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

JAEGER-LECOULTRE, A BOOK OF REVELATION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

기계식 시계 제작의 경계를 넘어선 유일무이한 시계


예거 르쿨트르는 4개의 챕터로 천문학적인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제품 리베르소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와 함께 리베르소 탄생 90주년을 기념한다. 새로운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히브리스 메카니카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Reverso Hybris Mechanica Calibre 185 Quadriptyque)의 기원이 독일의 한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사의 이단적 설교로 500년 전에 탄생했다고 한다면, 몇몇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사면권과 유효성에 대한 논쟁(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이단적 설교는 개신교에 개혁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위그노 전쟁(French Wars of Religion, 1562~1598)을 이끌었다. 이 전쟁으로 프랑스의 개신교 상인과 숙련된 기술자들이 스위스 쥐라산맥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종교 박해를 피해 떠나온 사람들 중에는 르쿨트르 가문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발레드주(Vallée de Joux)에 르 상티에(Le Sentier) 마을을 형성했다. 예거 르쿨트르를 창립한 앙투안 르쿨트르(Antoine LeCoultre)는 1803년에 태어났고, 30세가 되었을 때 그와 그의 아들 엘리(Elie)는 주 호수(Lac de Joux)의 남서부 둑에 워치메이킹 아틀리에를 설립했다. 앙투안의 인내와 혁신성은 우리가 알고있는 시계 매뉴팩처 예거 르쿨트르의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히브리스 메카니카다. 몇 세기에 걸친 유럽 역사에서 이 이야기의 실타래를 푸는 데는 신성한 관점이 필요하다. 혹은 16세기의 종교, 정치와 21세기 워치메이킹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을 것이라는 과감한 추정도 필요하다. 이는 예거 르쿨트르 히브리스 메카니카에 접근하기에 매우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야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야망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예거 르쿨트르 히브리스 메카니카는 애트모스 미스터리어스(Atmos Mystérieuse)와 함께 2003년에 제작된 이후, 마스터 자이로투르비용 1(Master Gyrotourbillon 1, 2004)과 리베르소 그랑 컴플리케이션 아 트립티크(Reverso Grande Complication à Triptyq, 2006), 마스터 컴프레서 익스트림 랩(Master Compressor Extreme Lab, 2007) 같은 시계로 또다른 혁신적 탐험을 시작했다. 더 최근에 탄생한 마스터 울트라 씬 미닛 리피터 플라잉 투르비용(Master Ultra Thin Minute Repeater Flying Tourbillon, 2014)과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자이로투르비용 웨스트민스터 퍼페추얼(Master Grande Tradition Gyrotourbillon Westminster Perpétuel, 2019)은 시계 제작 기술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감히 판단하자면 21세기(20세기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에 제작된 것 중 기계식 시계 제작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계는 히브리스 메카니카 프로젝트가 유일하다.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


콰드립티크의 재등장


2021년 워치스 & 원더스에서 예거 르쿨트르는 히브리스 메카니카의 16세기 버전 시계인 리베르소 히브리스 메카니카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를 선보였다. 가장 복잡한 시계지만 착용 가능한 리베르소이고 4개의 타임키핑 디스 플레이에 삭망 주기, 교점 주기, 근점 주기의 인디케이션을 통합한 최초의 손목시계다. 상징적인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의 독특한 디자인을 고려한다면, 이번 시계는 4개의 페이스로 리버서블한 케이스의 페이스 2개(오른쪽 페이지 와 왼쪽 페이지)와 크래들 두 면(내부와 외부)의 정보를 보여준다. 리베르소 그 랑 컴플리케이션 아 트립티크는 3개의 페이스를 사용해 트립티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올해 선보인 콰드립티크는 가로 31mm, 세로 51.2mm, 두께 15.15mm로 4개의 페이스를 사용해 다재다능한 리베르소만의 목표를 만족 시켰다. 콰드립티크의 오른쪽 페이스는 퍼페추얼 캘린더, 분당 1회전하는 플라잉 투르비용과 함께 핸즈로 시와 분을 표시하는데, 명망 높은 그랑 메종의 메커니즘과 오트 오를로제리에 관련된 노련한 솜씨를 뽐낸다. 퍼페추얼 캘린더와 플라잉 투르비용은 언뜻 표준에 맞춘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메커니즘은 최대한 콤팩트하게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


음악적인 기술 이상으로


콰드립티크의 왼쪽 페이스 센터 스테이지에는 예거 르쿨트르의 차임 기술이 담겨 있다. 점핑 아워와 페리퍼럴 미닛을 사용한 세컨드 타임 디스플레이는 노출된 미닛 리피터 부품을 둘러싸고 있다. 리베르소 케이스에 미닛 리피터를 담은 세 번째 버전이다. 이전에 선보인 2개는 리베르소 레페티션 미닛(Reverso Répétition Minutes, 1994)과 리베르소 레페티션 미닛 아 리도(Reverso Répétition Minutes à Rideau, 2011)다. 예거 르쿨트르의 혁신적인 기술로 잘 알려진 사일런트 스트라이크 거버너(저소음 타격 시스템), 크리스털 공(리피터 공을 무브먼트 플레이트가 아닌 사파이어 크리스털에 직접 부착함), 스퀘어 공 크로스 섹션, 트레뷰셰 해머가 특징이다. 예거 르쿨트르는 이전에 아워 차임, 쿼터 차임과 미닛 차임 사이에 무음 구간 차이를 줄이는 미닛 리피터를 제작했음에도 콰드립티크에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차임을 제작하면서 무음 구간의 차이를 완전히 제거했다.


리베르소 크래들 내부 페이스에 적힌 콰드립티크의 세 번째 챕터는 아스트로노미컬(astronomical, 천체) 컴플리케이션인 우주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손목시계에서는 최초로 삭망 주기, 교점 주기, 근점 주기 디스플레이를 통합했다. 대부분 다른 문페이즈를 나타내는 삭망 주기 디스플레이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교점 주기와 근점 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교점 주기는 지구를 도는 달의 경로가 일식과 교차하는 시기를 보여 준다. 지구에 일식이 일어나면 이러한 교차점 중 하나는 달이 만월이거나 새로운 모습을 띠면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삭망 주기와 교점 주기를 결합한 디스플레이는 일식을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근점 주기는 달의 희귀한 경로를 보여 주고 달이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지는 지점(원지점)과 가장 가까운 지점(근지점)을 표시해준다. 삭망과 근점 주기 디스플레이를 같이 보면 슈퍼문 현상을 알 수도 있다. 이는 달이 풀 페이즈이고 근지점에 있으면서 평상시보다 14% 더 크게 보이는 현상이다.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
Jaeger-LeCoultre 리베르소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


시공간을 가로질러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히브리스 메카니카 칼리버 185의 마지막 챕터는 크래들 외부 페이스에 남반구 달의 페이즈를 보여주는 에필로그다. 달의 주기를 나타내는 대부분의 시계는 북반구 디스플레이로 제한을 둔다. 예거의 마지막 인디케이션은 리베르소의 철학(하나가 보일 때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과 히브리스 메카니카 정신을 상징한다. 99%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라고 말할 때 다른 관점을 지닌 1%가 시공간을 가로질러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은 칼럼 첫 문단에서도 알 수 있듯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히브리스 메카니카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가 세계를 변화시킨 개혁의 기원과 연결되며 앞으로도 유지해 나가야할 정신이다. 역사를 만든 것은 자신의 신념을 믿고 지킨 소수집단의 사람들이다.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Wittenberg) 교회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처럼 예거 르쿨트르는 매번 새로운 히브리스 메카니카를 선보이면서 메종의 우수성과 발전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점점 낡은 신조를 밀어내고 있다. 예거 르쿨트르의 장인들은 기계식 워치메이킹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계를 재정의하려고 한다. 도전은 또 다른 도전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시계학의 영역을 점점 더 확장해야 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