명과도 같은 인연 속에서 세계에 단 세 점만 존재하는 그의 초상화 중 한 점을 경매를 통해 손에 넣었다. 두 사람은 F.P. 주른 영 탤런트 컴피티션의 수상자로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매체와 저명한 수집가들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가치 있는 수집 작품의 제작자’로 소개하는 젊은 워치메이커다. 이름만 검색하더라도 이들의 행보와 철학을 조명하는 많은 자료와 기사를 찾을 수 있다. <GMT KOREA>는 2025년 9월 테오 오프레의 ‘지르베니 “블루 트레인”’ 기사를 처음 다뤘으며, 11월호에 두 사람의 인터뷰 칼럼을 실었다. 우리 팀은 지난해 제네바 워치 데이스 기간 동안 두 사람과 커피 챗을 가졌고, 앞으로 ‘앙티드 장비에르’라는 이름 아래 구현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 이야기를 더 심도 있게 소개하고자 한다.

앙티드 장비에르(Antide Janvier):
앙티드 장비에르는 현대 프랑스에서 워치메이킹을 계승하고 재조명하려는 시계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전설적인 작품을 약 600점 이상 남긴 시계 제작자다.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기계식 천체 구체(planetary sphere)를 제작했으며, 젊은 시절인 1783년에는 왕의 동생이자 훗날 루이 18세가 되는 ‘무슈(Monsieur)’의 공식 시계 제조공(Horloger-mécanicien de Monsieur)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그는 왕실 기관의 탑 시계와 혁신적인 조석 시계, 그리고 현재는 1871년 튀일리 궁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루이 16세가 직접 구입한 걸작 천문 시계 등 과학적 정밀성과 예술적 아름다움을 결합한 기념비적인 작품을 제작하며 프랑스 정밀 시계 제작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만났을 당시, 18세기 프랑스 시계 제작자 앙티드 장비에르의 초상화를 구입하고 ‘앙티드 장비에르’라는 브랜드 네임을 인수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를 가장 존경하는 고전 시계 제작자 중 한 명으로 꼽았는데, 그의 영향이 시계 제작 전반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하다.
알렉시 프루오프 앙티드 장비에르의 면모 중 가장 깊이 존경하는 것은 그의 기술적 숙련도와 지적 야망이다. 장비에르는 시간을 이해 가능한 개념으로 구현한 과학자였다. 시계학은 천문학과도 연결된다. 그의 작품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완벽한 비례, 높은 기술적 완성도, 절제된 미학, 그리고 모든 요소에 깃든 경이로운 수준의 디테일을 발견한다. 장비에르에게 품질은 근본적인 가치였다. 그는 당대 최고의 장인들과 협업했으며, 무브먼트와 목재 케이스, 다이얼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에 동일한 수준의 투자와 중요성을 부여했다. 이는 가능한 한 가장 가치 있는 시계를 만들고자 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이러한 철학은 내가 브랜드의 미래 예술적 방향성에 불어넣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앙티드 장비에르’라는 이름 아래 어떤 비전을 펼치고자 하나?
알렉시 프루오프 & 테오 오프레 앙티드 장비에르는 천문 시계로 유명하지만 대중에게는 여전히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로, 주로 지식 있는 소수의 애호가와 수집가들에게만 익숙한 영역이다. 오늘날 시계학에서의 관심은 펜듈럼 시계보다 손목시계에 맞춰져 있고, 손목시계는 현대 시계 산업의 주된 형태가 되었다. 다행히 여러 역사학자와 전문가들이 장비에르의 작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연구를 이어왔다. 미셸 헤이워드(Michel Hayard)와 도미니크 오가르드(Dominique Augarde) 같은 저자들은 그의 유산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출판함으로써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또 다른 시계 제작자들은 보다 기계적인 관점에서 장비에르의 작업에 접근했다. 예를 들어 프랑수아-폴 주른(François-Paul Journe)은 자신의 작품에서 공진(resonance)의 원리를 탐구했다. 이 개념과 관련된 장비에르의 더블 밸런스 클록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업을 통해 F.P. 주른 수집가들은 장비에르 연구의 또 다른 측면, 즉 당시 그의 과학적 탐구의 깊이와 독창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가 세상에 제시하고자 하는 비전은 과학적 및 산업적 관점에서 18~19세기의 전환기를 오늘날과 연결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를 만드는 데 있다. 이미 이루어진 성취를 존중하고 계승하며 시계 제작의 전통적 유산을 보존하는 것, 그리고 역사에 뿌리를 두면서도 현대와 완전히 조응하는, 장인 정신과 산업을 아우르는 가장 아름다운 동시대의 오브제를 창조하는 것이다.
앙티드 장비에르의 초상화를 어떻게 구입하게 되었나?
알렉시 프루오프 어느 날 아침, 늘 하던 대로 경매 사이트를 확인하던 중 앙티드 장비에르의 초상화가 매물로 나온 것을 발견했다. 믿기 어려운 순간이었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우리가 아는 한 장비에르의 초상화는 단 세 점만 존재한다. 첫 번째는 그가 매우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현재 그의 고향인 쥐라 지역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현재 우리가 소유한 작품으로 장비에르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창의적인 시기였던 40~50세에 그린 초상화다. 이 작품은 뛰어난 사실성과 정확성으로 유명한 초상화가 마리-가브리엘 카페(Marie-Gabrielle Capet)의 작품이다.
화가와 모델 사이에는 깊은 역사적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새로운 고객층을 찾고 있던 시기에 장비에르와 카페는 같은 거주지에 머물고 있었다. 세 번째 초상화는 현재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아마도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카페의 스승인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Adélaïde Labille-Guiard)가 작업실에서 금성의 궤도를 그리고 있는 장비에르를 묘사한 초상화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우리가 소유한 초상화와 사라진 초상화 사이의 직접적인 역사적 연결을 보여준다.
우리가 구입한 초상화는 개인 소장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자, 현실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 작품이 마지막으로 거래되었을 당시에는 테오와 나 모두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앙티드 장비에르’ 브랜드를 인수한 바로 그 시점에 이 초상화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치 운명과도 같았다. 이 작품이 다른 컬렉션으로 넘어가도록 두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테오와 나는 반드시 이 작품을 확보하기로 결심했다. 경매 당일 테오는 출장 중이던 마이애미에서 전화로 입찰에 참여했고, 나는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현장에 직접 참석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잘 알려진 그대로다.


앙티드 장비에르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나?
알렉시 프루오프 & 테오 오프레 장비에르는 평생 약 600점의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그의 많은 시계에 새겨진 번호를 근거로 한 것이지만, 모든 작품이 번호가 매겨진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작품은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거나 파괴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루이 16세가 소유했던 걸작 중 하나인 아밀러리 스피어(armillary sphere)로 장식한 네 면 구조의 시계가 있다. 이 작품은 튀일리 궁전 화재로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베르사유에서 시계가 놓여 있던 대리석 받침대만 발견되었다. 때때로 경매를 통해 그의 작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전체 작품 목록에 대한 이해를 점차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 시장과 마찬가지로 위조 작품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현재 장비에르의 작품은 주로 공공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파리의 국립공예박물관(Musée des Arts et Métiers)은 장비에르의 시계와 과학 기기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툴루즈의 폴 뒤피 박물관(Paul Dupuy Museum)은 단일 다이얼 구조의 더블 밸런스 클록과 소형 아밀러리 스피어 시계를 소장하고 있다. 브장송의 시간박물관(Musée du Temps)은 그가 16세 때 제작한 목재 아밀러리 스피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그를 파리와 왕실에 알린 초기 걸작이다. 스위스에서는 파텍 필립 박물관(Patek Philippe Museum)과 국제시계박물관(Musée International d’Horlogerie, MIH)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컬렉션에도 그의 작품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자신의 작품인 펜둘 아 세콩드(Pendule à Seconde)가 앙티드 장비에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는데,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알렉시 프루오프 목재 케이스는 주로 장비에르의 ‘지리 시계(geographical clock)’에서 영감받았다. 이 시계는 프랑스 지도를 통해 태양시를 표시하는 독창적인 구조를 지녔으며, 한때 나폴레옹 1세가 소유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나의 시계의 다이얼은 장비에르가 제작한 ‘레몽투아르 데갈리테(Remontoir d’Égalité)’ 와인딩 시계 중 하나와 유사한 구성을 띠며, 이는 시간 표시의 정밀성과 명료성을 추구했던 그의 철학을 반영한다. 이러한 다이얼 구성을 채택한 이유는 ‘펜듈 아 세콩드’의 본질적인 목적이 이스케이프먼트를 드러내고 강조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적 영감의 측면에서는 보다 미묘한 접근을 취했다. 이는 무브먼트 자체보다는 작은 미학적 디테일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트를 지지하는 필러의 형태, 목재 케이스 내부에서 무브먼트를 지탱하는 포텐스(potence)의 구조, 밸런스 진폭을 표시하는 스케일과 밸런스 렌즈의 디자인 등은 모두 장비에르의 작품에서 영감받은 요소다. 일부 브리지의 형태 역시 그의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를 형성하는 동시에 우리의 기술적 해석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앙티드 장비에르’라는 브랜드 안에서 두 사람이 반드시 계승하고자 하는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알렉시 프루오프 & 테오 오프레 이미 성취된 것을 다시 발명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대의 기억을 보존하고, 전통적인 장인 기술을 계승하는 일이다. 프랑스는 진자시계와 깊고 강력한 연결 고리를 지닌 나라이며, 이러한 유산은 단지 골동품으로서 보존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창의적이고 산업적인 방식으로도 지속적으로 계승되고 확립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인 정신이 지닌 세밀한 디테일과 품질을 유지하면서, 현대 기계가공 기술이 제공하는 정밀성과 생산 역량을 결합해야 한다.
우리가 계승하고자 하는 또 다른 핵심 원칙은 장비에르가 그의 시대에 기술적 측면과 계산 능력 모두에서 선구자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현대적 맥락 속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우리의 작품은 현대적인 인테리어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재해석되어야 한다. 시계는 놓인 공간과 환경,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적 시대는 고유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 전통 시계 제작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그 풍부한 유산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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