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고요한 작은 우주

JACOB & CO Astronomia Solar Zodiac

 
아스트로노미아 투르비옹
아스트로노미아 투르비옹


시간과 우주의 연결 고리를 풀어내다


시계라는 물건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호로 표시한다. 그래서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곳은 본질적으로 우주와 닿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시계는 본질보다 기호에 주력한다. 일상에서는 지구와 별의 움직임보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 표시가 더 중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 잊고 지내던 다이얼 너머의 세계, 그러니까 시간과 우주의 연결 고리를 풀어낸 시계가 있다. 소위 ‘천체 시계’라 불리는 타임피스다. 제이콥앤코의 아스트로노미아 솔라는 태양계 8개 행성 을 담아낸 천체 시계다. 439개의 부품으로 태양계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구 현한다. 시간을 표시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우주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한 작품에 가깝다. 시·분 다이얼이 있긴 하지만 이는 시계를 구성하는 세부 요소에 불과하다. 중심 테마는 무중력인 우주의 공간감과 역동성을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무브먼트에 연결된 투르비용 케이지, 시·분 다이얼, 그리고 작은 지구 모형은 제각각 자전하면서 가운데 위치한 태양 주위를함께공전한다. 그 아래 베이스 다이얼에는 지구를 제외한 태양계 7개 행성이 그려져 있으며, 무브먼트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태양계의 움직임을 속도감 있게 표현한다. 또 수직 구조의 무브먼트에 각 구성 요소의 높이를 다르게 배치해 독특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이렇게 속도감과 공간감이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소우주가 완성된다.



파이브 타임존
파이브 타임존


주얼리 브랜드에서 워치메이킹 브랜드로


제이콥앤코는 1986년 뉴욕에서 탄생한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주얼리 브랜드다. 주얼리 디자이너 제이콥 아라보가 21세에 창업했으며, 199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셀럽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유명 브랜드로 빠르게 성장했다. 2002년부터는 워치메이킹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첫 타임피스 컬렉션 ‘파이브 타임존’을 시작으로, 2006년에는 31일간의 파워 리저브와 수직 투르비용을 갖춘 ‘쿠엔틴(Quenttin)’을 출시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본격적으로 시계를 제작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두 번째 본사를 설립하는데, 이때부터 특유의 독창적인 시계를 대거 출시했다. 제이콥앤코는 극한의 하이엔드 워치를 지향한다. 주요 컬렉션 대부분이 리미티드 에디션이며, 생산 수량도 매우 적다. 브랜드의 궁극적 목표는 아름답고 역동적이며, 독특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제이콥앤코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시계를 만들고자 하며, 하나의 테마가 정해지면 모든 상상력과 기술력을 동원해 구현해낸다. 주얼리 브랜드에서 출발한 공예 예술의 DNA가 워치메이킹 분야에도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대표 컬렉션인 아스트로노미아는 2012년 스위스 본사 창립과 함께 기획되어 2014년 모습을 드러냈다. 디자인과 기능에 따라 여러 레퍼런스가 존재하는데, 2017년 출시된 아스트로노미아 솔라는 케이스 크기, 무브먼트 등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준 모델이다.



쿠엔틴
쿠엔틴


8개의 행성과 12개의 별자리


케이스 지름은 44.5mm로 생각보다 실착용에 무리가 없다. 다만 수직 구조의 무브먼트와 높은 돔 글라스로 두께가 상당한 편이다. 착용하기보다는 전시 하고 감상하는 데 좀 더 잘 어울린다. 케이스 디자인도 그런 용도에 부합한다. 케이스 측면에 사파이어 글라스를 적용했는데, 이를 통해 수직 구조 무브먼트의 이면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 케이스 뒷면을 통해 무브먼트의 단면만 드러내는 방식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부분이다. 케이스 전체가 전시장 쇼케이스 같 은느낌이든다.반구에가까운돔글라스역시우주공간을구현하는데적합 한 구성이다. 케이스 내부 바닥에는 진한 청색의 어벤추린(aventurine) 다이얼이 있다. 다이얼 소재로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표현했고, 그 위에 지구를 제외한 7개 행성을 입체적으로 담았다. 각 행성은 수공예 기법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특히 토성의 고리를 골드 컬러로 처리한 점이 인상적이다. 바닥에 깔린 베이스 다이얼 위로 무브먼트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다이얼 아래 무브먼트를 숨긴 일반 시계와는 정반대 구조다. 무브먼트 프레임에는 시·분 다이얼과 보석 등을 입체적으로 배치했다. 중앙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1.5캐럿의 황수정이 있다. 제이콥 컷R(Jacob CutR)으로 288면의 커팅 면을 구현했다. 그 주위로 자수정, 블루 토파즈, 감람석을 세팅했으며, 무브먼트 에서 이어지는 암(arm)에는 작은 지구가 연결되어 있다. 또 하나의 암에는 시 간 표시를 위한 다이얼이 있다. 이번에 살펴본 모델은 아스트로노미아 솔라 중에서도 ‘조디악’ 모델로, 숫자 인덱스 대신 12개의 별자리 이미지를 새겨 넣었다. 사파이어로 만든 다이얼에 각 별자리를 핸드 인그레이빙한 뒤 골드 컬러로 마무리했는데, 시계의 우주 테마와 잘 어울린다.



아스트로노미아 솔라 조디악

아스트로노미아 솔라 조디악


3개의 암으로 동력을 전달하는 수직 구조 무브먼트


칼리버 JCAM19는 지름 34.55mm의 수동 무브먼트로, 구조가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무브먼트는 배럴에서 밸런스 휠까지 각 중간 휠이 수평으로 배열 되어 있다. 하지만 아스트로노미아 솔라의 경우 베이스 다이얼 아래 배럴이 위치하고, 그 위로 각각의 휠을 쌓은 수직 구조다. 마치 나무 뿌리가 기둥과 가지를 통해 꽃으로 양분을 전달하듯, 아래쪽 배럴의 태엽이 수직 무브먼트를 통해 3개의 암으로 동력을 전달한다. 첫 번째 암은시·분 다이얼을 잡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특허 받은 ‘격차 시스템’ 덕분에 다이얼이 어느 위치에 있 든 12시 방향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두 번째 암은 ‘Jacob&Co’ 로고가 새겨진 중력 플라잉 투르비용 케이지의 2개 축을 고정한다. 이 투르비용 케이지는 60초에 1회전 하고, 10분에 시계 전체를 한 바퀴 돈다. 세 번째 암은 핸드 인그레이빙한 지구 모형을 고정하는데, 투르비용 케이지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무브먼트의 메인 프레임과 바닥의 베이스 다이얼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이는 태양계의 양식화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보다 빠른 속도감을 전달한다. 측면 어디에서도 크라운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케이스 뒷면에 2개의 레버가 있다. 하나는 시간을 조정하는 용도고, 다른 하나는 태엽을 감는 용도다. 어색하지만 직관적이고 심플한 방식이다.



나만의 우주로 떠나는 티켓


천체 시계는 대부분 우주의 현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반면 아스트로노미아 솔라의 태양계는 양식화되어 있다. 이 시계에서 지구의 자전주기 는 60초이고, 공전주기는 10분이다. 30초 간격으로 밤낮이 바뀌고, 2~3분에 한 번씩 새로운 계절이 찾아온다. 다른 행성도 마찬가지다. 7개 행성은 하나의 다이얼을 공유하며, 공전주기가 모두 동일하다. 즉 천체 현상의 정확성보다는 태양계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보는 즐거움이 크다. 천천히 움직이는 플라잉 투르비용과 푸른 지구, 그리고 별들을 바라보면 또 하나의 소우주를 만날 수 있다. 작은 케이스 안에서 별들은 현실의 시간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히 흘러간다. 잠시 지구 바깥 세계를 상상해본다. 우리의 시간은 우주의 움직임에서 비롯되었으나 이 시계는 역으로 자신의 근원인 우주를 움직인다. 우주를 테마로 한 여러 시계가 있지만 이만큼 멋지게, 역동적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제이콥앤코의 아스트로노미아 솔라는 나만의 우주로 떠나게 해주는 아름다운 티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