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CI 최초 여성 워치메이커, 쇼나 텐과의 인터뷰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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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시계 제작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쇼나 텐은 신속한 선택과 단단한 신념으로 AHCI 최초 여성 회원이라는 상징적 기록과 함께 자신만의 시계를 완성해가고 있다.
쇼나 텐은 독립을 향한 첫발이 다른 이들보다 빨랐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시계 제작과는 무관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신념으로 15세의 이른 나이에 시계 제작이라는 자신의 길을 발견한 그는 문학과 예술, 철학 등 포괄적인 분야에도 관심이 많은 영리한 인재다. 학생 시절 시계 제작 관련 다수의 수상을 기록했으며, 불과 22세에 자신의 브랜드를 창립했고, 몇 년 뒤 프랑스 워치메이커 존-미카엘 플로(John-Mikaël Flaux)와 스위스 워치메이커 데이비드 칸도(David Candaux)의 추천을 받아 AHCI 역사상 첫 여성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이 워치메이커의 시계는 그가 배웠고 알아가고 싶은 시간과 기술의 층위들이 단단하고도 빈틈없이 완벽하게 채워져 있다. 배움을 얻었던 선배의 투르비용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담아내며 문 페이즈, 날짜, 100시간 파워 리저브까지 더한 첫 작품은 따뜻하고도 확고한 비전을 지닌 그의 성향을 잘 드러낸다. 경력은 완성형이지만, 쇼나 텐은 앞으로 시계와 함께,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들과 함께 더 성장하고 싶다고 말한다.

15세에 모르토(Morteau)의 시계 학교에 입학했다. 이른 나이에 시계 제작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특별히 나를 이 길로 이끈 것은 없었다. 나는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고, 처음에는 파리의 명문 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길이 반드시 특정한 직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동시에 손으로 하는 기술도 함께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때 아버지께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계 학교에 지원해보라고 권하셨고, 나는 그 조언을 따랐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큰 행복을 가져다준 선택이었다. 시계 제작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지 깨달았을 때 진정으로 이 세계와 사랑에 빠졌다. 역사적인 기법과 도구를 사용해 아주 오래된 시계를 복원하는 일(역사), 극도로 작고 정밀한 부품을 가공하는 일(미세 기계공학), 무브먼트를 창안하고 설계하는 일(기술 제도), 탁월한 기술과 장인 정신을 요하는 부품 장식(예술 공예), 그리고 이 세계를 둘러싼 보다 넓은 차원의 디자인, 예술, 철학까지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처음 보았던 프라하 천문시계를 자주 언급하곤 한다. 그 시계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어쩌면 바로 그때 이미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6년간의 시계 제작 공부를 마친 뒤에도 나는 결국 원격으로 문학과 철학 공부를 이어가기로 선택했다. 결국 이 분야들은 겉으로 매우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사이에는 진정한 연금술 같은 조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날 내가 만드는 시계에 그러한 비전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AHCI 역사상 첫 여성 회원이 되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회원으로 선출되었나?
AHCI(Académie Horlogère des Créateurs Indépendants, 독립시계제작자협회)의 회원이 되는 과정은 매우 길며, 오늘날 그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내게 엄청난 영광이다. 우선 회원으로 소개되기 위해서는 이미 AHCI 회원인 2명의 후원자가 기존 회원들에게 당신을 추천해야 한다. 존-미카엘 플로가 나를 후원하겠다고 먼저 제안하고 강하게 추천해주었고, 두 번째 후원자로 데이비드 칸도에게 부탁했다. 두 사람 모두 작업실을 방문해 나의 시계 제작 기술과 독립성을 확인해주었다. 이 과정에서는 창작하는 시계 제작자여야 하고, 시계 제작의 기초를 숙달하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창작물을 직접 제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소개 절차가 완료되면 ‘지원자’의 자격으로 AHCI 살롱에 초대되어 모든 회원들이 서로를 만나고, 시계든 탁상시계든, 오토마통이든 지원자의 시계 작품을 직접 볼 수 있게 된다. 첫 번째 살롱이 끝난 후에는 ‘후보자’ 자격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투표가 진행된다. 이 투표를 통과하면 이후 두 번의 살롱에 더 참여하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기술과 창의성을 입증해야 한다. 이 후보 기간은 최소 2년간 이어진다. 2년이 지난 뒤 회원들은 다시 한 번 투표를 통해 당신의 전문성, 태도, 그리고 시계 제작자로서의 자질을 평가한다. 투표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비로소 AHCI의 정회원이 된다.
22세에 회사를 창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
시계 제작 공부를 마친 뒤 곧바로 스위스의 한 작업실에 채용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지만 매일 똑같은 종류의 무브먼트 작업만 하고 있었고, 그것은 나를 설레게 하지 않았다. 내가 열망하던 시계 제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때 내게는 진정으로 영감을 주는 시계 제작을 구현하고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바로 나만의 시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제작 과정의 모든 단계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고, 동시에 나의 지식을 계속 확장해나갈 수 있었다. 불과 6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스물두 번째 생일 바로 다음 날 회사 등록을 마쳤다. 나에게 시계를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표현이다. 나는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에서 강한 연결감을 느낀다. 내가 바라는 것은 각 작품이 미래의 소유자에게 착용되었을 때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금속에 새겨진 작업의 밀도와 장식, 부품의 형태에 담긴 나의 노력을 전달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사유나 특별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첫 번째 시계인 케마(Khema)는 문페이즈, 캘린더, 투르비용, 100시간 파워 리저브 등 여러 고급 컴플리케이션을 통합하고 있다. 이 기능들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이 있었나?
이러한 컴플리케이션의 선택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투르비용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무브먼트 개발에 관한 지식을 전해준 분, 그리고 이 컴플리케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그분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이다. 문페이즈는 그 시적인 상징성 때문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컴플리케이션 중 하나다. 다이얼 위에서 자연과 직접적인 연결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무척 매혹적이다. 여기에 디자인과 감성까지 고려한 날짜 표시는 이러한 비전을 보완한다. 달은 우리가 자연 속 어디쯤에 있는지 알려주고, 날짜는 우리가 시간 속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이 두 디스플레이는 모두 독특하다. 달은 그 위치를 보여주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C자 형태의 인덱스를 통해 그것을 읽게 된다. 이는 하늘에서의 달과도 같다. 빛을 받지 않아 보이지 않을 뿐, 달은 여전히 온전한 형태로 존재한다. 반면 날짜는 숫자 없이 표시되며, 매일 이동하는 작은 야광 점을 통해 시간을 읽게 된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섬세하고도 시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아르케아(Arkhea) 프로토타입은 이후 케메아 에디션 서브스크립션(Khemea Édition Souscription) 시리즈로 발전했다. 그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이었나?
회사를 세울 때부터 첫 번째 시계를 인도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 시간은 배움과 좌절, 그리고 회복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결국 나의 첫 창작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시계 제작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보다 더 많이 나 자신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처음의 스케치가 프로토타입이 되고 다시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오트 오를로제리 시계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곧 내가 어떤 시계 제작자이며 어떤 시계 제작을 구현하고자 하는지를 발견해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것은 매우 개인적인 여정이었다. 시계는 나와 함께 진화했다. 6년간의 시계 제작 공부를 마쳤음에도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을 완성하기에는 지식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경험 많은 시계 제작자들의 도움을 구했고, 때로는 그들의 지식을 배우는 대가로 무보수로 일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랑 푀 에나멜과 기요셰 다이얼을 제작하는 장인을 비롯해 내가 협업하고 싶었던 장인에게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많은 하청 작업도 맡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장식의 정교화, 메티에 다르 요소의 추가, 그리고 디자인의 확립이었다. 그렇게 이 시계는 나의 비전과 기술이 함께 발전해온 과정을 반영하며 최종적인 형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직접 개발한 무브먼트를 사용해 시계를 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브먼트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나?
무브먼트를 창작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며, 그 아이디어는 곧 종이 위에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최종적인 형상이 드러나기까지는 수많은 스케치가 이어진다. 그다음에는 컴퓨터 보조 설계 단계로 넘어가 기어, 브리지, 그리고 무브먼트 전체의 조화를 정의한다. 기술과 미학이 서로 맞물릴 때 그 형태가 완성되고 검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작업실에서 프로토타입 부품을 가공하고 이를 통해 무브먼트가 실제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필요에 따라 조정한다. 디지털 도구와 전통적인 장인 기술을 결합해 아이디어에서 현실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은 내게 엄청난 배움을 주었고, 그것이야말로 시계 제작 방식의 핵심에 놓여 있다.
시계 제작에 있어 본인만의 철학이나 신념이 있나?
창조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필요를 느낀다. 무엇보다 기술, 디자인, 그리고 그 시계를 만드는 방식 사이에 진정한 일관성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계 제작은 하나의 표현이며, 창조하는 사람에게도, 착용하는 사람에게도 예술의 한 형태다. 내가 설계하는 부품들은 작업실에 있는 기계, 그리고 선반이나 ‘정밀 좌표 가공기(pointeuse)’ 같은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해 실제로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접근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나는 그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게 될 손의 움직임까지 함께 생각한다. 이 기계들은 대부분 나보다도 나이가 많고,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들은 하나의 리듬, 하나의 작업 방식, 거의 대화에 가까운 관계를 요구한다.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강점이 된다. 그것은 내가 장인 정신의 전통적 규범에 충실하도록 만들고, 제작 수단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만들도록 이끈다. 시간을 읽는 방식의 단순함이 위대한 기술적, 예술적 복잡성과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계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환기하며, 어떤 형태로든 관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정밀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시적 감각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이 탐구가 나의 모든 작업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자신의 시계가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시계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분야에는 많은 여성들이 존재하며, 다만 아직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보다도 각각의 독립 창작자를 진정으로 구별 짓는 것은 바로 그 사람만의 개인적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시계 제작은 하나의 표현 방식이며, 우리가 만드는 시계는 우리 자신을 깊이 반영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시계 속에서 나를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시계들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성장해가는 동안 나의 삶의 여러 단계를 비추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
사실 대부분은 많은 작업의 결과일 뿐이다. 내 생각에 중요한 것은 과거에 무엇이 이루어졌는지 깊이 이해하고 오늘날의 흐름 또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다음에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러면 그것을 작업한다. 제시해보고 모든 각도에서 스케치해보며, 다른 기술과 예술적 표현 방식과도 맞부딪쳐본다. 그러면 점차 해답이 나온다.
앞으로의 시계 제작 여정에서 어떤 도전이나 목표를 추구하고 싶은가?
시계 제작자로서, 개인으로서, 그리고 나의 작업실은 시작점과 비교해 크게 변화했다.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며 이 공예가 제공하는 무한한 기술적, 기계적 가능성을 탐구해나가고 싶다. 또 음악가로서 나는 언젠가 시계 제작과 음악을 결합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 창작물은 하나의 아이처럼 내가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제시간에 맞추어 찾아올 것이다.
다음 세대 여성 시계 제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나 메시지가 있다면?
우리는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창작물은 우리를 훨씬 넘어 오래도록 남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 작품들에 헌신하자. 그 작품들이 평화와 조화를 함께 품고 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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