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자동차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 자동차는 5년 후 어느 날 세상에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는 은밀한 프로젝트였다. 철통 같은 보안을 통해 존재를 숨겨야 했다. 그래야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고,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됐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신차 효과’다. 하지만 모빌리티를 꿈꾸는 요즘 세상 속 자동차 마케팅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자동차에서도 첨단 전자제어 영역이 늘어나며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처럼 위탁 생산하거나 핵심 부품 외주 생산이 가능해진 상황이다. 이것이 자동차 생산 시장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불과 몇 년 사이에 거대 자본을 갖춘 스타트업이 자동차 시장에 속속 등장했다. 이들은 앞으로 등장할 자동차를 미리 선보이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래를 보여주는 상품은 기업의 주가를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또 시장의 반응을 살피며 출시 시점까지 상품을 수정하고 개선하는 방법이다. 어쩌면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콘셉트카의 영역일 수 있다. 자동차 회사의 미래 전략과 기술을 미리 볼 수 있었던 콘셉트카가 비대면, 온라인 시대에 맞춰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등장할 자동차로 모습을 변화했다고 본다. 이런 흐름이 이슈화되면서 일부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도 향후 1~2년, 길게는 3년 후에 등장할 자동차를 미리 공개하는 전략에 동참하고 있다. ‘미래가 지금이다’라는 설명이 어색하지 않은 근미래에 등장할 자동차 5대를 소개한다.
ASTON MARTIN VALHALLA
2019년 애스턴마틴이 세상에 공개한 AM-RB003 콘셉트카의 양산형 프로토타입이 드디어 등장했다. 이름하여 발할라. 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사들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이 모델은 F1 레이싱카에서 테스트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내연기관 하이퍼카가 하이브리드/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전환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발할라의 새로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의 중심에는 750마력을 발휘하는 V8 4.0L 트윈 터보 엔진이 있다. 애스턴마틴 특유의 감성적인 영역을 유지하기 위해 배기음과 엔진 사운드에 특히 신경 썼다. 엔진과 맞물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2개의 모터를 앞뒤로 배치한 구조에 150kW/400V 배터리를 조합해 최대 204마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내연기관 엔진과 하이브리드 전기 시스템을 합해 발휘하는 출력은 약 937마력이다. 그 결과 발할라의 최고 속도는 시속 330km, 2.5초 만에 정지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할 수 있다. 주행 상황에 따라 배터리 파워를 100% 뒷바퀴로 전달하는 주행 시스템도 특징이다. 전 세계 500대 한정 모델로 가격은 80만 달러(약 9억4,300만 원). 2023년 2분기 생산을 목표로 한다.
ESTREMA FULMINEA
에스트리마 풀미네아는 이탈리아 오토모빌리티 에스트리마의 첫 번째 EV 하이퍼카다. 풀미네아가 이탈리아어로 ‘번개처럼 빠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자동차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길고 날렵하게 디자인한 차체는 마치 르망 레이스카처럼 공격적이다. 거대한 리어 스포일러를 비롯해 차체 곳곳에 공기역학을 뒷받침해주는 장치가 녹아들었다. 차 무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팩은 앞뒤 바퀴 액슬 위에 분할 배치했다. 배터리 팩은 전기 충전 밀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높여 크기와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였
다. 이 때문에 무게를 1,500kg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4개의 전기 모터까지 갖출 수 있었다. 풀미네아는 각 바퀴에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전기모터로 최대 2040마력을 발휘한다. 이론상 최고 속도는 시속 520km에 달하고, 정지에서 시속 320km까지 약 10초 만에 가속할 수 있다. 2023년 하반기에 첫 번째 고객에게 배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격은 약 196만1,000유로(약 26억3,000만 원)로 책정될 예정이다.
GMC HUMMER EV
허머는 크고 육중한 SUV로 일반 차량보다 주로 군용 트럭으로 볼 수 있는 자동차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GMC의 노력은 허머를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바꿔놓았다. 일단 GM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얼티움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 3개의 전기모터를 달아 네 바퀴로 동력을 자유롭게 분배하며 일반 도로와 험로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최고 출력은 트림에 따라 625~820마력 수준. 육중한 덩치에도 0 → 시속 100km 가속에 3.7초면 충분하다.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도 약 450km 이상이고, 800V DC 고속 충전 시스템으로 불과 수분 만에 배터리의 80% 이상을 충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크랩 모드로 불리는 주행 기술도 특징이다. 앞바퀴와 뒷바퀴가 독립적으로 방향을 바꾸며 마치 ‘게’처럼 대각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 탈착 가능한 지붕을 달아 하늘을 마주하는 오픈 에어링도 가능하다. 2023년 1분기 출시 예정. 가격은 7만9,995~10만5,595달러(약 9,500만~1억2,500만 원)로 알려졌다.
FISKER OCEAN
치열한 전기 SUV 시장에서 ‘피스커 오션’이 돋보이는 이유가 있다. 피스커 오토모티브 창립자 헨릭 피스커가 애스턴마틴이나 BMW 같은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피스커 오션은 뛰어난 스타일링과 합리적인 가격, 테슬라를 뛰어넘는 주행거리가 무기다. 스포츠카처럼 생긴 얼굴과 콘셉트카처럼 커다란 휠, 날렵한 보디라인이 특징이다. 실내는 커다란 버티컬 중앙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끈다. 친환경 소재와 재활용 부품 사용 범위를 늘려 화학물질 배출을 줄이고, 지붕 전체를 태양광 패널로 덮어 전기 생산 효율을 극대화할 예정이다. 완전히 새로운 순수 전기 플랫폼에 앞바퀴 굴림 단일 모터, 앞뒤 독립 모터 네 바퀴 굴림 트림을 갖췄다. 주행거리는 1회 충전에 560km가 넘으며 시스템 최고 출력은 279~550마력 수준이다. 가격은 3만7,499~6만8,999달러(약 4,400만~8,200만 원)로 기존 순수 전기 SUV 세그먼트에 비교하면 대단한 가격경쟁력을 갖추었다. 2022년 11월 생산을 목표로 예약 접수를 시작했다.
RUCID AIR
미국의 신흥 전기차 브랜드 루시드가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성능과 주행거리는 테슬라 모델 S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품질 높은 마감과 고급스러운 구성 때문이다. 에어는 미국 테스트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가 무려 650~830km에 달한다. 단 20분 급속 충전으로 480km를 주행할 수 있다는 것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료 재급유 수준으로 충전 효율성이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일반 트림에서 최대 출력은 480~800마력 수준. 이 정도로도 충분하지만 고성능 모델 에디션 P는 1080마력을 발휘한다. 이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에 단 2.6초가 걸린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루시드 에어는 웬만한 내연기관 슈퍼카보다 출력이 높고, 테슬라 모델 S 롱레인지보다 주행거리가 길며, 고급스러운 옵션으로 치장한 자동차다. 이 차의 존재에 대해 설명이 더 필요할까? 가격은 7만 7,400~16만9,000달러(약 9,200만~1억990만 원)다. 올해 겨울부터 미국 고객에게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고, 유럽 및 다른 국가 시장 진출은 2022년 이후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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