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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그래프 워치의 신고전주의

IWC Schaffhausen Portugieser Chronograph


 

1998년 탄생한 이래 거의 변함없는 디자인을 지켜온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이 타임피스는 밀레니엄 시대를 대표하는 크로노그래프 워치의 신고전이다.



달에 다녀온 적도, 레이싱에 참가한 적도 없다. 하지만 가장 아이코닉한 크로노그래프 워치를 꼽을 때 IWC의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는 후보작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IWC는 1940년대의 고전적 디자인에 모던한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심플하게 담아냈다. 정장을 입든, 캐주얼을 입든 이 시계는 어떤 상황에서나 착용자와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고급스러운 갈바닉(전기도금) 다이얼과 리프 핸즈가 클래식한 느낌을 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라비아숫자 인덱스와 크로노그래프 기능으로 스포티함을 더했다. 어느쪽으로도 쏠리지 않는 완벽한 밸런스다. 마치 이 시계 다이얼의 절묘한 대칭 구조처럼 말이다.




마린 크로노미터를 손목시계로 구현하다


1939년 탄생한 포르투기저는 오늘날 IWC를 대표하는 컬렉션 중 하나다. ‘포르투기저’는 독일어로 ‘포르투갈 사람’을 의미한다. 당시 2명의 포르투갈 항해사가 IWC에 마린 크로노미터 수준의 정밀한 손목시계를 의뢰했는데, 이들을 위해 만든 시계가 바로 포르투기저다. 마린 크로노미터는 바다에서 경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제작한 고정밀 시계로, 이를 손목시계로 구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포르투갈 항해사를 위해 IWC는 포켓 워치에 사용하는 칼리버 74 무브먼트로 지름 43mm의 큼직한 손목시계를 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포르투기저 워치(Ref. 325)였다.


이 시기에는 손목시계 사이즈가 대체로 33mm 정도였기 때문에 포르투기저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컸다. 지금도 드레스 워치로는 작지 않은 크기인데, 시계가 탄생한 과정을 이해하면 오히려 특별한 멋으로 다가온다. 시대별로 포르투기저의 무브먼트는 조금씩 바뀌었다. 194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까지는 칼리버 98을 사용했고, 1970년대에는 여기에 충격 보호 기능을 추가한 칼리버 982를 사용했다. 빈티지 포르투기저는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여러 관련 자료에 따르면 칼리버 74 버전이 300개 정도, 칼리버 98과 982 버전이 370개 정도 생산되었다고 하며, 1980년대부터는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하지만 쿼츠 파동 이후 1990년대부터 기계식 시계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포르투기저는 워치메이커 커트 클라우스의 주도 아래 성공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

Ref. IW371605(위)

371615(아래)


지름 41mm

케이스 스테인리스 스틸,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오토매틱 칼리버 69355, 약 46시간의 파워 리저브

기능 시, 분, 초, 크로노그래프

다이얼 실버(위), 그린(아래)

스트랩 악어가죽



포르투기저의 부활과 크로노그래프 모델의 등장


1993년 IWC는 창립 125주년을 기념해 포르투기저 리미티드 에디션(Ref. 5441)을 출시했다. 지름 42mm 케이스에 칼리버 9828을 장착했는데, 이 엔진은 과거 칼리버 98을 기반으로 제작한 핸드 와인딩 포켓 워치 무브먼트였다. 이 복각 모델은 애호가들에게 큰 관심을 받으며 시계업계에 ‘포르투기저’라는 이름을 알렸다. 여세를 몰아 IWC는 1995년 2개의 포르투기저 워치를 출시했다. 하나는 포르투기저 미닛 리피터(Ref. 5240)로, 칼리버 95에 차임 메커니즘을 적용한 550피스 한정판이었다. 하지만 그해의 진정한 주인공은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 라트라팡테(Ref. 3712)였다. 이 시계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1998년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Ref. 3714)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처음부터 완성형에 가까웠던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는 단숨에 IWC의 스테디셀러로 등극했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디자인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시계의 완성도를 짐작할 수 있다. 외형은 같지만 내부는 2018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그해 IWC는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 래커 다이얼의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를 선보였는데, 이 한정판에는 칼럼 휠 방식의 새로운 인하우스 칼리버 69000 시리즈를 탑재했다. 그리고 2년 뒤 2020년 이 무브먼트를 탑재한 새로운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Ref. 3716)가 출시되었다. 신형 모델은 무브먼트가 바뀐 만큼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백으로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베젤 디자인으로 만들어낸 디테일


케이스 지름은 41mm로 크로노그래프 모델로는 평범한 수준이다. 다만 베젤이 매우 얇기 때문에 다이얼이 상대적으로 커 보이며, 이는 체감 사이즈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 시계는 베젤 영역이 미들 케이스 영역보다 넓다(측면에서 보면 베젤이 미들 케이스보다 더 튀어나와 있다). 정면에서 볼 때 베젤이 미들 케이스를 완벽하게 숨기면서 러그와 연결되는 부분도 가려버리는데, 이런 디테일은 다이얼의 형태를 또렷하게 하고, 러그를 짧아 보이도록 만든 다. 얇은 베젤에서 이어지는 사파이어 글라스는 볼록하게 솟아 있고, 양면 반사 방지 코팅이 되어 있어 시인성이 좋다. 두께는 13mm로 크로노그래프 모델치고는 슬림한 편. 케이스 백에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적용하면서 이전 모델보다 두께가 미세하게 증가했는데, 방수 성능은 여전히 30m까지만 유효하다. 전용 브레이슬릿과 러버 스트랩이 등장한 현시점에서는 꽤 아쉬운 부분. IWC의 의도대로 스포츠 워치 영역까지 커버하려면 향후 보완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일상적인 사용 환경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크라운은 포르투기저 컬렉션 특유의 빅 사이즈로, 일반적인 드레스 워치에 비해 큼직한 편이다. 여기에 헤드가 있는 피스톤 형태의 푸셔를 조합해 균형을 맞췄다. 2개의 푸셔 역시 베젤에 가려져 실제 길이보다 더 짧아 보이며, 이 또한 드레시한 디자인에 기여한다.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다이얼


IWC는 고품질 다이얼을 생산하는 브랜드다. 포르투기저 컬렉션을 대표하는다이얼 컬러는 단연 실버. 갈바닉 기법으로 제작한 실버 다이얼은 은은하면서도 미세한 입자의 빛 반사를 보여준다. 여기에 아플리케 방식으로 붙여 넣은 아워·미닛 인덱스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크로노그래프 모델의 경우 미닛 인덱스를 도트 방식으로 처리해 1993년 등장했던 한정판 포르투기저의 느낌을 재현했다. 실버 다이얼에 블루 인덱스와 핸즈의 조합은 적당히 캐주얼한 분위기를 발산하기에 그만이다. 여기에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더해 스포티한 감각까지 한 방울 추가되었다. 보다 클래식한 무드가 필요하다면 골드 인덱스·핸즈 모델을 선택하면 된다. 크로노그래프 핸즈에 블루 컬러를 더해 산뜻하고 드레시한 느낌을 연출하기 좋다. 최근에는 블루는 물론 그린, 레드 같은 과감한 컬러도 등장해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다. 플랜지에는 1/4초 눈금을 표시해 경과 시간을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디자인적으로 얇은 베젤을 보완하면서 케이스 외곽 라인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서브 다이얼은 12시와 6시 방향에 위치한다. 아라비아숫자를 절반 정도 가리면서 균형을잡았는데, 서브 다이얼의 위치나 크기에 있어 흠잡을 데가 없다. 숫자를 그대로 남겨두거나 아예 없애버렸다면 분명 서브 다이얼의 밸런스가 틀어졌을 것이다. 또 세로 레이아웃은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사용하지 않을 때 초침과 30분 카운터가 정확하게 포개져 더욱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실현한다. 다이얼 좌우 공간에는 인덱스와 로고를 배치해 여백을 채웠다. 우아한 리프 핸즈 역시 포르투기저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시그너처 디자인이다.




칼럼 휠과 양방향 와인딩 시스템


서브 다이얼을 세로로 배치하는 레이아웃은 다른 크로노그래프 워치와 차별화되는 이 시계만의 개성이다. 언뜻 보면 ETA 7750 무브먼트에서 9시 방향 스몰 세컨드만 제거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초침이 6시 방향에 있다. 지금은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바뀌면서 6시 방향에 초침을 배치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이전 모델(Ref. 3714)에서 사용한 칼리버 79350은 ETA 7750의 9시 방향 스몰 세컨드를 6시 방향으로 옮기는 꽤 높은 수준의 무브먼트 수정이 이뤄졌다. 현재 포르투기저의 엔진으로 활용되는 칼리버 69355는 수평 클러치에 칼럼 휠을 장착했으며, IWC의 대표 기술인 펠라톤 와인딩과 유사한 양방향 폴 와인딩 시스템으로 시계에 에너지를 전달한다. 파워 리저브는 46시간으로 이전 무브먼트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심미적인 부분도 만족스럽다. 베이스 플레이트와 로터를 최대한 가공해 주요 부품을 드러냈고, 피니싱에도 신경 썼다. 악어가죽 스트랩은 모델마다 컬러가 다른데, 안감을 두툼하게 채워 넣어 케이스 두께와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튼튼한 내구성은 덤이다. 최근에는 브레이슬릿 모델도 등장해 스포츠 워치로의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으며, 전용 러버 스트랩도 출시되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변하지 않아도 괜찮아!


시계 디자인은 수많은 세부 요소가 조합된 결과물이다. 다이얼의 크기, 러그의 길이, 서브 다이얼의 밸런스 등 수많은 요소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보편적이고 개성 있는 디자인이 완성된다. 워치메이커가 레귤레이터 장치를 계속 조정 하면서 정확성에 한 걸음씩 다가가듯 디자이너 역시 수많은 요소를 조합하고 수정하면서 이상적인 디자인을 향해 나아간다. 100% 정확한 기계식 시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에 완벽한 디자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완벽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IWC의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는 적어도 시계의 디자인 측면에서 가장 완벽에 근접한 작품일 것이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새로움과 변화는 중요한 미덕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계에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굳이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는 이미 25년 전부터 새로운 고전이었고, 지금도 많은 애호가들이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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