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and fast
슈퍼카에 다른 목적은 중요하지 않다.
빠른 속도와 정교한 움직임, 동시에 최고의 운전 재미만 갖추면 된다.
존재 목적에 충실한 최고의 스포츠카 3대를 직접 마주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즐거움, Ferrari 296 GTB
페라리는 296 GTB를 두고 ‘운전의 재미를 완벽히 재정의한 차’라고 소개한다. 이 설명은 글로는 이해할 수 없다. 차를 경험하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296 GTB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다. 엔진은 2,992cc, 6기통 트윈 터보이고, 전기모터와 직접 결합해 뒷바퀴 굴림으로 출력을 전달한다. 스티어링 휠에 터치식 주행 모드 설정 장치에서 전기 모드(eD)를 누르면 엔진은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춘다. 대신 “윙~” 하는 가상 전기사운드가 실내를 가득 채운다. eD 모드에선 시속 135km까지 엔진 없이 전기모터를 이용해 달릴 수 있다. 배터리 완전 충전 시 최대 주행 가능 거리는 25km 다. eD 외에도 하이브리드, 퍼포먼스, 퀄리파잉 주행 모드가 있다. 각 모드는 배터리 재충전과 방전(출력)의 균형이 핵심이다. 엔진이 본격적으로 출력을 쏟아내고 배터리와 모터 출력이 합세하는 퀄리파잉 모드에서 시스템 출력은 830 마력(75.4kg·m)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이 단 2.9초다. 숨 막히는 가속력에 차가 공간을 점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구동계가 매력적인 것은 즉각적인 응답성 때문이다. 가속페달을 갑자기 밟았을 때, 그러니까 엔진이 물리적으로 반응하기 어려운 찰나의 순간에 전기모터에서 곧바로 출력을 쏟아내면서 반응한다.
코너를 돌파할 때의 감각은 이상할 만큼 명료하다. 몸속에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뿜어져 나와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손과 엉덩이로 느껴지는 핸들링 감각이 그만큼 극대화된다. 코너링은 이전 경험을 토대로 머리로 예측한 라인보다 민첩하게 움직인다. 비현실적으로 빠른 핸들링을 갖추었다는 설명이 어울린다. 레이싱카처럼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운전자에게 크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마른 노면에서의 제동 거리도 기존보다 현저하게 단축되었고 반복적인 급제동에도 만족스러우면서도 일관된 제동력을 보여준다. 모든 위화감은 곧 사라진다. 그 자리는 자신감이 채운다. 296 GTB는 구시대적 슈퍼카의 감성을 애써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의 기술에 순식간에 매료될 만큼 운전이란 과정을 즐기게 해준다. 건조했던 인생이 갑자기 스릴 넘친다. 그런 관점에서 가격표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엔 가격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엔진 소형화에서 찾은 답, McLaren Artura
맥라렌은 언제나 진지한 차를 만든다. 제품의 모든 부분에 기능이 녹아 있는 디자인. 당장 마주할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성능을 담은 스포츠카에 집중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아주 빠르고 효율적인 스포츠카를 만드는 셈이지만, 이상하리만큼 흥분되는 운전 재미는 덜하다. 무뚝뚝하게 최고의 주행 성능을 발휘한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그런데 최근 한국 시장에 등장한 아투라를 경험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투라는 무척이나 빠르면서도 운전자를 쉽게 끓어오르게 할 만큼 재미를 준다. 그 해답을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서 찾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아투라는 맥라렌의 주력인 8기통 엔진에서 2개의 실린더를 덜어낸 V6 트윈 터보 엔진을 쓴다. 거기에 새롭게 개발한 E-모터를 연결해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가 동시에 힘을 발휘한다. 두 동력 기관은 각각 585마력과 95마력의 성능을 낼 수 있다. 이런 출력은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 굴림으로 직접 전달된다.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면 모든 것이 생기 있게 느껴진다. 눈앞에 보이는 저속 코너의 중심을 향해 가속페달을 과감하게 밟았다. 그러자 엔진이 막강한 출력을 발휘하며 순간적으로 차를 ‘휙’ 하고 밀어붙였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듯, 전방 시야가 휘몰아쳤다. 엔진이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을 전기모터가 채워나가며 빈틈없이 차를 밀어붙였다. 고속 주행에서도 공기를 가르는 데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반대로 급하게 제동할 때 끝까지 안정적이었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의 성능이 어찌나 뛰어난지 매 코너 직전에 볼살이 강하게 일그러졌다. 코너링도 환상적이었다. 모든 움직임을 이해하기 쉬웠다. 운전자의 요구에 명확하게 반응했다. 보기 좋은 양념으로 포장한 차가 아니었다. 자동차 성능이 너무 좋아서 자기 스스로 달리는 감각과도 거리가 있었다. 운전자와 꾸준히 소통하며 필요한 순간 반응했다. 그런 과정이 다른 맥라렌 모델에 비해 이해하기 쉬웠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스펙이 훨씬 높은 여느 맥라렌보다 운전이라는 과정이 재미있
었다. 적어도 일반 도로에서는 그랬다.
조절하기 어려운 심장박동, Lamborghini Huracán Tecnica
람보르기니 우라칸의 최신형 모델은 ‘테크니카’라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기술’을 뜻하는 만큼 주행 성능 면에서 진보한 슈퍼 스포츠카를 의미 한다. 이 차는 기술적으로 빠르게 변화한 최신형 하이브리드 슈퍼카들과 달리 여전히 전통적인 내연기관 엔진을 고수한다. 차세대 버전의 목표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현재는 100% 석유 연료를 불태우며 누구보다 격렬하게 도로를 질주한다. 환경오염이나 에너지 고효율성 측면에서 테크니카는 작은 핑곗거리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운전자의 심장박동을 요동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 온몸이 저릴 만큼 흥분되는 운전 감각. 동시에 세련된 마무리. 우라칸 테크니카의 존재 이유는 이런 목표로 귀결된다.
운전자 바로 뒤엔 5,204cc, 10기통 자연 흡기 엔진이 달렸다. 최고 출력은 640마력(57.6kg·m)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은 고작 3.2초다. 잔뜩 움츠리고 달린 시내를 지나 굽이치는 산길의 입구에서 테크니카는 갑자기 생기가 돈다. 엔진 회전수가 4000을 넘어서자 가변 배기 시스템이 작동하며 포효하기 시작한다. 공기를 강제로 밀어 넣는 과급 엔진과 달리 테크니카의 자연 흡기 엔진은 모든 영역에서 출력을 꾸준하게 쏟아낸다. 이런 특성은 코너링에 유리하다. 가속페달을 미세하게 밟으면서 정교한 코너링 속도로 연결할 수 있다. 엔진 특성뿐 아니라 섀시의 무게 배분과 세팅 특성도 이해하기 쉽다. 급격한 코너링에서 엔진 출력과 타이어 접지력, 무게 배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슈퍼카는 흔하지 않다. 운전자 뒤에 달린 엔진의 무게가 코너 바깥쪽으로 쏠린 타이어를 꾹 누르며 아주 중립적인 감각으로 코너를 돌아갔다. 뒷바퀴 조향 시스템과 양쪽 바퀴로 출력을 조절하는 토크 벡터링 (LDVI)이 꾸준히 도움을 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똑똑한 시스템은 주행 상태를 예측하고, 느껴질 듯 말 듯 세련되게 상황에 개입하면서 이질감을 최소화한다. 엔진이 8,000rpm까지 회전하며 강렬하게 진동하는 순간, 운전석에서는 세상 모든 가치가 달라지는 걸 느낀다. 고회전으로 날카롭게 코너를 공략하는 데 집중할 때 입가에 미소가 차오른다. 속도와 싸우지 않는다. 운전의 재미를 느끼는 순간, 속도는 이미 무지막지하게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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