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바라보는 21세기형 컨버터블

Face the sky

 

운전자 머리 위로 시원하게 지나는 바람은 컨버터블(convertible)의 존재 이유다. 지붕이 열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운전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 지붕이 열리면 시야가 넓어진다. 그만큼 속도감이 높아진다. 엔진과 머플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더 크고 직접적으로 들린다. 날씨나 계절에 따라 변하는 주변 풍경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지붕을 연 자동차는 밖에서 안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입체감을 통해 디자인적으로도 한층 매력적으로 보인다. 시각적으로 즐길 거리가 그만큼 늘어난다. 반면 컨버터블은 대단히 비합리적인 자동차다. 지붕을 매끄럽게 열기 위해선 복잡한 설계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자동차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안전 기술을 요구한다. 전용 부품이 늘어나면서 제조 가격은 상승한다. 보디 뒤틀림 강성을 보완할 기구가 추가되어 몸무게가 늘고, 덩달아 연료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 때문에 현대의 컨버터블은 비주류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래서 컨버터블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 뜨거운 열정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극소수 컨버터블이 우리의 시선을 끈다. 그들은 더 이상 지붕을 열고 달리는 즐거움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지붕을 열

기 위해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포르쉐 타르가, 롤스로이스 던 실버 불렛, 벤틀리 바칼라 뮬리너 등이 이런 흐름에 있는 차들이다.



벤틀리 바칼라 뮬리너


단 12대 한정 제작, 23억이 넘는 가격표로 이 차의 존재를 평가하기엔 이르다. 바칼라 뮬리너는 요즘 시대 최고급 자동차 제조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역량이 투입된 로드스터라는 수식에 잘 어울린다. 바칼라는 컨버터블인 벤틀리 컨티넨탈 GTC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뮬리너라는 벤틀리 고유의 개별 맞춤 프로그램을 통해 안팎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제품 수준을 구현한다. 외부 디자인은 이전에 선보였던 벤틀리 EXP 100 GT 콘셉트카의 감각적 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컨티넨탈 GTC(컨버터블)와 달리 별도로 여닫을 수 있는 지붕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복잡한 소프트 톱 장치를 덜어내고 후면 카울링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했다. 운전석 뒤 공간은 클램셸 디자인을 활용해 안쪽으로 깊숙한 적재 공간을 제공한다. 무게를 덜기 위해 추가한 모든 부분을 경량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12대의 바칼라 뮬리너는 애초에 표준 모델이 없다. 따라서 외부 색상이나 실내 옵션 등 모든 부분을 고객의 취향대로 만든다. 세상에 똑같은 차가 없다는 의미다. 2021년 초 첫 번째 고객 인도를 시작으로 2022년 8월 현재까지 단 8대만 제작이 완료된 상태다.



 


포르쉐 911 타르가


포르쉐 911 시리즈는 지붕이 완전히 열리는 소프트 톱 컨버터블 외에도 타르가라는 특별한 헤리티지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타르가 모델의 특징은 운전자 바로 뒤 B 필러가 은색 롤오버 바 형태로 제작되어 지붕을 가로질러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초기엔 꽃을 담는 바구니 등의 애칭으로 불렸다. 타르가 톱은 1960년대 미국 자동차 시장에 적용된 전복 사고 안전 규정 강화에 맞춰 개발된 디자인이다. 이후 911이 몇 세대를 진화하는 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2012년 7세대와 신형인 8세대를 통해 정규 트림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의 타르가 톱은 완벽하게 전동으로 작동한다. 버튼을 누르면 B 필러 뒤쪽 유리가 뒤로 물러나며 열린다. 그 후 운전자 머리 위 소프트 톱이 자동차 뒤쪽으로 접혀 들어간다. 작동 시간은 대략 18초. 911 타르가 시리즈의 장점은 속도를 높일 때도 바람이 머리 위로 가볍게 지나간다는 점이다. 빛나는 롤오버 바 뒤로 매끈하게 연결된 뒷유리창이 외부에서 전해지는 스트레스 요소를 막아준다. 그만큼 여느 컨버터블보다 덜 시끄럽고 덜 피곤하다.




 


롤스로이스 던 실버 불렛


롤스로이스에는 던이라는 4인승 초호화 컨버터블이 있다. 하지만 롤스로이스 디자이너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날렵한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던의 후면 에어로 카울을 개조한 2인승 로드스터(뒷좌석이 없는 컨버터블)를 개발했다. 이름하여 ‘던 실버 불렛’이다. 이 차는 고전적인 로드스터의 정신과 드라이빙 경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1열 시트 뒤, 운전자 머리 뒤로 이어지는 형태로 커버를 달아 만든 뒷좌석 덮개가 시선을 끈다. 실제론 덮개 아래로 뒷좌석 시트가 달려 있지만, 구조상 사람이 앉을 순 없다. 덮개는 뚜껑이 양옆으로 열리는 구조다. 안쪽에 작은 가방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으로 꾸몄다. 2열 덮개의 장점은 운전자 머리 위로 지나간 바람이 뒤쪽에서 와류를 타고 다시 들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던 기본형에 비해 실버 불렛은 기분 좋은 드라이빙이 가능하다. 던의 앞머리에 달린 V12 엔진이나 단 2명이 탈 수 있는 거대한 차체, 50대 한정 생산 등, 던 실버 불렛은 상식이 아니라 최고의 이상을 위해 존재하는 21세기형 초호화 컨버터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