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 워치의 우아한 시간 여행
브라이틀링 최초의 다이버 워치, 슈퍼오션
1950년대는 다이버 워치의 여명기였다. 해양 탐사를 위한 전문적인 심해 다이빙이 활발해졌고, 수상 스포츠와 해상 레저 활동이 호황을 누리면서 다이버 워치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1953년 블랑팡은 최초의 회전형 베젤을 장착한 피프티 패덤즈를 개발했고, 롤렉스는 2개의 밀폐된 공간을 갖춘 트윈록(Twinlock) 크라운 시스템을 적용한 서브마리너를 선보였다. 1957년에는 오메가의 씨마스터 300, 그리고 브라이틀링의 슈퍼오션이 뒤를 이었다.
1957년 모델
슈퍼 오션은 브라이틀링 최초의 다이버 워치다. 크로노그래프의 스페셜리스트였던 브라이틀링은 시간만 표시하는 스리 핸즈 모델(Ref. 1004)뿐 아니라 잠수 시간을 보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 모델(Ref. 807)도 출시했다(오늘날 슈퍼오션 헤리티지 컬렉션에 여러 크로노그래프 모델이 존재하는 이유다). 두 모델 모두 200m 방수 성능을 갖췄고, 커다란 원형 및 삼각형인 덱스로 가독성을 극대화하면서 독특한 디자인까지 확보했다.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하는 긴 러그와 얇은 두께, 유연한 밀라니즈 브레이슬릿 역시 차별화 요소였다. 이후 슈퍼오션은 변신을 거듭하면서 전문가를 위한 고성능 다이버 워치로 발전했다. 실제로 1983년 출시된 슈퍼오션 딥씨(Ref. 81190)는 1,000m 방수 기능과 헬륨 이스케이프 케이스 백을 갖춘 전문 다이버 워치였다. 한때 ‘전문가를 위한 장비’를 표방했던 브라이틀링에 걸맞은 진화였다.
고성능 다이버 워치에서 럭셔리 다이버 워치로
2007년 모델
고성능 다이버 워치로 진화한 슈퍼오션은 2007년 탄생 50주년을 맞아 과거 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그해 브라이틀링은 1957년 첫 슈퍼오션을 재해석해 레트로 스타일의 다이버 워치 슈퍼오션 헤리티지를 출시했다. 완벽한 복각 모델은 아니지만 화살표 모양 시침, 다이얼과 베젤의 바 인덱스, 밀라니즈 브레이슬릿, 그리고 과거 브라이틀링이 사용했던 ‘B’ 로고를 적용해 빈티지한 분위기를 충실히 재현했다. 당시 브라이틀링은 슈퍼오션 헤리티지를 별도의 컬렉션으로 구성해 기존 슈퍼오션과 함께 선택의 폭을 넓혔다. 즉 현대적 감각의 고성능 다이버 워치를 원하는 사람은 슈퍼오션을, 클래식한 분위기의 고전적 다이버 워치를 원하는 사람은 슈퍼오션 헤리티지를 선택하도록 구분한 것이다. 이런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고, 두 컬렉션은 브라이틀링 다이버 워치의 스토리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2017년 모델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7년, 브라이틀링은 슈퍼오션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기존 슈퍼오션 헤리티지의 풀 체인지를 단행했다. 알루미늄 베젤을 세라믹 베젤로 바꿨고, 다이얼을 둘러싼 메탈 링을 제거해 보다 깔끔한 디자인을 구현했다. 핸즈와 다이얼 디자인도 개선했으며, 범용 무브먼트가 아닌 튜더와 협업해 제작한 B20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사용해 파워 리저브도 70시간으로 늘렸다. 60년의 헤리티지를 간직한 럭셔리 다이버 워치의 탄생이었다.
골드 소재의 효과를 극대화하다
슈퍼오션 헤리티지는 사이즈, 소재, 기능에 따라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이번에 집중적으로 살펴볼 모델은 스틸 케이스에 18K 레드 골드를 조합한 콤비(투톤) 모델이다. 스틸 모델과의 차이점은 핸즈와 인덱스의 컬러, 그리고 세라믹 베젤 테두리의 레드 골드 소재다. 블랙 콤비 모델이 먼저 출시 되었고, 2020년에 블루 콤비 모델이 추가되었다. 스틸에 골드를 약간 더했을 뿐인데 전체적인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레드 골드 컬러가 베젤 및 다이얼 컬러와 대비를 이루면서 선이 뚜렷해졌다. 콤비 모델을 접한 뒤 스틸 모델을 보면 다소 심심하다고 느껴질 정도.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도 깊어졌다. 원래 슈퍼 오션 헤리티지는 다이버 워치임에도 정장까지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워치였는데, 골드 컬러를 조합하면서 이런 특성이 더욱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베젤의 테두리에만 골드를 적용한 덕분에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면서 골드의 효과는 극대화했다.
사실 다이버 워치의 강인함에 우아함을 담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브라이틀링은 미드레인지 가격대에서 골드 소재까지 사용해 이 어려운 미션을 성공시켰다. 화려함과 고급스러운 느낌에서는 가격대가 비슷한 제품 중 적수가 없을 정도다. 블랙 콤비와 블루 콤비 모두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블루 콤비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네이비에 가까운 청색 베젤과 은은한 레드 골드 컬러의 조합이 완벽하며, 요즘 시계업계의 ‘블루 + 골드’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주변의 조명과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2020년 신제품
우아함 속에 숨은 강인함
다이얼은 물론 세라믹 베젤에까지 바 인덱스를 적용했다. 일반적인 다이버 워치가 잠수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큼직한 아라비아숫자를 사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1957년에 제작된 오리지널 슈퍼오션의 디자인을 차용했기 때문. 덕분에 다이버 워치임에도 드레스 워치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얌전한 디자인은 아니다. 다이버용 작살이 연상되는 두툼한 시침과 대검 형태의 분침이 강인한 느낌을 더하면서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다이얼을 멋지게 보완한다. 필기체로 쓴 ‘Superocean’ 텍스트도 뛰어난 디자인 요 소다. 마치 작품을 완성한 뒤에 새겨넣는 화가의 사인처럼 시계에 여운을 준다.
케이스 지름은 두 가지다. 블랙 콤비 모델의 경우 42mm와 44mm중 선택할 수 있고, 블루 콤비 모델은 현재 42mm만 출시 되었다. 케이스 크기에 따라 인덱스와 날짜창의 디자인이 살짝 다른데, 44mm 모델은 다이얼 텍스트가 작아 여백이 많으며, 컬러도 다이얼 컬러와 동일하다. 무브먼트가 바뀌면서 구형에 비해 두께가 다소 늘어난 것은 아쉽다. 다만 두께의 상당 부분이 케이스 백에 할애되어 있기 때문에 착용시 체감 두께는 줄어든다. 원형 케이스에서 두툼한 러그가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있는데, 측면에서 보면 살짝 휘어있어 착용감이 좋고, 전체 길이도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또 다른 특징은 중 세의 사슬 갑옷이 연상되는 밀라니즈 브레이슬릿이다. 두께가 적당해 시계 케이스와 잘 어울리며, 유연하게 휘어 착용감도 훌륭하다. 다만 클래스프는 수동으로 이중 체결하는 방식이다. 시계의 빈티지 콘셉트를 고려하면 적당한 구성이지만 실사용 측면에서는 다소 불편함이 따른다. 미세 조정 시 별도의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게 가장 아쉬운 부분. 반면 디버클 방식의 러버 스트랩은 편의성 면에서 완성도가 높다.원터치 버튼으로 손쉽게 오픈할 수 있고, 미세조정도 빠르고 간편하다. 가벼운 무게는 덤이다. 하지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트랩은 역시 밀라니즈 브레이슬릿이다. 스타일과 정체성이 중요하다면 브레이슬릿, 편의성과 무게가 중요하다면 디버클 방식의 러버 스트랩을 추천한다.
브라이틀링의 차세대 아이코닉 워치
슈퍼오션 헤리티지는 조지 컨 CEO가 취임한 후 대대적인 모델 체인지 과정에서도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사이즈와 소재를 다양화하면서 컬렉션을 계속 확장하는 모양새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고, 현재 브라이틀링의 방향성과도 일치한다는 의미다. 슈퍼오션 헤리티지는 브라이틀링이 과거의 헤리티지에 눈을 돌리기 전부터 성공적인 컬렉션이었다. 실제로 슈퍼오션 헤리티지에 사용하던 ‘B’ 로고는 이제 브라이틀링 전체를 대표하는 로고가 되었다. 새로운 브라이틀링, 그 변화의 중심에 슈퍼오션 헤리티지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내비타이머에 이은 브라이틀링의 차세대 아이코닉 워치를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의 손목에 슈퍼오션 헤리티지를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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