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normal
4차 산업혁명의 길목에 들어선 지금, 자동차를 평가하는 기준이 나날이 모호해진다. 발전의 방향이 이동성 자체에 그치지 않고 편의성에 집중되고 있는 것. 리터당 200마력이 넘는 하이테크 엔진보다 스마트폰 앱으로 자동차 공조 장치를 조작하는 기술에 시선이 쏠린다. 결국 모든 자동차가 전동화를 목표로 하나같이 모듈화되어간다. 본질이 흐려지는 변화지만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거스를 순 없겠다. 물론 자동차의 본질을 추구하는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일부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경우 최고가 되기 위해 되레 자동차가 품은 본질적 가치를 강조하고 나선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마땅히 주목해야 할 신차가 있다.
페라리 296 GTB
페라리는 최고의 하이 퍼포먼스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다. 이 브랜드가 스포츠카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탈리아 특유의 감성과 최첨단 자동차공학의 예술적 결합 때문이다. 화려하고 미래적인 디자인 뒤에는 주행 성능에 도움을 주는 각종 기능적 요소가 녹아있다. 최고급 가죽과 첨단 전자 장비가 조화를 이루는 실내는 예술 작품이라 표현해도 손색이 없다. 파워풀한 엔진과 정교한 차체 세팅으로 레이스카 같은 뛰어난 주행 성능을 발휘한다. 동시에 일상에서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여유 있다. 스포츠카 영역에서 뛰어난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 이것이 페라리의 진정한 가치다.
반면 페라리는 정통 스포츠카 브랜드로, 운전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데 언제나 목말라 있다. 그래서 가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새로 등장한 296 GTB가 대표적인 예다. 296 GTB는 V6 엔진과 전기 구동계를 결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방식을 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터보 엔진 배기량은 2.9L이고, 6개의 실린더로 구성된다. 페라리의 주력인 8기통 엔진에 비하면 다소 왜소한 구성이지만, 결과는 부족하지 않다. 663마력 엔진에 전기모터가 동력을 더해 최대 830마력을 발휘한다. 이 구동계가 진짜 매력적인 것은 즉각적인 응답성 때문이다. 갑자기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엔진이 물리적으로 반응하기 어려운 찰나의 순간에 전기모터에서 출력을 쏟아 내면서 곧바로 반응한다. 페라리는 이 과정에서 지연된 시간을 ‘0’으로 표시한 다. 콤팩트한 엔진을 운전자 바로 뒤에 배치하면서 얻은 이점도 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 낮은 무게중심으로 자동차의 회전 성능이 극대화된다. 여기에 정밀한 전자제어 장비의 도움으로 전문 드라이버가 아니어도 세련된 운전을 경험할 수 있다.
296 GTB는 서킷에서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아주 느린 속도에서조차 운전자를 즐겁게 하는 능력을 가진 자동차다. 진정한 운전의 즐거움이란 속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296 GTB는 스포츠카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롤스로이스 뉴 블랙 배지 고스트
슈퍼 럭셔리는 정의하기가 어렵다. 최상류층이 자연스럽게 누리는 문화로,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제품으로 국한한다면 한눈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접했을 때 아주 디테일한 요소가 녹아 있어야 한다. 롤스로이스 뉴 블랙 배지 고스트가 추구하는 슈퍼 럭셔리 자동차의 본질 또한 그러하다. 왜 블랙일까? 패션에서 블랙은 기본 요소인 동시에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롤스로이스는 이를 기존 방식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는 새로운 결과물로 풀이한다. 이런 철학적 관점에서 뉴 블랙 배지 고스트는 가장 어두운 미감을 쓰고 대담한 디자인을 자동차에 결합하고자 한다. 보디 컬러는 4만4000개나 준비했다.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형 컬러를 선택할 수도 있다. 시그너처인 블랙 컬러의 경우 가장 어두운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4명의 장인이 약 45kg 분량의 페인트를 특수 열처리 공법으로 작업한다. 블랙 배지 시리즈는 롤스로이스를 상징하는 환희의 여신상과 판테온 그릴도 기존 틀을 벗어나 더 어둡게 도색한다.
실로 복잡한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21인치 비스포크 복합 소재 휠도 특징이다. 실내는 더 환상적이다. 겹겹이 쌓인 어두운 목재가 다이아몬드 패턴 수작업을 통해 3차원적 시각 효과를 만들어낸다. 독립형 뒷좌석 사이에는 항공 우주 등급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샴페인 쿨러를 장착했다. 천장엔 무수하게 빛나는 별을 형상화한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가 은은하게 반짝인다.
뉴 블랙 배지 고스트는 최고급 럭셔리 자동차의 본질인 편안한 이동성을 최대로 강조한다. 6.75L V12 터보 엔진은 저속부터 두툼한 출력을 뿜어내며 기분 좋게 차를 이끈다. 뛰어난 보디 강성을 바탕으로 사륜구동, 사륜조향, 그리고 대형 에어 서스펜션 같은 기술을 더해 마치 구름 위를 달리듯 매끈한 주행을 선보인다. 사실 이런 짧은 설명으로 이 차의 가치를 모두 전달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뉴 블랙 배지 고스트에는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 한다. 이것이 진짜 슈퍼 럭셔리 자동차의 본질이다.
메르세데스-벤츠 EQS
모듈화를 중시하는 순수 전기차라면 구조적으로 비슷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순수 전기차의 새 기준을 만들어 시장을 이끌려고 노력하는 브랜드가 있으니, 바로 메르세데스-벤츠다. 특히 브랜드 최초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완성한 EQS를 주목할 만하다. EQS는 플래그십 세단 S 클래스의 수준에 걸맞은 크기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테슬라 모델 S의 대안이 아니다. 만듦새가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EQS의 디자인은 측면에서 볼 때 하나의 활과 같은 대칭적 비율을 자랑한다. 이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구분되는 동시에 뛰어난 공기역학 성능에 이점을 발휘한다. 하이테크를 강조하면서도 유려하고 간결한 디자인으로 EQS를 미래적으로 보이게 한다.
미래적인 감각은 실내로도 이어진다. 스마트키를 가지고 다가서면 EQS는 자동으로 문을 열어 운전자를 반긴다. 그리고 차에 탄 후 문을 닫으라는 손짓만으로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실내에는 운전석부터 조수석까지 대시보드 전체가 연결된 와이드 스크린이 달렸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여기서 구현된다. 계기반과 중앙, 그리고 조수석으로 나뉘는 이 디스플레이는 학습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을 더해 운전자에 맞춰 기능을 최적화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청각·후각·촉각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이어진다. 자연 음향 전문가와 함께 ‘에너자이징 네이처’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숲과 바다, 여 름에 비가 내리는 사운드를 제공한다. 이에 맞춰 무드 조명과 모니터 이미지가 변하며 승객을 편안하게 해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동화 관점에서도 발전이 있다. 에너지 밀도를 대폭 끌어올린 배터리는 1회 충전 시 478km(450+ 기준)를 달릴 수 있다. 200kW급 고속 충전으로 단 15분 충전하면 최대 300km 를주행할수있다.플러그&차지라는충전기능도특징이다.차와충전기가 충전케이블을통해직접통신할수있어별도의인증절차없이사용자가미 리 정해둔 결제 방식으로 충전 요금이 지불된다. 이처럼 EQS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편의성을 개선하는 동시에 새로운 규격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보수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것이 메르세데스-벤츠가 추구하는 혁신의 본질이다. EQS에는 그런 노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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