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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와 자동차, 협업의 역사 Part 1

WATCH & CAR COLLABORATION

 

자동차는 처음 등장하고 얼마간은 특정 계층만 이용했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의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의 발전은 곧 성능의 발전을 의미했고 자동차를 이용한 레이스는 스포츠 장르 중 하나로 발전했다. 시계는 자동차가 탄생한 초기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자동차에 시계가 달려 있지 않았지만, 덕분에 대시보드 클락(dashboard clock)이라는 장르로 자동차와 연결점을 찾아냈다. 자동차나 비행기, 선박의 대시보드에 부착하는 시계를 말하는데, 자동차 등 이동수단의 소유주가 시계를 구입해 대시보드에 장착해야 했다.


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 화이트 골드 40mm
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 화이트 골드 40mm

바쉐론 콘스탄틴 헤리티지 1921
바쉐론 콘스탄틴 헤리티지 1921

1920년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손목시계의 시대가 열리자 시계는 자동차와 더욱 밀접해진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은 시계 방향으로 45도가량 회전한 다이얼이 특징이다. 일설에 따르면 성직자가 강단에 손을 올린 상태에서 시간을 쉽게 확인하기 위해 이런 디자인을 요청했다고 하나, 보통 드라이버스(driver’s) 워치로 부르는 시계의 전형이다. 스티어링 휠을 잡은 상태에서 시간을 확인하기 쉬운 디자인으로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처럼 다이얼을 45도 혹은 90도 돌린 시계를 여러 브랜드의 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동차를 운전하 면서 사용하는 도구로 자리 잡은 것이 크로노그래프다. 이는 레이스에서 승부를 결정하기 위한 중요한 계측 도구로 자리매김 했지만, 드라이버스 워치는 차량 내부에 시계를 장착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미도 모토리스트 워치 192
미도 모토리스트 워치 192

드라이버스 워치나 레이스 크로노그래프와 다른 길을 택한 시계도 있다. 미도는 이 분야에서 시초와 같은 회사다. 자동차 브랜드와 손잡고 자동차의 디테일을 시계에 적용한 것으로 협업의 역사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중 부가티와 협업해 선보인 모델이 가장 유명하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 중반까지 약 100개의 시계에 부가티 이름을 붙여 만들었다. 단순히 부가티의 로고만 단 게 아니라 부가티의 아치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케이스 형태로 재현하고 다이얼에도 패턴으로 새겼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이 시계의 다이얼 12시 방향에는 강렬한 부가티의 심벌을 달았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다면 단번에 부가티의 정면이 떠오르는 디자인이다. 최근 당시 생산한 부가티 워치 중 창업자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가 소유했던 모델이 경매에서 약 30만 스위스프랑에 낙찰되어 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미도의 선구자적 발자취를 재발견함과 동시에 기념하도록 하는 금액이다. 미도는 부가티 이외에도 다른 자동차 브랜드와 협력해 다양한 라디에이터 그릴 형태의 다이얼을 더한 시계를 생산했다. 롤스로이스, 벤츠, 피아트, 알파로메오, 란치아, 시트로엥 같은 유럽 브랜드는 물론 포드, 크라이슬러, 링컨 같은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도 그 대상이었다.



페라리×시계브랜드


시계와 자동차 브랜드의 협업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남성들이 선망하는 슈퍼카 브랜드가 주된 대상이 되었고 이탈리아의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는 단연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F1에 참가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도용 슈퍼카를 제작한 역사와 기술력은 기계라는 공통점을 지닌 시계 애호가를 매료시켰다. 흥미롭게도 페라리는 1980년대에 까르띠에에 시계를 발주한 적이 있다. 주로 크로노그래프였으며 판매용이라기보다 마케팅용 혹은 엔초 페라리가 선물용으로 사용한 시계로 까르띠에의 이름은 시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시계 애호가보다 페라리 팬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아이템이라고 하겠다.


페라리 라페라리
페라리 위블로가 ‘라페라리’에서 영감을 얻어 MP-05 모델을 탄생시켰다.

본격적으로 페라리와 손을 잡은 회사는 지라드 페리고다. 당시 CEO는 이탈리아 출신의 루이지 마칼루소(Luigi Macaluso)였다.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지라드 페리고의 공식 에이전트로 시작해, 이후 이사회 일원으로 발돋움한 인물이다. 루이지 마칼루소는 유러피언 랠리 챔피언십과 이탤리언 랠리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둔 랠리 드라이버(이자 내비게이터) 경력이 있어 자동차에 지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페라리와 동향인 이탈리아인이었기 때문에 시계와 자동차 회사를 묶는 이탤리언 커넥션을 시작한다. 당시 지라드 페리고의 페라리 에디션은 요즘 시각으로는 비교적 단조로운 형태의 협업물이었다. 다이얼에 타키미터를 두른 크로노그래프 위주로 전개했고 페라리 레드로 다이얼을 물들이거나 로고 혹은 F40, F60 같은 페라리의 코드네임을 넣는 식이었다. 종종 페라리의 실루엣을 케이스 백에 새기기도 했다. 크로노그래프 카운터를 계기반처럼 디자인한 디테일은 발전을 의미했다. 협업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요즘 기준으로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접근이었으며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지라드 페리고의 뒤를 이 은 브랜드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탄생한 파네라이로 이탤리언 커넥션이 계속 되었다.


페라리와 협업을 시작할 무렵 파네라이는 빅 워치 붐에 힘입어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한 때다. 잘나가는 이탈리아의 시계 회사는 특유의 쿠션 케이스를 조금 변형해 페라리 라인에 투입했다. 라운드 베젤 대신 쿠션 케이스와 나란히 라인을 그리는 쿠션 셰이프 베젤과 끝으로 향할수록 두터워지는 러그를 택했다. 크라운은 오버사이즈 디자인을 채용했다. 케이스 측면은 구 루미노르 1950으로 지칭하던 빈티지 루미노르 케이스에 가까운 유선형 라인을 그렸다. 루미노르 케이스와 비슷하지만 좀 더 볼륨감 있으면서 차별화한 디자인으로 곡선미 넘치는 페라리를 닮고자 했다. 데이트와 크로노그래프 기능의 비중이 높았던 페라리 에디션은 공통적으로 계기반의 속도계나 RPM 게이지의 느낌을 냈다. 지라드 페리고가 시도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당시 파네라이의 인기에 힘입어 레퍼런스 넘버가 ‘FER’로 시작하는 페라리 에디션은 꽤 구하기 쉽지 않은 시계였다. 다이얼은 페라리 레드 혹은 옐로를 사용하는 모델로 나뉘었고, 한정판에서는 미네르바의 NOS 수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장착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범용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탑재해 기능은 평범한 편이었다. 협업 후반부에 접어들며 파네라이 인하우스에서 생산한 고급 기능의 모델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골드 케이스로 소개되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파네라이와 계약 기간이 만료된 페라리는 이탈리아 회사 대신 스위스 브랜드 위블로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맥라렌 오토모티브 스피드 테일
맥라렌 오토모티브 스피드 테일
리차드 밀 RM40-01 오토매틱 투르비용 맥라렌 스피드 테일
리차드 밀 RM40-01 오토매틱 투르비용 맥라렌 스피드 테일

위블로식 페라리 워치를 내놓으려던 2010년대 중반은 여러 시계 브랜드가 자동차 브랜드와 손잡고 다양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이미 여럿 내놓은 시점이었다. 자동차 브랜드의 이미지를 시계에 단순하게 투영하는 시대에서 시계 요소 요소에 자동차의 디테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통용되던 때다. 위블로는 인하우스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장착한 빅뱅 라인으로 페라리와 접점을 찾고자 했다. 페라리가 RPM 게이지 속에 기어 단수를 표시하는 특유의 디테일은 크로노그래프 60분 카운터 속에 옐로 컬러를 배경색으로 쓴 데이트 표시 를 넣거나, 세라믹 브레이크 로터 형태의 베젤, 라디에이터 그릴 모양의 패턴을 넣은 투명 다이얼, 휠 모양 로터 등으로 구현했다. 페라리, 지라드 페리고 시대에 비해 월등하게 향상된 소재의 다양성과 가공 능력 덕분에 표현력에서도 상당한 향상을 가져왔다. 위블로와 페라리의 계약이 종료되자 최근 리차드 밀이 5년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아직 페라리와 연관된 에디션이 나오지 않았으나, 이전 파트너십을 맺은 맥라렌과 손잡고 내놓은 RM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 맥라렌 F1이나 맥라렌의 공도용 하이퍼 GT카 스피드 테일을 시계에 담은 RM40-01 오토매틱 투르비용 맥라렌 스피드 테일 에디션에 비춰봤을 때 페라리×리차드 밀 에디션을 기대해도 좋을것 같다.



자동차 협업 시계의 새로운 방식


20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예거 르쿨트르가 영국의 슈퍼카 브랜드 애스턴 마틴과 만나 앰복스(Amvox) 라인업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리즈 7까지 이어진(몇몇 빠진 숫자가 있어 순차 넘버링은 아니었으며, DBS 같은 넘버링에 해당하지 않는 모델도 있었다) 제법 오랜 기간에 걸쳐 협업을 진행했다. 보통 시계와 자동차의 협업이라고는 하지만 시계 브랜드의 일방적 구애가 더 많은 편인 데 비해, 앰복스는 시계와 자동차를 더욱 유기적으로 결합하고자 했다.


시리즈 첫 모델인 앰복스 1은 협업의 정석인 크로노그래프 대신 알람 기능을 택해 변화를 예고했다. 후속 모델인 앰복스 2는 정석대로 크로노그래프를 택했지만 푸시 버튼이 하나도 없는 새로운 형태였다. 애스턴 마틴처럼 매우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상황에서 크로노그래프 조작을 쉽게 하기 위해 글라스를 푸시 버튼으로 대체했다. 12시 방향 글라스를 누르면 크로노그래프 스타트/스톱 버튼 역할, 6시 방향 글라스를 누르면 리셋 버튼 역할을 했다. 고속 주행 중 작은 푸시 버튼을누르기 위해 시계를 더듬지 않고 면적이 넓은 글라스를 눌러 손쉬운 조작을 꾀한 것이다. 다이얼 바깥쪽으로 노출한 부품으로 크로노그래프 푸시 버튼의 제어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 21세기에 걸맞은 드라이버스 워치를 부활시킨 셈이다.


앰복스는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투르비용, 월드타임 크로노그래프 같은 고급 기능을 탑재했지만, 당시 예거 르쿨트르의 스포츠 워치 라인인 마스터 컴프레서에 앰복스 옷을 입힌 듯 점차 평범해지는 추세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앰복스 DBS 트랜스폰더, 앰복스 라피드 트랜스폰더 등 트랜스폰더 모델들은 시계 회사로는 새로운 시도였다. 기계식 시계에 초소형 트랜스폰더를 삽입해 애스턴 마틴의 열쇠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다. 원거리에서 차량 개폐는 물론 위치 확인이 가능했고, 애스턴 마틴의 옵션 하나로 선택할 수 있었으며, 애스턴 마틴의 딜러에서 구매할 수도 있었다.


파르미지아니 부가티 파보우

예거 르쿨트르 앰복스가 탄생한 시기와 비슷한 때에 파르미지아니는 다른 시계 브랜드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무브먼트 개발에 몰두했다. 시계가 자체 동력인 태엽 덕에 휴대가 가능해진 이래, 시계 부품은수평으로 연결되었고 손목시계 사이즈로 지름이 크게 줄었지만 동전처럼 납작한 원형 혹은 각형 무브먼트가 대부분이었다. 파르미지아니는 전통적인 수평 연결 대신 수직 연결한 무브먼트를 만들고 싶어했다. 수직 연결한 무브먼트는 배럴에서 밸런스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부품을 연결하면 필연적으로 원통형(cylindrical) 무브먼트로 귀결했다. 이것은 자동차의 트랜스미션 구조와 유사해 보이며, 시계가 더욱 자동차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한 원통형 무브먼트 칼리버 PF 370은 부가티 타입 370에 탑재했다. 2005년 선보인 부가티 타입 370은 근본적으로 다른 무브먼트 덕에 시계의 정형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시계는 원통을 눕힌 각 끝부분에 밸런스와 다이얼을 달았고, 착용하고 스티어링 휠을 잡으면 다이얼이 운전자 얼굴을 향하도록 한 드라이버스 워치 형태로 나타났다. 칼리버 PF 370은 트윈 배럴을 사용한 10시간의 파워 리저브와 케이스 대부분을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채워 새로움을 한껏 드러냈다.


파르미지아니 부가티 파보우
파르미지아니 부가티 파보우

칼리버 PF 370은 등장 이후 시계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수직 연결 구조를 응용한 무브먼트가 다수 등장했고, 위블로가 내놓은 MP-05 라 페라리 같은 모델에도 지대한 영감을 끼쳤다. 무브먼트 중앙에 11개의 배럴을 배치해 50일의 파워 리저브가 가능했고, 긴 배럴의 행렬 좌우로 드럼형 타임 디스플레이를 배치한 MP-05 라 페라리는 파르미지아니의 칼리버 PF 370 이전에는 없었던 시계였다. 라인업 대부분을 수직 연결형 무브먼트로 만드는 카베스탄(Cabestan)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수직 구조 무브먼트를 이용해 카베스탄도 페라리 에디션을 잠깐 선보인 적이 있다. 파르미지아니는 부가티 타입 370에 이어 수직, 수평 구조를 복합적으로 사용한 투르비용인 부가티 타입 390을 내놓았다. 상이한 구조의 무브먼트를 물리적으로 연결한 덕에 커벡스(curvex) 케이스를 실현한 개성적인 외관으로 부가티의 이름을 이어받은 수작이었으나, 시장의 후발 주자들도 이미 비슷한 아이디어를 구현해 이들과 경쟁해야 했다.


파르미지아니는 그 사이 부가티 타입 370이나 390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부가티 슈퍼스포츠와 부가티 갈리비에(Galibier) 16C 콘셉트에 적용하려던 투르비용을 발표했다. 부가티의 세단형 콘셉트 모델로 주목받았던 갈리비에 16C 콘셉트는 대시보드 중앙에 파르미지아니의 투르비용을 탈착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시보드에서 떼어내면 스트랩을 연결한 가죽으로 케이스를 감싸 착용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을 통해 손목시계로 탈바꿈했다. 물론 부가티 갈리비에 16C 콘셉트가 콘셉트로 머문 탓에 파르미지아니의 대시보드 투르비용도 빛을 보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부가티 베이론
부가티 베이론
부가티 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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