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질주와 제어의 미학

Excalibur Spider Pirelli Roger Dubuis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풀 카본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풀 카본


F1 우승 타이어를 손목에


타이어의 역사는 자동차의 역사보다 길다. 시작은 1844년 미국의 찰스 굿이어가 개발한 ‘고무가황법’이었다. 천연 고무에 황과 열이 더해지면서 탄성과 내구성이 크게 증가했고, 3년 뒤 이를 활용한 최초의 고무 타이어가 등장했다. 1888년 영국의 존 보이드 던롭은 아들이 자전거를 쉽게 탈 수 있도록 공기 주입식 타이어를 발명했으며, 프랑스의 미쉐린 형제는 1895년 던롭의 아이디어를 자동차 타이어에 적용했다. 이러한 타이어 기술의 여명기에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도 관련 기업이 탄생했다. 1872년 설립된 피렐리는 고성능 타이어를 개발하기 위해 모터 스포츠에 적극 참여했고, 오늘날 포뮬러1(F1) 경기에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로저드뷔는 이런 피렐리와 2017년 파트너십을 맺고 특별한 타임피스를 선보였다. 협업의 중심은 시계 본체가 아닌 스트랩이었다.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의 스트랩은 실제 F1에서 우승한 타이어로 제작한다. 러버 스트랩 바깥쪽에는 F1 우승 타이어의 고무로 인레이 장식을 했고, 안쪽에는 피렐리 신투라토 인터미디어트 타이어 접지면 문양을 새겼다. 베젤, 크라운, 인덱스, 스티칭에도 피렐리 F1 타이어의 다양한 컬러를 적용했다(F1에서는 타이어의 내구성에 따라 색깔을 구분한다). 대부분의 시계 제조사가 자동차 브랜드와의 파트너십을 생각할 때, 타이어 브랜드와 협업해 우승 타이어로 러버 스트랩을 만든다는 발상은 매우 신선했다. 이후 로저드뷔는 지속적으로 피렐리와 협업해 제작한 시계를 선보였고, 2021년에는 모터 스포츠의 피트 스톱(pit stop)에서 영감받아 스트랩, 베젤, 크라운까지 모두 교체할 수 있는 새로운 엑스칼리버 스파이어 피렐리를 선보였다. ‘트랙에서 3초 이내에 타이어를 교체하듯 순식간에 나만의 시계를 만들 수 있다’는 콘셉트다.



엑스칼리버 아벤타도르 S 옐로
엑스칼리버 아벤타도르 S 옐로



로저드뷔 × 피렐리


로저드뷔는 워치메이커 로저 드뷔가 1995년 창업한 브랜드다. ‘우리의 게임에 규칙은 없다’라는 슬로건처럼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관습을 깨는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여왔다. 특히 2017년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해 로저드뷔는 플레이트, 브리지, 투르비용 상부 케이지를 카본으로 제작한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풀 카본’을 발표했고, 모터 스포츠를 대표하는 람보르기니, 피렐리와 협업해 ‘엑스칼리버 아벤타도르 S’,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를 선보였다.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가 ‘힘’을 상징한다면, 타이어 브랜드 피렐리는 ‘제어’를 상징한다. 피렐리는 1994년 육상 선수 칼 루이스를 모델로 광고를 제작했다. 이 광고에서 칼 루이스는 붉은색 하이힐을 신은 채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그 위에 ‘제어하지 못하는 힘은 아무것도 아니다(Power is nothing without control)’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타이어는 엔진의 동력을 노면에 전달하면서 자동차의 운동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즉 아무리 좋은 엔진(힘)을 장착했더라도 타이어의 접지력이 없으면 사고로 이어진다. 하이힐을 신은 육상 선수를 통해 피렐리는 자동차에서 타이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피렐리는 운전자가 자동차의 힘을 제어하도록 도와주며, 이러한 철학은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

대칭과 비대칭이 교차하는 오픈워크 디자인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컬렉션은 노멀 엑스칼리버 컬렉션보다 역동적이다. 러그는 직선에 가깝게 입체적으로 가공했고, 스트랩은 러그 끝부분까지 덮이도록 두툼하게 처리했으며, 베젤에도 10분 단위 아라비아숫자 인덱스를 새겼다.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 역시 이런 컬렉션의 디자인을 계승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브먼트를 드러낸 오픈워크 디자인이다. 이 시계에는 로저드뷔 최초의 오토매틱 스켈레톤 칼리버 RD820SQ를 장착했다. 플레이트와 브리지에 페를라주 마감을 한 뒤 앤트러사이트 컬러로 NAC 코팅 처리 했는데, 블랙 DLC 코팅 티타늄 케이스와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전체적으로 적용한 블랙 톤 덕분에 오픈워크 디자인임에도 꽤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4시 방향에는 커다란 별 모양 브리지가 위치한다. 비대칭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진 모습이 어쩐지 반항적이다. 별 중앙의 배럴을 통해 태엽이 얼마나 감겨 있는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11시 방향에는 작은 로터가 보인다. 오픈워크 무브먼트의 특성을 살려 마이크로 로터의 움직임을 손목 위에서도 볼 수 있게 배치했다. 바로 아래, 8시 방향에서는 밸런스 휠이 힘차게 작동한다. 이렇게 배럴, 로터, 밸런스 휠을 중심으로 각 부품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직선과 원, 대칭과 비대칭이 작은 공간에서 아름답게 교차한다. 입체적으로 가공한 플랜지에는 육각형 아워 마커와 미닛 트랙을 추가했고, 핸즈는 중앙을 타공해 무브먼트를 최대한 가리지 않도록 했다. 베젤은 마치 전설의 검으로 베어낸 것처럼 음각으로 예리하게 깎아냈다. 터프한 외모와 달리 와인딩 감각은 매우 부드럽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기어 홈이 전부 느껴진다. 와인딩을 할 때 기어 휠이 돌아가는 모습도 만족스럽다. 파워 리저브는 60시간으로 크게 부족하지 않지만, 러버 스트랩 제품임을 감안하면 50m 방수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3시 방향에서 작은 제네바 실도 확인할 수 있다.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 원클릭 교체 시스템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 원클릭 교체 시스템


모터 스포츠에서 가져온 변신 시스템


모터 레이싱 경기 중 차량이 피트(pit)로 들어와서 멈췄다가(stop) 다시 나가는 것을 피트 스톱이라고 한다. 주로 타이어를 교체하기 위해 피트로 들어오는데, 팀원들이 호흡을 맞춰 빠르게 타이어를 교체해야 랩타임을 단축할 수 있다. 타이어를 모두 교체하고 움직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초 정도다. 새로운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는 피트 스톱 상황에서 순식간에 타이어를 교체하듯 스트랩, 크라운, 베젤을 바꿀 수 있다. 특히 베젤은 그야말로 F1의 피트 스톱처럼 빠르고 간편하게 교체할 수 있다. 케이스와 베젤 측면에 새겨진 가이드에 맞춰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클릭 소리와 함께 완벽하게 고정된다. 레드·그린·화이트 컬러의 가이드 인덱스에서는 이탈리아 모터 스포츠 브랜드의 열정이 느껴진다. 교체용 베젤은 F1 경주용 타이어의 디자인을 적용했는데, 기본 베젤보다 다소 큼직하고 표면에서는 타이어의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스트랩과 크라운 교체도 간편하다. 러그 안쪽에 가이드라인이 있어 손쉽게 스트랩을 탈착할 수 있으며, 폴딩 버클도 180도 돌려서 간단히 교체할 수 있다. 기본 스트랩과 달리 교체용 스트랩에는 피렐리의 컬러 패턴과 스티칭을 더해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또 스트랩 안쪽에는 피렐리 타이어 패턴과 함께 해당 F1 우승 타이어의 코드 넘버가 새겨져 있다. 크라운은 가운데 푸시 버튼을 눌러 바깥쪽 커버만 교체하는 방식이다. 로저드뷔는 새로운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를 출시하면서 레드, 블루, 화이트 등 세 가지 교체 키트를 함께 출시했다. 컬러별 88개 한정 생산했는데, 모두 구입하면 자신만의 독특한 컬러 조합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어가 들려주는 메시지


로저드뷔의 람보르기니 협업 모델은 슈퍼카 엔진 룸을 연상시키는 무브먼트로 황소 같은 ‘힘’을 강조한다. 반면 피렐리와 협업해 선보인 모델은 타이어로 제작한 스트랩을 통해 모터 스포츠의 또 다른 매력을 전달한다. 특히 타이어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짧지만 진득한 울림을 준다. 제어하지 못하는 힘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인생에서도 자신의 힘과 역량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제어력’ 혹은 ‘자제력’이 필요하다.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에는 ‘질주’와 ‘제어’의 가치가 공존한다. 스트랩의 거친 질감은 F1 트랙에서 타이어가 자동차의 무게와 속도를 견디고 엔진의 힘을 제어하던 바로 그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타이어는 질주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제어’와 ‘멈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도구다. 그 접지력은 어디서나 유효하다. 자동차에도, 손목에도, 그리고 삶의 트랙에도.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