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을 질주하는 레이싱 DNA

Richard Mille RM 65-01

 
Richard Mille RM 65-01


슈퍼 리치들의 필수품


이 세상에는 그런 물건이 있다. 단지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부와 성공을 드러내는 물건. 자동차로 치면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가 그런 브랜드일 것이다. 그런데 슈퍼카는 너무 요란하다. 24시간 언제나 타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좀 더 자연스럽게 어떤 상황에서나 슈퍼 리치로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방법이 없을까? 리차드 밀은 바로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계다. 리차드 밀을 소유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기계장치를 언제든 몸에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계 산업에서 가격과 편의성은 대체로 반비례 관계였다. 고급 소재와 복잡한 기술을 적용한 모델은 대체로 무겁고 외부 충격에 취약했으며, 일상에서 편하게 착용하기 어려웠다. 리차드 밀은 이런 공식을 파괴했다. 기계적인 완성도, 기능성, 심미성을 모두 충족시키면서도 놀랍도록 가벼운 무게와 착용감, 그리고 내구성을 확보한 것이다. 덕분에 리차드 밀의 타임피스는 보관함에서 잠드는 법이 없다. 착용자의 매 순간과 함께하면서 기계식 시계가 도달해야 할 최고의 가치를 제공한다. 단순히 가격표만 놓고 본다면 리차드 밀은 매우 비싼 시계다. 하지만 사용하는 시간 대비 가치를 매긴다면 슈퍼 리치들에게 이보다 가성비 좋은 아이템이 또 있을까? 세금이나 유지비 걱정 없이 24시간 착용할 수 있는 슈퍼카. 리차드 밀은 그런 물건이다.



타협하지 않는 극한의 타임피스


리차드 밀은 2001년 탄생한 브랜드다. 이제 막 20년이 지났지만, 이 짧은 시간에 전 세계 시계 산업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창업주 리차드 밀은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모브생의 시계제조부 사장이었다. 그는 시계 설계·제조 과정에 직접 관여하면서 스위스 시계 전문가들과 인연을 맺었다. 창의적인 시계를 만들고 싶었지만 회사의 전략과 비용 문제로 한계에 부딪혔고, 리차드 밀은 한계를 뛰어넘는 시계를 만들기 위해 독립했다. 그의 첫 작품인 RM 001 투르비용은 모던하고 독창적인 타임피스로, 이후 출시되는 리차드 밀 시계는 물론 타 브랜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RM 001 투르비용의 가격은 20만 유로(약 2억7,000만 원). 신생 브랜드로서는 매우 높은 가격이었으나 선결제 주문만 수백 건이 몰렸다. 리차드 밀의 가치를 고급 시계 소비자가 먼저 인정한 것이다. 리차드 밀은 기술이나 비용과 타협하지 않고 극한의 타임피스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혁신적인 기술과 신소재를 적극 활용했다.


RM 001 투르비용
RM 001 투르비용

첫 번째 시계에 영감을 준 것은 F1 자동차의 설계·개발과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브랜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F1 자동차 섀시에서 영감을 받은 카본 유니보디 베이스 플레이트를 비롯해 토크 인디케이터, 기능 셀렉터 등 많은 구성 요소가 모터 스포츠에서 탄생했다. 또 기술적으로 작업하기 어려운 소재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카본 TPT Ⓡ, 쿼츠 TPT Ⓡ 등이 대표적이다. 제작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접근한다. 시계에서 느껴지는 기계적 아름다움은 극단의 기능주의에서 얻은 결과물일 뿐이다. 이 또한 최고의 성능을 추구하되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는 F1 자동차에서 가져온 것이다. 모든 부품에는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으며, 엄격한 기준에 따라 생산된다. 생산 수량이 적고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조 방식도 독특하다. 리차드 밀에는 사실상 표준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품별 콘셉트에 따라 구성 요소를 매번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위해 각 분야의 최고 전문 공급업체와 협력한다. 이는 전통적인 스위스 시계 산업의 구조를 현대적으로 최적화한 것이며, 일종의 제품별 전용 매뉴팩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리차드 밀

리차드 밀 크로노그래프 기술을 집적한 최신작


F1 자동차에서 영감을 받은 만큼,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창립 초기부터 리차드 밀의 시그너처 기능으로 자리 잡았다. 2004년 리차드 밀은 르노 & 파피(Renaud & Papi)와 협업해 첫 크로노그래프 워치인 RM 004 및 RM 008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를 선보였다. 그리고 2007년에는 첫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워치인 RM 011을 출시했다. 가변 지오메트리 로터와 애뉴얼 캘린더 기능을 갖춘 RM 011은 리차드 밀의 대표 모델 중 하나가 되었다. RM 65-01은 이러한 리차드 밀의 독창적인 크로노그래프 기술을 집적한 최신작이다. 오토매틱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춘 이 타임피스는 독특한 토노형 케이스와 화려한 인덱스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로 44.5mm, 세로 49.94mm의 케이스는 꽤 두툼하고 큼직하다. 하지만 불편한 느낌은 전혀 없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한 듯 손목과 하나가 된다. 케이스 윗면의 완만한 곡선이 스트랩 라인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감각이다. 러버 스트랩은 슈퍼카의 에어 덕트처럼 날렵하게 타공 처리해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케이스 소재는 세부 모델별로 차이가 있다. 리뷰를 진행한 모델의 경우, 레드 골드 소재를 메인으로 사용하면서 카본 TPTⓇ 소재를 적절하게 혼용했다. 단, 8시 방향의 고속 와인딩 버튼에는 레드 컬러 쿼츠 TPTⓇ 소재로 포인트를 주었다.



다이얼 곳곳에 숨은 레이싱 DNA


다이얼은 오픈워크 스타일이다. 무브먼트에 두께 0.35mm의 사파이어 크리스털 소재 다이얼을 올리고 인덱스를 부착했다. 인덱스는 화려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있다. 시·분·초와 관련된 인덱스는 옐로 컬러, 날짜 관련 인덱스는 그린 컬러다. 크로노그래프 관련 기능은 오렌지 컬러로, 스플릿 세컨즈 기능은 블루 컬러로 설정했으며, 와인딩 관련 기능은 레드 컬러로 처리했다. 11시 방향의 데이트 창 숫자는 세로로 배열해 스포티한 멋이 느껴진다. 케이스와 다이얼이 만나는 플랜지에는 아주 작게 타키미터 스케일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타키미터 스케일이 없더라도 이 시계가 F1 자동차의 DNA를 품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4시 방향 기능 셀렉터는 자동차의 기어 박스를 조작하는 감각 그대로다. 크라운의 푸셔를 누를 때마다 레트로그레이드 스타일의 화살표가 포지션을 바꾼다. W는 와인딩, D는 날짜 조정, H는 시간 조정이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지점에서 크라운을 돌리면 해당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사실상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인데, 크라운의 정확한 포지션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조작 과정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제공한다. 서브 카운터도 자동차 휠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비주얼이다. 메인 플레이트 중앙에 육각형 프레임을 배치하고, 그 위에 다시 3개의 서브 카운터를 올려 입체감을 더했다. 3시 방향의 30분 카운터를 더 크게 디자인해 시인성을 확보하면서 비대칭의 멋을 극대화한 것도 마음에 든다.


RM 65-01 모델의 크라운
RM 65-01 모델의 크라운



차세대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RM 65-01에 사용한 RMAC4 칼리버는 리차드 밀 최초의 오토매틱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로, 협력사인 보쉐(Vaucher)와 함께 개발했다. 600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된 이 무브먼트는 마치 기계식 두뇌처럼 정확하게 움직이면서 리차드 밀의 탁월한 기술력을 보여준다. 플레이트와 브리지는 티타늄 소재를 그레이 전기 플라스마와 블랙 PVD 코팅으로 마감해 완성했다. 가변 관성 5Hz 고진동 밸런스는 높은 안정성과 정확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1/10초 측정까지 지원한다. 칼럼 휠에 수직 커플링 구조를 적용한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기능으로 서로 다른 두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차세대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메커니즘으로 무브먼트에 발생하는 마찰을 줄이고, 초침의 관성 작용에 의한 점핑 현상을 제거했으며, 에너지 소모까지 낮췄다. 리차드 밀 오토매틱 시계의 특징 중 하나인 가변 지오메트리 로터도 RM 65-01을 위해 새롭게 디자인되었다. 웨이트 위치를 변경해 로터의 회전력을 조절함으로써 착용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와인딩을 구현할 수 있다. 고속 와인딩 메커니즘 역시 빠르고 효율적인 와인딩을 돕는다. 이 기능은 푸셔를 눌러서 와인딩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자에게 마치 놀이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푸셔를 125회 정도 작동하면 풀 와인딩이 되는데, 시계가 멈춘 상태에서 곧바로 와인딩을 시작할 수 있어 기능적으로도 유용하다. 리차드 밀은 이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수준 높은 토크 전달력을 확보하는 한편, 수천 번의 반복 테스트를 완료했다.



21세기 워치메이킹의 방향을 제시하다


아주 먼 훗날 스위스 시계 산업 역사에 대한 책을 쓴다면, 2000년대의 첫 페이지에는 어떤 브랜드가 등장할까? RM 65-01을 살펴보면서 그 주인공은 리차드 밀이 아닐까 생각했다. 리차드 밀은 스위스 워치메이킹을 재정의했고, 21세기 럭셔리 시계 산업이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보여주었다. 전통적인 시계 브랜드들은 대부분 과거의 영광을 지키는 쪽으로 진화했다. 물론 점진적인 혁신을 시도했으나 기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역사가 길수록 지켜야 할 유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에 태어난 리차드 밀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들은 진화하는 기술과 환경에 맞춰 워치메이킹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비용과 기술적 한계에 타협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첨단 기술을 시계 산업에 접목했으며, 각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해 최고의 타임피스를 만들어냈다. 지난 20년 동안 여러 브랜드가 리차드 밀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이를 추종했다. 하지만 어떤 브랜드도 리차드 밀을 추월하지는 못했다. 이는 브랜드의 타협하지 않는 정신과 시계에 대한 진정성을 시장에서 인정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는 많다. 하지만 새로운 흐름과 시장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는 흔치 않다. 리차드 밀은 21세기 워치메이킹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타협하지 않는 정신으로 정상의 자리를 지켜나갈 것이다.


RM 65-01
RM 65-01 / 지름 44.5×49.94mm / 케이스 18K 레드 골드, 카본 TPTⓇ,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백, 50m 방수 / 무브먼트 기계식 셀프 와인딩, RMAC4 칼리버, 36,000vph, 약 60시간의 파워 리저브 / 기능 시, 분, 초, 날짜,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기능 셀렉터, 고속 와인딩 메커니즘, 가변 지오메트리 로터 / 다이얼 사파이어 크리스털 / 스트랩 블랙 러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