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메이커와 오트 퀴진 셰프들

THE MAKERS

 
BLANCPAIN Art de Vivre
블랑팡 ‘아르 드 비브르’ 캠페인 비주얼

흔히 시계를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라 부른다. 시계를 다루는 툴보다 훨씬 미세한 부품을 알맞은 곳에 배치하고, 그 부품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 미세한 떨림에도 예민한 장인들은 손끝에 엄청난 집중력을 모은다. 각각 의 시계가 지닌 기능과 디자인에 따라 제작 기간이 천차만별이지만, 2021년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예거 르쿨트르의 히브리스 메카니카 칼리버 185 워치는 약 6년 이상의 개발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총 4개의 다이얼 안에 정교한 워치메이킹 세계를 구현한 이 시계는 메종의 장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 어낸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보면 한계가 없는 워치메이킹 세계에 대한 경외감마저 든다.


최근 시계업계에는 이처럼 오랜 시간 손끝으로 빚어낸 작품을 탄생시키는 워치메이킹 장인들의 모습과 닮은 셰프들의 이야기가 함께 한다. 워치메이킹과 퀴진(cuisine), 두 분야 장인들이 다루는 재료는 다르지만 애호가들에게 최상의 결과물을 선사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쌓아가는 모습도, 손끝으로 만들어낸 예술을 작품으로 창조해내는 모습도 매우 흡사하다. 최근 미식 문화 장인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해나가고 있는 워치메이킹 브랜드들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세계적인 셰프와의 파트너십은 물론,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은 미식 문화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등 워치메이킹 분야를 넘어 브랜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장하기 위해 이색적인 행보에 나선 브랜드를 살펴본다.


BLANCPAIN

시간이 빚어낸 작품

블랑팡은 ‘아르 드 비브르(Art de Vivre, 삶을 즐기는 방법)’라는 정체성 아래, 미식 문화와 활발하게 유대 관계를 만들어가는 브랜드다. 작은 관심에서 시작해 그 분야에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블랑팡은 오트 퀴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물론, 미식 문화와 워치메이커 사이에 아무런 접점도 없던 1986년부터 미식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블랑팡 애호가이자 ‘세계 최고의 셰프’ 상을 수상한 스위스의 요리사, 프레디 지라르데에게 특별한 인그레이빙을 담은 시계를 선사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의 유수한 셰프들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왔다.


쥐링 트윈스
2020년 블랑팡 파트너로 합류한 듀오 셰프이자 형제인 쥐링 트윈스
피프티 패덤즈 바티스카프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바티스카프

2020년 블랑팡은 〈미쉐린 가이드 방콕〉에서 2스타를 획득한 셰프 듀오 쥐링 트윈스와의 협업을 발표했는데, 이 협업은 미식 세계에 대한 블랑팡의 무한한 확장을 보여준다. 2016년부터 태국의 중심부인 방콕에서 레스토랑 ‘쥐링’을 운영해온 그들이 선보이는 독일식 퀴진은 미식가들뿐만 아니라 오트 퀴진에 관심을 가져온 블랑팡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세계적인 오트 퀴진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시계 매뉴팩처에서 견습생들이 장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것처럼 쥐링 형제 역시 오랜 견습 생활과 배움을 통해 자신만의 취향과 맛을 전할 수 있는 셰프로 성장했다. 블랑팡은 쥐링 셰프와 함께할 시간의 동반자로 피프티 패덤즈 플라이백과 피프티 패덤즈 바티스카프 워치를 선정했다. 두 타임피스는 블랑팡의 대표 다이버 워치 컬렉션으로, 이번 협업에서는 깊은 심해가 아닌 미식 세계에서 맛의 정교한 계측을 도울 동반자가 되어줄 예정이다.


미쉐린 3스타 셰프 미카엘 미카엘리데스
2021년 블랑팡 파트너로 선정된 미쉐린 3스타 셰프 미카엘 미카엘리데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 영 셰프 부문을 수상한 미토우의 김보미 셰프

블랑팡은 쥐링 형제처럼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셰프와의 파트너십뿐만 아니라 브랜드 매거진 〈레트르 뒤 브라쉬〉를 통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을 리뷰하고 있으며, 2019년부터는 〈미쉐린 가이드〉와의 글로벌 파트너십을 알리며 미식 문화에 관련된 적극적인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미쉐린 가이드〉 영 셰프 부문 후원을 통해 장인의 길을 걷고 있는 셰프들을 선정하며, 블랑팡이 추구하는 가치이자 모토인 ‘아르 드 비브르’ 정신을 지켜나가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에서 영 셰프로 선정된 레스토랑 미토우의 김보미 셰프는 성장과 배움의 원천에 대한 질문에 요리사, 도예가, 워치메이커 등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을 꼽았다. 그리고 한 분야에 서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장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눈앞의 화려함이나 편안함보다는 묵묵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BVLGARI

이탈리아의 맛과 멋


불가리만큼 이탈리아의 진정한 멋을 보여주는 브랜드가 또 있을까. 불가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지만, 무엇보다 ‘로만’ 워치 & 주얼러라는 타이틀이 가장 걸맞을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탄생한 불가리는 워치 & 주얼리 메이킹은 물론, 패션, 뷰티, 호텔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이탈리아의 풍부한 감성을 전하고 있다. 그중 세계의 중심 도시에 위치한 불가리 호텔 & 리조트에는 불가리의 정신과 이탈리아 정통 퀴진을 경험할 수 있는 ‘일 레스토란테’가 자리한다.


니코 로미토의 시그너처 요리
니코 로미토의 시그너처 요리인 안티파스토 알리탈리아나

2018년 밀라노에 처음 문을 연 일 레스토란테는 미쉐린 3스타 셰프 니코 로미토가 이끌고 있다. 이탈리아의 미식 문화를 선도하는 그는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주에 있는 ‘레알레’ 레스토랑에서 3개의 미슐랭 스타를 받았는데, 명성만큼이나 음식 역시 독특하다. 불가리 호텔 & 리조트 밀라노에서 즐길 수 있는 그의 요리는 이탈리아의 전통 음식인 라자냐와 빌 밀라네즈(밀라노 식 송아지 요리), 포테이토 라비올리를 포함해 특별한 맛의 티라미수다. 안티파스토 알리탈리아나는 로미토의 시그너처 요리로, 맛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색감, 플레이팅으로 보는 즐거움까지 전달한다. 불가리의 컬렉션을 장식하는 형형색색의 젬스톤들이 아름다운 앙상블을 보여주듯 조화로운 메뉴 구성이 특징이다. 아쉽게도 아직 불가리 호텔 & 리조트의 국내 오픈 소식은 들려오지 않지만, 불가리는 최근 한식 파인 다이닝 ‘옮음’과 함께 디너 코스를 선보이는 등 국내 미식 문화와의 협업도 전개해나가고 있다.



JAEGER-LECOULTRE

발레 드 주의 달콤한 순간


니나 메타예
파리지앵 페이스트리 셰프 니나 메타예

예상과 빗나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 것들은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예거 르쿨트르는 지난해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오며, 메종의 특별한 순간을 기념했다. 리베르소 탄생 90주년을 맞이하며 파리에서 진행된 〈리베르소: 1931년부 터 이어져온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Reverso: Timeless Stories Since 1931)〉 전시에서는 리베르소의 90년 역사를 아우르는 컬렉션과 함께 1931 카페가 오픈해 눈길을 끌었다. 메종은 전시부터 카페에서 즐기는 경험에 이르기까지 매뉴팩처가 위치한 스위스 발레 드 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1931 카페
1931 카페에서 선보인 디저트 컬렉션

1931 카페에서는 파리지앵 페이스트리 셰프 니나 메타예와 함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미각으로 구현한 디저트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다이닝이 아닌 ‘디저트’를 매개로 했다는 점에서 다른 워치 브랜드의 협업과 차별점을 보인다. 리베르소 탄생 90주년을 특별하게 기념하기 위해 아르데코 스타일의 사각형 케이스에서 영감받은 디저트 위에는 아티스틱한 메이킹이 더해져 보다 달콤한 모먼트를 선사했는데, 디저트의 메인 재료 역시 자연으로 가득한 발레 드 주의 환경과 향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엄선한 산딸기, 견과류, 꿀, 허브, 초콜릿 등을 사용했다. 단순히 컬렉션을 소개하는 시각적 경험을 넘어 미각적 경험을 통해 애호가들에게 한층 더 풍부한 시간을 전달했다.



HUBLOT

아트 오브 퓨전, 아트 오브 플레이트

앰배서더의 플레이팅 컷
앰배서더의 플레이팅 컷

위블로는 많은 워치메이커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분야의 파트너들과 협력하는 브랜드다. 대다수의 브랜드가 자사 제품의 기능을 가장 잘 드러내줄 수 있는 스포츠 선수 같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과 파트너십을 맺을 때, 위블로는 한 발 더 나아가 아트와 음악, 타투이스트 등 다채로운 분야의 인사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특히 라이프스타일 파트에서는 요리법(gastronomy)이라는 테마 아래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이 위블로의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등 각 나라의 전통 퀴진을 바탕으로 미식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은 위블로 ‘아트 오브 퓨전’의 정체성과 맞닿은 즐거운 미식 경험을 플레이트 위에 구현해나가고 있다. 프랑스 〈미쉐린 가이드〉 3스타를 획득한 유일한 여성 셰프 안 소피 픽은 3대째 미식 문화를 주도해오고 있는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다이닝 세계에 서는 맛을 넘어 전통을 잇고자 하는 열정이 느껴진다. 안나는 위블 로와의 협업 기념 인터뷰에서 재료와 음식의 보이지 않는 가능성에 깃든 조화로움을 찾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고 밝혔다. 그녀의 말에서 소재의 혁신과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 놀라운 컬렉션을 전개해나가고 있는 위블로 정체성을 단번에 떠올릴 수 있었다.



PANERAI

미식 문화에서 발견한 진정한 혁신의 가치

마시모 보투라 셰프
디지털 캠페인에 등장한 마시모 보투라 셰프
파네라이 투토네로 루미노르 1950 3 DAYS GMT
파네라이 투토네로 루미노르 1950 3 DAYS GMT

현재 시계업계에서 복각 모델의 존재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의 감성을 현대 시계 애호가들에게 전함과 동시에 현대적인 기술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형태의 복각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과거에서 영감받은 다양한 컬렉션을 전개해오며 파네리스티라는 탄탄한 팬층을 갖춘 파네라이는 2018년 진행한 디지털 캠페인을 통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혁신’의 가치를 되돌아봤다. 단편 필름 형식으로 진행된 캠페인에서는 미쉐린 3스타에 빛나는 마시모 보투라 셰프가 등장한다. 보투라 셰프는 ‘전통의 진화’라는 모토 아래 전통 이탈리아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인다. 그가 말하는 혁신이란 과거의 최선을 취해 미래로 나가는 것. 그가 몸담고 있는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 레스토랑에서는 그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가장 놀라운 맛을 적용한 전통적인 이탤리언 퀴진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다. 마시모 보투라 셰프와의 협업을 통해 파네라이가 돌아본 워치메이킹의 ‘혁신’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 유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 해나가는 것이 파네라이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혁신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