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혁신, 브레게

2022.September_Cover Story RICHARD MILLE

 



시계 곳곳에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혁신이 가득 차 있다. 옛 서브스크립션 포켓 워치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에 더해 투르비용과 퓨제-체인 트랜스미션 시스템까지. 트래디션 투르비용 7047을 통해 느껴보는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숨결과 워치메이킹에 대한 열정




투르비용의 종가, 브레게


기계식 시계의 여러 기술 중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인 기술을 꼽는다면, 역시 투르비용이 아닐까? 투르비용은 프랑스어로 ‘회오리바람’이라는 뜻으로, 밸런스 휠과 이스케이프먼트가 회전하는 모습이 마치 회오리바람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경이로운 워치메이킹 기술은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1801년 6월 26일 투르비용 제작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메종 브레게가 투르비용의 종가로 널리 인정받는 이유다. 지금은 심미적인 역할이 훨씬 크지만 원래 투르비용은 포켓 워치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18세기 무렵 남성들은 포켓 워치를 조끼나 재킷에 넣고 다녔는데, 시계가 오랫동안 수직 상태로 고정되면서 정확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중력에 의한 오차를 극복하기 위해 투르비용 기술을 개발했고, 그 정확성과 화려함이 손목시계 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오늘날 파인 워치메이킹 애호가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컴플리케이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브레게를 대표하는 기술인 만큼 투르비용은 메종의 모든 컬렉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물론 트래디션 컬렉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트래디션 컬렉션의 탄생


브레게의 트래디션 컬렉션만큼 독특한 시계가 또 있을까 싶다. 시계의 작동 메커니즘을 전면부에 드러내면서 다이얼을 하나의 구성 요소로 활용하는 디자인은 오직 브레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멋진 개성이다. 무엇보다 이 디자인은 현시대의 디자이너가 자의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유산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트래디션 컬렉션은 브레게의 전설적인 서브스크립션 회중시계에서 영감을 받아 2005년 등장한 컬렉션으로, 헤리티지와 현대성을 결합한 미학이 특징이다. 1797년 출시된 서브스크립션 워치는 하나의 핸즈로 시간과 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세련되면서도 미니멀한 디자인을 자랑했다. 시계를 주문할 때 가격의 4분의 1을 선지불해야 했던 이 시계는 독특한 디자인과 함께 당시 매우 아방가르드한 시계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메종은 이 서브스크립션 시계를 모티브로 해서 2005년 트래디션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처럼 트래디션은 브레게의 역사에 경의를 표하는 대표 컬렉션으로, 브랜드의 기원으로 회귀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퓨제-체인 투르비용 메커니즘의 기술력


브레게는 2007년 최초로 트래디션 투르비용 7047을 선보였다. 이 시계는 퓨제-체인 투르비용의 트랜스미션 시스템을 적용해 무브먼트가 메인 스프링의 와인딩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일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등시성(isochromism)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모델이다. 다시 말해 와인딩 수준에 관계없이 일정한 토크를 보장해, 시계의 규칙적인 작동을 최적화한 것. 이 시계는 배럴이 완전히 와인딩되면 최대한의 동력을 발휘한다. 체인은 퓨제 상단, 즉 가장 작은 둘레를 따라 움직인다. 체인이 풀리면서 토크는 감소하지만, 퓨제의 가장 넓은 부분인 베이스와 나란히 움직이면서 전달되는 동력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올해 출시된 새로운 트래디션 투르비용 7047은 이러한 퓨제 투르비용 메커니즘에 블루 톤을 더했다. 특히 시각적으로 통일된 느낌을 주기 위해 부품 전체에 다양한 처리 기법을 사용했는데, 투르비용 케이지와 다이얼은 블루 코팅, 체인 링크는 푸른빛의 열처리 과정을 거쳐 다채로운 블루 컬러를 연출했다. 또 새로운 트래디션 투르비용 7047은 오프 센터 골드 다이얼의 ‘클루 드 파리’ 기요셰와 전통적인 로마숫자, ‘사과’ 형태의 핸즈를 통해 브레게 워치메이킹 하우스의 주요 시그너처를 재현했다. 오리지널 모델과 마찬가지로, 다이얼은 3개의 스크루로 고정되어 있으며, 플래티넘 소재의 트리플 블레이드 폴딩 버클을 장착한 미드나잇 블루 앨리게이터 스트랩과 함께 제공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혁신이 투르비용이라는 회오리바람 안에 모였다. 이 멋진 바람이 미래에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궁금해진다



트래디션 투르비용 7047

Ref. 7047PT/1Y/9ZU

지름 41mm 케이스 플래티넘, 30m 방수

무브먼트 기계식 매뉴얼 와인딩, 칼리버 569

기능 시, 분, 퓨제 투르비용

다이얼 수공 기요셰 마감 및 오프센터 골드 블루

스트랩 미드나잇 블루 앨리게이터 가죽



“18세기 무렵 남성들은 포켓 워치를 넣고 다녔는데, 시계가 오랫동안 수직 상태로 고정되면서 정확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중력에 의한 오차를 극복하기 위해 투르비용 기술을 개발했고, 그 정확성과 화려함은 높이 평가받는 컴플리케이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기요셰 다이얼 제작 기법을 시연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

(좌) 교체 가능한 3개의 스트랩을 제공하는 클래식 담므 8068의 뉴 버전 (우) 트래디션 라인의 기원인 서브스크립션 워치

18세기 산업혁명 기간 이루어진 기계의 발명과 워치메이킹 기술에 깃든 인내의 순간을 담은 벽 장식

브레게 라운지 대형 부스의 벽을 장식한 아티스트 파블로 브론스타인

한국을 처음 방문한 브레게 CEO 리오넬 아 마르카가 착용한 시계, 클래식 7337 신제품


BREGUET IN FRIEZE SEOUL

예술로 들썩인 프리즈 서울에서 조우한 브레게


편집증적인 노력과 극도의 정교함, 예술적 완성도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시계와 예술품은 이같은 공통분모 안에서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다.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아트 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에서도 그러한 광경을 직접 목도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바로 프리즈 서울 내에 마련된 브레게 라운지다. 브레게는 지난 5월 전 세계 주요 현대미술 아트 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1991년 아트 매거진으로 시작한 프리즈는 2003년 런던에서 첫 아트 페어를 연 것을 시작으로 뉴욕, 로스앤젤레스로 확장하며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성장했다.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개최된 프리즈 페어로, 해외 수집가와 미술 애호가, 취재진을 서울로 이끄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프리즈의 CEO 사이먼 폭스는 “올해 프리즈 뉴욕은 60여 곳, 프리즈 로스앤젤레스에는 100여 곳이 참가하는데, 프리즈 서울은 110개의 갤러리가 참가해 런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라며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커다란 이슈를 남긴 프리즈 서울에 마련된 브레게 라운지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명 아티스트 파블로 브론스타인(Pablo Bronstein)의 파노라마 설치 시리즈로 꾸며졌다. 2022년 5월 18일 열린 프리즈 뉴욕에서 공식 컬래버레이션을 시작한 이후 두 번째다. 18세기 산업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파블로 브론스타인은 당시 워치메이킹 기술에 깃든 인내의 순간을 작품으로 표현해 브레게 라운지가 설치된 대형 부스의 벽 전체가 그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그는 평소 역사적 건축물과 18세기 바로크 양식을 본뜬 상상 속 건축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을 해온 인물로, 실제 역사에 착안하면서도 자신만의 상상을 더해 작품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형태와 세대를 거쳐 서로 연결되며, 동시에 고전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브레게가 추구하는 가치와 혁신적인 정신의 결이 일맥상통한다. 브레게가 수많은 아티스트 중에서도 왜 파블로 브론스타인을 주목했는지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아트 컬렉터 및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브론스타인의 작품뿐 아니라 브레게 매뉴팩처 소속 장인의 기요셰 기술 시연도 직접 볼 수 있었다. 기요셰 공법은 1786년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워치메이킹에 도입한 전통 기법으로, 다이얼의 미학적 측면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가독성을 향상시키는 요소다.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 방식을 요하는 이 공법은 100년이 넘은 기요셰 선반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번 행사에서는 방문객들이 기요셰 세공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본인이 작업한 로터를 기념품으로 소장할 수 있게 하는 등 브랜드의 헤리티지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이외에도 브레게 아카이브 속 역사적인 포켓 워치를 비롯해 트래디션, 클래식, 레인드 네이플 컬렉션의 신제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새롭게 재해석된 클래식 담므 8068은 브랜드 최초로 2개의 추가 스트랩을 제공하는 모델로 스트랩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어 여성 방문객들에게 높은 관심을 얻었다.


브레게의 CEO 리오넬 아 마르카(Lionel a Marca)도 프리즈 서울 개막에 맞춰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워치메이커 출신인 그는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브레게가 속한 스와치 그룹의 일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룹의 창립자 하이에크 가문의 무한한 신뢰를 얻으며 지난해 브레게의 CEO로 낙점된 인물. 본인이 워치메이커 겸 전문 기술자 출신이기에 제품 개발 과정에서 자신이 지닌 지식을 바탕으로 색다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의 손목에는 2022 노벨티 클래식 7337 모델이 자리하고 있었다. 본인이 착용한 모델은 회중시계 No.3833을 베이스로 한 시계로 정말 필요한 기능만 적용한, 고전적 우아함을 지니고 있는 시계라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는 같은 걸 두번 만들지 않는다. 이미 판매하고 있는 완성품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한 버전 더 승화시킨다는 것은 어렵고 놀라운 일이지만 그 원칙은 반드시 지킨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전통을 꾸준히 계승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현대적인 것을 추구한다”라며 브랜드의 방향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수많은 화제와 이슈를 낳으며 막을 내린 아트 페어. 내년의 두 번째 프리즈 서울, 그리고 브레게 라운지는 또 어떤 작품과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주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