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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뱅 베르네롱과의 인터뷰

  • bhyeom
  • 9분 전
  • 9분 분량

Interview with Sylvain Berneron


안정성을 내려놓고 오직 자신의 신념으로 한 작품에 모든 것을 건 실뱅 베르네롱은 그 결단으로 현대 워치메이킹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비틀린 형태의 ‘미라지(Mirage) 38’에서 전통적 컴플리케이션 ‘꽁띠엠 안뉴엘(Quantième Annuel)’까지, 그의 시계는 예술과 기술의 조화를 가장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현재 몸담고 있는 명망 높은 회사에서 쌓은 명성과 지위를 과감히 내려놓고, 그동안 모아온 모든 자금을 단 하나의 작품에 투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불과 몇 년 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창립한 실뱅 베르네롱은 바로 그런 결단을 내린 인물이다. 이 당차고 야망 있는 워치메이커가 첫 작품으로 선보인 것은 미라지 38. 이 시계를 처음 마주한 이들은 모두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시계다.” 전통적인 빈티지 워치의 계보를 답습한 것도,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안정적인 디자인을 따른 것도 아니다. 케이스는 물론 무브먼트까지 동일하게 휜 이 형태는 마치 ‘모 아니면 도’에 가까운 선택처럼 보인다. 그 파격성은 과거 까르띠에의 크래쉬 워치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 같은 충격을 연상시킨다. 당시에도 논란과 경탄이 오갔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베르네롱의 미라지 38 역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역사를 남겼다.


베르네롱의 시계는 살바도르 달리의 멜팅 클락을 연상시킨다는 표현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하나의 예술 작품이 거장의 작품과 대등하게 비교됨과 동시에 작가 고유의 완결된 스타일과 감정을 전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계 업계에 오랜 시간 몸담아온 베테랑이자 ‘규범을 해체한 오를로제리’를 추구하며 작업하는 워치메이커 실뱅 베르네롱은 현재 스위스에서 역사성과 동시대성을 아우르는 손목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비틀린 형태로 등장한 첫 작품 미라지는 공개 직후 전 세계 컬렉터들이 넘버 1 컬렉션(첫 번째로 제작된 시계)을 차지하기 위해 그를 찾았으며, 유명 시계 미디어에서 인기 기사로 연이어 소개됐다. 최근에는 기존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모델 꽁띠엠 안뉴엘을 선보이며, 일상 속 예술 작품부터 정확성을 향한 컴플리케이션 기술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맥락에서 브랜드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시계를 보다 우아하고 재치 있게 즐기고 싶다면, 현대 워치메이커 중 이 영역을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하는 베르네롱을 만나보길 바란다.


실뱅 베르네롱
실뱅 베르네롱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반갑다. 나는 실뱅 베르네롱이다. 내 이름을 딴 브랜드 베르네롱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로, 스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오트 오를로제리 시계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직접 시계를 만들고, 나만의 브랜드를 론칭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솔직히 말하면, 대형 브랜드에서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었다면 그 길을 택했을 것이다. 훨씬 수월했을 테니까 말이다. 더 많은 인력과 자원, 시간, 그리고 안정성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라지 같은 프로젝트는 너무나도 파격적이었다. 기존의 브랜드 이름을 붙여 선보이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브랜드에도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고, 보는 이들 역시 낯설게 느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기존과 다른 작업에는 반드시 나 자신의 브랜드가 필요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는 전혀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이 아이디어를 친구이기도 한 프레드 만델바움(Fred Mandelbaum)과 로낙 마드바니(Ronak Madhvani)에게 소개했는데, 그들은 나에게 “실뱅, 이 일을 정말 하고 싶다면, 이 작업을 온전히 네 것으로 만들어야 해. 네가 직접 책임지고, 네 이름으로 서명해야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 조언을 따랐고,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처음 미라지를 선보였을 때만 해도 반응은 엇갈렸고, 두려움이나 강한 비판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커뮤니티가 훨씬 더 창의적인 시도에 열려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선택은 분명 옳았다.


미라지 38 시에나
미라지 38 시에나
칼리버 233
칼리버 233
미라지 38 시에나
미라지 38 시에나
미라지 38 프루시안 블루
미라지 38 프루시안 블루
미라지 38 프루시안 블루
미라지 38 프루시안 블루

첫 작품은 미라지 38다. 첫 시계부터 이렇게 대담한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첫 프로젝트는 개인적 배경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술을 전공했고 어머니는 화가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파인아트에 대한 깊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비대칭, 추상, 그리고 여백에 대한 개념은 나에게 익숙한 요소다. 동시에 나는 스위스 워치메이킹 업계에서 15년간 경력을 쌓아왔다. 이 둘의 접점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오랜 시간 매우 전통적인 브랜드에서 일해왔고, 어느 순간 더 많은 창의성을 표현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 필요성이 점차 강렬해지면서 나의 예술성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서는 결국 브랜드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후 무브먼트를 업데이트한 미라지 컬러 스톤 베리에이션에 대해서 소개해달라.

첫 번째 모델인 38mm 사이즈 미라지의 핵심적인 예술적 테마는 케이스 형태가 무브먼트 기어 구조를 감싸듯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즉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워치메이킹의 근본적인 접근에서 출발했다. 워치메이커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먼저 시계의 외형을 디자인하고 그 안에 무브먼트를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라지는 정반대였다. 먼저 무브먼트를 설계했고, 그 구조에 맞춰 케이스의 형태를 완성했다. 아마도 이 점이 많은 이들에게 이 시계를 낯설면서도 특별하게 느끼게 한 이유일 것이다. 두 번째 모델에서는 더 작은 사이즈를 선보이고 싶어서 34mm 케이스로 제작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전통적이고 시대를 초월하는 크기라고 생각한다. 또 남녀 모두가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비율이기도 하다. 내 아내 마리-알릭스(Marie-Alix)는 나보다 체구가 훨씬 작아 38mm 모델은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34mm는 훨씬 다양한 상황에서 착용할 수 있다.


스톤 다이얼은 내가 꼭 도전해보고 싶었던 영역이었다. 타이거 아이, 라피스 라줄리, 크리소프레이즈, 총 세 가지 베리에이션이 있다. 크리소프레이즈 모델은 웹사이트에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기존 고객에게만 한정해 총 48피스로 공개되었다. 타이거 아이와 라피스 라줄리 모델은 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새로운 컬렉터도 구매할 수 있고, 향후 10년간 모델당 연간 48피스씩 생산할 예정이다. 그리고 모든 시계에는 개별 번호가 부여된다.


미라지 34 라피스 라줄리와 타이거 아이
미라지 34 라피스 라줄리와 타이거 아이
미라지 34 타이거 아이
미라지 34 타이거 아이
미라지 34 타이거 아이
미라지 34 타이거 아이
미라지 34 라피스 라줄리
미라지 34 라피스 라줄리
칼리버 215
칼리버 215

베르네롱의 모든 스톤 다이얼은 수작업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완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술적 도전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스톤 다이얼 자체를 제작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도전이다. 천연 소재이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우리 시계는 전체적으로 매우 얇은 구조를 띠어, 스톤 다이얼 역시 극도로 얇은 두께로 가공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다이얼 6시 방향의 스몰 세컨드 카운터는 스톤 다이얼 위에 직접 손으로 조각하는 방식을 택했다. 초침이 스톤 다이얼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착용자에게 거의 인지되지 않을 만큼 미세한 디테일일 수 있지만, 다이얼 메이커에게는 극도로 복잡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연마와 가공이 끝난 스톤 위에 각각의 카운터를 다시 손으로 조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계를 ‘만들었다’기보다, 하나의 조각처럼 ‘빚어냈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영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나?

우리의 핵심 개념은 ‘규범을 해체한 오를로제리(de-restricted horology)’다. 이는 15년간 업계에서 일하며 체감해온 전통의 무게, 기술적 규범과 제약에서 비롯된 개념이기도 하다. 나는 오트 오를로제리가 보다 감성적이고 동시대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드시 엄숙하고 진지할 필요는 없다. 대표적인 예로 미라지의 휜 핸즈와 곡선적인 케이스 형태는 50년 전에는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시계가 ‘시간을 정확히 읽는 도구’로서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비롯해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이자 스타일과 개성, 가치관을 드러내는 오브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계를 ‘착용 가능한 예술 작품’으로 확장하는 것은 매우 강력하고 감성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감히 말하자면 이것이 워치메이킹 산업의 미래를 향한 경로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꽁띠엠 안뉴엘
꽁띠엠 안뉴엘 블랙과 실버
꽁띠엠 안뉴엘
꽁띠엠 안뉴엘 블랙
꽁띠엠 안뉴엘
꽁띠엠 안뉴엘 블랙
꽁띠엠 안뉴엘
꽁띠엠 안뉴엘 실버

그리고 2025년에는 꽁띠엠 안뉴엘 모델을 공개했다. 이전에 선보인 미라지와 달리 전통적인 라운드 케이스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앞으로 10~12년 안에 최소 4개 이상의 컬렉션을 갖춘 탄탄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각 컬렉션은 서로를 보완하며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한 브랜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미라지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애착이 큰 프로젝트였고, 반드시 완성하고 싶었던 컬렉션이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워치메이킹, 특히 컴플리케이션 워치메이킹에도 깊은 열정을 지니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꽁띠엠 컬렉션은 브랜드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미라지의 정반대에 위치한 컬렉션이다. 이러한 대비 자체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매우 용기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꽁띠엠은 더 두꺼운 케이스를 갖추었으며, 완벽한 대칭 구조와 훨씬 복잡한 기술적 구성을 지닌 시계다. 나에게는 브랜드의 또 다른 얼굴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출시 당시에는 나와 베르네롱의 디렉터들 역시 적지 않은 고민과 우려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컬렉터들로부터 엄청난 반응을 얻었고, 현재는 이미 2년이 넘는 생산 물량이 예약된 상태다. 첫 번째 시계를 전달하는 날을 우리 역시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꽁띠엠에는 기술적으로 매우 혁신적인 무브먼트가 장착되어 있다. 미라지가 시각적으로 즉각적인 혁신을 전달하는 시계라면, 꽁띠엠은 동일한 수준의 새로움을 훨씬 은밀하게 전달하는 컬렉션이다. 다행히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컬렉션을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약 2년 뒤에는 세 번째 컬렉션으로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러한 계획만 보더라도,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다양성’을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각 컬렉션마다 그 자체로 강력하면서도 신선함으로 구축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꽁띠엠 안뉴엘의 독창적인 플래티넘과 스틸 레이어드 케이스 구조에 대해 묻고 싶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사용자 경험’이다. 개인적으로 컬렉터로서 늘 느껴온 점은 컴플리케이션 워치가 지나치게 고가이면서도 사용하기 어렵고, 때로는 사용자에게 불친절하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꽁띠엠 컬렉션을 개발하며 몇 가지 과제를 반드시 해결하고자 했다. 우선 다이얼의 가독성이다. 이를 위해 날짜와 캘린더 정보를 표시하는 창을 훨씬 크게 설계했고, 정보의 배열 역시 순차적으로 구성해 보다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시계 설정 방식 또한 종종 불편한 요소로 지적되는 요소다. 꽁띠엠 컬렉션의 모든 시계에는 스타일러스가 필요한 푸셔를 사용하지 않는다. 추가 도구 없이 크라운만으로 시계의 모든 기능을 설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플래티넘 시계를 착용할 때 따르는 부담을 덜고 싶었다. 플래티넘은 스크래치가 쉽게 생기는 소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스틸 레이어 콘셉트다. 케이스 외부에 나사로 고정한 6개의 얇고 작은 스틸 부품이 일종의 ‘갑옷’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플래티넘 특유의 묵직한 무게감과 측면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반사를 유지하면서도, 외부 충격에 가장 취약한 표면은 스틸로 보호할 수 있다. 이 스틸 부품들은 향후 교체가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 검증되어야 하겠지만, 40년, 50년이 지나도 이 시계들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길 바란다. 10년마다 6개의 스틸 레이어 부품을 교체할 수 있는데, 그러면 시계는 다시 처음과 같은 컨디션으로 돌아온다. 러그와 베젤의 생모서리는 날카로운 형태를 유지하고, 반복적인 폴리싱으로 비누처럼 둥글게 닳아버린 시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칼리버 595
칼리버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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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애뉴얼 캘린더 이후 준비 중인 다음 프로젝트가 있나?

물론이다. 우리는 매년 하나의 신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며, 매해 9월 제네바에서 그에 맞춰 발표할 예정이다. 첫해에는 미라지 38을 선보였고, 두 번째 해에는 스톤 다이얼을 적용한 미라지 34를 출시했다. 세 번째 해가 바로 꽁띠엠 안뉴엘이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미라지 컬렉션에서 오픈워크 디자인에 도전할 계획이다. 새로운 무브먼트를 기반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계를 만들 때마다 항상 새로운 무브먼트를 개발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모든 무브먼트는 18K 골드로 제작하고, 브리지와 메인 플레이트를 포함해 모든 부품을 귀금속으로 만든다.


재료 자체가 더 비싸고 가공도 까다로워 제작 난도가 높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감 품질 때문이다. 금은 마감했을 때 훨씬 깊고 풍부한 광택을 구현할 수 있으며, 본질적으로 비자성 소재이기 때문에 스마트폰, 컴퓨터, 공항 보안 게이트 등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자성 환경에서 무브먼트를 보다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자성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지만, 황동 베이스 플레이트에 비해 훨씬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베르네롱 워치는 론칭 직후부터 전 세계 컬렉터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지속적으로 화제가 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이 질문에는 두 가지 관점에서 답하고 싶다. 먼저 감정적인 측면이다. 로니 마드바니, 아우로 몬타나리(John Goldberger), 나딘 고슨(Nadine Ghosn), 로랑 피치오토(Laurent Picciotto) 같은 컬렉터는 모두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매우 경험 많은 인물들이다. 이들에게 우리의 작업이 공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또 일부 컬렉터들이 리테일 가격을 훨씬 상회하는 금액을 지불하며 여러 피스를 동시에 소장하기로 결정한 것 역시 큰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감정적인 차원에서 느끼는 매우 솔직한 기쁨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나?

물론이다. 나는 매우 강도 높은 예술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두 가지 미술 사조는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나 폴 세잔(Paul Cézanne)을 떠올릴 수 있고,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는 내가 평생 가장 존경해온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관람자의 사고 자체를 자극하는 독보적인 능력을 갖춘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다.


현재 공동 창립자인 마리-알릭스 베르네롱(Marie-Alix Berneron)과 함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서로 아이디어를 어떻게 교류하고 있나?

앞에서 말했듯 마리-알릭스는 나의 아내다. 직업은 건축가이며, 회사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사실 미라지 프로젝트를 위해 개인 자산 전부를 투자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의 허락을 먼저 구했다. 아내는 그 자금을 집이나 아파트 구입, 혹은 가족을 위한 프로젝트에 사용하길 기대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이 프로젝트를 위해 내 모든 돈을 걸어도 괜찮을까?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라고 물었다. 그런데 아내는 나를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었다. 그는 현재 르 샤텔(Le Châtel)에 있는 매우 성공적인 건축 사무소에서 풀타임 건축가로 일하고 있으며, 대학이나 병원 같은 대규모 공공 건축물을 설계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 사무 공간의 인프라는 모두 아내가 설계한 것이다. 이 공간 자체가 그의 작품인 셈이다. 그의 취향은 자연스럽게 브랜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니섹스 사이즈에 대한 접근, 소재와 컬러 선택 등에서도 그의 영향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함께 생활하며 매일 아이디어를 나누는 창작자이기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는다. 나 역시 건축 세계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예를 들어 꽁띠엠 컬렉션에서 느껴지는 대칭성, 정제된 구조, 각이 잡힌 형태는 분명히 건축적인 언어에 기반한 접근이다. 분명한 건 아내의 ‘허락’이 없었다면 이 브랜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언제나 누구에게든 전하고 싶다.


베르네롱 아틀리에
스위스 뇌샤텔에 위치한 베르네롱 아틀리에
베르네롱 아틀리에
스위스 뇌샤텔에 위치한 베르네롱 아틀리에

최근 스위스 뇌샤텔에 새로운 아틀리에를 오픈했는데, 이 공간에 대해 소개해줄 수 있나?

스위스는 말할 것도 없이 워치메이킹의 중심지이며, 그중에서도 뇌샤텔(Neuchâtel)은 워치메이킹 지역의 정확한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취리히와 제네바는 이 지역의 외곽에 해당하지만, 뇌샤텔은 중심부에 있어 우리에게는 매우 이상적인 위치다.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최상급 부품 공급 업체가 모여 있다. 이들 대부분은 가족 경영 형태의 장인 기업으로, 다이얼 메이커, 핸즈 메이커, 케이스 제작사는 물론 기어·피니언·주얼·스프링·스크루 등 다양한 부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품질 수준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숙련된 공급 업체 네트워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뇌샤텔에 회사를 두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공급 업체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긴밀하게 협업하며 일상적으로 품질을 미세하게 조율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리적인 측면에서도 컬렉터나 방문객들이 아틀리에를 찾기에 접근성이 좋다.


아틀리에 자체는 아마도 건축가인 아내의 영향이 클 텐데, 우리는 현대적인 산업용 건물에 회사를 자리 잡았다. 바닥은 무거운 기계를 올려도 문제없을 만큼 하중을 견딜 수 있고, 채광이 좋으며, 먼지가 유입되지 않고, 바닥이 안정적이며, 온도 역시 정밀하게 관리된다. 이러한 현대적인 요소는 고품질 시계를 제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먼지와 진동을 차단하는 것은 정밀하고 깨끗한 워치메이킹에서 가장 큰 적을 제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위기 측면에서는 천장이 높고, 전반적으로 러프한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바닥도 일부러 페인트를 칠하지 않았고, 가구 역시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택했다. 현재 회사에는 평균 연령 약 30세의 젊은 팀원 10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나는 이 회사를 하나의 ‘예술가의 저택(artistic mansion)’에 비유하곤 한다. 각자가 자신의 기술과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 모이고, 그 노력이 하나로 합쳐져 창의적인 시계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브랜드를 창립한 오너로서, 앞으로 독립 워치메이커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조언이라고 하기에는 나 역시 아직 그 길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의 경험을 공유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창작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작업을 끝까지 완성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 이후에야 비로소 타인의 의견과 비평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는 3년째 진행 중이지만, 실제로는 첫 시계를 완성하는 데만 2년이 걸렸기 때문에 총 5년의 시간이 투입되었다. 그 과정에서 어려운 순간이 여러 번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침착함, 그리고 문제를 차분히 사고하려는 태도가 필요했다. 결국 인내심과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따르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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