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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삶과 함께 흐르다 -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

JAEGER-LECOULTRE _Polaris Perpetual Calendar

 


퍼페추얼 캘린더를 품은 스포츠 워치


시계 애호가에게 퍼페추얼 캘린더는 사실상 기능적인 종착역이다. ‘정확한 시간 표시’라는 시계의 본질을 최고 수준으로 구현했기 때문. 그러나 기능적으로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를 구입해 소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모든 시계가 그렇겠지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으면 착용 횟수가 줄어들고, 번거롭게 시간과 날짜를 맞춰야 하는 애물단지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스포츠 워치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는 좀처럼 닿기 어려운 인연이었다.


그래서 퍼페추얼 캘린더는 오랫동안 드레스 워치의 전유물이었고, 스포츠 워치에는 거의 적용하지 않는 컴플리케이션이었다. 스포츠 워치는 시인성이 중요한데, 퍼페추얼 캘린더의 기능을 활용하려면 다이얼이 필연적으로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무브먼트가 구조적으로 더 복잡하고 외부 충격에 예민하기 때문에 격렬한 스포츠 활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올해 예거 르쿨트르는 이러한 인식을 깨고 자사의 스포츠 워치 컬렉션 폴라리스에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접목했다. 이 같은 시도는 럭셔리 스포츠 워치 시장의 확대와 무관하지 않다. 메종은 이미 성능이 뛰어난 인하우스 퍼페추얼 캘린더 무브먼트를 확보하고 있으며, 시장의 요구를 반영한 새로운 플랫폼으로 폴라리스 컬렉션을 선택했다. 폴라리스 컬렉션에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이 추가되면서 해당 라인업은 더욱 풍성해졌다. 무엇보다 드레스 워치를 선호하지 않아서 그동안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 구입을 망설였던 애호가들에게 그야말로 단비와도 같은 모델이 탄생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 달이 뜨다


이 타임피스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는 ‘폴라리스’와 ‘퍼페추얼 캘린더’다. 폴라리스 컬렉션의 기원은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거 르쿨트르는 1959년 세계 최초의 알람 다이버 워치 메모복스 딥씨 알람을 선보였고, 이를 개선해 1965년 폴라리스 메모복스를 출시했다. 현행 폴라리스 컬렉션은 1968년 리뉴얼된 폴라리스 메모복스의 디자인 코드를 따르고 있다. 메종은 2018년 폴라리스 메모복스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폴라리스 컬렉션을 새롭게 선보였다. 2020년에는 방수 성능을 강화한 폴라리스 마리너 메모복스로 컬렉션을 확장했고, 올해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까지 추가하면서 보다 탄탄한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퍼페추얼 캘린더. ‘퍼페추얼(perpetual)’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은 사용자의 인위적인 조작 없이 날짜가 자동으로 바뀌는 캘린더 기능을 말한다. 일반적인 데이트 워치나 풀 캘린더 워치는 28일이나 30일로 끝나는 달에 날짜를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하지만 퍼페추얼 캘린더는 2100년까지 별도로 조작할 필요가 없다. 무브먼트에 현재의 양력 체계가 세팅되어 1년 중 28일과 30일은 물론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윤년까지 인식해 스스로 날짜를 바꿔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시계에 하늘과 바다가 공존하게 된다. 폴라리스는 메종의 옛 다이버 워치 헤리티지를 잇는 스포츠 워치 컬렉션이며, 퍼페추얼 캘린더는 밤하늘의 천문 현상을 표현하는 기능이기 때문. 그래서인지 다크 블루 그러데이션 다이얼에서는 밤하늘과 밤바다, 그리고 어두운 심해가 함께 연상된다. 이 시계의 정체성은 하늘과 바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빛을 낸다. 시계를 바라볼 때 밤바다의 수평선 위로 달이 떠오르는 풍경이 그려지는 이유다.



복잡한 다이얼, 단순한 조작


디자인은 폴라리스 마리너 데이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크 블루 컬러로 그러데이션 처리한 그레인드 다이얼, 래커 마감, 시계 곳곳의 오렌지 컬러 포인트, 사각 디테일을 추가한 초침 등이 그 증거다. 물론 방수 성능은 100m 정도로 폴라리스 마리너 데이트 모델의 300m에 미치지 못한다. 2개의 크라운에 스크루 다운 방식도 적용하지 않았다. 이너 베젤을 비롯해 다이버 워치의 헤리티지를 갖추었지만 일상에서 편하게 착용하는 스포츠 워치로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름 42mm 케이스에는 사파이어 크리스털 돔 글라스가 올라간다. 큼직한 돔 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다이얼의 광택 덕에 빈티지함과 고급스러움이 조화롭게 드러난다. 다이얼에서는 4개의 서브 다이얼로 캘린더와 문페이즈를 표시한다. 다이얼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폴라리스 특유의 아라비아숫자 인덱스는 12시만 남기고 모두 생략했다.


크라운은 2개다. 상단 크라운으로 양방향 이너 베젤을 조정하고 하단 크라운으로 시간을 조정한다. 복잡한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이지만 조작은 직관적이고 단순하다. 날짜, 요일, 월, 연도, 문페이즈까지 모두 현재 양력 체계에 맞춰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크라운으로 시침과 분침을 움직여 날짜와 시간을 세팅하면 된다. 요일과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는 날짜와 연동되어 함께 움직인다. 보다 빠르게 날짜를 변경하고 싶다면 전용 도구로 케이스 왼쪽 버튼을 누르면 된다. 날짜, 요일,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를 하루 단위로 전진시킬 수 있다. 단, 날짜가 변경되는 시간대에는 절대 이 버튼을 사용하면 안 된다.


친절하게도 예거 르쿨트르의 워치메이커는 다이얼 중앙에 경고 시스템을 만들어두었다. 조작 금지 시간대가 되면(대략 저녁 8시에서 새벽 4시 사이) 중앙 인디케이터에 오렌지색 경고 표시가 나타난다. 시간을 맞추기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작동하는 것이 편의성은 물론 이 시계의 콘셉트에도 부합한다. 그런 점에서 파워 리저브가 70시간으로 늘어난 것은 매우 반가운 변화다.



퍼페추얼 캘린더를 제어하는 신형 엔진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구현하는 심장은 칼리버 868AA 오토매틱 무브먼트다. 현재 마스터 울트라-씬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에 사용 중인 칼리버 868/1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이 신형 무브먼트는 2019년 868A/2라는 이름으로 한정판 마스터 울트라-씬 퍼페추얼 에나멜 모델에 먼저 적용되었고, 올해 폴라리스 컬렉션을 통해 정식 데뷔했다. 가장 큰 변화는 파워 리저브의 증가다. 38시간에서 70시간으로 증가해 퍼페추얼 캘린더의 지속적인 작동에 도움을 준다. 두께는 4.72mm로, 퍼페추얼 캘린더 무브먼트로는 매우 얇은 두께다. 데이트 기능만 있는 칼리버 899의 두께가 4.64mm니 차이가 거의 없는 셈.


868/1과 비교하면 다이얼 레이아웃도 크게 달라졌다. 기존 무브먼트는 3시 날짜, 6시 월, 9시 요일, 12시 문페이즈, 그리고 7시 30분 방향에 별도로 연도를 표시한다. 신형 무브먼트는 3시 요일, 6시 문페이즈, 9시 날짜, 12시에 월을 표시한다. 정확히 상하좌우로 대칭을 이룬다. 또 기존에는 문페이즈 창에 하나의 달만 표시했는데, 새 무브먼트에서는 북반구의 달을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로, 남반구의 달을 레트로그레이드 형태로 함께 표시한다. 연도 표시는 12시 방향 서브 다이얼에 통합시켰다.


브레이슬릿은 기존 폴라리스 컬렉션과 큰 차이가 없다. 스틸 모델의 경우, 퀵체인지 시스템을 적용한 스틸 브레이슬릿을 기본으로 블루 러버 스트랩과 폴딩 클래스프를 추가 제공한다. 골드 모델의 경우에는 블루 러버 스트랩에 블랙 앨리게이터 레더 스트랩이 추가된다. 브레이슬릿의 착용감은 뛰어난 편이지만 미세 조정 기능이 생략되었고 디자인 역시 다소 평이하다는 게 아쉽다. 스포츠 워치로서 100m 방수 기능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본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것도 사실. 4개의 서브 다이얼에 이너 베젤까지 결합되어 지나치게 복잡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복잡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장점이 될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맞춰 함께


우리가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를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능적으로 보면 날짜만 표시하는 데이트 워치보다 어쨌든 편리하다. 연, 월, 일, 요일을 다이얼에서 동시에 확인할 수 있고, 28일이나 30일로 끝나는 달에 수동으로 날짜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에서 편의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복잡한 다이얼을 통해 미학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캘린더를 표시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다이얼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의 진정한 가치는 이러한 기능과 디자인의 영역 너머에 있다.


일반적인 기계식 시계는 현실의 시간과 분리되어 있다. 오차 얘기가 아니다. 그저 서로 다른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시계 다이얼 아래 숫자 휠은 기호일 뿐이다. 현실의 시간은 계속 앞을 향해 질주하지만 시계의 날짜창은 그저 ‘31’이 ‘1’로 되돌아갈 뿐이다. 멈춘 시계를 다시 맞추거나 틀어진 날짜를 수동으로 변경하면 단절감은 더욱 커진다. 현실의 시간에 시계의 핸즈와 데이트휠을 맞춰서 사용하는 감각이랄까?


반면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는 삶의 시간과 발을 맞춰 함께 흘러간다. 특히 예거 르쿨트르의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는 연도까지 표시하기 때문에 인생에서 유일한 ‘오늘’이 더욱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그렇게 시계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하나의 흐름 속에 포개진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 역시 날짜를 뒤로 되돌릴 수 없다. 시간의 비가 역성을 구조적으로 재현하는 셈이다. 혹시라도 시간을 맞추다가 날짜를 지나쳤다면 크라운을 뽑아 삶의 시간이 따라올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시계가 오래 멈췄다면 핸즈를 움직여서 삶의 시간이 지나간 길을 따라잡으면 된다. 어쨌거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같이 걷는다.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는 시간과 동행하는 감각을 스포츠 워치 장르를 통해 일상 속 언제 어디서나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삶의 속도에 맞춰 흘러가는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은 늘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스포츠 워치에 더 잘 어울리는 구성이 아닐까? 오늘도 함께 걷는다. 밤하늘의 달을 보며, 밤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

Ref. Q9088180


지름 42mm

케이스 스테인리스 스틸,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백, 10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셀프 와인딩, 칼리버 868AA

기능 시, 분, 초, 퍼페추얼 캘린더,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 표시된 문페이즈

다이얼 그레인드 블루

스트랩 스테인리스 스틸, 블루 러버, 3중 폴딩 클래스프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

Ref. Q9082680


지름 42mm

케이스 핑크 골드,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백, 10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셀프 와인딩, 칼리버 868AA

기능 시, 분, 초, 퍼페추얼 캘린더,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 표시된 문페이즈

다이얼 그레인드 블루

스트랩 블루 러버, 블랙 앨리게이터 레더, 3중 폴딩 클래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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