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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 750S 스파이더

Performance Makes Gentleman


 

맥라렌의 영혼은 레이스에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도로와 에스토릴 트랙, 그리고 영국 서리주 워킹의 본사를 오가며 오로지 최고의 성능을 지향하는 순수한 정신에 빠져들었다. 맥라렌의 레이싱 DNA는 신작 750S 스파이더에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었다.




해외에 나오면 괜히 눈이 일찍 떠진다. 단순히 시차 적응에 실패해서가 아니다. 낯선 환경, 그리고 새로운 경험의 예고는 언제나 설레니까. 창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고 날씨를 확인한다. 옅은 구름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 태양이 나에게 “오늘은 비가 내리지 않아”라고 말한다. 다행이다. 여기는 포르투갈 리스본이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 동네는 약 8년 전에도 온 적이 있다. 당시 이곳에서 독일산 SUV를 시승했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도로도 깔끔해 언젠가는 여기에서 슈퍼카로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마음이 간절했는지 드디어 오늘 그 막연했던 꿈이 현실로 실현되었다. 그 그림 속에는 내가 있고 난 맥라렌 750S 안에 있다. 바람의 온도마저 낭만적이다.


오묘한 은빛 물감으로 단장한 맥라렌 750S 스파이더를 타고 리스본을 누비고 있다. 최근 맥라렌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고 있는 720S 시리즈의 마이너체인지 버전 750S가 등장했다. 겉모습에 큰 변화는 없지만 765LT의 하드코어한 성격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것도 720S보다 편안한 면모를 취하면서. 말은 쉽다고들 하는데, 맥라렌 엔지니어 또한 정말로 쉽게 말했다. 그의 자신 있는 표정을 보며 750S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그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먼저 리스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승차감에 놀랐다. 분명 단단한데 결코 딱딱하지도, 그리고 충격에 튀지도 않았다. 유럽 특유의 돌길을 다닐 때도 차체가 부서질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과속방지턱도 당당히 넘을 수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4초 만에 차고를 들어 올린다. 참고로 720S는 같은 동작에 10초 걸렸다. 이제 과속방지턱 앞에서 뒤차 눈치 볼 필요 없다는 소리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곧 달릴 수 있는 구간이 나온다. 섀시와 파워트레인 모드를 스포츠에 두고 가속페달을 활짝 열어버린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가속력이다. 요즘 차들의 750마력은 750마력 같지 않게 느껴지는데, 맥라렌의 750마력은 마치 1000마력처럼 강력하다. 물론 이보다 빠른 내연기관차도 있고 전기차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폭발력은 맥라렌만이 보여준다. V8 4.0L 엔진에 트윈스크롤 터빈 두 발을 달았다. 최고 출력은 앞서 말했듯 750마력이고 최대 토크는 81.6kg·m다. 이 엔진은 레이스카의 심장을 만드는 영국의 리카르도에서 가져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7초다. 재미있는 것은 스파이더가 쿠페보다 50kg 정도 무거운데 쿠페의 시속 100km 가속시간도 2.7초로 같다는 점이다. 보통 쿠페와 오픈톱 모델의 0→시속 100km 기록은 0.1초에서 많게는 0.2초 차이 나는데, 750마력 정도되면 옆좌석에 여자 친구를 태워도 가속력에 큰 지장을 주지 않나 보다.




맥라렌 750S 스파이더


엔진 V8 트윈 터보, 4.0L, 750마력

최대 속도 시속 332km

변속기 7단 DCT

가격 4억 원대



빠른 것도 빠른 것이지만 맥라렌을 탈 때마다 인상적인 것은 파워트레인 감성이다. 여느 슈퍼카 브랜드와 결이 다르다.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하이엔드 튜닝카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가령 BMW E92 M3의 S65와 같은 명품 자연 흡기 엔진에 가레트 볼베어링 터빈 2개를 달고 티알 웨이스트 게이트, HKS 블로우 오프 밸브, ITG 오픈 흡기, 그리고 인코넬 소재로 똬리를튼 매니폴드로 무장한 파워 유닛 말이다. 그리고 결과는 다이노에서 크랭크 마력이 아닌 휠 마력으로 750마력을 찍는 괴물로 구현된다. 이러한 비유가 완성도 떨어지는 파워트레인을 의미하는 게 아니니 오해하진 말기를. 단지 출력을 박력 있게 표현하는데, 이게 바로 맥라렌 스타일이다. 맥라렌만이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표현이다. 정말 매력적인 엔진이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상남자에게 어울리는 브리티시 머슬카다.


마음먹고 해외에 나왔으니 가속페달을 더 밟아본다. 참, 리어 윈도 내리는 것을 깜빡했다. 스파이더는 리어 윈도만 내릴 수 있다. 배기 사운드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아이템이다. 배기 사운드는 거칠다. 이탈리아 슈퍼카들이 연주를 한다면 750S 스파이더는 차가운 기계의 폭발음을 들려준다. 볼륨도 크고 음색도 마초적이다. 터빈이 달렸지만 부밍음을 억제해 톤 자체가 먹먹하지 않은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또 불규칙적으로 터지는 백프레셔 사운드는 박력을 넘어 폭력적이다. 터질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이 배기 사운드처럼 고속에서도 힘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1000마력짜리 차가 옆에서 시비를 걸어도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스로틀 리스폰스도 빠르고 터보 래그는 살짝 느껴지지만 오히려 스풀업이 걸리기 전부터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펼쳐 보이는 티저처럼 다가온다. 고속 안정감도 상당히 좋다. 최고 시속이 332km에 달하다 보니 그 이하의 시속 200km대에서는 여유가 넘친다. 예전에 720S와 GT, 아투라,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570S를 탈 때도 느꼈지만 맥라렌은 속도를 올릴수록 차체가 깔리는 체감이 크다. 잘 빚어놓은 디자인과 최고급 섀시 설계 덕분이다.




변속기는 그라치아노의 7단 듀얼 클러치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대부분 ZF 혹은 게트락이 만든다. 그라치아노 변속기는 리카르도의 엔진처럼 레이싱에 초점을 둔다. 변속 속도는 당연히 빠르지만 변속감은 토크 컨버터보다는 수동 변속기의 클러치가 붙는 느낌이 강하다. 미션 마운트를 강하게 죄어 변속 충격도 엄청나고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다. 거침없이 엔진 회전수를 올려버린다. 이때 엔진이 힘들어하거나 신경질을 부리지도 않는다. 엔진과 변속기의 쿵짝이 잘 맞는다. 패들 시프트는 스티어링 휠에 마운트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타입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작동감은 괜찮다. 굳이 장점을 꼽자면 한손으로 기어를 올리고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자 친구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서스펜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로드 친화적으로 조율했다. 맥라렌이 승차감에서 크게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극적인 움직임에 대처를 잘하고 언제나 트랙션이 좋은 게 바로 이러한 세팅 때문이다. 진지한 카본 터브로 중심은 강하게 잡고, 앞뒤 서브프레임은 유연함과 관용성을 의도한다. 맥라렌은 양산차를 선보인 시점부터 이 같은 튜닝을 추구한다. 전 라인업이 카본 터브인 맥라렌을 처음 타면 이 레이스카 포맷 특유의 이질감(우리는 모노코크에 익숙하다) 때문에 승차감이 안 좋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노면 충격에도 튀지는 않는다. 레이스카 감성이 느껴지면서 적극적인 스포츠 드라이빙 때 안전까지 보장해주니 고맙다. 게다가 750S 스파이더는 720S(스파이더 포함)보다 승차감이 좋다. 720S와 비교해 스프링레이트가 앞쪽은 3% 부드러워졌고 뒤쪽은 4% 단단하다. 그 때문에 승차감은 살짝 더 좋고 뒤는 더 빠릿빠릿하게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최고급 코일오버를 장착하고 이를 최적의 감쇠력으로 맞춘 다음 바로 탔을 때의 기분이다.



실제로 750S에는 댐퍼와 스프링이 코일오버 타입이다. 카본 터브와 코일 오버, 그리고 앞뒤 완벽한 더블 위시본이 750S의 구성품이다. 이 파츠 조합만으로도 코너링 퍼포먼스는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 리스본의 와인딩을 타보지 않을 수 없다. 코너링 성향은 역시 뉴트럴스티어다. 물론 예민하게 파악하면 약간의 언더스티어가 느껴지지만 앞 타이어 폭이 245mm인 것을 감안하고 이 정도 프런트 트랙션을 보여준다면 이 섀시 자체의 성향은 완벽한 뉴트럴스티어다. 큰 돈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얼라인먼트와 타이어 세팅으로만 운전자 입맛에 맞는 코너링 성향을 만들 수 있다. 스티어링 피드백은 정말 빠르고 솔직하다. 여기에 스티어링 휠만 논 파워였다면 로터스가 될 뻔했다. 물론 하이엔드 럭셔리 로터스다. 생각해보면 가볍기로 유명한 로터스의 엘리스까지는 아니지만, 엑시지와 몸무게 차이가 크지 않다.

그래서 복합 코너에서도 더 과감하게 대시할 수 있다. 카본 터브는 이런 오픈톱 모델에서 그 매력을 더 속속들이 실감할 수 있다. 필러 몇 개가 삭제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차체 강성은 쿠페와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750S 스파이더는 쿠페 대비 별다른 하체 보강을 하지 않았다. 기초 골격이 얼마나 탄탄하면 상단 지지대가 없어도 비틀림 강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이렇게 섀시가 최고급이니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다 받아준다. 가속과 브레이킹으로 하중 이동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스티어링 휠만 라인대로 돌리면 된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넘기는 리듬이 자연스럽고 재빨라 섀시가 엉키는 일도 없다. 운전자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제 오픈 에어링과 코너링을 동시에 즐겨보기로 한다. 루프는 시속 50km 이내에서 11초 만에 여닫을 수 있다. 하드톱 치고는, 아니 소프트톱을 포함하고도 정말 빠른 작동 속도다. 바람이 실내로 휘몰아치지 않아 여유로운 오픈 에어링이 가능하다. 확실히 루프를 열고 달리니 체감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서인지 코너링 한계값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코너를 돌면서 나도 모르게 속도를 줄이고 있다. 그럼에도 차체가 라인 안쪽으로 말리지 않는다. 제동의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앞 6피스톤, 뒤 4피스톤 모노 블록 캘리퍼가 각각 390mm, 380mm의 카본 세라믹 디스크 로터에 물려 있다. 브레이크 퍼포먼스는 파워트레인과 섀시 대비 오버스펙이다. 노즈다이브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은 완전히 억제했다. 개인적으로 맥라렌 하면 가장 먼

저 떠오르는 게 바로 브레이크 페달의 감각이다. 양산차 중에서 스트로크가 가장 짧고 답력이 무겁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양발 운전 연습용으로는 맥라렌이 최고다. 과거 람보르기니 쿤타치의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보고 놀랐을 때의 그 느낌이다. 옛날 슈퍼카의 정의는 단순히 번호판을 달 수 있는 레이스카였는데, 그 정의가 맥라렌에는 고스란히 살아 있다.



750S 스파이더와 허락된 시간은 이제 끝나간다. 과연 맥라렌 750S 스파이더는 현재 슈퍼카 시장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돈을 들고 전기모터 없이 750마력을 내는 슈퍼카를 사러 갈 매장은 맥라렌뿐이다. 모두 친환경 테마에 동참하느라 750마력 정도의 출력에는 무조건 전기모터를 추가한다. 전기모터와 배터리로 무게가 늘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바로 이 슈퍼카, 맥라렌이 가장 좋은 선택지다. 맥라렌을 순수한 슈퍼카로 여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맥라렌이라면 당연한 아이템인 카본 터브, 버터플라이 도어, 그리고 리카르도 엔진까지. 사실 리카르도 엔진을 접해본 이들은 많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맥라렌 엔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고,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면 평생 못 잊을 감각이다. 거침없이, 그리고 대놓고 힘 자랑을 하는 차는 흔하지 않으니까. 750S 스파이더는 올드 스쿨 스타일로 최신 유행을 따르는 경쟁자들을 제압해버리는 근사한 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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