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제 폴로 스켈레톤

PIAGET POLO SKELETON

 


폴로 스켈레톤을 착용하면 일상에서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그 시간을 표시하는 무브먼트의 메커니즘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마치 시간이 창조되는 은밀한 공간을엿보는 듯한 느낌이다.


 


다이얼 방향으로 드러낸 욕망


여기, 2개의 시계가 있다. 둘 다 피니싱이 뛰어난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하나는 솔리드 백으로 뒷면이 막혀 있고, 다른 하나는 시스루 백을 통해 무브먼트를 볼 수 있다. 성능이나 기능이 거의 동일하다면 당신은 어떤 시계를 선택하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시계 애호가들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기계식 시계의 미적 가치는 시간을 측정하는 메커니즘과 그 표현 방식에서 발생하며, 이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사용자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손목시계가 자신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쿼츠 파동 이후 기계식 시계가 부활하면서부터다. 기계식 시계 브랜드들은 케이스 뒷면으로 배럴,기어, 밸런스 휠 같은 부품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쿼츠 시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시스루 백 방식은 다이얼에 ‘mechanical’ 혹은 ‘automatic’이라고 적는 것보다 훨씬 직관적이었고, 기계식 시계의 부흥에 기여했다. 스켈레톤 워치는 무브먼트를 보여주려는 기계식 시계의 욕망이다이얼로 표출된 시계다. 다이얼 부품을 생략하거나 최소화하고, 무브먼트를노출하면서 여러 부품이 만들어내는 건축미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것. 피아제의 폴로 스켈레톤은 이러한 스켈레톤 시계의 매력을 얇은 케이스에 담아낸 스포츠 워치다.



폴로 크로노그래프와 폴로 데이트


우아한 스포츠 워치를 계승하다


폴로는 창립자 조르주 에두아르 피아제의 증손자 이브 피아제가 1979년 론칭한 스포츠 워치다. 폴로 경기에서 유래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계는 스포티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전천후 럭셔리 워치로 개발되었다. 폴로는 1970년대 럭셔리 스포츠 워치 트렌드의 연장 선상에 있었으나 접근 방식은 조금 달랐다. 당시 스포츠 워치들이 주로 스틸 소재에 기계식 무브먼트를 접목했던 것과 달리 폴로는 골드 소재에 얇은 쿼츠무브먼트를 조합해 주얼리 액세서리에 가까운 타임피스를 지향했다. 디자인도 독특했다. 시계의 본체를 브

레이슬릿에 통합한 디자인으로, 브레이슬릿의 수평 가드룬(둥근 주름 장식)이 케이스와 다이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이러한 수평 가드룬은 현행 3세대 폴로 컬렉션의 핵심 디자인 코드로 이어지고 있다. 2016년 공개된 3세대 폴로는 현대적인 럭셔리 스포츠 워치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케이스는 메종의 플래그십 모델인 엠페라도 쿠썽의 디자인을 따와 플랫한 형태로 다듬었고, 유연한 스틸 브레이슬릿을 결합해 올라운드 스포츠 워치로 재탄생시켰다. 이후 피아제는 컬렉션을 조금씩 확장해왔으며, 2021년에는 스켈레톤 버전의 폴로를 선보였다. 폴로 스켈레톤은 3세대 폴로 데이트 모델과 디자인을 공유하면서 두께 2.4mm의 울트라-신 스켈레톤 무브먼트를 탑재해 6.5mm의 얇은 케이스를 구현했다. 스포츠 워치 장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슬림한 외형이다.



울트라-신 무브먼트 1200P와 1910년대 피아제 매뉴팩처


날것 그대로의 무브먼트


화려한 주얼리 제품에 가려져 있지만 원래 피아제는 1874년 스위스 라 코토페에서 무브먼트 제조 공방으로 출발한 기업이다. 특히 울트라-신 무브먼트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피아제는 1957년 두께가 단 2mm에 불과한, 세상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수동 무브먼트 9P를 선보였고, 1960년에는 마이크로 로터를 활용한 울트라-신 오토매틱 무브먼트 12P를 선보였다. 이후 피아제는 울트라-신 분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2010년에는 12P의 혈통을 이어받은 1200P를 선보였다. 폴로 스켈레톤에 장착한 1200S 무브먼트는 1200P의 스켈레톤 버전이다. 피아제는 1200S에 어떤 요소도 더하지 않고 무브먼트 전체를 그대로 드러냈는데, 이는 품질과 미적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계 제조사들은 기존 무브먼트의 플레이트나 브리지를 절삭 가공해 스켈레톤 무브먼트를 만든다. 베이스 무브먼트가 평범하거나 가공 노하우가 부족하면 미적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브먼트 위에 오픈워크 스타일의 다이얼을 올리거나 프레임을 배치해 일부만 보이도록 처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폴로 스켈레톤의 다이얼에는 오직 무브먼트만 존재하며, 그 자체로 충분히 예술적이고 아름답다. 1200S를 자세히 살펴보면 베이스 무브먼트인 1200P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메인 플레이트와 브리지는 물론이고, 배럴에서 밸런스 휠까지 이어지는 각 기어의 중심부까지 대부분 깎아냈다. 작동 안정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워치메이커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까지 모두 덜어낸 듯한 느낌이다. 일반 무브먼트가 아닌 울트라-신 무브먼트를 가공했다는 점에서 이 분야에서 쌓은 피아제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얇은 공간에 흐르는 부드러운 곡선


폴로 스켈레톤의 미학적 키워드는 ‘곡선’이다. 시간을 표시하기 위한 핸즈와 인덱스를 제외하면 이 시계에서 직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계의 곡선은 케이스에서 시작된다. 원형 케이스에 쿠션형 다이얼을 담은 ‘형태 속의 형태(shape-in-shape)’ 디자인은 미묘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며 볼 때마다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다이얼 네 모서리 부분이 살짝 왜곡되면서 원형 케이스가 마치 쿠션형 케이스처럼 느껴지는 것. 서로 다른 형상이 빚어낸 독특한 베젤은 무광 피니싱 처리해 측면 및 러그의 유광 피니싱과 대비를 이룬다. 다이얼의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는 돌출 면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베젤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매끈한 단면은 6.5mm의 케이스를 더욱 얇아 보이도록 만든다. 쿠션 형태의 다이얼 안쪽으로 플랜지가 자리하며, 시간 인덱스가 입체적으로 부착되어 있다. 핸즈는 내부를 넓게 절삭해 스켈레톤 무브먼트를 최대한 가리지 않도록 했고, 10시 30분 방향의 브랜드 로고가 비대칭의 매력을 더한다. 무브먼트의 베이스 플레이트와 브리지도 모두 곡선으로 깎아냈다. 곡선들은 서로 교차하며 시간을 따라 흐르고, 그 사이로 정교하게 깎아낸 부품들이 보인다.


블루 컬러 버전의 경우, 각 부품이 은은한 블루 컬러 프레임과 대비를 이루면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9시 방향의 마이크로 로터에는 피아제 로고를 새겨 프레임 사이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빈 공간을 위트 있게 채웠다. 케이스 뒷면에서는 일렬로 배열된 기어 트레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두께를 줄이면서 무브먼트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 톱 플레이트 없이 그대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를 덮었다. 마이크로 로터 케이지에서 밸런스 휠 브리지와 기어 트레인 브리지를 따라 흐르는 곡선은 이 시계에 숨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라인 중 하나다. 베이스 플레이트와 브리지는 앞면과 뒷면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피니싱했다. 각 부품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포개지며 조립되는데, 결과적으로 두 가지 마감 기법이 하나의 단면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각 프레임의 외곽은 모두 앵글라주 기법으로 마무리했다.



폴로 스켈레톤 / Ref. G0A45004 / 지름 42mm / 케이스 스테인리스 스틸,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백,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셀프 와인딩, 1200S1 / 기능 시, 분 / 다이얼 블루 스켈레톤 / 스트랩 스틸 브레이슬릿, 블루 앨리게이터 레더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의 비밀


케이스 지름은 42mm지만 체감상으로는 그보다 훨씬 작게 느껴진다. 42mm라는 수치에는 러그에서 이어지는 케이스 좌우로 살짝 튀어나온 부분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영역은 러그와 러그 사이, 즉 케이스의 상단과 하단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세로 방향의 지름은 42mm보다 작게 측정된다(시계 사이즈는 대체로 손목 너비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세로 길이가 체감 사이즈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쿠션 형태의 다이얼로 베젤 면적이 넓어지는 것과 짧은 러그 길이 역시 체감 사이즈를 줄이는 데 일조한다. 방수 성능은 30m 정도

다. 얇은 두께를 유지하기 위해 방수 성능을 크게 높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스포츠 워치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격렬한 수상 활동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얇은 두께와 무게에서 장점을 취할 수 있다. 44시간의 파워 리저브 역시 다소 부족하지만 울트라-신 콘셉트에 오토매틱 무브먼트인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 다만 시계 본체에서 느낀 만족감에 비해 브레이슬릿의 아쉬움이 크다. 기존 폴로 모델보다 얇은 두께임에도 동일한 규격의 브레이슬릿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본체의 스펙에 맞춰 더 얇은 브레이슬릿을 조합한다면 울트라-신 스포츠 워치의 강점이 더욱 배가될 것이다. 브레이슬릿에 퀵 체인지 시스템이 추가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가죽 스트랩을 추가로 제공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간편하게 교체할 수 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시간의 흐름


폴로는 1979년 처음 탄생한 순간부터 역동성과 우아함을 함께 갖춘 시계였다. 폴로 스켈레톤은 이러한 폴로의 정체성을 또 다른 방식으로 계승한다. 스포츠 워치의 외형에 드레스 워치의 얇은 두께를 구현해 뛰어난 범용성과 탁월한 착용감을 실현했고, 여기에 스켈레톤 디자인으로 기계식 시계의 미학을 드러낸다. 우리는 시간을 볼 수 없지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서서히 변하기 때문이다. 기계식 시계의 내부를 살펴보는 것은 그 느린 변화를 두 눈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폴로 스켈레톤을 착용하면 일상의 매 순간 시간의 틈새를 엿볼 수 있다. 보인다. 거기, 심장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