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 워치의 진화 Part 2

DIVER WATCH

 

스쿠버 잠수와 다이버 워치의 등장


인간은 기원전 5000년경부터 잠수를 했다고 전해진다. 잠수는 아른거리는 수면 아래 세상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긴 것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생존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으려고 물속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물고기를 잡으러 물속에 들어간 이상은 잡기 전까지 가능한 한 오래 잠수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터다. 목적이 무엇이든 인간은 물속에서 보다 오래 호흡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거듭해왔다. 인간의 잠수와 물속 호흡이라는 과제는 수천 년에 걸친 긴 역사를 써 내려왔으나 그 자유를 얻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계 역시 방수 기법을 확립하고 더 깊은 물속을 견디게 된 시기는 인간이 물속 자유를 얻은 시점과 비슷하다.


프랑스 해군 출신이자 해양학의 아버지, 환경 운동가로 바다에서 살다 간 자크 쿠스토(Jacques Cousteau)와 엔지니어 에밀 가냥(Émile Gagnan)이 완성한 아쿠아 렁(Aqua Lung)은 잠수 기법에 있어 획기적인 진화를 이뤄냈다. 1943년, 본래 군사용으로 개발된 아쿠아 렁은 압축공기 봄베와 수압에 따라 공기의 양을 조절하는 레귤레이터를 이용해 외부에서 공기를 공급받지 않고 호흡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정식 명칭은 우리에게 익숙한 스쿠버(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다. 덕분에 인간은 마치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숨 쉴 수 있게 되었으며, 행동반경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이상 수면 위 호흡 장치와 연결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스쿠버 잠수는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스포츠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잠수 기법 측면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뤄냈지만, 이것이 물속에서의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한 자유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봄베에 채운 공기의 양은 한정적이며 이는 곧 잠수 시간의 제한을 뜻했다. 따라서 안전하게 잠수하기 위해서는 입수 시작 시간과 경과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이는 물속에서 다이버가 시간을 확인하도록 해주는 장치의 등장을 요구했으며, 이에 화답하듯 195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다이버를 위한 기능을 갖춘 시계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1948년과 1957년 오메가 씨마스터 모델

1948년 오메가는 하프 로터 방식의 씨마스터 오토매틱을 발표했다. 현재 완성된 다이버 워치 장르에서 대표적인 모델 중 하나로 꼽는 씨마스터지만 초기에는 드레스 워치 감각의 스몰 세컨드와 센터 세컨드 모델이 혼재했다. 이 시기의 시계 라인업은 지금과 비교하면 체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의 모델명 아래 여러 시계가 나왔고, 모델명조차 명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장르 역시 모호해서 초기 씨마스터는 다이버 워치가 아닌 에이비에이션 워치로 광고하기도 했다. 이는 다이버 워치 같은 스포츠 워치가 자리 잡기 위한 과

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기형 씨마스터는 방수 시계와 다이버 워치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면 합리적이다. 훗날 씨마스터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해마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며, 다이버 워치의 대표적인 기능 요소인 다이버 베젤이나 야광 안료를 올린 커다란 인덱스 같은 디테일을 갖추지 못했으나 1957년 씨마스터 300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다이버 워치의 꼴이 갖춰지게 된다.




씨마스터 300 코‑액시얼 마스터 크로노미터 41MM


씨마스터는 1955년 62.5m 수심을 견뎌냈다. 방수 기법에 있어 당시 시계업계는 케이스 틈새를 막기 위해 천연 소재나 납을 이용했으나 오메가는 러버 소재의 O-링 개스킷을 사용해 방수 신뢰성을 확보했다. 1957년 발매한 씨마스터 300 Ref. CK2913은 대중화를 맞이한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해 다이얼에 ‘오토매틱’이라는 문구를 올렸고, 날카로운 브로드 애로 핸즈와 정교한 인덱스로 시간을 표시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베젤 인서트는 다이버가 잠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야광 도트를 올려 어두운 곳에서도 높은 가독성을 제

공했다. 씨마스터 300 코‑액시얼 마스터 크로노미터 41MM는 Ref. CK2913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이다. 오리지널의 특징적인 디테일을 잘 살린 한편 케이스 지름이나 무브먼트는 현대적인 흐름에 맞게 변형했다. 브로드 애로 핸즈, 삼각형 인덱스, 베젤 인서트의 숫자를 포함한 발광하는 부분에는 빛바랜 야광을 재현하기 위해 베이지색 슈퍼루미노바Ⓡ를 사용했다.


다수 투박해 보이는 오리지널의 케이스는 지름 41mm로 리뉴얼했다. 탑재한 칼리버 8912는 자동 무브먼트라는 점이 같지만 기술적 진화를 확인시켜준다. 더블 배럴을 이용해 60시간에 달하는 파워 리저브와 자성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은 격세지감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또 무브먼트 피니싱의 아름다움에서도 격차를 느낄 수 있다. 씨마스터 300 코‑액시얼 마스터 크로노미터 41MM의 300m 방수 성능은 요즘 기준으로는 다소 평범하지만 다이버 워치가 탄생한 시점에서는 그야말로 진일보한 기술적 성취다.



롤렉스 1953년 최초의 서브마리너

오이스터 케이스를 획득해 방수 기법의 기초를 닦은 롤렉스는 1953년, 다이버 워치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서브마리너 Ref. 6204를 발표한다. 서브마리너는 다이버가 입수하기 전에 10분 단위의 눈금이 새겨진 양방향 회전 베젤을 돌려 잠수 시작 시간을 세팅할 수 있도록 했다. 베젤에는 야광 도트를 올렸고 다이얼의 야광 인덱스를 사용해 수중 가독성을 고려했다. 방수 성능은 100m로 현재의 다이버 워치와 비교하면 부족한 수치지만 방수 시계의 시대를 거쳐 터득한 방수 기법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다이버들은 Ref. 6204를 통해 물속에서 잠수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호흡 곤란으로 물속에서 위험한 순간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Ref. 6204에서는 회전 베젤이 양쪽으로 돌아가는 탓에 실제 잠수 가능한 시간보다 더 오래 잠수할 수 있다고(회전 베젤이 시계 방향으로 돌게 되어) 표시하는 위험성을 발견하고 후속 모델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회전하는 베젤을 장착했다. 이후 방수 성능과 크라운 가드 등 신뢰성을 향상시키며 다이버 워치의 역사를 써 내려가게 된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Ref. 124060과 3230 무브먼트


롤렉스 서브마리너 Ref. 124060


서브마리너의 원점인 Ref. 6204는 데이트 윈도가 없는 타임 온리였으며 데이트 기능이 추가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현재 서브마리너는 데이트 기능이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으로 나뉘며, 데이트 버전이 상대적으로 상위에 놓였던 (COSC 인증의 유무로 차등) 시기도 있지만 현재는 기능의 유무로 구분한다. 타임 온리 버전은 서브마리너 논데이트로 통칭하며 최신 모델인 Ref. 124060은 3시 방향에 데이트 윈도가 없는 대신 타임 온리 특유의 균형감 있는 다이얼 구성과 심플함을 드러낸다. Ref. 6204 같은 초기 다이버 워치가 방수 성능을

확보하고 가독성을 제공하기 위해 집중했던 시기의 형태와 궤를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서브마리너는 1935년 처음 발매된 이후 방수 성능과기능성을 향상하기 위한 디테일, 새로운 무브먼트의 탑재 같은 변화를 수용하며 세대를 거듭해왔다. 현재는 케이스 지름을 41mm로 확대하고 세라믹 베젤 인서트를 사용해 과거와 다른 고급감을 드러낸다. 이는 즉 현재는 다이버 워치로서의 용도라기보다는 럭셔리 워치로 기능한다는 증거다. 6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쌓아 올린 다이버 워치로서의 성능과 신뢰성, 기능을 따른 디자인이라는 단단한 헤리티지에 기반한 결과다. 시대가 바뀌고 시계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해도 Ref.124060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는 케이스와 무브먼트, 다이버 워치 디자인으로 자리 잡은 기능적 디테일은 처음도 지금도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블랑팡 빈티지 피프티 패덤즈

한편 군에서는 신뢰성 높은 다이버 워치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프랑스의 해군 중령 로베르 말루비에(Robert Maloubier)는 국방성의 지시에 따라 해군 잠수 특수부대 ‘레 나죄르 드 콩바(Les Nageurs de Combat)’를 창설한다. 그들이 물속에서 완벽하게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낙점한 툴워치는 1953년 탄생한 블랑팡의 피프티 패덤즈였다. 이 모델은 블랑팡의 공동 대표였던 장-자크 피슈테르(Jean-Jacques Fiechter)가 로베르 말루비에에게 의뢰받아 제작한 다이버 워치다. 피슈테르는 다이빙 애호가였기 때문에 다이버 워치 제작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덕분에 단방향(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베젤을 적용하고 베젤 인덱스는 합성수지로 덮어 야광 인덱스를 보호하는 등 다이버를 위해 세심하게 설계되었다. 피프티 패덤즈라는 이름은 수심을 잴 때 사용하는 단위인 패덤(fathom)을 적용한 것이다. 약 90m 방수 가능한 다이버 워치라는 의미로 실제로도 높은 신뢰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프랑스 해군은 물론 각국의 특수부대에서 피프티 패덤즈를 채용하며 명성을 얻었다.



블랑팡 오션 커미트먼트 파트너십 활동 모습과 피프티 패덤즈 오토매틱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오토매틱


피프티 패덤즈는 발매 이후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며 성능과 신뢰성을 입증받고, 각국 특수부대와 수입원의 요구에 다양한 베리에이션으로 제작되었다. 블랑팡이 최근 몇 년간 내놓은 복각 한정판들은 과거의 베리에이션을 재해석한 모델로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 현재 피프티 패덤즈의 레귤러 모델은 몇 번의 변화를 거쳐 안착한 형태로 오리지널 디자인에 대한 존중을 담아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다. 1950년대 블랑팡의 공동 대표 장-자크 피슈테르가 베젤 인서트의 인덱스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투명 합성수지 덮개를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재해석한 디테일은 현 피프티 패덤즈 디테일의 백미다. 이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미적인 가치와 함께 고급스러움을 부여한다. 피프티 패덤즈는 스포츠 워치에 적합한 케이스 소재인 스테인리스 스틸에 이어 티타늄 케이스로 소재를 확장했다.


티타늄 특유의 색감과 가벼운 무게는 시계를 손목에 올려보면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블랑팡의 브레이슬릿은 견고하지만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면 매우 무겁다. 하지만 티타늄이라면 무게 부담 없이 브레이슬릿으로도 피프티 패덤즈를 즐길 수 있다. 티타늄 케이스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와 달리 어두운 블루 다이얼과 베젤 인덱스를 택했다. 케이스 컬러와 상성이 좋을 뿐 아니라 깊은 바다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다이버 워치에 제격이다. 피프티 패덤즈라는 헤리티지를 하이엔드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낸 모델로 현재 가장 고급스러운 다이버 워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