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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의 시간을 엿보다

OMEGA CK 859

 


기술의 완성, 오메가


오메가는 무브먼트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사용하는 유일한 시계 브랜드다. 정확성과 신뢰성 높은 무브먼트를 제작하는 것은 말 그대로 오메가라는 브랜드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것. 특히 1894년 생산을 시작한 19리뉴(약 43mm) 칼리버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혁신이었다. 이 무브먼트는 뛰어난 정확성과 함께 표준화된 부품으로 양산 체제를 갖추면서 대중적인 가격까지 확보한, 그야말로 시계 기술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 전문 워치메이커의 수정 없이도 모든 구성품을 교체할 수 있었고, 최초로 단일 크라운을 통한 와인딩 및 시간 설정 방식을 적용했다. 오늘날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계에 사용하는 바로 그 방식이다. 이 무브먼트에는 ‘기술의 완성’이라는 의미로 그리스 문자의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OMEGA)’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 무브먼트 명칭은 1903년 브랜드명이 되었다. 오메가라는 이름에 시간의 정확성을 향한 브랜드의 열정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러한 오메가의 기술력은 회중시계 시대를 지나 손목시계 시대에 와서도 변함없이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무브먼트가 30T2와 같은 무브먼트였다.



CK 2292

30T2, 손목시계 시대를 빛낸 오메가 무브먼트


올해 출시된 CK 859는 오메가에서 1939년에 출시한 수동 시계를 복각한 모델이다. 이 시계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원본 시계가 아니라 그 원본 시계에 사용된 무브먼트를 살펴봐야 한다. 당시 오리지널 모델에는 ‘30T2’라는 무브먼트를 장착했는데, 이는 오메가의 칼리버 33.3과 함께 오메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브먼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30 시리즈 무브먼트는 1939년 처음 제작되었으며, 등장 초기부터 매우 정확하고 신뢰도 높은 무브먼트로 명성을 떨쳤다. 30T와 30T2는 30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무브먼트였다.작동 및 조정이 용이했고, 마모·손상·충격에 매우 강했으며, 동력 분배에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기 때문. 30T와 30T2는 너무나 탁월한 엔진이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무브먼트를 개발해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동일한 무브먼트에 케이스와 다이얼 디자인을 바꿔 다양한 시계를 출시했다. 30T2는 CK 859와 같은 민간용 시계에 주로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군용 시계에도 사용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www(watch, wristlet, waterproof) 사양으로 제작된 오메가의 군용 시계 CK 2292 모델이다. 참고로 이 시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요구를 만족시킨 12개 브랜드, 일명 더티 더즌(Dirty Dozen)의 참전 용사이기도 하다.



크로노미터 경연 대회를 견인하다


최고의 정확성을 향한 오메가의 기술과 열정은 20세기 초반 크로노미터 경연대회의 활약상에서 엿볼 수 있다. 오메가는 1919년 칼리버 21로 처음 크로노미터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화려한 우승 전적을 이어갔다. 특히 1931년에는 제네바 천문대에서 개최된 여섯 차례의 테스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면서 가장 정확한 시계로 등극했다. 오리지널 CK 859에 사용한 30T2는 1940년부터 1966년까지 오메가의 크로노미터 경연 대회 성과의 기반이 된 무브먼트다. 오메가는 시대마다 대회에 출전한 모델이 달랐는데, 1940년부터는 칼

리버 30T2를 베이스로 정밀 조정을 한 버전에 ‘rg’라는 이름을 붙여, 30T2rg, 30T2SCrg 등의 무브먼트를 사용했다.


이 크로노미터 무브먼트들은 1946년 뇌샤텔, 제네바, 큐 천문대에서 열린 크로노미터 경연 대회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30T2가 일반 판매를 위한 대량생산 자동차라면, 30T2rg는 대회 출전을 위해 소수만 제작한 고성능 자동차인 셈이다. BMW에 비유하면 3 시리즈와 M3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 또 30T2는 다른 브랜드의 무브먼트에 비해 디자인이 투박했는데, 이는 회중시계 시절의 19리뉴 칼리버처럼 정확성과 유지·보수를 위한 설정으로, 당시 시계 제작자들은 30T2의 조립 용이성과 내구성을 극찬했다고 한다.


칼리버 8926

빈티지 스타일에 최적화된 구성


새 CK 859의 지름은 39mm로 빈티지 스타일의 복각 시계로는 매우 이상적인 사이즈다. 수동 방식이라 두께는 얇은 편이며, 미들 케이스에는 브러시드 피니싱, 베젤에는 폴리시드 피니싱을 적용했다. 측면에서 미들 케이스의 영역이 또렷하게 드러나도록 아래위로 얇은 폴리싱 라인을 추가해 세련미를 더했다. 이 시계는 작은 사이즈와 얇은 두께, 부드러운 가죽 스트랩이 만나 극강의 착용감을 선사한다. 30m의 방수 성능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의 데일리 워치로는 부족함이 없다. 돔 글라스는 이 시계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짓는 요소다. 곡률이 중앙까지 일정하게 이어지는 형태인데, 볼록렌즈나 콘택트렌즈를 생각하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덕분에 베젤에서 돔 글라스로 이어지는 라인이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다이얼에서는 가장 먼저 빈티지 오메가 로고가 눈에 띈다. 손 글씨 스타일의 로고에서 옛 오메가 워치메이커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하다. 중앙에는 ‘Ag925’라는 문자가 미세하게 새겨져 있는데, 이는 다이얼 재질이 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실버 소재는 시간이 흐르면서 미세한 색깔의 변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빈티지 스타일 시계에 보다 잘 어울리는 구성이다. 실버 다이얼 특유의 질감과 색감 역시 시계를 더욱 멋스럽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핸즈는 블루 컬러의 스워드 핸즈 스타일. 스몰 세컨즈까지 같은 스타일로 적용한 점이 독특하다. 인덱스는 일종의 섹터 다이얼인데, 바깥쪽 영역에 미닛 트랙을 이중으로 배치한 것도 요즘 시계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구성이다. 여백이 있는 중심부와 다소 복잡한 주변부의 미닛 트랙이 만나면서 묘한 균형감을 완성한다. 스트랩은 브라운 컬러의 소가죽 스트랩을 매칭했다. 러그 폭이 일반적인 20mm 규격이라서 다양한 스트랩을 적용해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30T2의 명성을 잇는 오메가 8926 칼리버


CK 859에 탑재한 오메가 8926 칼리버는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를 장착한 수동 와인딩 무브먼트다. 수동 모델로서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았으며, 그 옛날 30T2의 레이아웃을 이어받아 6시 방향에 스몰 세컨즈 디스플레이가 위치한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전혀 다른 최신 무브먼트다. 8926 칼리버에는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을 장착한 프리 스프렁 밸런스를 적용했고, 2개의 배럴로 안정적인 동력을 공급한다. 무브먼트의 코즈메틱 부분에서도 탁월하다. 아라베스크풍 제네바 웨이브의 로듐 도금 마감 공정을 적용해 각도를 바꿀때마다 중심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환상적인 소용돌이 피니싱을 보여준다. 파워 리저브는 72시간으로 넉넉한 편. 논데이트에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숨은 기능이 하나 있다. 크라운 1단에서 시침만 점핑할 수 있는 기능으로, GMT워치처럼 서로 다른 시간대를 이동할 때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좌) 정확성을 갖춘 군용 시계로 널리 알려진 오메가의 1940년대 광고 비주얼 (우) CK 859의 케이스 백

리미티드 에디션이 되어버린 넘버드 에디션


CK 859는 1939년 출시된 동명의 모델을 복각한 것이다. 1939년은 30 시리즈 무브먼트가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즉 CK 859는 당시 존재했던 수많은 30T2 무브먼트 기반의 수동 시계 중에서도 비교적 초기 모델을 복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시계는 ‘넘버드 에디션’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 리미티드 에디션은 아니지만 제품마다 고유 번호가 새겨져 있고, 생산 기간과 수량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아쉽게도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CK 859의 공식적인 단종 소식이 들려왔다. 출시 1년도 채 되지 않아 단종되었으니 사실상 한정판처럼 되어버린 셈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모델을 경험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한편으로 이미 구매한 사람에게는 희소식이기도 하다. 매우 짧은 기간 한시적으로 발매된 특별한 모델인 만큼, 훗날 가치 상승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 주변의 가치 평가에 관계없이 CK 859는 그 자체로 미학적이며 아름답다. 1930~1940년대 오메가 시계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문워치 이전 시대의 헤리티지, 즉 오메가가 크로노미터 경연 대회를 휩쓸던 시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수동 손목시계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시차를 줄이는 빈티지의 재현


많은 브랜드가 ‘빈티지’와 ‘복각’을 내세우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하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빈티지 워치에는 시간의 변화가 담겨야 하는데, 복각 시계는 본질적으로 시간을 견뎌내지 않은 새 제품이다. 새 시계에 옛 시계의 디자인을 담아내면 시차로 인한 어색함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 시차를 줄여 최대한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 멋진 복각 시계를 만드는 핵심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오메가의 CK 859는 꽤 잘 만든 빈티지 복각 워치다. 첫인상은 투박하기 그지없다. 쓸데없이 많은 미닛 트랙으로 시인성은 떨어지고, 핸즈는 시침과 분침 모두 지나치게 길어서 요즘 시계의 세련된 디자인 밸런스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시계의 원형인 옛 CK 859와 거기에 장착한 30T2 무브먼트의 맥락을 이해하면 그 모든 투박함이 고전적인 세련됨으로 치환된다.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8926 수동 칼리버 역시 1939년 탄생한 30T2 무브먼트의 헤리티지를 계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결국 이 시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오메가라는 브랜드가 걸어온 시간 그 자체다. 만약 당신이 CK 859에서 자연스러운 빈티지 분위기를 느낀다면, 그것은 소재나 디자인이 아닌, 정확성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했던 오메가의 시간을 엿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CK 859

Ref. 511.12.39.21.99.002

지름 39mm

케이스 스틸,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매뉴얼 와인딩, 오메가 8926 칼리버

기능 시, 분, 초 다이얼 실버

스트랩 브라운 레더 스트랩, 스틸 핀 버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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