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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편적인, 그럼에도 가장 특별한 크로노그래프 시계


 

시간을 계측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기계식 시계에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컴플리케이션이다.



루이 모네가 1816년 발명한 ‘Compteur de Tierces’
루이 모네가 1816년 발명한 ‘Compteur de Tierces’

지난 2019년, IWC는 브랜드 앰배서더 루이스 해밀턴과 함께 파일럿 워치 캠페인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 실버 애로우를 운전하는 루이스 해밀턴은 파일럿 워치 크로노그래프의 푸셔를 눌러 자신을 추월하려는 스핏파이어 항공기를 정지시킨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시공간에서 그는 여유롭게 스핏파이어를 감상한 뒤 다시 푸셔를 눌러 시간이 흘러가게 한다. 영상은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시간을 멈출 수 있지만, 그 무엇도 나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I can stop time, but nothing stops me).’



니콜라스 뤼섹이 1821년 발명한 크로노그래프 장치
니콜라스 뤼섹이 1821년 발명한 크로노그래프 장치

세계 최초의 크로노그래프 시계

당시 IWC의 캠페인은 크로노그래프 워치의 상징적인 장면을 잘 포착했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저장되어 있다. 해당 영상이 보여주듯 크로노그래프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정확하게 계측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를 구현하려면 시간만 알려주는 일반적인 시계보다 더 정교하고 복잡한 부품을 더해야 한다. 현재는 매우 보편적이고 평범한 기능이지만 기계식 시계 초창기에는 정확하고 안정적인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만드는 것이 브랜드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했다.


최초의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1816년 프랑스의 루이 모네(Louis Moinet)가 발명했다. 그는 당대의 뛰어난 워치메이커로, 1848년 시계 제작 백과사전을 출판할 만큼 기술적 역량이 뛰어났다. 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와 동시대를 풍미한 인물이기도 하다. 루이 모네는 1816년 만든 자신의 독창적인 시계에 ‘Compteur de Tierces(1/60초 계측기)’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시계는 현재 최초의 크로노그래프 워치로 인정받고 있다. 시간당 21만6000회의 고주파로 작동하는 이 시계는 1/60초까지 정밀한 측정이 가능했으며, 중앙 바늘의 정시, 시작, 리셋 기능은 2개의 버튼으로 제어했다.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인 시계였던 셈이다. 그의 발명 이후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기계식 시계의 대표적인 컴플리케이션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루이스 해밀턴과 함께한 IWC의 파일럿 워치 캠페인
루이스 해밀턴과 함께한 IWC의 파일럿 워치 캠페인

자동차 레이싱과 크로노그래프 워치의 발전

계측을 위한 용도인 만큼 크로노그래프의 발전은 시간을 다투는 각종 경기와 관련이 깊다. 자동차가 아직 도로를 누비지 않던 시절, 크로노그래프 워치는 주로 승마 경주의 기록 측정을 위해 사용되었다. 크로노그래프의 선구자 니콜라스 뤼섹은 1821년 파리의 한 경마장에서 자신이 개발한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장치를 시연했다. 이 기념비적인 시계는 현재 몽블랑의 니콜라스 뤼섹 컬렉션으로 어이지고 있다. 이어서 1831년에는 라트라팡테 크로노그래프가 등장했고, 1862년에는 리셋 기능이 개발되면서 보다 정확한 기록 측정이 가능해졌다. 또 1880년대 미국에서 판매된 론진의 크로노그래프 워치는 경마, 승마 등 말 관련 스포츠를 위한 시계로 명성을 떨쳤다.


20세기에 모터 레이싱의 시대가 열리자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마침내 자동차 경주에도 활용되었다. 최초의 자동차 경주는 1894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고, 1904년부터 안전하게 경기를 진행할 수 있는 규격인 포뮬러(Formula)가 적용되면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시계 회사들도 이 무렵부터 관련 시계를 앞다퉈 제작하기 시작했다. 브라이틀링은 가장 적극적인 워치메이커 중 하나였는데, 1905년 포켓 워치 타키미터에 관련된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한편 브라이틀링은 1923년 리셋 버튼을 분리한 더블 푸셔 방식을 발명하면서 크로노그래프 워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초기 크로노그래프 워치에는 30분(혹은 45분) 카운터만 존재했으나 1930년대 들어 12시간 카운터가 추가된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유니버설 제네바에서 1936년 발표한 컴팩스(Compax) 워치는 6시 방향에 12시간 카운터가 추가되어 모두 3개의 서브 다이얼을 갖췄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 르마니아의 CH27 무브먼트가 등장한다. 이 무브먼트는 르마니아 2310으로 발전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에 장착된 수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의 아이콘 칼리버 321이다. 한편 르마니아 2310은 높은 안정성과 미학적 아름다움을 인정받으며 쿼츠 파동 이후 여러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의 크로노그래프 엔진으로도 널리 활용되었다.


엘 프리메로를 탑재한 제니스의 A384 워치
엘 프리메로를 탑재한 제니스의 A384 워치

수동 크로노그래프 워치의 전성기에 이어 1969년에는 최초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같은 해 제니스는 통합 설계의 고진동 엘 프리메로 무브먼트를 공개했고, 호이어 연합은 뷰렌의 마이크로 로터 무브먼트에 모듈을 올린 칼리버11을 발표했다. 또 세이코는 칼리버 6139를 출시했는데, 이 무브먼트는 세계 최초의 칼럼 휠과 수직 클러치를 조합한 무브먼트였다.


가장 대중적인 무브먼트 중 하나인 밸쥬 7750(ETA 7750) 역시 크로노그래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1974년 등장한 이 무브먼트는 칼럼 휠 대신 레버와 하트 형태의 캠을 사용해 크로노그래프 작동을 제어했는데, 적은 비용으로 보다 정확한 제어를 실현할 수 있었다. 낮은 제조 비용에 내구성과 정확성을 갖춘 밸쥬 7750은 쿼츠 파동 이후 가장 널리 사용되는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로 군림했다.



크로노그래프 워치의 작동 구조

크로노그래프 워치는 계측을 위한 ‘스톱워치’ 메커니즘을 일반적인 타임 온리 시계에 결합한 것이다. 이 결합을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크로노그래프의 작동 방식이 달라진다. 크로노그래프 기능 구현의 핵심은 배럴과 연결되어 시계를 움직이는 구동계, 즉 시간 표시를 위한 메커니즘과 계측에 필요한 메커니즘을 서로 연결·분리하는 것이다. 두 휠의 연결·분리를 제어하는 부품이 클러치인데, 그 연결·분리 과정이 수평으로 이뤄지면 ‘수평 클러치’, 수직으로 이뤄지면 ‘수직 클러치’라고 부른다.


캐링 암(carrying arm)으로 대표되는 수평 클러치는 암(arm) 부품을 이동시켜 기어비가 다른 2개의 휠을 수평으로 결합시킨다. 회전하는 톱니가 다른 톱니에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부품이 마모될 수 있으며, 간혹 결합 타이밍이 안 맞으면 초침이 튈 수도 있다. 하지만 미학적인 부분에서는 장점이 많다. 두 메커니즘을 연결하는 과정이 모두 외부로 드러나기 때문에 무브먼트의 기계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수평 클러치가 제격이다. 특히 로터가 없는 수동 크로노그래프의 경우에는 그 효과가 배가된다. 수직 클러치는 2개의 디스크를 수직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부품 마모 없이 안정적인 작동이 가능한 반면, 주요 작동 메커니즘이 가려지기 때문에 기계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불리한 편이다.


작동 중 다시 푸셔를 누르면 2개의 휠이 분리되며, 이때 초 카운터 휠은 브레이크 레버와 연결되면서 시간 계측이 일시 정지된다. 그리고 리셋 푸셔를 누르면 모든 중간 휠이 분리되는 동시에 리셋 부품이 캠을 움직이면서 초·분 카운터 휠을 원래 위치로 되돌린다. 이 모든 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메커니즘은 작동 상태를 제어하는 것이다.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스타트-정지-(재작동)-리셋’ 순서로 작동하는데, 이 과정을 구현할 때 어떤 부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칼럼 휠’ 방식과 ‘캠’ 방식으로 다시 나뉜다. 칼럼 휠은 마치 바퀴처럼 회전하면서 작동 상태를 제어하며, 캠은 부품 자체의 설계 구조를 통해 작동 상태를 제어한다. 회전하는 최신 무브먼트를 설명할 때 자주 볼 수 있는 ‘수직 클러치에 칼럼 휠’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크로노그래프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칼리버 5200
바쉐론 콘스탄틴의 칼리버 5200

디자인과 스타일을 창조하는 역동적인 엔진

쿼츠 파동 이후 많은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가 사라졌고, 꽤 오랜 시간 시계업계에서는 르마니아의 2310과 5100, 밸쥬 7750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최근에는 많은 브랜드에서 인하우스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제작해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개발되는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는 대부분 수직 클러치에 칼럼 휠을 조합한 현대적인 구조를 갖추었으며, 각 브랜드의 독창적인 설계와 디자인이 반영되어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칼리버 5200, 오데마 피게의 칼리버 4401, 브라이틀링의 B01, 태그호이어의 TH20-00 등이 대표적이다. 기계식 시계에서 크로노그래프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컴플리케이션이다. 오랜 시간 숙성된 기술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복잡하고 정교한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누릴 수 있다. 크로노그래프는 단순히 기능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춘 것만으로도 다이얼은 복잡해지고 스타일은 보다 스포티해진다. 이렇듯 크로노그래프 기술은 기계식 시계 미학의 정수이자 다양한 디자인과 스타일을 창조하는 역동적인 엔진이다. 기계식 시계가 존재하는 한 크로노그래프 워치의 진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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