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 워치의 진화

DIVER WATCH

 


현대의 다이버 워치


방수 시계의 진화는 다이버 워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다이버 워치의 진화 과정은 주로 방수 성능의 발전과 함께했고,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맨몸으로 감히 범접조차 할 수 없는 고수심 방수의 영역에 도달했다. 20세기 초반 시계를 괴롭히던 물은 다루기 힘든 골칫거리에서 도전의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실용 영역에서 사용하기 충분한 방수 성능을 확보한 다이버 워치는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2000년대 중반, 시계업계가 몰두했던 다이버 워치의 새로운 기능은 바로 수심계(depth gauge)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었

던 회사는 IWC로 GST 딥 원(Deep One)이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IWC의 스포츠 워치 라인이었던 GST(Gold, Steel, Titanium)는 해당 라인업에 사용하는 케이스 소재를 라인업의 이름으로 삼았다. 1980년대 포르쉐 디자인과 손잡고 내놓은 다이버 워치 오션 시리즈로 축적한 방수 기술과 노하우를 이식해 내놓은 라인업이다. 독일제 잠수함 같은 견고함과 단단함을 드러냈으며 1990년대 말미에 내놓은 GST 딥 원은 IWC 다이버 워치 기술의 결정체였다. 케이스 오른쪽에 2개의 크라운(하나는 이너 베젤 조작용, 다른 하나는 일반 용도의 크라운)과 수압 센서를 두어 압도적인 모습을 자랑하는 이 모델은 수압 센서와 수심계가 기계식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동했다. 수압 센서로 들어온 물의 압력이 증가하면 부르동 튜브(bourdon tube)를 작동시켜 수심을 표시했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의 오차를 조정하는 작업 이상의 섬세함이 요구되는 메커니즘 탓에 빠른 단종을 맞이한 비운의 걸작이기도 했다.


IWC의 GST 딥 원은 다이버 워치에 수심계를 넣고자 한 다른 제조사들에 영향을 끼쳤고,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수심계를 갖춘 모델이 대거 등장했다. 2007년 예거 르쿨트르는 당시의 스포츠 워치 라인업인 마스터 컴프레서 다이빙 프로 지오그래픽을 통해 수심계를 선보였다. 케이스 왼쪽에 둔 멤브레인 방식의 수심계는 수압을 측정해 수치를 전달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케이스와 개별 구조를 택해, 보다 합리적인 수심계 기능을 제공했다. 실질적으로 개별 구조였기 때문에 수심계만 떼어낼 수 있었고, 수심계의 핵심인 압력 측정을 위해 제작한 특별한 스프링을 제외하면 조립과 수리가 용이했다. 같은 해 파네라이에서 출시한 루미노르 1950 섭머저블 뎁스 게이지는 더욱 합리적인 접근을 택했다. 탑재한 기계식 무브먼트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전자식 수심계를 케이스 내에 수납하고 다이얼 바깥쪽 인덱스를 이용해 수심을 표시했다. 2009년에는 IWC가 GST 딥 원의 후속작인 아쿠아타이머 딥 투를 발표했다. 마스터 컴프레서 다이빙 프로 지오그래픽과 유사한 멤브레인 방식의 수압센서를 케이스 왼쪽에 두어 수심을 표시했다. IWC의 딥 시리즈는 아쿠아타이머 딥 쓰리로 이어졌고, 기본 구조를 계승하면서도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컬러의 인디케이터로 최고 수심과 현재 수심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비슷한 시기 블랑팡에서도 아날로그 수심계 기능을 갖춘 X-패덤스를 발표했고, 볼워치의 엔지니어 마스터 II 다이버 TMT는 바이메탈(bi-metal)을 이용한 온도계를 사용해 다이버가 수온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IWC 샤프하우젠 GST 딥 원

데스크톱 다이버 워치의 시대


기계식 무브먼트를 장착하는 고전적 의미의 다이버 워치는 현재 실질적인 기능성을 많이 상실한 상태다. 전자회로로 작동하는 다이빙 컴퓨터가 다이버 워치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는 방수 성능은 물론 다이버 워치가 제공하는 잠수 시간과 그 이상의 기능을 제공한다. 소수의 기계식 다이버 워치가 선보였던 수심계나 온도계는 물론 나침반, 감압 정보, 다이빙 로그 기록 등을 제공해 안전한 다이빙을 돕는다. 따라서 요즘 기계식 다이버 워치를 사용하는 경우는 다이빙 컴퓨터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를 가정한 보조 역할이거나 다이버가 기계식 시계 애호가일 때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의 다이버 워치는 물속보다 책상 위를 무대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를 빗대어 데스크톱 다이버라고 부른다. 최초의 다이버 워치와 달리 실용적 성격은 크게 옅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요가 대기하고 있다. 다이버 워치의 디자인을 형성한 기능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높은 방수 성능을 구축하기 위한 기본 요소인 튼튼함과 신뢰성이 인기 요인이다. 그 때문에 날이 갈수록 스포츠 워치가 더욱 강세를 보이는 요즘, 다이버 워치는 절정의 인기를 과시한다. 다이버 워치 초기에는 특수한 용도로 사용하는 툴 워치로 분류했기 때문에 거리를 두었던 하이엔드 브랜드도 다이버 워치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컴플리케이션이 다이버 워치에 본격 등장하기 시작하며 다이버 워치 장르의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다.



예거 르쿨트르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

예거 르쿨트르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


1950년대 후반 예거 르쿨트르의 미국 지사였던 르쿨트르는 전에 없던 다이버워치를 기획했다. 다이버 워치에 알람 기능을 접목하려는 것이었는데, 예거 르쿨트르는 알람 기능에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한 제조사였다. 시각 정보 외에 청각으로도 잠수 시간을 전달하려는 획기적인 기획은 메모복스 딥 씨 알람으로 구현되었고, 1960년대에 접어들며 메모복스 폴라리스(Memovox Polaris)로 이어진다. 이 모델의 탄생 50주년을 맞아 2018년 라인업 중 하나로 부활한 폴라리스는 올라운더 스포츠 워치의 성격을 취했고, 다이버 워치의 이너 베젤은 모델에 따라 달리 적용하고 있다. 현재 폴라리스 라인업의 플래그십은 폴라리스 퍼페추얼 캘린더다. 이 모델 2시와 4시 방향에 위치한 2개의 크라운에서 이너 베젤을 갖춘 다이버 워치임을 알 수 있다.


이 모델은 가독성을 고려해 심플하고 명료한 다이얼 구성을 택하는 다이버 워치와 달리 퍼페추얼 캘린더다운 복잡함을 다이얼 가득 담아냈다. 깊은 바다를 이미지화한 딥 블루 다이얼에는 날짜, 요일, 월과 같은 기본적인 캘린더 기능에 디스크와 레트로그레이드로 남·북반구 달의 위상을 함께 표시하는 문페이즈, 연도 표시, 레드 존(날짜 정보 변경 금지 시간대 표시) 인디케이터를 전부 올렸다. 시간 및 모든 날짜 정보를 크라운에 통합해 조작하는 방식을 택해 오조작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시스템 역시 그대로 이식해 퍼페추얼 캘린더의 풍부한 날짜 기능과 특유의 편의성까지 다이버 워치로 즐길 수 있다.



1959년 / 예거 르쿨트르 메모복스 딥 씨
1968년 / 예거 르쿨트르 메모복스 폴라리스
2018년 / 예거 르쿨트르 폴라리스 크로노그래프
2022년 / 예거 르쿨트르 폴라리스 퍼페추얼더 캘린

 


리차드 밀 RM 025 매뉴얼 와인딩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다이버 워치의 국제 규격 ISO 6425를 충족하는 300m 방수 워치는 생각 이상으로 특별한 스펙이다. 시장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이버 워치가 나와 있지만 ISO 6425를 기준으로 제작한 모델은 극히 소수이며, 거의 대부분은 방수 시계의 기준을 따른다. 그 때문에 소수의 다이버 워치에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준수한 보상으로 ‘diver’s watch’라고 표기할 자격이 주어진다. 리차드 밀은 모든 다이버 워치를 ISO 6425 기준에 맞춰 생산하며, 투르비용과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춘 RM 025는 더욱 특별한 다이버 워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ISO 6425를 충족하는 다이버 워치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울뿐더러, 투르비용과 수동 크로노그래프가 들어간 컴플리케이션은 극소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이버 워치 국제 규격은 방수 성능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물속에서 사용할 때의 돌발 변수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고려한다. 따라서 내충격성이나 내자성능 규정이 포함되며 깊은 물속에서 섬세한 투르비용과 수동 크로노그래프 메커니즘을 보호하려면 기술적 난도는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물의 침투를 차단하기 위한 크라운 방수 기술은 물론 크로노그래프 작동을 위한 푸시 버튼의 방수도 제조사에 난제로 작용하는 셈이다. 리차드 밀은 컴플리케이션을 물속에서 완벽하게 보호하면서 RM025를 착용한 다이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회전 베젤에 안전장치를 하나 더 추가했다. 12시와 6시 방향에 둔 푸시 버튼을 누르며 회전 베젤을 돌릴 수 있도록 한 구조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회전하는 다이버 워치 베젤의 신뢰성을 한층 더 강화했다. 이 같은 요소들로 완성한 RM 025는 컴플리케이션을 갖춘 최고 수준의 신뢰성을 지닌 다이버 워치로 다이버가 물속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일 것이다.




리차드 밀 RM 025 매뉴얼 와인딩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율리스 나르덴 다이버 크로노그래프 44mm


배가 항구에 정박할 때 사용하는 닻은 항해와 해양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시계 제조사에서는 드물게 율리스 나르덴이 닻을 로고 한가운데 넣어 강조했다. 율리스 나르덴의 역사에서 바다 위의 길잡이인 마린 크로노미터(marine chronometer)가 차지하는 부분을 고려한다면 로고에 넣은 닻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닐 듯하다. 이 점은 율리스 나르덴의 라인업 구성에서도 확인된다. 마린라인업을 마린 크로노미터 특유의 다이얼 구성을 계승한 모델로 채웠다. 커다란(?) 스몰 세컨드와 알파벳 C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90도 돌린 모양의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를 기본으로 삼아 베리에이션을 전개한다. 다이버 라인은 과거 마린 크로노미터 디자인을 베이스로 만들었다. 최근 라인업을 전면적으로 손보면서 전형적인 다이버 워치의 터치를 가미하긴 했으나 여전히 마린 크로노미터의 색채를 찾을 수 있다. 다이버 크로노그래프 44mm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적용하면서 마린 크로노미터의 색채가 옅어졌지만 해양을 연상시키는 디테일로 자사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갑판의 패턴을 옮겨 온 베젤 인서트, 크로노그래프 카운터에 넣은 패턴 곳곳에서 발견되는 디테일로 확인할 수 있다. 다이버 워치는 방수 성능과 가독성을 중시해 타임 온리나 데이트 기능이 주를 이뤘다. 크로노그래프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기능이지만 다이버 워치에서는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이버 크로노그래

프 44mm는 300m 방수가 가능한 크로노그래프로 물속에서도 계측 기능을 유지한다. 회전 베젤을 돌려 잠수 시작 시간을 세팅함과 동시에 크로노그래프를 작동시켜 잠수 시간의 경과를 한번 더 확인할 수 있다. 300m 방수의 견고한 크로노그래프 다이버 워치는 닻 모양 로터를 단 인하우스 칼리버 UN-150을 시스루 백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찍이 러버 밴드를 적용해 더욱 용이한 수중 사용을 가능케 하며 사용자 친화적 디테일을 보여 준 역사까지 계승하고 있다




율리스 나르덴 다이버 크로노그래프 44mm와 케이스 백


율리스 나르덴 로즈 골드 케이스를 장착한 다이버 크로노그래프 44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