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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마스터 칭호를 받은 18세기 워치메이커, 샤를 지라디에의 부활

Charles Girardier

 

18세기 워치메이커 샤를 앙투안 지라디에의 예술적 영감을 바탕으로 2018년 다시 탄생한 스위스 독립 시계 브랜드, 샤를 지라디에. 부활한 지 2년 만에 GPHG 2020에서 여성 부문을 수상하며 단숨에 파인 워치메이킹 브랜드로 입지를 다졌다.


시계업계에 새로운 이슈를 몰고 온 샤를 지라디에가 국내 론칭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에 <GMT KOREA>가

매뉴팩처 소재지인 스위스 제네바주 메랭(Meyrin)을 직접 방문했다.




(좌) 2019년 파트리크 울름이 낙찰받은 샤를 앙투안 지라디에의 작품 (우) 샤를 앙투안 지라디에


역사 속에 잠든 워치메이커 샤를 지라디에를 깨우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마음속 깊은 울림 혹은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을 오롯이 받은 적이 있을까. 스위스의 기업가 파트리크 울름(Patrick Ulm)은 영국의 애거사 크리스티 박물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한 포켓 워치의 강렬한 기운에 발걸음을 멈췄다. 에나멜 터치가 유려한 다이얼과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그림, 그리고 애니메이션 효과를 담은 시계는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파트리크 울름은 곧바로 18세기에 해당 포켓 워치를 제작한 워치메이커에 대해 조사했다. 주인공은 1759년 제네바에서 태어난 샤를 앙투안 지라디에(Charles Antoine Girardier). 21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작업장을 갖고 시계를 제작했을 정도로 당시 유망한 워치메이커였던 것.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양보다 질을 중시해 시간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철학 때문에 소량의 시계만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샤를 지라디에는 1809년 ‘시계 마스터(Maître Horloger)’ 칭호를 받았고, 1810년에는 제네바 예술협회에서 작품들을 인정받았으며, 이후 왕족을 포함한 저명 인사들이 그의 시계를 찾았다고 한다. 당대 작품으로 인정받던 그의 시계들은 현재 제네바 예술 및 역사 박물관, 파리의 프티 팔레 등에 전시되어 있다. 이렇듯 저명한 시계 장인 샤를 지라디에는 기능적 요소뿐 아니라 미학적 아름다움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시계의 다이얼이나 케이스는 장식 예술을 포함해야 하는 회화와 조각의 조합으로 바라보았던 인물이다. 스위스 전통 공예 기술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기업가 파트리크 울름은 당시 시계 거장의 그러한 낭만적인 정신에 매료되어, 과거로 돌아가 그와 그의 시계들과 조우하는 상상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박물관에서 자신의 발길을 붙들었던 묘한 기운과 호기심, 시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 상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샤를 지라디에에 생명을 불어넣기로 결정한다.



처음 참가한 GPHG 2020에서 여성 시계 부문 수상


브랜드의 창립자 파트리크 울름은 샤를 지라디에의 영문 앞글자인 CG를 따서 2017년 CG 워치스를 설립하고 2018년 샤를 지라디에 상표권을 등록, 다음 해인 2019년 경매를 통해 샤를 지라디에 작품을 구매한다. 경매를 통해 낙찰받은 회중시계의 회전하는 디스크에 담긴 사냥 장면은 현 모델의 애니메이션 다이얼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새로운 시계에 대한 구상이 있었기에 2년 여 동안 집중적으로 개발에 임했고, 2020년 1809 컬렉션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GPHG 2020 여성 컴플리케이션 시계 부문에서 수상하며 시계업계에 이변을 일으키는 기염을 토했다. 1809 컬렉션 중에서도 플뢰르 드 셀(Fleur de Sel) 모델이 수상의 주인공으로 컬러를 몇 세기에 걸쳐 유지할 수 있는 그랑 푀(grand feu) 에나멜 다이얼과 플라잉 투르비용, ‘미스터리 시그너처’로 명명한 자동 장치가 결합된 시계다. 12시 방향의 서브 다이얼 부분인 ‘미스터리 시그너처’에 브랜드 이니셜인 C와 G가 얽혀 움직이는 것은 18세기 워치메이커 샤를 지라디에에게 바치는 헌사의 의미이자, 다이얼 위에 새기는 브랜드 이름을 대신하는 ‘신비로운 서명’인 셈. 이 자동 장치를 통해 브랜드 샤를 지라디에는 자신들의 시간을 다시금 시작한다. 골드 혹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움직이는 CG 로고는 고객이 요청할 경우 이니셜 혹은 새로운 모티브로도 제작 가능해 주문자에게 특별한 피스를 선사한다. 이 회전하는 로고의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시계의 무브먼트가 아니라 특허 받은 카운터 밸런스 엔지니어링 시스템으로 구동한다는 사실이다. 1809 컬렉션에 장착한 1809 칼리버에서도 눈에 띄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중 엔진이다. 시와 분 표시를 위한 엔진, 투르비용 케이지가 회전할 수 있도록 하는 엔진이 별도로 활약한다. 여기에 싱글 볼 베어링으로 소음 없이 조용한 오토매틱 와인딩을 구성하는 것도 이 컴플리케이션의 다양한 장점 중 하나다.



(좌) 1809 컬렉션의 다이얼 에나멜링 공정 과정 (우) 브랜드 창립자 파트리크 울름


1809 컬렉션

전통 방식을 고수한 독보적인 다이얼 에나멜링


샤를 지라디에 시계의 독보적인 기술 중 하나는 에나멜링이다. 에나멜은 무색이지만 다른 소재와 혼합해 원하는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다. 1809 컬렉션의 플뢰르 드 셀 라인은 다양한 에나멜 기법을 사용했다. 우선 다이얼에 입힌 에나멜을 여러 번 고온에서 구워내는 그랑 푀 에나멜(grand feu enamel) 기법으로 유리 같은 반짝임을 유지한다. 여러 번 덧바르는 에나멜의 맨 위 레이어에 패턴을 추가하는 플린케 에나멜(flinque enamel)을 추가한다. 이 기법을 통해 다이얼의 반투명한 느낌과 아라베스크 패턴이 어우러져 이 시계에 더욱 독특하고 빈티지한 감성을 불어넣는다. 에나멜 자체에 장식 모티브가 박히는 이런 방식의 파요네 에나멜(paillonné enamel) 공법을 더해 백합을 연상시키는 소금꽃(플뢰르 드 셀, fleur de sel) 모양의 은박 플레이크를 장식한다. 백합은 수세기 전, 프랑스 왕실을 상징했던 꽃이다. 이후에는 마지막 코트가 완성된다. 퐁당(fondant)이라 불리는 이 반투명 층에 에나멜을 반복적으로 도포해 색상을 고정한 후 촘촘하고 매끄러운 질감과 극적인 광채를 만들어낸다. 에나멜 작업은 상상 이상의 고난도 작업이다. 정확한 온도와 시간을 지켜 굽지 않으면 수십, 수백 시간 공들인 것이 한순간에 수포가 된다. 눈 깜빡할 사이의 아주 미세한 실수에도 기포가 생기거나 금이 가고, 의도하지 않은 컬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서화된 레시피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철저하게 손끝에서 나오는 오랜 경험만이 필수다.


지난 2022년 새롭게 론칭한 매직 8 컬렉션 역시 에나멜 테크닉이 돋보이는 시계다. 선명한 에나멜 컬러와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의 조화는 실물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없다. 이렇게 자연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컬러 그러데이션을 위해 각 층을 800°C 이상의 고온 가마에서 유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볼록한 형태의 은판(Ag 925)에 도포하는 법랑분말의 두께 차이로 색상 변화 효과가 나타나는 데, 다이얼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에나멜이 두꺼워지고 색상이 진해진다. 에나멜 분말층이 최대 8겹 쌓이면서 연속적으로 소성되는데, 반투명 컬러가 겹겹이 구워져 마치 해수면을 바라보는 듯한 깊이감을 선사한다.



(좌) 매직 8 코발트 블루 (우) 매직 8 에메랄드 그린 모델의 케이스 백
독특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적용한 매직 8 컬렉션

출발선을 끊은 스위스 독립 시계 브랜드의 또 다른 출발


브랜드 창립자 파트리크 울름은 “시계 산업에서 기회를 얻고 싶다면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샤를 지라디에의 회중시계가 내게 영감을 주었고, 아라베스크, 파요네 에나멜, 은 분말 솔질 같은 전통 모양이나 기법을 반영할 수 있었던 이유다”라고 설명한다. 2018년은 시계 장인 샤를 지라디에의 DNA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고, 2019년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으며, 2020년에는 이전에 없던 독특한 제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그는 이 프로젝트에 온 마음과 영혼을 바친 제네바 최고의 시계 장인들과하루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결실을 맺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GPHG 첫 후보에 오른 해에 수상의 영예까지 안으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샤를 지라디에가 이미 가장 어려운 성과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브랜드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파트리크 울름은 재미있는 시간은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기대한다. 올해에는 인디펜던트 워치 박람회나 디지털 플랫폼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온·오프라인 활동을 펼쳐 보다 많은 시계 애호가를 찾아갈 예정이다. 한국 마켓도 그중 하나다. 브랜드는 이미 출발선을 넘어섰지만, 한국 시장은 올해가 새로운 출발이기에 다시 초심의 마음가짐과 설렘이 느껴진 다는 그. 오랜 세월 잠든 워치메이커를 깨운 창립자의 진심과 열정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전해질지 기대된다.


문의 1533-8433·제네바 현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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